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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일렉트리파이 마이라이프 2차

”나 요즘 살쪘어?“

열심히 바늘에 침을 묻히던 수연이 너무나도 대뜸 던져진 말에 고개를 들었다.

“전혀 그렇지 않아, 희동아. 왜? 누가 뭐라고 했어?”

“정말? 눈 크게 뜨고 봐봐. 나 못생겨졌어? 아님 나 요즘 성격이 별, 별로야? 누군지는 아직 알려줄 수 없어. 왜냐면 그런 말을 들은 건 아니거든. 아직은…“

”아직이라니?“

수연이 깜짝 놀라 물었다. 손은 자동적으로 도안에 바늘을 꽂고 있었다.

“…마이콜. 정말로 내가 여자로서 매력이 부족한걸까? 살도 찌고 못생겨지고 성격이 별로고 가슴도 작은 걸까?“

정말롱…? 희동이 사과주스를 쪽 빨더니 울먹임과 함께 주스를 꿀꺽 삼켰다. 수연이 현란한 손놀림을 보이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진형 오빠 얘기야?“

“그래! 그 개자식!”

합! 답지않게 목소리를 높인 희동이 자기 목소리에 놀라 손에 잡힌 것에 힘을 풀었다. 사과주스가 엄청난 힘으로 빨대를 타고 올라가다가 롤러코스터를 타듯 떨어졌다. 네모난 주스곽은 삼일은 굶은것처럼 홀쭉해진 채로 손자국이 남았다.

”요즘 그 개, 아무튼, 오빠가 날 피하는 것같아.“

헉... 마이콜은 무슨 일이 있냐 물었다. 희동이 의자에서 편하게 자리잡더니 쌓아뒀던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아냐. 무슨 일이 있던 것도 아냐. 그냥 평소랑 똑같았어.”

“으음. 그때 기억나지? 졸업식 날, 진형 오빠네 펜션갔던 날. 여, 여기 열 번은 더 들었다구? 응… 아무튼 그날 오빠가 고백을 했는데, 나는 또 장난치는 줄 알았다고 말 했었나? 왜냐면 그때 내 터프한 모습에 반했다고 했단 말이야! 내가 체육창고에서, 아무튼 그날부터 섹시하고 예뻐 보였대. 내가 이 말을 듣고 무슨 생각이 들었겠니? 나한테 섹시한 부분이 어딨다구… 체육창고는 또 뭐야? 난 기억도 안나… 고마워, 너밖에 없어….“

”아무튼, 그러다가 내가 방학때 몸살 때문에 열이 올랐던 적이 있는데, 우리 오빠가 웬일로 전복죽이랑 팥죽이랑 계란죽이랑 약이랑… 바리바리 싸들고 온거야. 난 그때 하루종일 굶어서 너무 배고팠거든. 정말 맛있어서 다음날 오빠한테 고맙다고 했는데, 그게 진형 오빠가 준 거였다는 거야. 너 아프대서 사준거니까 나중에 고맙다고 하라고. 난 정말 생명의 은인으로 느껴졌어. 인사만 하기 좀 그래서 내 특기 알잖아, 거북이 쿠키를 구워서 다섯마리 드렸는데 세 마리면 충분하다고, 보답이라고 영화를 보러 가자는거야.“

“아냐, 그런거 아냐! 그때 마침 공짜표가 있다고 했어. 이게 근데 신청을 잘못해서 내가 안 가면 버려진대. 어쩔 수 없었어! 아무튼, 너 영화 좋아하니? 나는 별로 안 좋아하나 봐. 우리 오빠는 머리는 나빠도 영화는 좋아하던데… 나와서 영화 얘길 하면서 걷는데 내가 사실 지루했단 걸 알았나봐. 영화 얘긴 더 이상 꺼내지도 않구, 내가 찍고 싶다고했던 스티커사진도 찍고, 같이 가려고 저장해둔 파르페집이랑, 볼링장에도 데려가줬어. 그날 너~무 많이 웃어서 정말 배가 찢어지는 줄 알았어. 집에 가자마자 일기를 써야겠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니까. 집에서 씻구 펜을 들었는데, 눌러쓰려고 생각을 정리하는데, 그때 그런 생각이 든 거야.“

