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암 빛 눈동자
줄리아 라이네케가 쥘 린드버그에게, 1학년 | 2024.07.13
보호자의 우울, 유기, 자살 시도에 대한 언급 및 암시가 존재하며, 보호자를 돌보는 아동의 심리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열람에 주의 바랍니다.
저는 당신의 아버지를 만나본 적 없지만 어쩐지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아마도 그건 당신이,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으니까…….
줄리아 델피니 라이네케의 눈동자는 헤이즐 색이었다. 노란색과 갈색이 조금씩 섞인, 연두 빛깔의 눈동자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종종 아버지의 것을 쏙 빼닮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가끔 줄리아는 궁금했다. 사람들의 말이 정말로 사실인지. 아버지와 나란히 거울을 볼 일은 커가면서 드물어졌으므로, 그는 홀로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며, 거기 비친 제 눈 색을 기억 속의 눈과 비교하고는 했다.
그의 기억 속에서 헤이즐 빛은 언제나 슬픈 색상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거울을 제외하고, 그가 바라보는 유일한 헤이즐넛 색 눈동자를 가진 사람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때때로 그 눈은 줄리아에게서 떨어져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럴 때면 그는 문득, 견딜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안 돼요. 나를 두고 가지 마세요. 나를 버리지 마세요. 또다시, 나를……. 그래서 그는 무작정 달음박질을 쳐 아버지의 품에 안겼다. 그러면 시선은 돌아오고, 다시금 그 눈동자에는 따스하고 상냥한 빛이 담겼다. 그리고, 그제서야, 비로소 한시름 놓을 수 있는 것이다. 아니구나. 아니구나. 이번에는…….
그것은 너무도 오래된, 그래서 더 이상 뿌리를 파헤칠 수조차 없는 두려움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가장 행복한 감정에 잠기운 바로 그 순간조차도, 줄리아는 불안을 떼어놓을 수 없었다. 그 헤이즐 빛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연원조차 모를 우울에 잠기는 순간이 두려웠다. 눈가가 붉게 물들고, 퉁퉁 부어오른 흔적이 남는 순간이 두려웠다. 그러나 가장 두려웠던 순간은, 그의 아버지가 금방이라도 부서져 버릴 것 같은 때였다. 아니, 그는 때로 생각했다.
아빠는, 어쩌면 이미 오래전에, 부서져 버렸을지도 몰라.
그 생각이 드는 날이면, 어쩐지 가슴이 선득해져서.
―
당신은 항상 슬퍼 보여요. 아버지의 표정을 닮아가는 걸까요?
헤이즐 색 눈동자. 그것은 그의 얼굴과 몸 전체를 통틀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일한 부분이었다. 그의 머리색은 흑단처럼 새까만 검정색. 그의 아버지는 너도밤나무처럼 따뜻한 갈색. 그는 키가 또래보다 작았고,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컸다. 그의 얼굴에는 점점이 주근깨가 박혔고, 아버지의 피부는 점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주 말하고들 했다. 줄리아는 아버지를 참, 많이 닮은 것 같다고. 그 느낌이, 분위기가, 서로를 쏙 빼닮았다고.
그는 거울에 비친 제 눈을 들여다보았다. 평상시 거울 속에는 언제나 줄리아, 그 자신이 등장했지만, 가끔씩, 아주 가끔씩은…… 다른 사람들의 말처럼 그의 아버지를 닮은 꼴이 거기에 자리한 날도 있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이토록 다른데, 단지 눈의 색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나 같게 보일 때가 있다니.
그것은 사랑으로 인한 닮음이었을까, 아니면 슬픔으로 인한 닮음이었을까? 그는 때로 오래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지만, 명확한 답을 낼 수는 없었다.
―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건 아버지가 든든한 사람이어서이고, 어머니를 사랑하는 건, 어머니가 저를 안아주었기 때문이에요. 사랑은 무조건적인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보이지 않는 조건들이 있어요. 지켜야 하는 게 있다고요. 그런 게 바로 부모의 조건이에요. 세상의 모든 건, 주고 받는 거고…… 원래 그런 건 없어요. 없어야 해요…….
그에게 헤이즐 색 눈동자를 물려준 사람. 슬프디 슬픈 그 색을 물려준 사람. 줄리아가 그의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에는 단지 그 이유면 충분했다. 어머니는 말했다. 그가 그의 아버지를 닮은 것이, 그래서 그 눈 가득 슬픔을 담고 있는 것이, 자신을 힘들게 한다고. 그렇게 어느 날, 셋은 둘이 되었다.
셋은 완전하다 그러나 둘은 그렇지 않아서, 그들은 불완전한 서로를 더욱 끌어안아야 했다. 서로를 놓치지 않을 수 있도록, 그래서 또다시 잃지 않을 수 있도록, 더더욱.
세상의 모든 것은 주고 받는 것. 거기에 사랑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당신은 말했다. 그렇다면, 그는 생각한다. 아버지가 나에게 슬픔을 주었기에 내가 그에게 사랑을 주는 것도, 주고 받는 것이 아닌가? 헤이즐 빛의 슬픔을 물려준 사람에게, 같은 빛의 사랑을 알려주는 것은, 잘못되었을까?
―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한다면, 그 슬픈 색으로 점철된 그의 삶은, 잘못된 삶일까?
―
“…… 나는 잘 모르겠어, 쥘.”
호그와트에 와서, 수도 없이 내뱉은 말이다. 그는 생각한다. 이전의 학교를 다닐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그때는 가슴 한 구석이 시리고 답답할지언정, 그래서 온전히 숨을 내쉬기가 어려웠을지언정, 모든 것이 명확한 것처럼 보였는데……. 어째서, 이곳에서는.
관계가 역전된다. 돌보아야 하는 그가 돌봄을 받는다. 챙겨야 할 그가 챙김받는다. 위로해야 할 그가 위로받는다. 어른이어야 했던 아이는 다시금 아이여도 된다 허락받는다. 이 모든 것이 너무도 낯설어서, 그의 삶에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것이어서, 그는 울음을 터뜨려버리고만 싶다. 그동안 쌓아두었던 슬픔을, 한꺼번에 흘려버리고 싶다.
물기 어린 목소리는 울먹거림이, 울먹거림은 이내 흐느낌이 되고.
“그래도, 되는 거야?”
눈물이 기다란 선을 긋는다. 앞서 남은 자국을 따라 쉴 새 없이 따뜻한 액체가 쏟아져 내린다. 얼굴은 일그러지고, 붉게 물들고, 뜨거워지고.
“괜찮지 않다고 말 해도, 되는 거야?”
슬퍼해도 되는 거야?
원망해도 되는 거야?
미워해도 되는 거야?
아파해도 되는 거야?
미처 내뱉지 못한 물음 대신, 둑이 터지듯 울음이 쏟아져나온다. 그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로 꺽꺽이며 울었다. 헤이즐 빛 눈동자에는 물이 한가득 차올랐다 그대로 쓸려나갔다. 두 손은 이제, 당신에게서 풀려나 떨어지는 눈물 사이에서 축축히 젖어든다. 훔쳐도 훔쳐도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난 정말이지 모르겠어…….”
토하는 사람처럼, 몸을 웅크린다. 비명을 지르듯 울음을 토해낸다. 이토록 울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서럽게, 아프게, 고통스럽게, 그는 울었다. 머리가 쨍쨍하니 울리고, 눈이 퉁퉁 붓고, 코가 헐어서 새빨개질 때까지, 그는 그렇게 울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이토록 괴로운데, 이토록 아픈데.
그 사이에서 홀가분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째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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