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문대

햇살과 꽃송이

청우문대, 완결 후 if, 기념일과 햇살과 푸른 꽃

티온랩실 by 티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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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우문대 12회 전력: 꽃, 캠핑

감사합니다!

박문대의 솔로 앨범이 무사히 발매되었다.

이 문장은 앨범의 예약 판매부터 초동 집계, 티저, 컨셉 포토, 뮤직비디오, 음악방송, SNS 포스팅, 예능, 자체 컨텐츠, 비하인드 컨텐츠까지 그 모든 것이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순조롭게 종료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그 중에도 반응이 가장 뜨거운 의상은 있었다. 마지막으로 공개된 컨셉 포토이자 뮤비의 댄스 브레이크에서 몇 번을 전환되며 보여준 의상. 목에는 흰 리본 위로 진파랑 큐빅이 크게 달린 초커, 우아하게 굴곡이 잡힌 팔의 라인이 그대로 드러나는 새하얀 볼레로 재킷 속 달라붙는 새카만 민소매, 이와 손을 맞추듯 새카맣고 아주 작은 비즈가 끝단부터 검은 빛으로 물들이듯 올올이 수놓인, 다리에 살짝 달라붙는 형태의 새하얀 바지를 입은 채, 흐드러지는 푸른색 꽃잎 사이에 파묻혀 살며시 눈을 뜨려는 흑발의 박문대. 그 사진을 손에 쥔 채 물끄러미 보던 류청우는 제 어깨에 가만히 기대어 눈을 감은 박문대의 머리카락에 조심스레 입을 맞추었다.

“왜.”

잔뜩 잠긴 목소리가 류청우를 불렀다. 자는 줄 알았는데 깨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류청우는 황급히 사과했다.

“미안해, 자는 줄 알았네.”

“자는 사람한테 그러는 건 뭐 괜찮다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하하.”

부정하지 않은 류청우가 제 입술이 닿았던 곳을 슥슥 쓰다듬었다. 머리를 망가뜨리는지 제대로 다듬어주는지 모르겠어서 박문대가 제 머리를 괜히 매만지는 사이, 류청우는 저 멀리서 박문대를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 마디를 건넸다.

“이제 마지막 촬영이네, 그렇지?”

“네, 이게 이번 활동 마지막 촬영일 겁니다.”

“잘 하고 와. 기다릴게.”

“당연하죠.”

박문대는 졸음이 가득 묻은 눈으로도 자신만만한 웃음을 짓다, 저를 찾아온 스태프를 보고는 순식간에 본래의 냉정한 눈으로 돌아갔다. 저를 보고는 제게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하는 스태프에게 인사를 돌려준 류청우는 촬영장으로 달려가는 박문대의 뒷모습을 오래오래 지켜보았다.

이토록 아름다운 박문대를 독점할 수 없는 날, 류청우의 차 뒷좌석에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놓인 푸른색 꽃다발이 놓인 날. 오늘은 두 사람이 아무도 모르는 연인이 된 지 꼭 3년째 되는 날이자, 세간에서는 부부의 날이라고도 불리는 날이었다.


 

박문대가 촬영을 마치고 숙소로 복귀한 것은 자정을 아슬아슬하게 넘기지 않은 심야였다. 거실에서 커다란 텔레비전을 틀어둔 채로 예능을 모니터링하던 큰세진과 배세진에게 가볍게 복귀 신고를 하고, 부엌에서 야식을 먹니 마니 투닥거리는 막내들과 휘말린 선아현을 가볍게 떼어둔 박문대는 잠시 머뭇거리다 류청우가 있는 방문을 두드렸다.

“형, 저 왔습니다.”

박문대가 말을 걸었는데도 아무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방 안에 박문대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마침 옆 방으로 들어가려던 선아현은 그런 박문대를 보고는 ‘청우 형은 오늘 피곤해서 일찍 주무신댔어,’ 라고 전해주었다. ‘그랬냐. 고맙다.’ 라고 대답한 박문대는 조금 삐걱거리는 몸으로 애써 화장실로 들어갔다. 씻고 나왔을 땐 현실이 좀 변해 있기를 바라면서.

물론 완벽하게 헛된 소망이었다.

류청우가 이 정도로 삐진다는 건 사실 말도 안 된다는 것을 박문대는 알았다. 서로가 서로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만큼, 서로의 선이 어디까지인지도 그들은 아주 잘 알았으니까. 그러니까 이건 정말로 류청우가 피곤했기 때문에 먼저 잠들어버렸다는 것인데. 박문대는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대충 감싸맨 채 곤히 잠든 류청우의 머리맡에 서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래서 이놈을 깨워, 말어. 안 깨우는 게 맞다는 건 안다. 그렇지만 지금 박문대의 뒤편에 있는 침대 위의 저 꽃다발은 분명 류청우가 가져다 둔 것이라는 것도 안다. 분명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 같아서, 그 생각이 지금 박문대를 깊은 고민의 늪으로 데려간 거였다. 그러나 깊이 잠든 중에도 박문대의 기척을 느끼기라도 한 건지, 아니면 시간을 넘어가며 겪은 오랜 연예계 경험이 그들에게 선사한 ‘아무 때나 깨어날 수 있는 능력’ 덕분인지, 감겨있던 눈꺼풀이 움찔거리다 아주 천천히 올라가며 박문대를 담았다.

