마지막 주周 2
재판
맹자가 그 젊은 황제를 찾은 건 정변이 일어난 지 보름은 더 지났을 때였다.
전소한 산의 기슭에 있는 오두막의 잔해 사이에 그가 있었다. 새빨간 장포로 잿더미에 파묻힌 백골을 감싸고, 다시 그 장포 채로 백골을 끌어안아 몸을 웅크리고. 오두막은 오래전에 불탄 것을 수습조차 하지 않았는지 불탔던 나무가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 울었나?”
“아직 어려 보이는데요.”
눈가가 새빨갰다. 흰색 내의에 핏물이 흠뻑 들었으나 본인의 것은 아닐 것이다. 황제가 직접 공신의 목을 베어 죽였다 했으니 손에 난 상처는 검을 다루면서 났을 것이고. 금위대장의 말에 따르면 스물하나라고 했는데 짓무른 눈가를 보면 훨씬 더 어려 보였다. 하곡이 맹가를 일별했다. 맹가는 긴 숨을 내뱉고 고개를 끄덕였다.
“… 깨워.”
“예.”
하곡이 부드럽게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끔찍한 현실로 끌어내야 할 시간이었다.
그 젊은 황제- 주희는 비몽사몽한 낯으로 눈을 깜박이다가, 눈앞의 상대가 누군지 확인하고는 금세 서늘한 표정을 얼굴에 덧씌웠다. 그럼에도 일흔 명이 넘는 자를 전부 죽인 미치광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 금위병이, 찾으러 올 줄 알았는데요.”
“자네를 압송하려고?”
“가신만 죽였지 그 일가친척이나 부하를 죽인 건 아니니 복수하려 찾아올 거란 생각도 했고….”
“무슨 짓을 벌였는지 자각은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군. 일어나게. 주로 돌아가야 하니까.”
“아직도 거길 주周라고 부릅니까?”
주의 멸망을 바랐을까? 천 년을 넘은 시간을 걸어온 맹가마저도 그 젊은 황제의 속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다시 꼬박 보름을 걸어 돌아온 주의 수도는 그런 정변이 언제 있었냐는 듯 평소와 똑같았다. 황궁과 삼성육부가 다른 건물로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맹가가 입성한 것을 확인한 금위대장이 직접 나와 그들을 마주했다. 피 묻은 장포를 걸친 황제는 인사를 받는 맹가와 하곡을 무감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재판 전까지는 미치광이 황제를 구금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황제는 별 반항 없이 그 결정을 수긍하곤 알아서 손목에 무거운 쇠를 매달았다. 그즈음 그는 삶의 의지가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누군가가 궁인들로 변장해 그를 죽이려 들어도 가만히 죽어줄 것 같았다.
“… 맹자께서 호법을 서신다고요?”
“재판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사절이라.”
“금위병에게 시키셔도 될 텐데요….”
“됐다. 직접 하는 게 편해. 하곡, 너는 돌아가도 된다. 여기는 내가 마무리하지.”
“순자께도 알려드릴까요?”
“부탁하지.”
하곡이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났다. 맹가는 그의 뒤편, 장지문 너머로 일렁이는 촛불을 일별했다. 일부러 들으라고 이런 곳에서 말했으나 의지 없는 이가 이걸 얼마나 이용할지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첫 재판은 황제의 참석 없이 진행되었다. 주나라의 사람들이 한가득 모인 자리에 마르고 닳은 황제를 세운다면 동정심이 그쪽으로 기울 것이란 유가족의 판단이 있었다. 대리인으로 나선 맹가가 코웃음을 쳤다.
“먼저, 유가족에겐 조의를 표하지. 그들이 황실에선 패악을 부리는 신하였을지언정 그들의 가족에겐 친절한 아비이자 아들이고, 친척이었던 것 같으니.”
“맹자께서 황제를 대변하십니까?”
“글쎄, 그것도 황제라고 할 수 있나? 그냥 휘국공이 앞에 내놓은 허수아비가 아니었나? 이 주나라에서 실질적으로 황제로 군림한 건 휘국공과 그 대신들이었지 않나.”
