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약속

알렉을 떠올리는 피가로의 이야기

ㅈㄱㄴ

‘알렉 그랑벨’은 신기한 인간이었다.

많은 인간을 수호하고, 죽이며 살아온 나에게도, 그는 희귀하다는 인상이 박힐 정도로 유별난 존재였다. 대담하면서도 겸손하고, 용감하면서도 무구하며, 냉정침착하면서도 몽상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파우스트와 다르게 귀엽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이런 아이가 북쪽의 대지에서 살았다면, 분명, 마을을 박차고 뛰어나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얼마 가지 않아 차가운 시체가 되어 발견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스스로 식량을 구해내 마을로 돌아와 인간이면서도 추앙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의자에 앉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사람을 이끄는 자리에는 어울리지만, 모두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용기가 있고, 실행력이 있으며, 사랑이 있는 인간이다. 모두를 따르고 싶게 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신뢰는 완벽하게 ‘그도 마찬가지로 모두를 존중하고 사랑하기’ 때문이었고, 바로 그 부분이 그를 왕이라는 개념에 어울리지 않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혁명이 끝나면 그와 파우스트의 삶이 순탄치 않을 거라고 예측할 수 있었다. 국가의 왕이 된다는 것은, 모든 것들을 조율하며 터를 꾸려나간다는 것은, 아무리 친한 상대의 말이라도 의심하며 따르지 않는 자를 처형할 각오가 필요한 자리이다. 성인(星人) 같은 파우스트와 함께하는 그에게는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저 내 추측일 뿐— 실제로 뭐가 어떻게 될지는 흐름에 맡길 수 밖에 없다. 인간의 삶이란 짧은데도 무척이나 복잡하고, 또, 덧없다.

“……피가로 님.”

확실한 것은 하나 뿐. 그는 결코 나를 무엇으로도 추대하지 않을 최초의 인간이었다.

그러니 조금, 나쁜 마음을 먹었다. 침대에 누워있는 알렉에게 속삭였다. 천막 밖에서 바쁘게 지휘하고 있는 파우스트에게는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나라면 네 팔을 고칠 수 있어.”

“…….”

그는 침묵했다. 나는 이해하고 있다. 인간은 계속 꿈을 꾼다. 인간은 비현실적인— 마법에 가까운 것을 몽상한다.

그러니 신비한 것 앞에서 눈이 멀어지고, 어리석어진다. 내가 줄곧 수호해왔던 인간들 전부가 그랬다. 조금만 더 냉정하고 침착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면— 처음부터 보답받지 못할 마음 따위는 품지도 않았을 것이다.

“…괜찮습니다. 이건 저희들의 싸움이니까요.”

처음으로, 불청객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처음부터, 내가 그들이 하는 일을 가벼이 여겼듯— 그도 나를 외부인으로 취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늘로 피부를 찔린 듯한 따끔함, 속마음을 들킨 것 같은 수치가 밀려왔다. 그의 무례한 거절에 순간 분노할 뻔했지만, 그가 죽으면 파우스트가 슬퍼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멈추었다. 대신에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그래, 그렇구나”하고 대답했다.

그의 판단은 무척이나 현명했다. 내가 그의 팔을 고치면, 내가 일으킨 기적은 큰 파장이 될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혁명군의 많은 도움이 되어 이 이야기의 끝에 빼놓을 수 없는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될 것이다. 그것은 ‘인간과 마법사’의 이야기가 될 수 없음을 뜻한다. 그대로 그가 누워있는 천막에서부터 몰래 나왔다. 파우스트는 마지막까지 우리 둘이 나눈 대화는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푸른 눈을 한 소년이 눈밭을 가로지른다.

“피가로 님! 이것 보세요!”

나는 또 하나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었다. 만일 오즈가 이 아이를 포기했더라면, 내가 이 아이의 생명 값에 맞먹는 마나석을 지불해 데려왔더라면, 이 아이를 오직 내가 준 것만으로 키웠더라면…… ‘그랑벨’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 아이를.

“아서. 빗자루에서 그렇게 떨어지면 팔을 다칠 거야. 나 참, 오즈는 대체 뭘 가르쳐준 거람……”

“팔을 다쳐도 빗자루는 탈 수 있어요!”

“위험하니까 절대로 안 돼.”

약 400년이 지나, 나는 새삼스레 그를 연상하게 되었다. 아서는 어린 나이인데도 총명하고, 대담하고, 용기가 넘쳤으며— 동시에 오즈나 나를 향한 예를 잊지 않았다. 이 아이가 감사 인사를 잊은 적은 없었다. 발코니에서부터 오즈의 시선이 느껴졌다. 안절부절못하면서도 아서의 뜻을 존중해 지켜만 보는 오즈는, 솔직하게 웃겼고 이런 풍경을 만들어준 아서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동시에 질투했다고도 생각했다.

“또 오세요, 피가로 님!”

“응, 또 봐.”

어쩌면… 내가 그에게 가진 감정도 비슷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오즈에게 주지 못한 것이 있다. 많은 시도를 했지만, 결국 오즈에게는 닿지 못했다. 나는 파우스트에게 주지 못한 것이 있다. 처음부터 파우스트가 그것을 받고 싶은 상대가 따로 있기 때문이었다. …그랑벨. ‘그랑벨’의 아이들. 샘이 나서 견딜 수가 없어지기도 하고, 순수하게 감탄을 자아내기도 하며, 결국에는, 처음으로 스노우 님과 화이트 님에게 여러 마법을 배웠을 때보다— 더한 신비를 느꼈다.

나의 대지에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아이를 떠올리며,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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