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출
??x플레임브링어/고어 약간
메스가 살갗을 가르고 파고든다. 서걱서걱 고기를 자르는 듯한 소리가 났다. 분명 제대로 날을 세운 메스는 아니겠지. 핏방울이 상처에서 흘러나와 천천히 중력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린다. 뒤늦은 감각이 골을 울린다. 이 격차를 보면 분명 작게나마 마취를 한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신경을 찌르는 듯한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눈 앞의 거울에는 메스가 머리에 파고드는 모습이 그대로 비춰진다. 시각적인 폭력성에 눈을 감고 싶은 걸 억지로 버틴다. 꽉 깨문 어금니에서 뿌드득 소리가 났다.
"스읍. 안돼."
다그치는 말에 몸이 반사적으로 굳는다. 마치 애완동물에게 하는 듯한 목소리. 그럼에도 반사적으로 힘을 풀었다. 잘못했다간 지금 살갖을 가른 칼날이 눈을 찌르고도 남을 거라는 걸 아주 잘 이해했기 때문이다.
"알아서 힘 빼. 약은 더 못 줘."
애초에 이딴 수술을 하지 않으면 될 일일텐데도. 대답을 목구멍 너머로 우겨넣고 가만히 메스가 상처를 들쑤시는 걸 바라본다.
"착하다. 응."
말뿐인 칭찬. 톡톡 메스가 단단한 금속을 두드리는 듯한 감각에 뼈가 아리다.
"이 오리지늄 파편은 계속 자라겠네."
목소리에 기뻐하는 내색이 묻어난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눈 앞의 거울에서 시선을 때고 위를 올려다 보았다. 번쩍이는 메스와 피에 젖은 장갑이 고개를 잡는다.
"두 세 번은 더 적출 할 수 있겠어. 그치?"
무슨 동의를 구하는가. 대답을 하는 대신 시선을 다시 거울로 돌린다. 이 의미 없는 수술에서 얻는 상처와 고통에 시선을 두고 싶지 않아서 몸에 남은 흉터들을 더듬어 훑었다. 용병 일을 하며 죽음에 다다를 때 마다 대가로 얻은 것들. 하지만 이 흉터에는 지금 자신의 옆에서 오리지늄을 적출하는 자가 낸 상처들이 숨어 있다. 어느 곳에서 어떤 생사를 지나 어디가 어떻게 다쳤는지는 모두 기억할 수 없지만. 옆에 이 녀석이 자신에게 준 흉터의 위치와 감각만큼은 끔찍할 만큼 생생하다. 저번은 손목이었지.
"그거알아?"
"..."
"네 오리지늄 파편은 따뜻해."
상처를 들쑤시다 말고 다정하게 오리지늄 파편을 문지른다. 뜨뜻 미지근한 피 때문에 장갑이 맨손 같은 착각이 들어. 검은 오리지늄의 파편위로 붉은 핏방울이 번진다.
"내 아츠가 불꽃이라 그런거겠지."
"그런가? 불꽃의 아츠는 드물지 않지만... 다른 이들의 파편에서 이런 따스함이 느껴지는지 잘 모르겠던데."
이런 실험과 적출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하고 있는건가. 끔찍함에 구역질이 난다.
"나중에 확인해 볼게. 그러니까 지금은 가만히 있어봐. 버텨."
생리적인 구역감에 몸을 멈춘 것도 잠시 다시 상처 속 오리지늄을 건드는 감각에 몸이 고통으로 번득 굳어버린다. 이 사람이 버티라고 할 정도면 마취 정도로 끝나는 고통이 아니라는 뜻이다. 신경을 헤집고 건드린다는 의미에 가까우니까. 이빨을 악다물고 결국 눈을 감는다. 피와 함께 식은땀이 뚝뚝 떨어졌다.
툭툭 강하게 두드리는 소리. 메스가 뭉특한 이유는 살갖을 가르기 위함이 아니다. 오리지늄을 잘라내기 위함이다. 날카로운 칼로 광석을 두드릴 수는 없으니까. 서걱서걱. 오리지늄이 긁히고 깎이는 소리가 뼈마디를 타고 귓속으로 파고든다. 바깥이 아니라 몸속에서 울리는 소리. 몸의 일부가 잘리고 깎이는 소리. 상처에서 피와 생명이 흐르는 소리.
"...윽......"
지금 여기에서 흐르는 피는 아무런 성장도 가지고 오지 않는다. 아무런 고난도 되지 못하고 의미있는 고통으로 빚어지지도 않는다. 거세게 저항하면 의미 없는 죽음이 다가오고, 어중간하게 반항하면 죽지도 못하는 실험체로 전락한다. 여기는 그런 판이다. 그가 만들고 펼쳐놓은 보드게임의 위, 갈 수 있는 길 따윈 이미 정해진지 오래고 고를 수 있는 선택 또한 만들어져 있는 곳.
"아파?"
대답하지 않는다. 어차피 약을 더 주지도, 행동을 거두지도 않을테니까. 살펴보는 시선이 거두고 다시 오리지늄을 툭툭 건드리기 시작한다. 오리지늄의 자라는 위치는 제각각. 자신은 손에서 돋아나 어깨를 뚫고 머리까지 닿았다. 오리지늄의 뿌리와 근본을 제거하기란 지금의 의학기술로는 불가능하다. 제거해봤자 다른 장소에서 새롭게 자라날 뿐.
"거의 다 됐어."
거짓말. 다른 오리지늄을 목표로 삼아 새로운 상처를 집고 새로운 흉터를 만들어 낼 거면서. 그럼에도 고통이 멈추어 간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자신이 있다. 아무런 성장도 없이 생사도 없이 피와 생명만 흘린 자신이 있다. 고개를 숙이면 잔뜩 흘린 핏방울이 마치 전투를 거친 것처럼 옷을 더럽히고 있었다.
