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타 류건우 02

선아현의 이야기


…무섭다.

선아현은 항상 시선이 버거웠다.


그래도 감당하려고 애썼다. 역시…… 사랑받는 게 좋았으니까, 나를 온전히 선보일 수 있는 춤이 좋았으니까.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모두 알아봐줬으면 해서. 그러나 시도는 보기 좋게 실패했다. 바닥이 자꾸만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꼿꼿하게 서 있으려고 해도 넘어졌다. 보이지 않는 무릎의 상처는 늘어만 갔다. 넘어지고 일어나는 것도 다리가 온전해야 할 수 있는 법이었다. 비난도, 동정도 이제 더는 싫었다.


평가받는 게 무서워서 다시 일어나는 것을 포기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몰라주길 바랐다. 가끔 불안해질 때도 있었으나 괜찮았다. 누구도 나를 상처 입힐 수 없어. 일어나지 않으면 넘어지지도 않아. 가만히 몸을 낮추고 웅크렸다. 귀까지 막고 있으면 여긴 ‘선아현’만의, 안전한 세계였다. 좋은 말만 듣고 살 수 있는. 그 좁은 세계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커튼을 쳤다. 새까만 어둠이 아현을 덮쳤다. 문을 잠갔다. 지독한 고요가 찾아왔다. 때로 외로워지려고 하면 혼자 되뇌었다. 외롭지 않아. 여긴 캄캄해도 부모님이 계시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로만…….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날이 오래될 때면 문득 전에 들은 소리가 자꾸 생각났다. 넌 계속 그렇게 살 거야. …틀린 말이 없었다. 진짜 그럴 것이다. 선아현은, 선아현이 싫었다. 


그 사람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


류건우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레티 연습생. 선아현도 레티를 알고 있었다. 아이돌을 지망하면서 레티를 모르는 건 말이 안 됐다. 그 레티가 지금 직접 찾아와서 설득하고 있었다. 욕만 잔뜩 얻어 먹고, 결국 마이너스에서 탈락하고 만 연습생한테 아티스트 케어까지 적극적으로 들이밀면서 말이다. 파격적인 대우에 꺼리는 기색을 보이면 그냥 돌아갈 법도 한데 끝까지 선아현까지 설득했다.


- 소속사에서… 네가 꼭 포함 되어야 그룹 데뷔가 가능하다는데.


비록 거짓말이었지만.


- 혹시 연습이라도 나와볼 생각은 없는지 궁금해서. 너 잘할 것 같거든.


이것도 거짓말.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아니, 당연하진 않나? 아무튼 선아현은 사람들의 적의와 호의에 민감했고, 귀신 같이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줄 알았다. 모두 후천적으로 학습한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이상한 건, 거짓말이었는데 호의였다는 것이다……. 아현은 제 처지를 잘 알고 있다. 아주사에서 제 의견 하나 제대로 못 말하고, 결국 탈락한 연습생. 그게 선아현이었다. 소속사는 얼마든지 아현의 가치를 후려칠 수 있다. 그런데 류건우는 마치 저를 걱정하는 것 마냥…. 


- 말 더듬는다고 의견전달 못 하는 거 아니잖아 ㅅㅂ나라도 답답해서 욕 박았음


의문이 들어서 목소리를 내려고 했다. 그런데 왜일까, 아주사 때의 반응이 갑자기 생각났다. 입을 몇 번 달싹이다 결국 말은 꺼내지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입을 꾹 다물었다. 아까 말을 꺼내려고 했던 게 거짓이라는 듯. 자물쇠는 온건했다. 다행이었다. 한순간의 충동에 못 이겨 열쇠를 꺼내지 않아서.


그래. 믿지 마, 선아현. 아닌 거 알잖아…….


-


제가 상담받았던 선생님인데, 크게 도움받았습니다.

010-XXXX-XXXX

-류건우


그 사람이 보낸 메세지였다.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가서 소속사에 연락해봤지만 이미 사라졌다고 한다. 선아현은 이럴 줄 알았다고 생각했다. 나한테 관심이 있었을 리가……. 그런데 이 사람과 같이 있으면 자꾸 이상한 일만 일어났다. 너 잘할 것 같거든. 이 한 마디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으니까. 계속 의문이 들던 선아현은 결론에 도달했다. 나에게서 어떤 걸 봤기에 챙겨주려 했는지. 의문의 종착점에서, 선아현은 류건우가 설계해놓은 길을 따라가고 싶어졌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한 번만 더 믿어보자고. 드디어 자물쇠의 열쇠를 들었다.


“저, 저… 상담… 받아볼게요…….”


-


시간이 흘렀다.


상담 선생님은 좋은 분이셨다. 천천히 상담을 진행하면서 작고도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선아현이 겪던 고통이 실은 아현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선아현은, 선아현이 조금은 좋아졌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건우의 생각이 났다. 사실 전부터 계속 하고 있었다. 그때 전하지 못 한 말이 있었으니까. 선생님과 다른 사람의 시선은 궁금해 하지도 않고, 의식하지도 않기로 약속했는데. 하지만 꼭 건우의 답을 들어야 상담의 끝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물론 전해지지 못 하고 흩어진 언어였다. 선아현은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류건우에 발목이 잡혀 있다면, 영원히. 상담의 시작이 류건우라고 굳게 믿고 있다면, 평생. 그러나 반대로 생각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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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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