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타 류건우 04 (完)

신재현의 이야기下


류건우가 사라진 지 벌써 일 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청려의 일상은 늘 똑같았다. 매일 재단하고, 누군가를 평가하고, 가치가 있는 것들만 선별하고. 어느 것이 제일 좋은지 실험하고, 그러다 실패하면 다시 돌아가고. 수면 위에 돌멩이를 던지면 덧없이 흔들리지만 그 깊이가 깊을 수록, 면적이 넓을 수록 작은 일렁임은 티도 나지 않는다. 그렇게 살아가는 법을 다시 터득했다. 누군가는 이 일상을 재미가 없다고 평가 내릴지도 모른다. 상관 없다. 어차피 아이돌이란 늘 평가 받는 직업 아니던가. 그는 사람을 가려내는 만큼, 가려지는 것도 익숙했다. 감흥이 없다. 목표는 오로지 ‘성공한 아이돌’이다.


그리고 그 목표는 멀리 있지 않았다.

안주하지는 않았으나 겸손한 건 또 아니어서.


류건우가 떠난 이후로도 그의 루틴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전보다 더 철저하게 돌아갔다. 들여놨던 보험이 사라졌으니까. 입맛에 맞게 길들이는 것이 쉽지 않을 거라곤 예상했으니, 뭐……. 실은 상관 없단 얘기다. 자신과 같은 회귀자라고 주장하는 이를 곁에 두었던 건 정보를 캐는 데 목적을 둔 게 아니다. 오로지 곁에서 통제하면서 변수를 없애기 위함이었다. 겨우 정상에 올랐다. 수습할 수 없는 일이 터진 게 아니라면 돌아갈 필요가 없다. 가벼운 잡음 정도는 괜찮다. 공들여 세운 탑을 깎아내리려는 시도는 언제나 있었으나 그것이 유의미한 타격을 줄 때는 지났다. 그룹의 완전무결은 회귀의 횟수가 아직 두자릿수일 때 그만 두었으니. 타격과 잡음은 다르다. 그는 그것을 구분하여 최적의 조합을 이미 찾아냈다. 마음에 들지 않은 구석은 통제하면 그만이다. 브이틱은 아주 오래 전에 실패를 끝냈다. 미션을 완수하기 전의 회귀는 전부 더 나은 미래를 찾기 위한 선택이었고.


그러니 우선 순위는 명확하다. 첫째, 류건우가 허튼 짓을 하지 못 하도록 곁에 둔다. 돌아가는 보험은 그 다음이었다. 이 참에 다음 타자가 죽어도 신재현은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셈 쳤다. 다음 타자가 시간을 되돌아와도 남겨지는군. 그 사람의 효용은 딱 이 정도 가치였다. 

그럼에도 종종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시간이 흘러갔음에도 여전히 한심해서. 긴 시간을 떠돌며 깨달은 명제는 여러 개다. 그 중에 하나. 자신이 떠나간 세계는 사라졌다고, 그대로 시간이 멈추어 있다고 믿어버리는 게 편했다. 미련을 가지지 않는다. 가지지 않아야 한다. 의식적으로라도.


역시 초반이어서 그런가….

류건우는 실패한 세계의 시간이 멈췄다고 믿는 행동과 믿지 않는 행동을 동시에 했다.

포섭에 성공한 이세진, 이세진, 선아현… 그 프로그램에서 데뷔한 류청우와 차유진, 김래빈까지. 그들은 류건우의 실패한 조합이다. 시간 낭비다. 사람의 천성은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면 다시 모으려고 하진 않았을 텐데. 실패했다는 것을 직감했을 때 돌아가는 건 옳은 선택이다. 그룹의 멤버를 자신에게 넘겼다는 것을 빼면. 이세진, 선아현… 분명 류건우에게 소중한 사람들이었을 터다.

류건우는 망설이는 기색 없이 그들을 전부 두고 사라졌다.

다만 메일을 남겼다.


[8월 브이틱 활동 정리]

20xx.07.03
──────────────────────────────────── 

너 눈 돌아갈까 봐 그냥 말한다.

애들 좀 잘 봐줘라.


하. 기가 찼다. 류건우 씨. 버렸으면 신경쓰지 말아야죠. 이미 실패했다고 판단한 거 아닌가. 돌아간 사람이 한심하다. 처음으로 남겨진 사람이 된 감상이란 그랬다. 생소한 느낌. 미션 해결을 적극적으로 도와준 적도 없었지만 막상 누군가의 실패한 세계가 되자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새로이 시작하는 사람을 한심하다고 여기다니. …시간은 멈추지 않았고, 내가 쌓아올린 것도 여전하지.