”진형 오빠를 믿어 보고 싶다. 그 날은 일기를 여덟페이지나 썼어. 놓치고 싶지 않은 기억이 많았거든. 그런데, 그랬는데,… 그런데! 요즘 오빠가 이상해! 그때만큼 다정한 것같지 않아. 나를 챙겨주긴하는데, 나랑 둘이 같이 있질 않아! 무엇보다 나를 피하는 것같아!“

“자기가 먼저 내 주위 뺑뺑 맴돌고! 챙겨주고! 엄살부리고! 연약한 척하고! 졸업시즌에는 아주 공주 취급 하더니 고등학교 오고 나서 변했어! 주위에 여자 많다고 나 무시하는거야? 그런거지, 마이콜?(수연은 여기서 십자수를 그만뒀다) 더 이상 나한테 여자로서의 매력을 못 느끼는거지? 나 좋아한다며! 그 고백은 뭐야? 내가 예쁘다며! 진심이라며!! 우진형 쓰레기!!“

분에 못이긴 희동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드르륵 쾅! 주위 총 열 네개의 눈이 희동에게 꽂히자,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풀썩 앉았다.

”마이콜.“

”응.“

”오빠가 날 진짜 좋아하는 걸까?“

희동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경악하고, 능글맞게 놀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던 마이콜이 잠시 생각하더니,

“그런 거라면 좋은 방법이 있어.”

“뭔데? 마법 십자수라면 효력이 없을거야… 내가 이미 다 말했거든. 이 십자수를 아는 사람에겐 효과가,”

도리도리 고개를 저은 마이콜은,

“데이트를 하는 거야. 둘이서.”

라고 말했고,

“어. 왔어? 안에 권하도 와있다.”

태평하게 집 대문을 열어 손을 맞이하는 구조다의 인사가 그 결과 되시겠다.

어쩌다 둘만의 데이트가 더블 트리플 구조다네집 탐방기가 되었냐하면 잠시 시간을 되돌려 우진형의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겠다.

스기하라는 심란했다. 그러나 며칠 전 담배꽁초를 뚝뚝 부러뜨린 고삐리가 할 수 있는 기분전환이라곤 한숨을 푹 내쉬는 것밖에 없었다. 덕분에 씨이빨 니 옆에만 있으면 복이 처나간다며 주위에 아무도 남지 않아 마음껏 고독을 씹을 수 있었다. 아이큐 144에 공부도 (마음만 먹으면) 어려울 것 없고 나름대로 얼굴도 봐줄 만해 (마음만 먹으면) 교우관계도 괜찮고 하고 싶은 것 다 (할머니가 싫어하는 것 빼고) 하는 십대 양아치 청소년의 고민이란.

“뒤진다. 내 앞에서 자꾸 티낼래?”

“뭐가. 뭔데? 니도 지금 찔리는 거지?”

“…아주 시위를 하세요.”

“그래, 씨발! 진짜 드러눕는다! 니가 지랄 안할때까지 여기 처 드러누워서 지나가는 트럭에 밟혀 죽을란다! 니가 겐세이 놓는거 무서워서 그 전에 콱 죽어버리려고, 이 씨방새야!”

“뭔 소리야? 여기 우리집이야, 미친놈아!”

“그럼 지랄을 관두던가! 야, 까놓고 말해봐. 너 내가 존나 맘에 안들지? 그래서 이런거지? 저번부터 왜 나랑 희동이 사이에 자꾸 참견해? 아니다. 희동이가 나 싫대? 이 년 꿇은 같은반 오빠는 멍청해보인대? 아주 차에 치여 죽어버렸음 좋겠대?”

“…….”

“진짜라고? 씨발, 이제와서?”

“좀 닥쳐. 그런 거 아니니까.”

그 말에 스기하라는 황당해 죽겠단 얼굴을 하더니, 가슴을 퍽쳤다. 답답해 죽으려 하는 모습에 구조다는 이 새끼가 정말로 지랄발작하기 전에, 왜냐면 그는 진짜로 (지랄발작을) 한다면 하는 남자였으니까, 말을 해줘야 하나 싶었다.

구조다또한 고민이 많았다. 그는 원래 오징어 구희동과 양아치날라리미친씨빠빠 우진형의 만남을 반대하는 쪽은 아니었다. 또한 제 코가 석자인 상태였다. 그러나, 그러나…

“너는…, 책도 좀 읽고 그래라.”

하고 휙 방을 나가버리는 구조다의 뒤통수를 보며. 스기하라는 근처에 있던 연필깎이를 쥐었고. 병신쪼다개새끼가 문을 열었을 때 어느 각도에서 던져야 십점만점이 나오는지 휙휙 각을 재보다가. 머리에 축구공만한 혹이 든 오빠를 붙잡고 엉엉 울 어느 여동생을 떠올리곤 그만두었다.

