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타 류건우 01
이세진A의 이야기
- 지난 11일, XX시 소재의 건물 지하 창고에서 불법 도박장이 검거되어……
하루아침에 기적이 일어났다고 하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적어도 이세진은 자신에게 영화 같은 일이 없을 거라고 철썩 같이 믿는 사람이었다. 당연한 믿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해왔으니까, 대본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이야기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기적은 없다. 내가… 무언가를 하지 않는 한 바뀌는 것도 없다.
그런데 그 명제가 깨졌다. 기적이 일어났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저를 옥죄던 아버지. 돈을 보내라며 자꾸 압박하는 꼴이 지긋지긋했고 그에게 벗어나지 못 하는 이세진, 자신까지도 때때로 역겨웠다. 너무 오랜 시간 시달려서 그런가, 실감하지 못 했다. 아직은 당황스러움이 먼저였다. …내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쉽게 해방될 수 있다고? 무력감을 느낄 새도 없이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했다.
그러나 하루를 마무리하는데, 이세진은 문득 깨닫고 마는 것이다. 오늘이 태어난 이후로 가장 평화로웠다는 사실을. 그 순간 이세진은 짙은 해방감을 느꼈다.
이세진은 숨을 쉬었다. 마치 공기를 처음 맡아보는 사람처럼, 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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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조금 안정되자, 아버지가 손을 댄 도박장이 밝혀진 경로를 궁금해 할 수 있었다. 아주사에서의 마지막 휴가겠지만 지금 제게 중요한 건 휴식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아주 조용히 알아봤다. 신고자는 누구인가요. 이세진으로서는 큰 마음을 먹고 알아봤다. 알려주지 않을 가능성도 고려했다. 작은 사건이 아니었고 신변 보호는 충분히 이루어져야 했으니까. 법에 대해 아직 잘 아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깨알 지식은 있던 세진은 평생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법의 사각지대조차 고려 대상에 넣었다. 그러나 신고자는 익명이 아니었던 듯 제법 쉽게 알 수 있었다. 신고 당시 자신의 신분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고 했던 걸까. 아무튼 이름이…
류건우?
들어본 이름은 아니었다. 자칫하면 모르는 사람이 어쩌다 정보를 얻게 된 거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도 착각할 뻔 했지만, 우연히도 사진을 봤다. 어딘가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제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분명 캐스팅콜에서 봤던…… 레티의 직원이었다. 이세진은 다시 자신의 기억을 점검했다. 레티의 직원이 맞아? 맞으면 말이 안 된다.
…왜, 이렇게까지 해준 거야. 원하는 게 뭐였길래?
단순히 연예인을 원했던 거라면 약점을 잡는 편이 낫지 않았나. 이세진은 소속사가 얼마나 악랄해질 수 있는지 알고 있다. 이 정보를 공권력에 넘기지 않았다면 충실한 제 약점이 되었을 것이고, 약점을 쥐고 있는 이상 순순히 굴 수 있는 자신도 알고 있다. 그 사람에게 물어보고 싶다. 묻고 싶은 게 많아졌다. 그러나 닿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도 없다. 신기루였던 것 마냥. 처음으로 명함을 받지 않은 걸 후회했다. 레티에 지금 연락하면 그 스태프 류건우를 만날 수 있나.
제 옷에 붙어 있는 이세진A를 바라본다. 아무 것도 아닌 이세진A에게 뭘 바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승낙하시는 게 어떨까요. 차가운 목소리로 일갈하던 목소리가 잊혀지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나를 위하는 행동을 해놓고서 그때는 비난을 일삼았…
아니다. 아니야. 다시 생각해보면, 비난하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제가 예민했다. 이세진이 예민했던 거였다. 그래, 그건 아마… 걱정이었다. 그걸 깨닫자 정신이 확 들었다. 몰랐지만 호의를 받았다. 그것도 꽤 과분한. 그걸 깨닫자 얼굴이 확 붉어졌다. …경솔했다. 명함이라도 받아둘걸, 잊고 있던 기억에 후회를 더한다. 하지만 이대로 후회만 할 수는 없다. 세진이 숨을 쉴 수 있도록 도운 은인이니까. 아주사가 끝나고 할 일이 생겼다. 류건우를 찾자. 그리고 그를 찾아서….
나는, 당신이 주고 간 걸 갚을 거야. 갚고 싶어. 그런데, 류건우. 당신은…… 뭐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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