황제가 많은 걸 이야기하지 않았으므로 맹가는 단편적인 정보만 주워 모아야 했다. 예를 들어 행정의 모든 결재 절차는 황제의 인장이 아니라 휘국공의 인장이 찍혀있어야 한다는 것, 황명보단 휘국공의 명령이 우선시되었다는 것, 궁인들 대부분 황제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것. 휘국공이 정말 충성스러운 신하를 표방하고자 했다면 적어도 황제가 모든 결정을 내렸어야 했다. 그러지도 못하게 만들었다면 그때부턴 유학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어긴 자가 된다. 맹가는 그런 자를 두둔할 생각이 없었다.
“살육이 아니냐고? 아, 그들이 무고했던가?” 조소가 흘러나왔다. “산 하나를 전소시켜 부모를 죽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강제로 끌고 와 황제의 위에 앉혀두고, 제대로 된 권력을 쥐여주지는 못할망정 그들의 입맛대로 아이를 조종했네. 간언은 황제가 아니라 휘국공과 대신들에게로 향했지. 그 상황에서 이게 어떻게 황제가 신하를 죽인 사화가 된단 말인가? 내가 보기엔 잔적을 끌어내린 정당한 혁명 같은데.”
“맹자님!”
“진짜 사화를 겪어보지 않아서 여기에 사화의 이름을 붙이는 건가? 황제가 정말 미치광이였다면 지금, 여기 출석한 유가족 중 팔 할의 목이 없었을 걸세.”
첫 재판은 그렇게 끝이 났다.
황제는 증언을 듣고 기록하는 재판에 처음 모습을 나타냈다. 끼니를 거르지 않은 탓인지 맹가가 처음 발견했을 때보단 살이 올라 있었다.
그는 여전히 이렇다 할 자기변호가 없었다. 감정적인 서술은 일체 제한, 적나라한 증언에 배심석 곳곳에서 헛구역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살육에 익숙해진 무고한 이들은 다 그렇게 구는가 싶었다.
증언이 모두 끝나자 금위병이 그의 팔을 붙잡아 포승줄로 꽉 묶었다. 황제는 그들을 일별하다 시선을 거뒀다. 그는 금위병이 가자는 대로 끌려갔다. 그리고 재판이 끝날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대다수의 유족들이 그를 역적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세간의 여론과는 상관없이 그 재판은 역적 심판이라고 불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옥새의 권위마저 잃어버린 것을 황제라 칭할 순 없는 노릇이라는 맹자의 말을 뒤집어 황제처럼 군림하던 대신을 죽여버린 역적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맹가는 그 꼴을 가만 바라보다가, 반항 없는 이를 가둬 둘 필요는 없다는 의견을 밀어붙여 구금령을 해제했다.
그런 와중에도 주나라의 행정은 철저하게 돌아갔다. 그마저도 휘국공의 안배였다. 그는 제 손안에 모든 행정이 자리 잡기를 바랐다. 어떻게 보면 황권을 강화하는 시도였다. 주나라에선 그가 곧 황제였으므로. 그래서 대부분의 결재엔 휘국공의 인장이 필요했다. 황제의 직인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 이런 시대가 아니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구금령이 풀리자마자 황제가 한 건 재상부에 쳐들어가 한 달이 넘게 밀린 서류에 최종결정권자의 직인을 찍는 것이었다. 휘국공의 인장은 어디 있는지는 죽은 사람들만이 알았으므로 정변 이후 모든 서류에는 황제의 인장이 찍혔다. 붉은색 인주가 권자본 위로 번져갔다.
“저 사특하고 인의 없는 것이 감히 대신을 능멸한다!”
그런 말도 함께 번졌다. 황제는 그 소문을 가만 듣다가, 조소하듯 입꼬리를 일그러트렸다.
“그러라고 하세요.”
“주희.”
“달라질 것이 있습니까? 주나라도 송나라도 사람을 살해한 자는 극형입니다. 사람의 목숨은 목숨으로 갚아야지요.”
“죽으려고?”
“나쁘진 않겠네요.”