그 일이 바로 어제였다. 스기하라는 간만에 기분 좋게 하교했다. 쪼다등신이 무슨 말을 하든 상관 없어졌다. 그 새끼는 자퇴했고,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지가 무슨 수로 안단 말인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에 도착해, 웬일로 집에 있는 아빠에게 웬일로 다녀왔습니다 인사를 해 준 후, 제 얼굴은 알까 싶은 학원에도 다녀왔다. 어둑어둑해질때쯤 집에 도착하자 대문에 꼴보기 싫은 얼굴이 있었지만 괜찮았다. 무시하고 집에 들어가 주방으로 직행했다.

“오징어가 너한테 데이트 신청했다며?”

굵은 소금통을 들고 문밖으로 나오던 발걸음이 덜컥한다. 소금을 한 움큼 집어 뿌렸다. 옷을 탁탁 터는 것마저 병신으로 보였다.

“꺼져.”

“나 죽는 꼴 보기 싫으면 우리 집에서 해라. 데이튼지 뭔지.”

아니 근데 이 새끼가… 소금통을 아예 병째 집어 던지려는데 병신이 하는 말이,

“생리해.”

“뭐?”

“그 새끼 생리시작했다고.”

“아니, 아니,… 뭐?”

“사춘기 모르냐? 걔 이제 임신할 수 있다고!”

“아니, 병신아, 그니까.”

“내가 괜히 그랬겠냐? 너랑 놔두면, 놔두면 씨발!”

“하면, …좋은 거 아냐? …애기가 없다는 건데….”

“뭐? 너 걔랑 애기 만들었냐? 이 개새꺄?”

“아니, 씨빨놈아! 그게 아니라! 없었어, 안했어, 씨발. 안 건드렸어! 좀 진정해봐.”

“당연히 그래야지! 그 새끼 건드렸다간 너 죽고 나 사는거야, 이 씨빠빠야! 나 말고도 다른 애들은 가만 있을 것같애? 임, 임, 임, 구희동이 임, 임시발!!! 야!!! 걔 아직 열일곱이야!!”

담벼락에서 그들은 서로의 멱살을 잡았다. 소금통은 바닥에 굴러 흙먼지를 뒤집어 쓴지 오래였다. 스기하라는 그동안 가만있던 구조다가 왜 지금와서 지랄인지, 왜 둘이 있을 상황을 원천 차단했는지 조금 알 것 같아 몸에 힘이 빠졌다.

“니네가 사귀든 말든 내 알바야? 난 류권하 새끼 따먹을 생각만 해도 부족해! 근데 구희동이 갑자기 생리대를 사다달라잖아. 자기가 잘 몰라서 그런데 원래 이렇게 피가 많이 나냐고 무섭다고 물어보는데, 씨발, 나도 할 말은 없고, 근데 하필 니가 걔 주변에 얼쩡거리고. 걔 아무것도 모르는 애야. 너 같으면 동생 주변에 우진형같은 놈이 앵알거리는데 가만 있을 수 있겠냐? 그 우진형인데? 씹또라이, 병신, 미친놈, 또라이인데?”

우진형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말이지 또라이 라는 말을 두번이나 한 지능장애새끼라는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알겠다고 했다. 그만 돌아가라고, 내가 내일 학교에서 말 해보겠다고. 학교는 쪼다가 없는 성역이었지만 우진형에게 부족한 것은 신뢰였다. 네가 없는 곳에서도 나는 이렇게 바르게 산다. 뭐, 구조다의 고민을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우진형은 자신에게 둘만의 데이트를 신청한 구희동에게. 이번엔 건전하게 너희집에서 (우리 오빠 있는데?) 공부를 하며 (정말로?) 데이트를 하자고 했고.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구조다 니가 류권하를 뭐? 싶어진 우진형이, 그럼 너는 희동이한테 되게 건전한것 같냐며 떳떳하면 니 남친도 부르라고 한 결과가 이 꼴 되시겠다.

멤버는 다섯 명이었다: 구조다, 류권하, 구희동, 우진형, 마이콜.

참고로 쏭태는 우리 다같이 공부할건데 올 생각 있냐 전화했더니 “이쁜 애 있냐?” 물었다. 구조다는 “공부 잘 하는 애는 있는데.” 대답했고 전화가 끊겼다. 누구도 두번 다시 전화하지 않았다.