그러니까 변덕이었다. 메일이 더 이상 오지 않는 순간 손을 뗄 계획이었다.


같이 하고 싶었던 거라고? 누구나 초반엔 그렇게 말하겠지. 그러다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재시작을 생각해. 왜냐하면 그게 제일 편하니까. 이미 잃은 신뢰를 회복하는 건 어려워. 변수도 많고. 그러니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는 게 효율적이거든.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청려는 그랬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임했는지 하나도 모르지. 정상의 자리에 오르면 사람은 안이해진다. 아니, 사실 자리는 상관 없다. 그런 사람은 언제든 발을 뻗는다. 그 자리는 항상 제가 마련한 자리였다. 그들은 청려의 자리를 자꾸만 밀어냈다. 교묘한 방법으로. 차라리 논란이 나았다. 언제고 나를 포기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못했으니까. 

청려도 한때 이상적인 그룹을 꿈꿨다. 모두가 성공한 아이돌을 위해 기꺼이 나아가고 함께 성취하는 보람을 느끼는 것. 말하지 않아도 같은 목표를 향한다는 믿음이 기저에 깔려 있는 것. 청려는 류건우가 계획한 그룹 활동을 내려다 보았다. 이 사람들과 함께 하면 그럴 수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새로운 그룹이 성공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낮겠지. 자신이 용납하지 않을 테니. 그나마 몇몇은 쓸모 있어 보이긴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사람은 누구나 반짝일 수 있다. 하이라이트 필름이 얼마나 지속될지가 문제지.

…마지막 성의예요. 정보에 대한 보답이라고 치죠.

어차피 저 사람들은 우리를 넘지 못 할 것 같으니까요.

어차피 평생 전해지지 않을 이야기. 질문은 있으나 답은 없는 대화. 손 끝으로 책상을 툭툭 두드렸다. 류건우가 사라진 지 일 년을 채웠다. 그가 사라져도 세계는 사라지지 않았다.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애초에 없던 사람인 것 마냥. 돌아간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에겐 잔인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세진이라고 했던가. 아, 이세진은 둘이었지? 논란이 있던 연습생, 데뷔 직전까지 갔던 연습생. 어차피 둘 다 류건우를 기다리는 기색이었으니 상관 없나….

어쨌든 간에 그룹을 지키려는 꼴이, …… 좋은 패 같아 보였다고 할 순 있겠죠. 아, 브이틱에 기용하진 못 해요. 포지션도 겹치고… 글쎄, 꽤 야망이 있는 타입 같아 보여서. 이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본론은 이거예요. 그들은 당신을 언제까지 기다릴까요.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까요? 기약 없는 기다림이잖아요. 당신은 실패하지 않기 위해 언어를 고르겠죠. 후배님, 그거 아나요? 당신의 말에서 단 한 단어만 달라져도 미래는 달라져요. 당신은 이곳으로 돌아오지도, 다시 재현하지도 못 하겠죠.

…과연 남겨진 자는 사라진 자를 포기할까요?


신재현은 문득 궁금해졌다.

자신이 두고 온 세계가.


그러나 금방 거뒀다.

성공한 아이돌에겐 방해되는 요소기에.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TMI 같아서 안 쓰려다가 역시 꼭 덧붙이고 싶은 말이라서요. 모든 인물들은 시간이 멈춘 것 같아도 다시 나아갈 수 있을 거예요.

이세진A는 아직 개명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굴레를 끊을 기회가 있을 거예요.
선아현은 일어날 기회를 준 건 류건우지만 일어난 건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테고요.
이세진B는 류건우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만큼 그리워 하겠지만 그럼에도 충실하게 활동을 지속할 거예요.

백일몽에서도 테스타는 존재하게 되었고 어떤 길을 걸을지는 기다림을 선택한 자의 몫입니다. 다만 그들은 멈춰 있지 않을 거예요.

청려는 아직 완벽하게 성공한 아이돌을 좇고 있으나 불투명한 미래를 살며 선택해야 하죠. 류건우가 준 파일도 언젠가는 없어질 테니까요. 다만 그가 분명한 목표를 갖고 갈망하는 한, 언젠가는 살아 있다는 감각을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비록 이쪽은 계기도 과정도 스스로 준비해야 할 테지만요.

항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좋아해서 썼던 건데 2년이 지난 후에야 마지막 편을 가져와서 대단히 송구스럽습니다… 혹시 기다리신 분이 계셨다면 참 죄송하고 감사할 것 같아요.

따뜻한 겨울 보내세요. ❄️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