황제가 웃었다. 하얀 내의 탓인지 얼굴이 유독 창백해 보였다.
재판은 지난한 과정을 한참 지나야만 했다. 압수수색 결과 황제가 휘국공 몰래 정변을 준비한 증거, 금위대장의 증언 등을 통해 삼청에 날아드는 돌이나 썩은 달걀 따위는 줄어들었지만 악명은 날이 갈수록 높아져만 갔다.
대중들 사이에서 황제란 미숙한 그를 대신해 주나라를 다스린 덕치의 대신을 비참하게 죽여버린 역적이나 다름없었다. 황제는 무대응으로 일관했고 그럴수록 유언비어는 살을 붙여 저잣거리에 떠돌았다. 재판의 판도도 점점 기울어졌다.
“휘국공의 인장이 아니지 않소.”
“… 죽은 걸 알고 계실 텐데요.”
“휘국공을 살해한 자의 인장이 찍힌 교지를 내려서 무엇 한단 말이오? 가져가시오. 그분의 인장이 아니면 집행하지 않을 테니!”
거만함이 하늘을 찌르는 이들도 두셋씩 늘어났다. 황제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대응하지 않으십니까?”
“저랑 이야기하기 싫어하시는 줄 알았는데요.”
“윽…. 그래도 재상부 일을 많이 줄여주신 건 맞으니까요. 재판이 끝나면 해체될 직장이라곤 하지만.”
“계속 그러면 망나니를 보낸다고 하세요.”
“네?”
“황제가 대신 하나 더 숙청하는 걸 어려워할 것 같습니까?”
황제는 제 말 하나하나가 다음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안다. 재상부 안에도 유족 측의 첩자가 숨어있을 것이다. 맹자께 괜한 수고를 안겨드린 것 같아. 중얼거린 말이 화로의 연기에 녹아 사라졌다. 곧 봄이었다. 지난한 재판이 새해를 마주 보고 있었다.
신년이 되어서도 그 누구도 황궁을 수습할 생각을 하지 못했으므로, 황제는 전쟁터 같은 황궁에서 홀로 잠들고 깨어나 재판장에 출석하기를 반복했다. 공정성을 위해 중원 각지에서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모였다. 그들 대다수는 대리인의 편을 들었으나 보상금 문제에 대해선 유족 측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는, 늘 똑같은 대답을 했다. 처벌 강도는 재판 때마다 달랐다. 똑같이 목을 치자느니, 차열을 하자느니 같은 말들이 재판정 안에서 수도 없이 오갔다.
그나마 가장 온건한 형벌이 성도 추방령이었다. 이십여 년 전 주의 집행인이 받았다는 처벌. 그날 재판관은 하남에서 온 소림승과 공림에서 온 순자였다.
“휘국공이 어린 황제를 대신해 국정을 농단한 점, 그가 잘못된 성리학으로 다시금 폭정의 시대를 열려고 했던 점, 그리고 황제께서 그 모든 걸 막아보려고 노력한 증거를 근거로 들어 제시한 벌입니다. 황제께서는 하남으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복건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증거라니요, 무슨 증거가 있습니까? 분명 이전 재판에선 살인 계획만 나왔다고 들었는데요!”
“그건 제가 말씀드리지요. 서고에서 주의 법제를 개편한 서류가 나왔습니다. 재상부의 교차 검증을 마쳤으니 조작한 서류는 아닙니다. 주자가례를 재편찬한 책과 휘국공의 성리학을 고쳐 쓴…. 그래요, 원류 성리학에 가까운 원고도 몇 장 발견되었습니다. 폐기장에서 발견해 복원했습니다.
쓰다 뺏긴 것이 남의 손에 들려있는 걸 보는 건 썩 유쾌하지 않았다. 황제는 사람들 사이를 오가는 주자가례를 바라보기만 했다. 자신이 쓴 책이라고는 하나 이미 소유권은 타인에게 넘어간 것이다. 그는 황궁의 것에 소유권을 주장할 생각이 없었다. 제 목숨도 황궁에 붙들려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이 재판이 끝나고, 주나라가 정식으로 송에 편입된다면 그날로 황제의 삶도 끝난다. 그러면 드디어, 부모님을 만나러 갈 수 있다. 오직 그것만을 위해 살아왔다. 이 모든, 지난하고 길기만 한 일의 끝은 제 죽음으로 장식될 것이다…….
