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知 00

아무 것도 모르는 온라온

꿈을 꿨다. 진짜 온하제가 나오는 꿈이었다. 반가움에 저도 모르게 다가갔다. 금세 투명한 벽에 이마를 부딪혀 버렸지만. 빨개진 이마를 슥슥 문지르면서 온하제를 빤히 쳐다봤다. 입으로 무언가를 뻐끔뻐끔거리는 듯 했는데 무엇도 들리지 않았다. 아마 내게 무언가를 전하려고 하는데 잘 안 되나 보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때였다. 드디어 온하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라온아.”

“응?”

“미안한데 시간이 없으니까 이것만 말할게. 아프지 마.”

방금 뭐가 지나갔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말하는 말에선 단 하나만이 귀에 들어왔다. 아프지 마. 분명 하제는 그렇게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렇게 물으려던 찰나였다. 쿵. 발밑이 흔들렸다. 뭐야. 당황스러워 주변을 이리저리 살폈다. 저 멀리서부터 빠르게 바닥이 붕괴되며 사라졌다. 속도가 너무 빨라서 곧 이곳까지 무너질 것 같았다. 도망치려 해봐도 투명한 벽에 가로막혀 있는 곳은 갈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온라온이 딛고 선 바닥이 없어졌고, 그대로 푹 꺼졌다. 소리를 질러봐도 추락하는 온라온은 변하지 않았다.

꿈에서 깼다.

-

무슨 일인지 요새는 가만히 있어도 온라온의 기억이 보였다.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을 볼 때면 어렸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메이크업을 하려고 앉은 샵에서 무심코 고개를 들어 거울을 봤을 땐 트루에서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매개체는 거울, 거울인가? 자꾸 거울을 볼 때면 불안해지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 온라온은 의식적으로 거울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휴대폰 액정에 비치는 제 얼굴과, 그 옆에 생기는 오현진의 얼굴을 봤을 때는 정말 핸드폰을 집어던져버릴 뻔 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 과거의 기억을 부추기는 매개는 거울이 아니다. 온라온이다. …나였다. 그 사실을 의식하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멤버들과 셀카도 점점 피하기 시작했다. 화면에 나오는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입술을 깨물었다. …봐줄 게 얼굴밖에 없는데.

점점 멍하니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정신을 차려보면 손톱을 세워 볼을 마구 긁어내리는 온라온이, 입술을 짓씹는 온라온이 있었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은총 쓰면 금방 나으니까, 사람들 앞에서만 조심하자. 특히 멤버들 앞에서만. 조심하면 괜찮았다.

하지만 그 무엇도, 겉으로 드러나는 한 영원히 숨길 수는 없었다.

-

“야, 요즘 무슨 일 있어?”

“그런 거 없는데?”

“….”

견성하는 저를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다. 다 알고 있으니까 말하라는 것 같았다. 근데… 상처 받은 사람은 내가 아닌데. 온라온에게 과거의 일을 말하는 사람은 지금 온라온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도 같아서. 대답하기 싫었다. 그건 내가 아니야. 힘들어 하는 것도 내가 아니고, 네가 지금 신경쓰고 있는 것도……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다. 급하게 자리를 피했다. 야, 온라온. 대화하다 말고 어디 가. 야! 뒤에서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상처가 하나 늘었다.

그리고, 금방 사라졌다.

-

꿈을 꿨다. 진짜 온하제가 나오는 꿈이었다. 저번이랑 똑같은 꿈이었지만 뭔가 달랐다. 제가 서 있는 쪽은 온통 눈밭인 게 겨울이었고, 저곳은 싱그러운 풀을 보았을 때 여름인 듯 했다. 그리고… 온하제의 얼굴에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저게 누구 얼굴인데. 감히 누가 상처를 내.

“온하제, 온하제! 그거 누가 그랬어?”

온하제가 웃었다. 하지만 그건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내 얼굴이었으니까, 내가 제일 잘 알았다. 그거 웃는 거 아니잖아. 말해. 누가 그랬는데? 순식간에 표정이 굳자 온하제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입모양으로 무언가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뭐라는 거야.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잘 안 보였다. 인상을 찡그리며 읽어내려고 노력하자 천천히 글자가 보였다.

제발… 아프지 마?

지금 내가 아픈 걸 걱정하는 거야? 난 은총 있어. 지금 네 상처 물었잖아. 다시 한 번 누가 그랬냐고 물으려던 찰나 온라온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그래서는 안 되는 불길한 가정이 떠올라서. 지금 네 상처가 내가 아픈 거랑… 상관 있어? 그러고보니, 상처의 위치가 전부 같았다. 지금 내 가정이 말도 안 되는 걸 아는데……, 그려낸 듯 똑같았다. 온라온은 제 오른 뺨을 천천히 쓸었다. 시선은 온하제의 뺨에 고정된 채였다. 제 뺨은… 상처가 있었는지도 모르게 매끈했다. 쟤는 반창고로 얼룩덜룩한데.

설마, 설마.

나 대신 아픔을 가져갔을 리가, 그런 게 진짜일 리가 없잖아.

알아챈 것이 사실이면 어떡하지.

자각도 못 한 사이 손이 벌벌 떨렸다. 온라온은 그저 울고 싶어졌다. 그렇다고 하지 마. 온하제, …아니라고 말해. 온하제는 다시 웃었다.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무언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쿵. 꿈에서 깰 시간이었다. 곧 있으면 깨어날 텐데. 내가 상상한 게 진짜냐고, 우리가 만난 게 상상인 건 아니냐고. 물어볼 겨를이 없었다. 사실 답을 제정신으로 들을 자신도 없었다. 다시 바닥이 흔들리고, 무너졌다. 저번보다 빠른 속도였다. 추락하는 온라온이 여전했다.

…나, 무슨 짓을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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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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