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범접할 수 없는 그리움이 있다. 새삼스럽게 사실을 깨달았다. 이유는 이러했다. 기억같은 건 휘몰아치는 현재의 파도에 자꾸만 밀려나기 때문에 수평선을 끝없이 거슬러 올라가야만 과거의 것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온전하지 못하고 마모되어 흐려지고마니 문제였다. 그리하여 기억은 범접할 수 없는 그리움이 되곤 했다. 책상 위의 서류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깃펜들이 동시에 글자를 써내려간다. 바쁘게 돌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 사이에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놓치는 것이 없도록 귀를 기울인다. 눈두덩이가 뻐근해져와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눈 앞이 먹먹해졌다. 오늘은 어제가 되고, 어제는 그제가 되고, 기억은 과거로 과거로. 쉼없이 몰아치는 시간 속에서 과거를 발굴하기 위해 다른 걸 제쳐두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까딱했다간 익사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헤엄친다.

그러나 이따금씩 파도는 과거의 유물을 싣고오는 것이다. 예키치 못하게 그것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은, 행운이라기 보다는 사고같은 것이었다. 유물은 향수를 동반했으며 동의없이 영사되는 노스텔지어의 파노라마. 눈을 감으면 오히려 선명히 펼쳐지는 스크린. 그렇기에 그리움이 찾아오면 무력하게 맞이할 수 밖에 없었고, 다만 입술을 꾹 다물고, 보고싶어, 라는 말을 삼켰으며, 그로 인해 누군가가 또 다시 맞이할 무력감을 바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연쇄충돌은 사전에 예방하는 게 좋을 터였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헤엄쳐야했고, 그것을 계속해 손에 쥐고 있는다면 분명 가라앉게 되겠지. 우린 무력히 맞이할 수 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직접 찾아 나서기엔 바다는 깊고 파도는 거칠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쥔 손을 놓아야만 하나 그게 영원한 포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파도에 떠밀려 또다시 내손에 돌아오기를. 떠나보내고, 또 다시 만나기를. 이별과 만남을 반복하기를. 그리하여 재난처럼 맞이한 그리움 속에서도 헤엄쳐 살아나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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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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