희동은 글씨를 정갈하게 쓰는 편이었는데, 손에 힘을 주어 쓰는 탓에 그녀가 필기를 할때면 사각사각 듣기 좋은 소리가 났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사각사각…

시곗바늘 소리와 필기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희동은 국어 작문 숙제를 하고 권하는 역사과목 문제를 풀었다. 마이콜은 헤드뱅잉하며 조느라 바빴다. 나머지 둘 중 한놈은 검정고시 문제집에 침을 한 바가지를 흘렸고, 한 놈은 의외로 깨어 있으며 생각이 많아 영어 단어 한 페이지에 오십 분째 머무르는 중이었다.

류권하가 역사책을 덮으며 말했다.

“이제 깨울까? 공부하라고 모인 건데 다들 너무 자네.”

“어, 어, 으응. 오빠, 마이콜, 일어나. 공부해야지.”

“꺅! 안, 안 잤어!(마이콜은 입가를 슥슥 닦았다)”

“오빠 안 잔다.”

우진형은 아까부터 구희동, 책상, 류권하, 문제집, 책상, 구희동 순으로 눈깔만을 돌려 째려보며 생각을 정리하던 중이었는데, 말소리가 들리자 그쪽으로 자연스레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눈앞의 광경에 순간 눈썹이 꿈틀했다. 뭔가, 미묘한… .

류권하는 조용한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은 건지 구조다의 귀에 (아마도 일어나라는 말을) 속삭였다. 동시에 손으로 (책상 밑이라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마 다리든 팔이든 흔들었을 것) 구조다를 만지자 구조다가 한순간에 눈을 떴다. 침범벅 얼굴의 소유자가 참 애틋하게도 바라본다.

류권하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아니… 아니. 과외를 시작했다. 정신을 차린 구조다는 문제집을 풀기 시작했고, 아니 문제와 싸우기 시작했고 참견하고 싶어 힐끔힐끔 안달복달 뭐 마려운 개새끼마냥 지랄이 났던 류권하는 구쪼다가 채점을 부탁하자마자 에이는 에이고 비는 비고 아주 아기새 모이주듯 정답을 믹서기에 갈아 떠먹여줬다. 니들은 임신할 일 없어서 좋겠다, 싶었다.

임신. 임신…. 내가 구희동의 아이를 갖고 싶은건지 생각했다. 만약에 희동이가 우리 아이가 생겼다고 한다면… 태섭이형, 태형이형, 구사삼촌, 구이아저씨, 구병신, 쏭태 등등 한테 맞아 죽는건 일단 차치하고(상상속의 구쪼다등신이 뭐 이 씹쌔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희동이와 오순도순 행복하게, 바깥 양반으로서 그녀에게 평생 외조하며 살고 싶은지 생각했다.

솔직히 희동이는 귀엽다. 얼굴도 예쁘고, 키도 크고, 성격도 좋아서 그 쪼다한테도 오빠대접을 해준다. 비슷한 얼굴을 가진 딸을 생각해본다. 희동이의 어린 모습으로 아빠, 아빠 하며 새끼손가락 만한 손을 꼬물꼬물… 아들을 생각해본다. 귀엽다. 이름은 아마 러시와 캐시… 씨발.

영어 책에서 타임스퀘어로 가는 길을 물어보던 배낭 맨 어느 트레블러가 혀를 찼다. 쯧쯧. 친구 동생이나 노리고…. 쭉 가서 오른쪽으로 돌면 그 곳에 편의점이 있고 거기서 서쪽을 바라보면 나올 거라고 대답한 현지인또한 나를 비난했다. 할 거 다 해본 양아치쉐끼가….

푹 고개를 숙였다. pregnant…. 임신한…. 임신…. 근데, 임신할 사람 마음이 제일 중요한 거 아닌가?

아니, 아니아니. 내가 임신 시킨다는 게 아니라, 임신은, 씨발! 우리 둘 사이의 문제지. 그걸 왜 구쪼다가….

아, 그래, 오빠니까…. 그리고 난 동생을 임신시킬 새끼로 보이니까….