갉아내는 소리가 멎는다. 메스가 단면을 쿡쿡 찌르는 둔탁한 감각이 뼈 전체를 울리고 피부를 억지로 벌린 기구가 치워진다. 달그락 달그락. 몸에서 나는 소리인지 도구에서 나는 소리인지 모를 소란스러움이 사라지자 메스가 떨어졌다. 자신에게서 양손을 땐 그가 살짝 멀어진다.
"협조 고마워."
곁눈질을 하면 자신에게서 분리된 조각을 흰 천으로 소중하다는 듯이 닦아내는 그가 있다. 몇 번이고 반복되었기에 이 다음에 그가 어떤 행동을 할지 짐작이 간다. 역시나 근사한 보관함에 감싸 보관하겠지. 하는 행색만을 보면 보석이나 귀중품을 다루는 것만 같다.
"예쁘다..."
황홀해 하는 목소리는 그 기저에 담긴 감정을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마음 같아선 네 몸에 있는 오리지늄을 다 뽑아버리고 싶어."
"그랬다간 죽어."
"알아. 그래서 참는거야."
지금은 이거 하나로 만족할테니까.
자극했다간 좋지 못할 꼴을 당하겠지. 광산에서 캐는 오리지늄과 자신의 몸에서 난 오리지늄의 차이가 대체 뭐란 말인가. 신체에서 난 오리지늄은 그 신체가 지닌 아츠를 일부 다를 수 있게 해준다는 것? 이건 상식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흔한 정보다. 하지만 저런 작은 조각으로는 커다란 불꽃은 커녕 불씨나 튀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자, 이제 꿰매줄게."
"필요없어."
"안돼. 네가 얼마나 예쁜데 흉지면 큰일나."
제일 큰 상처를 내는 사람이 세삼 다정하게 상처를 쓰다듬어 온다. 거부권은 없는 거겠지. 제대로 치료해줘봤자 표면을 뚫고 다시금 자라날 것을.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저린 약 기운이 자신을 붙잡는다.
"마취랑 마비랑 같이 되는 약을 썼으니까 큰 움직임을 하긴 어려워."
"허..."
"착하지? 이제 치료하자."
상처도 치료도 그의 마음대로다. 제대로된 도구를 가져와 상처를 잡고 천천히 신중하게 흉지지 않도록 살핀다.
"이번엔 연고도 발라줄테니까. 응?"
그런 물자는 또 어디서 구한걸까. 의문이 들지만 입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저 거울속에서 상처가 매워지는 것을 바라볼 뿐이다.
"아이 착해."
누가 누구를 아이 취급하는 거야. 잘난 머리로 아이같은 욕망을 잔뜩 채우는 사람이 누구인데. 감히.
"응. 응. 화내지 말고."
상처를 깁다 말고 한 손이 턱을 살살 간지럽혀준다. 닦지않은 피가 턱에 묻어난다. 어떤 의도로 어떤 반응을 기대하고 하는 행동인지 뻔하다. 동그랗게 뜬 눈. 놀란듯한 표정은 전부 지어낸 모양새다.
"왜? 이번엔 안 짖을거야? 안 물고?"
"내가..."
몇 번이나 이 짓거리를 해왔다고 생각해? 물어 뜯고 말로 화내는 단계는 이미 지났어. 하지만.
"네가 뭘?"
"내가 개 인줄 알아?"
순간적으로 몸에서 튀는 불꽃. 하지만 그대로 사그라져 재조차 남기지 못하고 꺼진다.
삐삐삐삐-
시끄러운 사이렌의 소음과 소란이 방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문을 거세게 두드리는 소리. 쾅쾅 그의 안부를 확인하는 목소리들.
죽일 수도 있었던 위협에도 눈 앞의 사람은 손벽을 치며 웃는다. 자신의 아츠에 반응하여 등 뒤에 있는 척출된 오리지늄에서 난 불꽃이 천을 태우기 시작하고 의료 도구를 망가트리는데도 그는 그저 기뻐할 다름이다.
"응. 아니지. 넌 개가 아니지."
아하하하. 거슬리는 웃음 소리.
"넌 개가 되지도 무력해지지도 않잖아. 다른 사람처럼 부당한 취급에 순응하지 않으니까."
"죽여버린다."
"응. 응. 하지만 숨을 조금 더 죽이는 연습을 하는게 좋겠어."
거친 몸짓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다가온 그가 손을 든다. 그 손에 잡혀 있는 건 주삿 바늘.
"죽여버릴 거라고."
"그래. 그래."
으르렁 거리는 소리에도 아무렇지 않게 푹. 목을 찌르고 약을 주입한다. 약을 더 줄 수 없다는 것부터 거짓말이다. 처음부터 반항할 여지조차 주지 않고 다루면 될 일을. 이 녀석은 자극하고 부추기고 반항을 즐긴다.
"이건 다 네 치료를 위한 거야."
"필요..없어..."
"하지만 난 네가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네가 좋으니까."
고개가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깨어나면 깨끗한 병실에 치료도 다 되어 있을껄. 좋은 꿈 꿔... 내 사랑스런-"
뒷말을 이어듣지 못하고 그대로 꼬꾸라진다. 깜박이는 의식, 귀너머의 소음, 사이렌과 사람들의 웅성거림, 소란과 거친 발걸음. 그 사이사이에 느껴지는 진심이라는 걸 알아서 더 역겨운 다정하고 따스한 손바닥의 온기.
그의 감정이 어디서 적출되어 자신을 향하는지 이해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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