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팬텀

[박사팬텀] 사인(Sign)

므뇽뇽 by 므뇽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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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퍼레이터 팬텀과 함께 다니는 아름다운 검은 고양이, 미스 크리스틴은 영리하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마땅히 요구할 줄도 알고, 가끔은 팬텀을 나무라기도 하면서 자신이 마음에 드는 것에만 곁을 허락하고 모습을 드러낸다. 예를 들면…그래, 지금 박사의 손에 들린 맛 좋은 간식을 원할 때 라던가.

박사는 잠깐의 휴식시간에 간식을 먹을 생각이었다. 데스크의 서랍을 열고 그 속에 든, 견과류 바. 박사의 건강을 생각하는 아미야와 켈시가 단 것을 줄이라면서 건네준 이 간식은 정말 ‘건강한’ 맛이지만, 지금은 이것마저도 감지덕지할 정도로 당분이 모자랐다. 겉부분의 비닐 포장을 벗기고 페이스 실드를 벗은 얼굴 가까이 가져가, 크게 한 입을 베어물었다. 와득- 하는 소리와 함께 정말 담백한 견과류의 맛이 혀 끝에서부터 느껴지면서 약간의 단맛이 감돈다. 열심히 턱을 움직여, 입 안의 것을 씹어 잘게 부순다. 한 입, 두 입… 다섯 입도 되지 않아, 포장지의 끝부분에 아주 작은 조각만이 남게 되었다.

박사는 그것을 마저 입 안에 밀어넣고 머그컵 밑바닥에 조금 남은 커피와 함께 몇 번 우물거리고는 목 너머로 삼켰다. 요깃거리는 되었는지, 허기는 어느 정도 가셨다. 잘만 하면 저녁 식사 시간까지는 잘 버틸 수 있겠지. 다시 남은 서류에 시선을 돌리던 그 때.

“우으응~”

부드러운 울음소리가 발치에서 들려온다.

의자를 뒤로 끌지 않고 조심스럽게 몸만 돌려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미스 크리스틴이 꼬리를 세우고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다. 그녀는 영롱한 두 눈을 한 번 깜-빡 하고 박사에게 인사를 건네더니, 그 조그마한 앞발로 자신의 입가를 건드리는 시늉을 한다. 그녀는 길고 가느다란 두 가닥의 꼬리를 살랑거리면서 박사의 다리에 몸을 비빈다. 이것은 그녀가 뭔가 명백하게 원하는 것이 있다는 사인(sign).

미스 크리스틴은 자신의 앞발로 데스크의 서랍을 가리킨다. 박사가 ‘건강한’ 맛의 견과류 바를 꺼냈던 그 서랍 바로 아래칸. 그곳은 미스 크리스틴의 간식이 들어있는 곳이다. 아하~ 과연. 박사가 간식을 먹는 것을 보니, 그녀도 입이 심심했던 모양이다. 박사가 서랍을 열어, 안에 든 작은 유리병을 꺼내들자, 그녀는 눈을 반짝이면서 데스크 위로 가볍게 뛰어올라, 앉는다.

그리고 아까처럼 앞발로 자신의 입을 건드린다.

작고 까만 앞발리 그녀의 작은 입을 건드리는 듯 톡톡 두드린다. 자신도 먹고 싶다는 그녀의 사인(sign). 박사는 뚜껑을 열고 그 안에 든, 작고 바삭바삭해보이는 정육면체를 꺼내어 그녀에게 내민다. 그러자, 그녀는 얼굴을 내밀어 박사의 손에 들린 트릿을 물고 바삭바삭 씹기 시작한다. 박사는 그런 그녀를 본다. 자그마한 눈썹과 수염이 그녀가 입을 움직이는 것에 따라 살랑거리는 것이 퍽 귀엽다.

이내 한 개를 다 먹은 그녀가 다시 박사에게 사인(sign)을 보낸다. 톡톡톡 앞발로 자신의 입을 두드린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앞에 내밀어진 간식. 그녀는 날름- 입을 한 번 핥고는 그 작은 것들 다시 입에 머금고 씹는다. 박사는 살짝 고개를 숙인 그녀의 조그마한 머리를 내려다보면서 한번 쓰다듬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허락없이 만졌다가는 분명 둔직한 솜방망이가 날아들겠지…….

냘름냘름 입맛을 다시며 그녀가 다시 앞발을 들어올려 자신의 입을 두드린다. 한 번에 그녀가 먹을 수 있는 간식은 세 개로 정해져 있다.

