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레이/ 02.14(+03).

지나버린 발렌타인.

오무오무공장 by 월
29
2
0

*퇴고 안 함.


“세리자와, 저번 출장 의뢰 말이다.”

 

세리자와는 소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출장 의뢰는 이번 달에 서너 번 있었다. 이번 달이 반쯤 지났으니, 적당하다면 적당한 빈도였다. 그중 제일 최근 것은 사흘쯤 전 출장을 간 의뢰였는데, 신혼집에 악령이 들었으니, 제령을 해 달라는 것이 주된 골자였다.

 

“거기에 진짜로 없었어? 악령.”

“네. 평범한 영(靈)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냥 알콩달콩한 느낌만 가득했달까…….”

“뒷말은 필요 없거든. ……뭐, 그랬나.”

 

세리자와는 창문 밖 전깃줄에 참새와 부유령이 줄지어 앉아있는 모습을 한참 보다가, 어느 단어로 생각을 옮겼다. 자신이 방금 말했고, 상사는 필요 없다고 한 단어.

 

‘……나도 레이겐 씨랑 살림을 차리면 알콩달콩하게 잘 살 수 있으려나.’

 

알콩달콩. 이것만큼 어감만으로도 사람을 낯간지럽게 하는 단어는 별로 없을 터다. 말의 힘은 대단하다고, 세리자와는 ‘알콩달콩’을 되뇌며 생각했다.

세리자와가 동거의 상상을 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두 사람의 왼손 약지에는 같은 디자인의 반지가 꿰어져 있었다. 이곳에 자리 잡은 반지가 품는 의미는 웬만해서는 한 가지로 귀결되었다.

레이겐과 세리자와의 사내 연애는 이제 3년 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장기 연애라기엔 짧은 기간이지만, 그렇다고 관계가 불안정한 것은 아니며, 알 건 다 아는. 둘은 그런 사이였다.

그러니까 세리자와가 상상으로라도 동거를 운운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았다. 살림은 이미 반쯤 합쳐졌으며, 서로의 생활 양식도 대충은 알고 있다. 그러니 누군가가 ‘집 계약이 끝났으니 같이 살자.’ 같은 변명을 내세우면 당장이라도 한 지붕 한 이불을 덮을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의뢰인 커플은 행복해 보였다. 밤에 침대 아래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와 무서웠다고 이야기는 했지만, 사실 그것은 평범한 바퀴벌레였다고 원인 규명을 해 주니(소장은 이 부분에서 기겁했다), 그래도 악령이 아니라 다행이라며 웃는 두 사람은……. 그래, 완전히 행복하고 사이좋아서, 결론적으로는 ‘알콩달콩’해 보였다.

그 사이가 부러웠다. 지금 생각해 보자면 그때 느낀 묘한 질투심의 정체는 부러움이었다. 나도 레이겐 씨와 저런 사이가 되고 싶은데, 같은. 아마 사흘 전부터 무의식은 동거라는 미래를 원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형체를 갖추어, 지금 생각이 된 참이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동거 얘기를 꺼내면 안 된다. 예전 같으면 바로 들이대고 속된 말로 ‘씹혔을’ 테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세리자와는 레이겐 맞춤형 인간으로 성장했다. 사실 3년 동안이나 사귀었으면서 성장하지 않는 쪽이 이상하긴 하다.

아무튼 세리자와는 레이겐이 의외로 이벤트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닌 척을 하지만 티가 전부 나니까 모르기도 쉽지 않았다. 그리고 이벤트 직후 사람이 좀 더 ‘말랑말랑’해진다는 것도 세리자와는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벤트를 해 주며 은근슬쩍 이야기를 꺼내는 쪽이 더 성공 확률이 높다는 것 정도는 쉬이 예측할 수 있었다.

세리자와는 스마트폰에서 ‘달력’ 앱을 켰다. 기념일은 애인의 머리칼과 같은 노란색으로 전부 체크 해 놓았다. 그렇긴 한데, 문제가 발생했다. 달력에 노란색이 전혀 없었다. 제일 가까운 기념일이 3월 말 세리자와 본인의 생일이었다. 생일 선물로 동거해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마음대로 되지를 않았다.

2월, 2월에 기념일이 뭐가 있더라. 세리자와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우선 둘이 연애를 시작한 것은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3주년이나 1000일은 현재 근처가 아니라는 뜻이다. 애인의 생일은 10월이다. 한참 남았다. 역시 생일 선물로 동거해달라고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인가.

날짜가 빼곡한 모눈을 한참이고 노려보던 세리자와의 눈에 어떠한 숫자가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무언가 표시가 되어는 있는데, 노란색은 아닌 핑크색이었다. 핑크색은 출장이라는 뜻이다. 날짜는 사흘 전, 그 커플의 의뢰였다. 하여간 문제는 커플도 출장도 아니었다. 2월 14일이라는 날짜였지.

