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타 류건우 03

이세진B의 이야기


[3위! 아주사 이세진B 학폭 고발합니다. (425)]

: 참다 참다 제가 죽을 것 같아서 글 씁니다.

<재상장! 아이돌 주식회사> 참가자 이세진B는 청솔고등학교 재학 내내 사람을 괴롭혔습니다……

…….


나, 나 안 그랬어. 나는 그런 적 없어….

문장이 미처 되지 못 한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언어의 형태를 갖추지 못 한 것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자꾸 최악만이 떠올랐다. 지금 이세진의 상황이 최악이었기 때문에. 사람들 안 믿겠지. 사진도 찍혔고, 졸업앨범 인증까지… 설득력이 있다. 손이 벌벌 떨려도 머리는 계속 돌아갔다. 아니, 이게 돌아갔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이거 해명할 수 있나. 뭘 어떻게 해명할 건데. 담배는 피운 적 있지만 학교폭력은 정말 사실이 아닙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날 믿어준 사람들한테 미안해서 어떡하지. 내가 왜 그랬을까….

그 상황에서 이세진이 선택할 수 있는 건 하차밖에 없었다.

이세진은 울고 싶었다. 그러나 울 수 없었다. 학교폭력 가해자라는 오명이 지워지지 않고 끝까지 이세진을 좀먹을 때까지도, 눈물 한 방울 흘릴 수 없었다. 데뷔 조에서 밀려났던 이세진도, 그로 인해 잠시 방황하다 담배에 손을 대버린 이세진도, 전부 자신이었으니까. 사진이 찍힌 것도 모른 채 아주사에 나오고, 이번에는 잘 되겠지 하면서 허황된 꿈을 꾸었던 것들이…… 전부 후회스러웠다. 그냥 나오지 말걸.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마지막이었잖아. 왜 그랬어, 세진아.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러진 말지. …왜 내가 너를 원망하게 해. 왜 내가 나를 미워해야 하냐고. 원망스러웠다.


하루종일 멍했다.

사실 하루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이세진은 하차한 이후로 지금까지 생각을 저 멀리로 부유한 채 다녔다.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곱씹을수록 상황은 명확해졌다. 일단 하차하고나서 상황을 정리해보자라는 생각은 차마 이세진이 했던 생각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계획이었다. 정리할 수 없었다. 학교 생활에 충실했다는 친구들의 증언은 효력이 없었으니까. 사진을 해명하지 않는 한 논란은 끊을 수 없는 고리였다. 아무 공지도 없는 소속사에, 이세진을 믿어주던 팬들까지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나 다른 사진도 많아. 네가 조금이라도 상황파악을 한다면 지금 사퇴해. 다른 건 몰라도 너 같은 애가 아이돌 하는 건 도저히 못 참겠다.

└ 세진이 입장 안 나왔잖아 난 중립 박을래 제발 아니라고 해주라

   └ 현실부정 짠하다 ㅅㅂ 일 터지자마자 하차 때린 거 보면 모르겠음? 딱 봐도 더 큰 거 터질까 봐 몸 사린 거구만ㅋㅋㅋㅋㅋㅋㅋㅋ

      └ ㄹㅇ.. 중립기어 박는 것도 피해자한텐 가해임

└ 세진아. 나는 너 믿고 싶었어. 내가 사랑했던 네 모습이 진실이라고 생각했거든. 왜냐하면 네가 누구보다 밝게 웃었잖아. 그런데 넌 아무 말도 없더라. 아니라고 한 마디만 해주지 그랬어. 그러면 믿었을 텐데. 그런데 이제 못 하겠어. 너를 기다린다는 이유로 여러 사람한테 비난을 들어도 꿋꿋하게 버텼는데 변명도 올라오지 않는 걸 보면서 현타가 오더라. 나도 이제 좀 지친다……


세진은 생각했다. 자신의 발이 꼭, 사슬에 묶인 것 같다고.

너무 무거워서 떨쳐버릴 수도 없었다. 죄수들이 묶인 것처럼, 도망칠 수 없었다. 발버둥쳐도 힘이 빠지기만 할 뿐이었다. 끊어지지 않는 족쇄라는 걸 인정한 이세진이 숨을 고르면서 한 생각은, 저 또한 지쳤다는 것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이돌이라는 꿈을 가지게 됐을 때? 혹은 연습생 오디션을 봤을 때…? 너무나 오래된 시기였다. 그냥 처음부터 어긋나버렸다는 생각이 들자,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모든 게 죄였다. 숨이 막혔다. 나…… 이 길 아닌 것 같아. 못 하겠어. 내가 다 잘못했어. 아이돌 안 할게.

…동아줄은 그때 찾아왔다.


