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와T
나 진짜 제목 짓는데 자신 없어서 이런거 적는거 맞음
바니타스의 수기 드림. 샤비와 친구 롤랑의 이야기
타인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은 살아오면서 이미 질리도록 겪어온 일이다. 샤비는 이미 여러번 일을 겪으며, 스트레스도 받았고, 힘들어도 했으며, 아마 미치기도 했었다. 그래도 결국엔 괜찮아졌다. 초연해졌다기보다는 깨달았다고 말하는 쪽이 옳다. 이것저것 찾아보고, 시도해본 결과 도달한 답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였으니까. 나이를 먹는다고 고쳐지는 것이 아니었고, 귀신을 쫓는 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었다.
“애당초에 난 귀신 들린게 아니었는걸.”
“구마의식을 진행했던 서류에 샤비의 이름이 있었는데도?”
롤랑이 한 장의 서류를 샤비에게 내밀었다. 샤비는 읽어보지도 않고 손으로 종이를 밀어냈다. 그리고 따분한 표정을 지었다가, 롤랑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그러다 고개를 잠깐 기울이면, 롤랑도 따라 기울인다. 샤비는 아하, 하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아까 밀어냈던 종이를 다시 가져왔다.
“롤랑은 낙천적인게 아니구나?”
“...이럴수가! 샤비의 평가가 바뀌기도 하다니!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롤랑이 호들갑을 떨며 샤비의 손을 덥썩 잡았다. 종이가 형편없이 구겨지고, 그의 두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샤비는 구겨진 종이를 잠깐 보다가, 롤랑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설명하지 않는 이상 이 반짝이는 두 눈동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처음에는 낙천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게 아니라... 확고한 사람. 자신이 맞다고 생각한 일은 끝까지 밀고 들어가는 모양이던데, 이번에 올리비에 밑으로 들어간다고 했던가?”
“응! 부단장이란 말씀!”
“하하, 올리비에는 그런 타입에 약하니까. 고생 좀 하겠는걸?”
“그런거까지 알 수 있는거구나...”
샤비는 곤란하게 웃으며 롤랑의 손에서 제 손을 빼낸 뒤, 턱을 괴며 나른하게 천당을 올려봤다. 그도 롤랑과 대화를 하다보니 조금 지친 걸까? 아니면, 이 대화가 지루하다 여겨 다른 생각을 하는걸까? 어찌되었든, 롤랑은 제 앞의 샤비가 ‘재미있는’ 말을 시작한 이상 이대로 보낼 생각은 없고 되려 질문을 던지고, 이끌어내어 답을 얻어낼 셈이었다. 롤랑은 샤비의 시선을 끌기 위해 자리에 일어나 샤비의 시야를 가렸다. 전광등을 온 몸으로 받아내니, 마치 후광이 등 뒤에 비치는 듯 했다.
“...그런데 샤비. ‘어째서’ 바뀐거야? 네 평가가 바뀌는건 처음인거같은데.”
잠깐의 침묵 뒤, 샤비는 눈을 감고 “으으음-” 하는 소리를 냈다. 생각을 한다는 건 곧 답을 해준다는 좋은 징조다. 롤랑은 인내심을 가지고 샤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샤비의 평가가 바뀜은 확실히, 신기한 일이기도 했으나 롤랑이 주목하는 점은 그것보다. 조금 더 ‘롤랑’이라는 인물상에 가까운 평가로 수정했다는 점이 때문이었다. 허술하게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렇지는 않더라. 샤비가 어떤 말을 할지 롤랑은 확실히, 기대가 되었다. 생각을 정리한 듯한 샤비가 입을 열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람은 매일 성장해야한다. 주교님이 항상 하시던 말씀이잖아. 성장이라는건 곧 변화를 의미하는거야. 사람이 변화한다는건, 타인의 눈에 다르게 비추어진다는 소리고.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라... 같이 지낸 시간에 따라 관찰도가 달라지니까. 사람의 평가는 달라질 수 밖에 없어. 롤랑.”
“하지만 나에 대해서는 이야기했잖아.”
“그럴 필요가 있으니까 한거야. 평소에는... 달라져도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 사람의 본질은 보통 첫인상과 비슷하거든.”
롤랑이 흘리듯이 말한다.