유가족이 항소하지 않았으므로 황제- 아, 그는 드디어 이 직위를 내다 버릴 수 있다. 주희는 성도 추방령을 선고받았다. 황제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다른 사람을 판결한 경험이 있는 순자가 재판장의 결정에 힘을 실었고, 맹자가 제 이름을 걸고 주희를 지켜보겠다 맹세했기 때문이다. 손목을 묶었던 포승줄이 풀리고, 죄수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었을 즈음엔 이미 바깥에 재판 결과가 퍼져있었다.
삼년상은 못 치러드리겠군. 주희는 멍한 정신으로 생각했다. 추방령이라. 어디에 위리안치 시켜둘지는 아직도 못 정했다고 들었다. 아마 주희가 주나라를 완전히 벗어나려면 일주일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맹가가 그의 손을 붙잡고 재판장 밖으로 나섰다. 인파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대다수는 그를 욕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말소리가 엉켜 제대로 된 언어로 들리지 않는 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 것 같았다.
“주희.”
“… 가고 있습니다. 그리 재촉하지 않으셔도,”
“공림으로 오겠느냐.”
“그들이 허락해 줄까요?”
“위리안치가 될 리 없으니까.”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역시 죽는 곳은 공림이 될까. 답잖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공림이라. 서고를 열어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주나라보단 학문이 다양하게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휘국공이 읽지 말라며 내쳤던 것들도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산이 얼마나 클 진 모르겠지만 깊숙이 들어가면 제 시신도 못 찾을 것이고. 아니면 사당에 들어가기 전에 몰래 빠져나올 수도 있을 것이고…. 어디든 주만 아니라면 되었다. 주희는 멍하니 눈을 깜박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니저러니 그에게 나쁜 건 아니었다.
아, 드디어 벗어날 수 있다. 이 지긋지긋한 성리학으로부터, 내 생을 짓밟은 수많은 그림자로부터, 마침내…….
…… 배가, 불이라도 붙은 듯 화끈했다.
주희는 초점 없는 눈으로 제 배를 꿰뚫은 장검의 손잡이를 바라보았다. 입에서 왈칵 쏟아진 핏줄기가 상대의 손을 더럽혔다. 귀에서 이명이 들렸다. 사람을 죽일 때 들렸던 높고 날카로운 소리였다. 반사적으로 몸을 물리자 검자루가 따라왔다. 내장이 헤집어지는 감각이 지독하게 선명했다.
“… 왜, 지금?”
“…….”
이명을 가르고 들려오는 것이 비명이었다. 주희는 뭉친 핏덩어리를 한 웅큼 게워 내며 겨우 상대의 손목에 걸린 팔찌를 확인했다. 선명하게 찍혀있는 금색 오얏꽃 무늬가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저런 식으로 소매를 묶는 건 휘국공과 그 휘하 무관들뿐이었다. 기어이 뼈를 부수고 등까지 꿰뚫은 장검이 햇빛을 받아 어둑한 붉은색으로 번쩍였다.
아, 무지는 죄였다.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고 휘둘리기만 하다가 최악의 선택을 한 주희가 이런 벌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세뇌당해 얻은 이치도 자신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분명 휘국공도 대가는 온전히 치러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걸 이 자가 알고 있진 않을 것 같았다. 목표를 이루면 자결하는 것이 당연한 소대의 일원일 수도 있고.
주희는 냅다 그 사람의 입에 제 손을 물렸다. 당황한 듯 손을 세게 깨무는 치악력에 저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다른 손으로는 그자의 어깨를 붙잡고, 겨우겨우 힘을 짜내 중얼거렸다.
“죽, 지 마. 살아서, 온당한, 처, 벌을…….”
나도, 대가를 치르려고 아직 살아있는데.
세상이 한 바퀴 돌았다. 암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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