“문대야?”

박문대는 류청우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었다.

“주무세요. 많이 피곤하시죠.”

“으음, 아니야, 괜찮아……. 언제 왔어, 깨우지.”

“얼마 안 됐습니다. 피곤해서 먼저 주무신다길래 일부러 안 깨웠어요.”

“하하. 그래도 다음엔 꼭 깨워줘, 나 형 보고 싶었어, 오늘은 같이 자면 안 돼…?”

박문대는 기꺼이 허리를 숙이고는, 잔뜩 풀린 눈으로 맥락없이 애정을 표현하며 제 손에 머리를 부비는 류청우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이런 특별한 날에 늦게까지 홀로 둔 류청우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제게는 한없이 솔직하게 애정을 표현하는 류청우 때문에 몽글거리는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었던 탓이었다. 입맞춤을 받은 류청우는 잠기운 가득한 눈으로 헤실헤실 웃으며 박문대를 제 품으로 끌어당겼고, 박문대는 순순히 류청우의 손에 이끌려 류청우와 꼭 껴안은 채 이불 속에 박혔다.

“류청우.”

“으응, 형.”

“내일 어디 좀 같이 가자.”

“어디…?”

“그래. 내일 알려줄 테니까 얼른 자. 나도 졸리네.”

“으응…….”

박문대는 류청우의 머리와 등을 천천히 쓸어주며 잠을 재웠고, 류청우는 형의 말을 아주 잘 들었다. 도롱거리며 깊게 잠든 류청우를 한참 보다 그의 눈꺼풀과 콧잔등에 부드럽게 입맞춘 박문대도 류청우의 품에서 잠들었다. 새벽이었다.


 

박문대가 솔로 활동을 하며 그 빡센 스케줄을 소화하는 동안 홀로 둘 수는 없다며 휴가를 기꺼이 투자해 숙소에 있어주었던 멤버들은 박문대가 무사히 활동을 종료한 것을 확인하고 그제야 휴가를 즐기러 떠났다. 그래서 류청우가 눈을 떴을 때, 숙소에 남은 것은 박문대와 류청우 뿐이었다.

“일어났냐, 숙소의 잠자는 류청우 씨.”

“으음, 형, 잘 잤어?”

“내가 못 잘 이유가 뭐가 있었겠냐.”

“하하.”

잠결에 박문대가 저에게 말을 걸었던 건 기억이 났지만, 그 내용이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은 탓에 류청우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박문대의 얼굴을 보며 멋쩍게 웃었다. 그런 류청우를 보던 박문대는 제 머리를 벅벅 긁고는 류청우를 식탁으로 끌고 갔다. 식탁 위에 놓인 가벼운 식사거리를 본 류청우가 이게 뭐냐는 듯 박문대를 보자, 박문대가 대답했다.

“이거 먹고 나들이 안 갈래?”

“나들이?”

“어. 네가 전에 데려갔던 산 근처에 괜찮은 캠핑장이 있더라고.”

식탁에 앉아 막 밥숟가락을 입에 넣던 류청우는 이어지는 말을 듣고 그대로 사례가 들러버렸다. 못 할 일은 아니었지만 누가 이 좋은 계절에 그럴 생각을 한단 말인가, 아니지. 형이 했구나. 절로 그렇게 이어진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지 박문대가 미간을 콱 찌푸리며 젓가락을 들어 류청우의 숟가락 위에 반찬을 올려주었다.

“그렇게 놀랄 일이냐. 사람이 많으면 아무래도 불편할 것 같아서 통째로 빌렸다. 사람들이 많이 안 오는 곳이라 그런지 생각만큼 비싸진 않더라고. 짐은, 뭐, 너 금방 싸잖아.”

“어, 응, 그렇지.”

“잘 됐네. 밥 다 먹고 2박 할 짐 싸서 나와라.”

…… 그렇게 돼서, 류청우가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조수석에 타 있었고,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그는 형과 함께 캠핑장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있었다. 토치로 장작을 지지며 이런 건 차유진이 잘 하는데, 하고 조그맣게 중얼거리는 박문대의 목소리가 류청우를 현실로 이끌었다. 향긋한 풀 냄새를 머금은 바람이 시원하게 그들의 머리를 스쳤고, 캠핑장 주위를 둘러싼 푸른 숲은 신록을 머금어 마냥 푸릇했다.

“오늘 날씨가 좋네.”

“응, 그러네.”