발렌타인, 안 챙겼다.

세리자와는 다시 천천히 뇌를 가동했다. 애인이 이런 걸로 토라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안 챙겼으니 호감 포인트가 오르지 않는다는 것도, 씁쓸하지만 알고 있다.

사실 호감 포인트고 뭐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애초에 ‘미연시’ 캐릭터도 아니고. 세리자와는, 자기 자신에게 실망했다. 솔직히 다른 ‘~데이’는 안 챙겨도 되었다. 그런 거 다 상술이라고 애인이 말한 탓이었다. 하지만, 그 상술의 원조인 발렌타인만큼은. 수많은 커플이 사랑을 확인하는 발렌타인만큼은. 챙겨야 했다. 분명 그랬는데, 완전히 까먹고 말았다.

저번 발렌타인을 안 챙겼으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리자와는, 사귀기 시작한 이후 찾아온 두 번의 발렌타인을 전부 챙겼다. 한 번은 비싼 초콜릿, 한 번은 꽃다발을 애인에게 주었다. 그 비싼 초콜릿은 알고 보니 위스키 봉봉이라서 둘 다 만취했었다는 뒷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그건 무시하기로 하고. 중요한 것은 한 가지다. 저번에는 챙겼고, 이번에는 못 챙겼다는 것.

지금이라도 편의점에 달려가서 초콜릿을 사 와야 하나. 아마 발렌타인이 지나도록 팔리지 못한 초콜릿이 수북하게 쌓여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쪽은 너무 구질구질하다. 까먹었다고 솔직히 말하는 쪽은? 이것도 좋아 보이진 않았다. 좋게 봐줘야 그냥 넘어갈 거고, 최악의 상황에서는 혼날 것이었다.

……역시 그냥 넘어가야 하나. 아무리 봐도 이것이 최선인 듯했다. 하지만 그러면, 동거 얘기는, 1000일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아무리 좋게 봐서 3월 31일에 이야기를 한다고 치더라도 한 달이 넘게 남았다. 기다릴 자신이 없다.

그렇다면 억지로 이벤트를 만들어야 했다. 구질구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어떻게든 분위기를 만들면 넘어갈 사람이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해야 했다. 알콩달콩 신혼 라이프를 위해서라면.

……하지만 이것이 맞을까?

동거라는 목적을 위해서 죄 없는 이벤트와 기념일과 애인의 마음을 소모하는 것이 맞을까. 오히려 이런다면 알콩달콩한 삶과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 모든 것에는 때가 있지 않을까. 2년이라는 짝사랑 끝에 한 고백처럼. 그리고 나도 사실 몇 개월 전부터 너를 좋아했다는 달콤한 말과, 더 일찍 마음을 전했다면 실패했을지도 모른다는 아찔한 상상처럼.

세리자와는 뒤를 돌아보았다. 둘의 사랑은 느렸다. 어쩌면 지루할 정도로 느긋했다. 하지만 그 속도와 템포가, 세리자와는 좋았다. 그리고 레이겐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기다리는 것이 올바르다. 애인이 먼저 다가와 줄 때까지, 잠자코 있어야 했다. 처음부터 늘 그랬으니까.

세리자와는 한숨을 삼켰다. 내쉬면, 추궁을 받을지도 모르는 탓이었다. 대신 걱정이 이전된 손가락으로 2월 14일을 꾹 눌렀다. 1년마다 반복되는 것으로 일정을 설정한 뒤, 이리 적었다.

 

‘발렌타인(반드시 챙겨!)’

 

이 정도면 되었다. 기회는 지난날에 없다. 있다고 해도 잡을 수 없는 것이다. 노려야 하는 것은, 앞으로 찾아올 나날이다.

찝찝하지만 최선을 다했다며, 세리자와는 핸드폰을 놓았다.

그 비어버린 손을 레이겐은 보고 있었다. 어쩌면 체온으로 살짝 녹았을지도 모르는 판이, 그의 손가락에 휘감긴 채였다.

세리자와의 손이 헐거워졌다. 무언가를 내려두면 꼭 놓치지 않을 듯했다. 타이밍은 지금이다. 레이겐은 빠르게 세리자와의 손에 초콜릿을 두었다. 그러고는 세리자와가 상황 파악을 하기 전에, 재빨리 말했다.

 

“……뭐냐고 하지는 마. 며칠 전에 못 준 그거니까, 왜 지금 주냐고 하지도 말고 그냥 잠자코 받기나 해.”

 

세리자와는 뇌는 그제야 지금을 이해했다. 한 300엔쯤 하는 초콜릿, 이쪽을 보지 않는 애인의 시선, 지나버린 2월 14일, 그래도 식지 않은 사랑, 조금 녹았는지 뭉근한 초콜릿의 감촉.

알콩달콩한 사랑이 선명하다. 때는 지금이다. 지금, 전하지 않으면.

 

“레이겐 씨, 저……!”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BL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