“이걸로 마지막이야.”

“웅-”

알고 있다는 듯이 짧게 운 그녀는 마지막 간식을 받아먹고는 말 그대로 고양이 세수를 한다. 꼼꼼하게 앞발을 핥고, 세수를 한다.

“박사.”

그리고 높은 듯, 낮은 듯 미려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소리없이 다가온 오퍼레이터, 팬텀이다. 그는 박사에게 줄 서류를 데스크 위에 올려놓곤, 미스 크리스틴과 박사의 손에 들린 그녀의 간식통을 번갈아 본다. 그리고 박사를 빤히 쳐다본다.

“딱 세 개만 줬어.”

팬텀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이내 박사가 정말 크리스틴에게 간식을 정량만 줬다는 걸 알곤 표정을 푼다. 세수를 마친 크리스틴은 데스크에서 폴짝 뛰어내리고는 종종걸음으로 팬텀에게 다가간다. 팬텀이 몸을 약간 숙이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날렵하게 뛰어올라 팬텀의 품에 안긴다. 그가 그녀의 턱을 살짝 간질이자, 그녀는 기분 좋은지 살며시 눈을 감으면서 고르릉… 하고 목을 울린다.

박사는 그런 둘을, 턱을 괸 채 가만히 바라본다. 심적 피로를 회복하는데, 미남과 소동물 만한 것이 있을까? 그리고 그 둘의 조합이 저리도 잘 어울리면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박사는 무심코 평소대로 검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턱을 두어 번 두드렸다. 별 다른 의미를 내포한 행동이 아닌, 그저 사고의 범람에 쉽게 빠지는 자신이 조금 더 몰두하기 위한, 혹은 빠져나오기 위한 단순한 행동일 뿐이었다.

“…….”

하지만 팬텀은 그것을 다르게 받아들인 듯 했다. 그는 작게 입술을 깨물더니, 박사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품 안에는 여전히 기분이 좋은 크리스틴을 안은 채. 그는 천천히 박사를 향해 몸을 숙였다. 그리고 박사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잘 익은 과실처럼 희미한듯, 보기 좋게 발그스름해진 그의 뺨과, 살짝 아래로 처진 아련하게 흔들리는 그의 눈망울. 그리고 기대를 품고 살짝 벌어진 입술까지.

“…….”

살며시 다가온 보드라운 입술의 감촉과 미세하게 떨리는 속눈썹은 금방 뒤로 물러났다. 박사는 희미한 온기가 식기 전에, 자신의 입술을 만져보았다. 그리고 점점 더 붉어지는 팬텀의 얼굴도. 박사는 과연… 하고 중얼거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걸음 걷지 않아도, 금방 도달하는 거리. 아니, 도달할 수 밖에 없는 거리.

박사는 팬텀의 바로 앞에 섰다. 고개를 조금만 숙여도 고르릉하고 목을 울리고 있는 미스 크리스틴의 가느다란 수염이 뚜렷하게 보일 정도로.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팬텀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검지 손가락 끝이 팬텀의 얼굴 옆선을 위에서, 아래로- 그러자, 팬텀이 아찔한 한숨을 흘리면서 가늘게 떨었다. 그리고 손가락이 아랫입술을 가볍게 누르자, 입술에 힘이 살짝 들어가는 것이 손가락을 통해 전해진다.

한 번, 두 번, 세 번…… 검지 손가락이 아주 가볍게 살짝 입술을 건드리자, 그걸 기다렸다는 듯이 그가 눈을 감는다. 박사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면서 만족스럽게 미소를 짓곤 입술을 만지던 손으로 눈 앞의 귀여운 이의 뺨을 감쌌다. 그리고는 바로 아래에서 두 사람을 올려다보는 미스 크리스틴을 향해 싱긋 웃어보이고는 가만히 기다리는 이에게 부드러운 키스를 선사했다. 벅차오르는 감정과 짜릿한 전율이 흐르는지 아주 작게 신음을 흘리면서 어깨를 떠는 팬텀을 다른 팔로 감싸안으면서 뺨을 쓰다듬자, 안심이라는 듯이 어깨에 힘을 빼고 다가오는 팬텀이 이다지도 사랑스럽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심장소리를 가까이서 들으면서 만족스럽다는 듯이 더욱 목을 울리는 미스 크리스틴은 가만히 저도 눈을 감는다. 두 연인의 달콤한 시간을 방해하는 것은 숙녀로써 바람직하지 못한 짓이니까. 왜냐하면,

미스 크리스틴은 영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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