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知 01

아무 것도 모르는 반요한

- 우리 같이 A등급 꼭 가자. 나 한 번만 믿고 A등급 가보자.

- 형, 연습해야지. 나 한 번만 믿어달라니까? 요한이 형, 아이돌이 하고 싶어?

미래를 그리며 웃는 낯이 아직도 선명했다. 어떻게 웃을 수 있지. 솔직히 여유롭게 웃을 만한 실력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 상황에서 생판 모르는 남까지 도와준다고. 고마움보다는 의문이 컸다. 눈치가 없는 거야, 아니면 여유를 부리는 거야. 여기까지 와서 손해를 보는 사람이라니. 반요한은 그때 온라온을 ‘자기 앞가림도 못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라온은 아무 것도 모른다. 아무 것도 모르니까 저렇게 실실 웃으면서 다른 연습생들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그럴 여력도 없는 주제에.

무지無知의 대가는 제가 치러야 할 게 아니었다. 어차피 모르는 사람이 손해였다.

- 가르치는 거랑 실력은 별개지.

생각이 달라진 건 온라온이라는 사람을 알게 됐을 때였다. 그냥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하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였다. 폼이 무너졌으니까. 제 실력을 되찾는 본인만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라온은 평생 무지하겠지만, 그래서 라온의 탈락을 바랐다. 담담하게 털어놓는 과거의 파편이 제법 마음 아팠다. 그래, 모르면 좀 어때. 알려주면 된다. 단순한 온라온에게도 의지할 사람이 있는 편이 좋겠지. 돌려 말하거나, 말하지 않아도 모든 걸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이. 라온이 시드에 들어와서 함께 데뷔하면 우리도 좋으니까… 그래.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 거지.

-

“넌 괜찮다고 했지만.”

“저번에 말했던 것처럼 사람이 늘 괜찮을 수는 없는 거니까. 앞으로 힘든 일 있으면 나나 다른 애들한테 언제든지 얘기해. 이제 같은 팀이고 가족이잖아.”

“오르카라는 그룹이 앞으로 네가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됐으면 좋겠어.”

-

온라온이 이상하다.

이상함을 확신한 것은, 온라온이 반요한의 눈을 두 번째로 피했을 때였다. 착각인 줄 알았다. 처음부터 무서운 게 없다는 듯 달려들던 사람이었는데. 설령 요한에게 잘못한 게 있어도 이런 식으로 피하려 들진 않았을 텐데. 아니, 애초에 뭐가 잘못인지도 모르려나. 아무튼 이번 일이 이례적이라는 것을 기민하게 알아챌 수 있었다. 라온은 요한이 싫어서 눈을 피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 눈동자 속에 비치는 것을 경계하는 것 같았지…….

조금만 관심을 두고 관찰하니 보였다. 라온은 거울을 피했다. 샵에 갈 때 말이라도 한 마디 더 붙이려던 애가 졸린 척 하며 스스로 잠을 청하고 있었다. 티비든 휴대폰이든, 꺼진 화면도 못 보는 것 같더라. 거기에 비치는 건 분명 온라온 본인이었다. 딱 잘라 확신할 수 있었다. 온라온은 자기의 모습을 보지 못 한다. 그런데 아직도 모르겠는 건 왜 말을 안 하느냐, 였다.

알고 있다. 온라온이 본인의 몸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반요한이 수능만점자라서, 특별히 머리가 좋아서 아는 게 아니었다. 그냥 옆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았다. 목이 졸리고, 계단에서 밀쳐졌는데도 취소하지 않는 스케줄. 결국 허물어지던 모습. 요한은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손을 덜덜 떨면서도 엠씨를 보겠노라 꿋꿋하게 말하던 라온을. 제가 창백하다 못해 지나치게 허연 낯빛이라는 걸 모르던, 라온을. 그 모든 순간에 요한이 곁에 있었다.

요한은 이유를 알고 싶었다. 아니, 알아야 했다. 자그마한 머리통으로 뭘 생각하고 있는 건지. 왜 자꾸 네 모습을 피하는 건지. 그러나 라온은 절대 고민을 털어놓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붙잡을 계획을 세웠다. 조건은 꽤나 까다로웠다. 먼저, 체력이 약한 라온은 스케줄이 끝나고 숙소에 오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그러니까 시간은 밤이어야 한다. 다른 멤버들에게 들키면 안 되니 방에 마지막으로 라온이 들어갈 때를 기다리는 게 좋으며, 금세 자러 들어가기 바쁜 온라온을 불러내려면 재빠르게 붙잡아야 했다. 며칠을 허탕쳤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기회는 한 번만 있는 게 아니었다. 당연한 명제지만… 뭐든 버티면 승리한다. 드디어 요한은 방에 들어가려는 라온을 막아섰다.

그리고, 라온은 또 시선을 피했다. 또 이러잖아. 요한은 입을 열었다.

“얘기 좀 해.”

“…형이랑 할 얘기 없어.”

“내 눈 보고 말해.”

“싫어. 내가 왜?”

“왜 내 눈 피해? 너는 내가 아무 것도 모를 것 같아?”

“…….”

잠시 말 없이 요한을 바라보던 라온은 그대로 요한을 지나쳐 방에 들어갔다. 아니, 끝마쳤으면 뭐라고 하지도 않겠다. 명백한 무시였다. 모르는 척 웃어 넘기면 상황이 해결되는 줄 아는 온라온, 상대까지 동참해주면 그걸로 끝인 줄 아는 온라온. 이건 ‘온라온’이라는 사람을 파악할 때 가장 기본적인 사실이었다. 오늘의 라온은 웃지도 않았다. 지금은 그러지 못 할 정도로 정말로 피하고 싶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맨날 웃던 온라온 대신 반요한이 자조 섞인 웃음을 뱉었다. 제 꼴이 문득 웃겼다. 앞에서는 큰소리를 떵떵 쳤지만 사실 반요한은 아무 것도 모른다. 그걸 이제서야 알았다. 제일 잘 안다고 자부하던 자신감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났다. 라온아, 네가 왜 아파야 하는데. 뭐가 그렇게 힘든 건데? 말 안 해줘도 알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 무엇도 몰라……. 말 했잖아. 같은 팀이고 가족이라고.

무지의 대가는 더이상 온라온만의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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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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