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신
윤동주 팔복 | 2023.06
슬퍼하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윤동주 팔복(八福)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주영신 요한John
1021 연구과 21살(3학년)
XY 염색체 181 왜소
외관 및 성격
산송장 같은 낯. 명확한 시선 없이 그저 소리 없이 굴러가던 검은 눈동자. 지독한 고요. 끝없이 침전하는 빌어먹을 공기들. 영신이 누군가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그 어떤 애정도 친절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별명은 젊은 꼰대였으니 성격은 알만했다. 그러나 이 별명은 융통성은 없고 앞뒤 꽉꽉 막힌 면보다는 낮은 타인 수용의 성정에서 기인한 것이다. 인간이 하나의 얼굴만 할 수는 없듯이 때로는 온화함과 평온함을, 때로 어떤 얼굴은 음습함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살아있는 시체 같던 그 애에게 생명력이라는 것은 부질없는 것이었다. 다만 신을 야기할 때만이 밝게 빛나던 눈동자. 복숭앗빛으로 붉게 물드는 두 뺨. 그리고 부드럽게 올라가던 입꼬리. 사랑받는다는 것을 온전히 체감하는 듯한 미소. 분명 행복에 가득 차 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던 검은 눈동자와 검은 머리칼. 긴 손가락과 긴 발가락. 본디 체모가 얇아 아침에 일어나 수염을 깎지 않아도 티가 나지 않던 낯. 평생 정절을 지키고 살 몸이라고 감정까지 거세할 필요는 없다지만 뚜렷한 감정의 기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타인과 완전히 벽을 쌓고 감정을 공유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엉성하기도 했으며 관심사를 같이 하는 친구들과는 농담도 치면서 흔히 자신의 또래 아이들과 비슷한 얼굴을 했다.
앞서 말했듯 영신에게는 타인을 수용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았다. 타인의 감정을 잘 공감하지 못한다. 공감하지 못하는 만큼 무지하고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본인도 그것을 알았으니 굳이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행위들과 타인의 말은 그저 모르는 체하며 넘어가는 편이었다. 직접적인 물음도 못 들은 척하며 굳이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지 않기 일쑤였으니 굳이 영신에게 그 어떤 질문을 하는 이 없었다. 뭘 그런 걸 물어? 어떻게 보면 비겁한 것이었다. 자신의 의견은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서 타인을 판단하는 눈동자는 신을 닮아 있었다. 종교에 깊게 빠진 이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선민의식에서 기인한 것은 아니었다. 본인이 우월하다는 생각보다는 다른 생각에 더욱 골몰해 있었으므로. 비겁한 면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영신은 덤덤한 얼굴을 했다. 본디 예민한 성정이라. 대화하다가도 휙 돌아가는 고개. 시선의 끝에는 항상 아무것도 없었다. 무언가 있었나 살펴보는 시선은 집요했으나 그런데도 아무것도 없다.
산송장. 빌어먹을 영혼의 잔해. 삶보다 죽음을 바라보고 살았으니, 눈동자에는 생명력이 있을 리 전무하다. 천국만을 바라보고 사는 자에게 인생은 어찌 보면 지옥이었다. 영신에게 삶은 견디며 살아야 하는 자신을 짓누르는 무게였고, 결국 천국이라는 죽음으로 도달하기 위한 길목 같은 것. 그러니 그 길목에 굳건하게 서 있던 영신은 신의 얼굴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 있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했다. 영신이 연구과를 지원한 것은, 살아있는 생명들을 바라보면 자신에게도 생명력이라는 것이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기도 쉽지 않으나 기억에 남을 큰 특징은 없이 잘생긴 낯. 특별히 크지도 않았으나 그렇다고 작지도 않던 키. 투박한 손길과 영혼 없는 목소리. 존재감의 부재. 벌써 지긋지긋하다 느끼던 스물한 살의 인생. 인생의 권태로움을 이겨내고자 했다. 그러기에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영신에게는 중요했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매일 말이 달라졌다. 그러나 단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무게가 없으니 그렇다고 진실이라고 말할 것도 없고. 거짓말을 할 때면 티가 났다. 목뒤를 손바닥으로 쓸어내며 민망한 낯으로 웃고 대답 대신. 사람을 답답하게 하는 재주가 있어. 그런 평에도 지고지순하던 그 애의 낯.
기타사항
1월 31일. 9 도시 출생 3 도시로 이주.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정신 사나운 음악. Nirvana의 In Bloom! 1학년 때는 매일 같이 들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듣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벽에 머리를 기대고 침묵으로 일관하며 집요하게 누군가를 향해 시선을 돌리는 일. 사람을 구경한다기에는 시선에 담기는 것이 없다.
깊은숨을 들이마시고는 가슴을 두드리는 행위. 때로는 뼈가 울릴 정도로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리고는 깊은숨을 내뱉는 것. 젊은 꼰대라고 불리는 것은 고사하고 기이하게 차분한 인상을 타인에게 주는 것이 유쾌한 경험은 아니니라. 무미건조한 낯. 때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굳이 그 생각이 궁금하지 않아지는 존재들도 있기 마련이다.
영신은 본가에는 내려가지 않고 기숙사에만 머물렀다. 그냥, 딱 그정도의 온도와 그정도의 깊이. 특별할 것 없는 감상과 특별하게 친절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불친절하지도 않은 인상을 안겨주는 것.
선관란
때로는 어떤 존재가 기억 속에 깊게 머무를 때가 있다. 무의식에서 기인한 것이겠지. 신을 믿지 않는 희원은 천국도 믿지 않았을까. 지옥도 믿지 않았을까. 다만 그런 생각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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