논란이 쉬웠던 만큼 해명도 쉬웠다. 이상했던 점은, 해명이 어떤 뒷말도 나오지 않을 만큼 깔끔했다는 것일까. 마치 이미 같은 방식으로 해봤다는 듯. 이번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처럼. 입장문은 이랬다. 팬 분들에게 괜한 심려를 끼쳐드리고 싶지 않아 양해를 구하고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것이다. 올라온 글은 사실무근으로 악성 루머는 선처 없이 대처하겠다. 앞으로 이세진의 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 다만 어떤 일이든지 으레 그렇듯, 논란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해명까지 굳이 찾아보는 경우는 드물다. 그 어떤 결점이 없게 적어도 사실이 그렇다. 입장문이 깔끔하든 말든. 사실이 적혀 있든 아니든, 사람들은 보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나도 똑같을 줄 알았다. 사람들은 이세진의 추락에 더 관심이 많겠지. 다시 땅을 딛고 일어나는 건 관심 없겠지. 이미 떠난 팬들도 돌아오긴 힘들 거야……. 그래서 회사에서 쓴 입장문도 대충 봤다. 어차피 이걸로 회복될 여론이 아니었다고 생각했으니까. 문제 되는 내용이 없다는 것만 확인하고 넘겼다. 일주일 후 쯤에 올라갈 거라는 회사의 언질에도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며칠 후 세진의 생각은 바뀌었다.


[1위! 엥 나 아주사 하차했던 이세진 걔 원본 찾은 듯? (801)]


입장문이 채 올라오기도 전에, 여론이 반전되었다. 누가 글을 올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얼떨떨했다. 댓글에서 토론이 불거지면서, 관심을 끌 수 있었다. 소속사는 세진의 동의를 구하고, 미리 써둔 입장문을 예정된 날보다 일찍 내보냈다. 사진은 합성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원본 사진을 첨부하는 약간의 수정을 거친 뒤에. 실시간으로 자신에 대한 말이 달라지는 걸 보는 건 느낌이 이상했다. 확실한 건, 싫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거 꽤 잘 될 수도…… 나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내 잘못이 아니었어.

우린 좋은 ‘팀’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


“저 친구도 이쪽 그룹으로 넣는대?”

“그런 것 같은데.”

쟤 나갈 것 같은데. 아는 얼굴이었다. 아마, 이름이 선아현이었던 것 같다. 외모만 보고 혹해서 번호라도 따둘까 했는데, 처음 평가를 보니 그럴 필요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혹시 외모 때문에라도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는데 반응이 정말 최악이었다. 낯을 보니 지금도 오래 갈 것 같진 않았다. 겁 먹은 표정, 여전히 안절부절못하는 태도. 오늘도 번호는 받아두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음… 회사에서 생각해둔 다른 친구는 없대?

한순간의 충동이었다. 속마음을 류건우에게 내비친 것은. 류건우는 같은 연습생 데뷔조인 주제에 아직도 바빴다. 바쁜 이유는 저 선아현 때문인 것 같고. 합류가 불투명하다는 건 알고 있을 것 같은데 굳이 시간을 낭비하는 게 비효율적이었다. 우리는 데뷔를 목표로 하는 같은 그룹이고, 그 이후엔 그룹의 성공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딱 봐도 저 사람은 그럴 용의가 없을 것 같잖아.

“…그건 왜.

“어? 아니, 저 친구 나갈 수도 있잖아~ 혹시 해서!

“…!

류건우의 눈이 커졌다. 몰랐다는 듯이. 나도 아는 걸 왜 네가 몰라. 진짜 몰랐던 거야? 너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류건우의 행동은 마치 합류를 확신한 사람의 것이었다. 거절을 생각하지 못 한 사람 같았다. 아니, 아예 거절이라는 선택지를 염두에 두지 않은 것처럼. 진짜 미래라도 보고 온 건지….

말해주지 말걸 그랬나. 그 뒤로 류건우는 더 보기 힘들어졌다.


“데뷔하면 유용하게 쓰고.”

“자, 여기로 연락해서… 샘플을 쭉 들어본 뒤에, 3번이나 7번을 골라. 그게 잘 될 테니까.”

“또 보자.”

어안이 벙벙했다. 이세진은 단지 두문불출하던 류건우가 연습실에 있길래, 그런데 혼자가 아니길래 사심을 조금 섞어 말을 건네본 것이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두서가 없는 답이었다. 해석하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은. 꼭 자신이 없는 미래를 통보하는 식으로 말하니까……. 갑자기 왜 그러는데. 천천히 이야기해보려고 시도하자 류건우는 또 보자는 말을 끝으로 나갔다. 언뜻 보이는 얼굴은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후련해보였다. 안 돼. 어디, 어디 가는데?

금방 따라가봤지만 류건우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잘 될 것 같았다. 동아줄이라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한 줄기 기적 같았던. 캄캄한 동굴 속에서 미아를 출구로 이끄는 빛 마냥. 레티에 들어온 이후로 이상하리만치 잘 풀린 상황이 이세진에게 기꺼웠어서, 하마터면 마음을 열 뻔 했다. 그렇지 않은 척 했지만 행동마다 하나하나 애정이 담겨 있어서,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건 이세진이 가장 꿈꾸던 이상적인 그룹이었기에. 그런데 말 하나를 끝으로 너는 사라졌지. 그래, 류건우에게 이세진은 그 정도 가치였던 거였다. 웃기지도 않아. 또 보자며.