“그럼... 올리비에는?”
샤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롤랑을 마주본다. 분명 롤랑이 전등의 불빛을 모두 가리고 있음이 분명한데도, 샤비는 어떤 빛을 받고있는 것 같았다. 그 기묘함에 롤랑은 순간 묘한 불쾌감을 느끼고, 한 걸음 뒷걸음친다. 그러자 샤비는 오히려 웃으며 대답했다.
“변화가 없기에 흥미로운 사람도 있는 법이야. 롤랑.”
“샤비는… 올리비에를 좋아해?”
“흥미는 좋아한다와 같은 선상에 둘 수 없을텐데.”
“그렇다면, 사랑이라던가!”
롤랑의 말에 샤비가 웃음 터트렸다가 지워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알기 어려워.”
“어째서?”
되물음에 샤비는 난처해하는 대신, 롤랑은 다시 제 맞은편에 앉혔다. 그리고 차분히 말을 이었다.
“감정을 알아챈다는 신호들이 있잖아. 예를 들어, 화가 나면 성을 내고, 슬프면 눈물을 흘려. 기쁠 때는 웃음을 터뜨리지. 하지만 사랑은? ... 사랑에는 어떤 신호가 있을까. 롤랑?”
롤랑은 그 순간 말문이 막혔다. 막연히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롤랑이 묘한 표정으로 샤비를 바라본다. 그러나 결코 경멸의 표정은 아니었다. 다만... 정말로 어떻게 대해야할지 몰라야 한다는 표정이었기 때문에, 샤비는 되려 솔직하다고 느껴졌다.
“음, 미안.”
“신경쓰지 않아도 돼. 롤랑, 나랑 네가 보는 세계는 다르잖아.”
“올리비에가 왜 네 이야기를 했는지 알 것 같아. 뭘 배우라고 하더니, 이런건가... 그럼 샤비, 하나만 더 대답해줘. 올리비에는 솔직하게 말해주지 않으니까.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그래.”
“알았어.”
“그럼…올리비에는... 자신이 틀린게 싫은걸까?”
고요한 물음에 샤비가 상대방을 곧게 바라봤다. 격양되지도 않았고, 진중하고, 딱딱하고, 확신에 차있지도 않은 순수한 의문을 구하는 목소리. 그 솔직함에 샤비는 순간 웃어버릴 뻔했다. 올리비에가 왜 롤랑을 곁에 두는지 이해한다. 그러나 ‘확인’ 해야만 하는 성격은 확실히 피곤하다. 답해주기 전까지 집요하게 물어볼테니까.
그리고 샤비는 그 질문에 대답해줘야만 했다. 올리비에도 참. 이렇게 두고 어딜간거람. 확실하게 이해한 샤비가 입을 열었다.
“올리비에는 자신이 틀리는건 두렵지도 않고, 싫은건 더욱이 아닐걸. 자신이 무지하다는 점에 짜증을 내면 몰라. 오히려 올리비에는...”
제 손에 쥔 것을 잃는 것. 그렇기에 올리비에는 틀려서는 안됐다. 잘못 판단한다면,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질테니까. 그게 싫은거야. 그렇기에 초조해하고, 솔직하지 못한거야. 다른 이들이 먼저 움직여서 ‘사고’치기 전에 상황을 통제하고 싶은거지.
샤비는 그런 올리비에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솔직하지 않은 척하지만,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온 몸으로 감정을 표출한다. 모두가 올리비에는 ‘그저 화가 나있는 사람’ 이라고 하지만 샤비에게 있어서 올리비에는 가장 상냥하고, 솔직하며, 걱정 또한 많은 사람이다. 모두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한 편으로는 이런 부분을 독식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샤비? 그래서 올리비에는?”
“올리비에는... 아, 올리비에!”
롤랑의 머리 위에 올리비에가 보였다. 롤랑이 약속 시간에 나타나지 않은 탓이겠지만, 알면서도 말하지 않은 샤비의 탓도 있었다. 아마 또 길을 잃었나 싶어 돌아다닌 흔적이 보인다. 샤비는 올리비에가 롤랑에게 소리를 지르며 화내고 롤랑이 애써 웃으며 변명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본다. 과연 누가 더 많이 숨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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