모닥불이 안정적으로 타오르기 시작하자, 박문대는 됐나, 하고 중얼거리며 불가에서 한 발짝 물러섰다. 얼떨결에 같이 한 발 물러난 류청우가 박문대를 보았다. 명백히 얼빠진 그 눈을 본 박문대가 그림처럼 예쁘게 웃었다. 열기에 이지러지는 공기와 투명한 햇살이 박문대의 새카만 머리카락에 부딪혀 새하얗게 빛났다. 빛나는 그림이 류청우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어제가 3주년이었잖냐.”

아, 그랬지. 류청우는 환상 속에서 현실로 뚝 떨어졌다.

“응, 맞긴 한데, 문대야. 어제 바빴잖아, 난 괜찮아.”

“내가 안 괜찮아. 정작 어젠 얼굴도 제대로 못 봤잖아.”

“하지만 형, 그렇다고 해서 일정을 캔슬할 생각은 없었잖아. 나라도 그랬을 거야. 알잖아.”

“네, 그렇긴 하지만 그게 아쉽지 않다는 말은 아니잖아요.”

류청우의 손이 목덜미로 향하는 것을 본 박문대가 손을 들어 류청우의 어깨를 툭툭 쳤다.

“어제 꽃다발도 준비했던 것 같은데 내가 못 받았지.”

“봐, 봤어?”

“대놓고 뒷좌석에 있더만. 지금은 우리 방에 꽂아놨어. 예쁘더라.”

류청우는 그제야 어제 꽃다발을 차에서 빼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영민한 그의 연인은 차에 짐을 실으며 그것을 보았을 것이었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던 류청우의 귀로 박문대의 목소리가 명백한 기쁨을 싣고 들려왔다.

“그 꽃, 내 뮤비 컨셉에 맞춘 거냐.”

“응, 맞아.”

저렇게 좋아하는 박문대를 보면 그래, 숨기는 것도 박문대 앞에서는 딱히 의미가 없다. 일련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진리를 다시금 되새긴 류청우는 얌전히 박문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사실 네 생각 하면서 맞춘 색이다.”

고개를 끄덕이던 상태 그대로 류청우는 제 귀를 의심했다.

“마침 컨셉에 맞는 것 같길래, 내가 그 색으로 하면 어떻겠냐고 했어.”

박문대의 이번 솔로곡은 김래빈이 작곡하고 박문대가 작사한 것이었다. 처절한 기다림을 노래했던 지난 솔로곡과 달리, 이번 노래는 기다림이 선사하는 설렘을 노래한 것이었는데.

“계절도 맞고, 뭐. 그랬다고.”

잠깐 주차장 좀 다녀온다, 하고 빠져나가는 박문대의 귀가 붉었다. 잠시 멍하니 그 뒷모습을 보던 류청우가 황급히 박문대를 쫓아갔다. 멀어졌던 거리가 성큼성큼 좁혀지고, 순식간에 류청우에게 붙잡힌 박문대는 정말 못 참겠다는 듯 제게 입을 맞추는 류청우를 웃으며 밀어냈다.

“이따가, 저기 들어가서 해.”

“조금만 하면 안 될까, 형?”

“키스에 조금만이 어디 있어, 네가 뭐 어린애도 아니고.”

시무룩한 얼굴을 뒤로 하고 차문을 연 박문대는 뒷좌석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류청우에게는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물건이었다. 자신이 선택했던 짙은 남색이 아닌, 청보랏빛 포장지에 감싸인 푸른 꽃다발. 새로 맞춘 건가? 언제? 류청우의 눈이 둥그래졌다.

“형?”

박문대는 대답 없이 꽃다발과 류청우를 번갈아 보더니, 꽃다발에서 꽃 한 송이를 뽑아냈다. 수많은 파란 꽃 사이 홀로 고고한 자태를 뽐내던 푸른 수국을 뽑아 류청우의 손에 살포시 쥐여준 박문대는 또 웃었다.

“예쁘네.”

그쯤에서 류청우의 인내심도 한계에 달했다. 새파란 하늘과 투명한 햇살 아래, 저의 상징인 푸른색 꽃다발을 든 채 눈을 휘며 장난스레 웃는 박문대를 그대로 안아든 류청우는 박문대의 얼굴에 자잘한 입맞춤을 흩뿌리며 흔들림 없이 저벅저벅 걸어 숙소로 들어갔다. 한참동안 웃음소리가 들리던 작은 오두막 안에서는 이윽고 열기에 들뜬 신음과 흐느끼듯 불리는 이름만이 새어나왔다. 밤이 아주 깊어져 피워두었던 모닥불이 꺼질 때까지.

아직 그들에게는 1박이 남아있다는 것을 까마득히 잊어버린, 평범한 여느 연인의 밤이었다.

 

“… 류청우.”

“네, 형.”

“사랑해.”

“나도, 문대야. 사랑해.”

“…… 3주년 선물은 더 준비했는데, 일단 오늘은 이걸로 봐 주면 안 되겠냐…?”

“하하! 응, 알았어. 나머지는 돌아가서 하자.”

“… 뭐? 야, 류청우, 야! 이 양심도 없는… 아니다, 다 내 잘못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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