…류건우, 또 보자고 했잖아.



테스타(TeSTAR)

소속사 LeTi

멤버 이세진 MOON 이세진 선아현

  └ 레티 감 다 잃었냐? ㅅㅂ 언젯적 신비주의

    └ 그룹 잘 되면 나중에 끼워넣을 듯;;

      └ ㄹㅇ 테스타 아니고 테스트임

      └ 미리 성지순례함


데뷔했다. 데뷔 초엔 욕을 좀 먹기는 했다. 사실 4인조 그룹이라는 건 아이돌 생태계에서 치명적이다. 머릿수가 너무 적기 때문에 대중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없어서. 그런데 한 명은 유령 멤버고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건 단 세 명이라니. 안 그래도 불리한데…. 이 모든 걸 제안한 사람은, 청려 선배님이었다. 그는 연습실에 세 명을 모아두고 브리핑을 시작했다. 멤버 구성은 특히 의외였다. 아주사에서 탈락한 연습생과, 아직까지 인지도가 있었고 데뷔권일 거라고 예상했으나 하차한 뒤 소속사를 옮긴 아역배우 출신. 그리고….

“혹시 나머지 한 분은 어떤 분인지 알 수 있을까요?”

“아, 다들 알고 계실 사람이에요.”

청려 선배님은 웃었다. 마치, 그 날처럼.

“…류건우요?”

“정확해요. 건우 씨가… 그룹 계획을 다 보내줬거든요. 받아들일지 말지는, 뭐. 후배님들이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저, 저는… 좋아요…….”

“….”

“…… 나쁜, 걸 주진… 않았을 거라고, 새, 생각해요.”

뭘 확신했는지. 몇 달 사이에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선아현은 분명 이세진이 예상하기로는 최대 한 달이었다. 최대 한 달 내에 못 버티고 나갈 것이다. 그렇게 추측했다. 그런데 이세진이 틀렸다. 아현은 한 달을 버텼고, 또 몇 달이나 버텨내고 있었다. 거기다, 꽤 강해 보였다. 유약했던 사람이 사라지고, 어떻게…….

“…저도 찬성이에요.”

“아니… 형님도요?”

“자리는…… 남겨야 하지 않나 생각했을 뿐이야.”

왜 눈빛이 바뀌어 있는지. 분명 아주사 출연 당시에는 예민해서 자기만 챙기기에도 벅차 보였는데. 그동안 다른 일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이건 신념이 있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올곧음은, 이세진B가 판단하기에 이세진A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던 것이었다….

“다른 세진 씨는 반대인 건가요?”

“…아니, 아뇨. 찬성… 합니다.”

“좋아요. 회사에 의견전달 해둘게요…. 도와준다고 했으니까.”

떠나기 전에. 그 뒤에 말은 이어지지 않았지만 뒷말은 분명 이것이었을 테다. 대체 모두에게 뭘 제시했길래 저렇게까지 달라졌지는 모르겠지만 달갑지는 않았다. 류건우는 도망친 사람일 뿐이잖아. 팀을 소중하게 여기지도 않았고, 이 일을 외면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거잖아. 그런데 왜 모든 멤버들이 네가 그룹에 들어가는 걸 찬성했는지 모르겠다. 나도 찬성했다는 건 네가 돌아왔을 때나 말하려고 해.

그렇게 테스타가 시작했다.


시간이 꽤 흘렀다. 

청려 선배님은 보였다. 사실 선배님 소리도 아까운 사람일 정도로 확연하게, 비정상적으로 견제하는 게 딱 보이더라. 그는 테스타를 키우는 데 일조했다. 많은 도움이었다. 하지만 그건 늘 어느 정도에서 멈추곤 했다. 절대 브이틱을 넘어서지 않도록. 어떻게든 테스타와 브이틱이 비교 당하도록, 그러면서 브이틱이 더욱 빛나게. 미친 놈이었다. 실소가 나왔다. 전에도 똑같은 말을 했던 사람이 있어서. 그러고보니, 조심하라고 했었지. 여기까지 다 예상했던 건가. 일방적인 작별인사로 허겁지겁 도망쳤으면서 이것저것 챙길 여유가 됐나 보네. 하나부터 열까지 잔인한 새끼.

“선배님.”

“아, 건우 씨가 여기까진 건들지 말라고 했던가?”

“…선배님.”

“사라졌는데 따르는 것도 웃기지만… 뭐, 좋아요. 이 건은 여기까지만 할게요.”

청려는 이세진을 지나쳐갔다. 이세진은 항상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되뇌이는 게 있다. 나는 매일 테스타를 지켜내고 있어. 솔직히…… 그 뱀 같은 사람에게 견제받는 상황에서 이만큼 큰 것도 기적이야. 테스타는 네가 없어도 나름대로 뭉쳤고, 아현이와 다른 세진 형은 가끔 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해 하는 기색을 보여. 그러나 그것 뿐이지. 이것 봐. 테스타는 네가 없어도 성공할 수 있고, 네가 없어도…… 괜찮지 않으니까.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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