스기하라는 갑자기 억울해져 책을 한장 뜯어 입에 넣었다. 쿠득쿠득 씹었지만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 결심했다. 새 사람이 되자. 이런 오해를 받지 않도록. 친구한테 내 동생 감아버릴 것 같으니까 접근하지말란 소리 두번다시 듣지 않도록. 씨빨! 내가 억울해서라도 해내고 만다. 성적? 올려줄게. 담배? 다 끊어! 십자수? 십만 장도 떠준다. 영단어? 200개씩 외워! 나 한다면 해! 스기하라는 의욕에 불타 보이는 거 없이 공책에 손을 뻗었고.

“아앗!”

마침 주스를 따르던 마이콜의 손과 세게 부딪혔다. 마침 새사람으로 태어난 스기하라는 매우 젠틀하게(말하려 노력하며),

“괜찮아? 미안하다.”

당황한 마이콜은 네, 네, 했다.

“내가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했어.”

마이콜은 아직도 네, 네! 아, 아니에요! 했다. 그러나 제정신 아닌 스기하라가 놓친 것은 마이콜의 손에서 주스가 떨어지며 꼴꼴 흘렀고, 그것이 류권하의 다리 위였다는 점이다. 끈적이는 액체가 류권하의 바지와 속옷, 심지어 상의 아랫부분까지 적셨다. 류권하는 눈을 홉뜨며 스기하라를 쳐다봤고, 스기하라는 뭐, 이 새캬. 내 탓이냐? 내 탓이야? 하고싶은 것을 간신히 참고 샤워. 하고. 오는 것이 좋겠구나. 말할 뿐이었다.

구조다에게서 옷과 속옷을 받은 류권하는 샤워를 하러 가고, 스기하라는 구조다를 데리고 방으로 데려갔다. 다짐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네가 뭘 걱정하는 지는 알겠는데, 나 생각보다 구희동에게 진심이고 걔를 위해서라면 나를 바꿀 노력도 할 생각이라고.

“야,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나였어도 불안했을 것같다.”

“뭐지? 뭐야? 니 누구세요?”

“…. 그니까 니가 한 걱정 나도 이해 한다고. 그래서….”

열이 있나? 구조다는 자신의 이마와 스기하라의 이마 온도를 비교했다. 공부를 너무 열심히 했나? 아님…영혼이 바뀌었나? 이런 미친! 구조다의 안색이 시퍼렇게 바뀌었다.

“누, 누구냐? 구라까지말고 말해봐! 마이콜? 박세정? 쏭태… 는 아닐거고.”

“개소리야! 나 우진형이야, 쪼, 구.조.다.야.”

“우진형이란 증거는?”

“내가 우진형인데 뭔 증거야, 이 씹, 씹, 씹……. 암튼.”

“이거 봐! 너 누구야? 왜 이래? 뭘 잘못 처먹었나?”

“나, 다시 태어났다. 어제의 내가 아니야.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죽였어.”

“…….”

“내가 왜 이러냐고? 그건 네가 잘 알거 아냐! 니가 나 들들 볶았잖아, 희동이 임, ……. 건들지 말라고! 근데 너 희동이한텐 물어봤냐? 걔 나 은근 좋아해. 매번 튕기는데 걔, 나 사라지면 신경쓰여서 잠도 못자. 내가 니 말대로 사라지면 그날로 니가 희동이 눈에서 눈물 뽑는거야. 니 동생 니가 더 잘 알 거 아냐? 걔 감수성 졸라 풍부하지? 일기쓰고 막, 어?”

“…….”

“네가 걱정하는 거 나도 잘 아는데, 아는데. 안 하면 되는 거 아냐. 나도 억지로 할 마음 없어. 씨발롬아 그만 째려봐. 안 한대도 지랄이야. 막말로 내가 너한테 더 서운해야 되는 거 아니냐? 친구를 강간범 취급하는 건데? 근데 이건 뭐 나도 한 짓이 있으니까 지금까지 그랬던 건 눈 감아 줄게. 근데 지금부터는 좀 믿어 보면 안 되냐? 나 열심히 할게. 야! 너만 희동이 아끼는 거 아냐. 나도 내 동생같이 아껴. 희동이가 나한테 못된 짓 당했다고 하면 나도 나한테 빡칠 거야. 그니까 우리 둘이 알아서 하게 좀 냅둬라, 어?”

“…….”

“아, 알았냐고 몰랐냐고. 나 이제 다시 희동이한테 작업쳐도 되냐고 안되냐고.”

“맘대로 해 씨댕아!”

구쪼다는 쿵쿵대며 방을 나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의 승낙임을 안 스기하라는 표정이 좀 풀려 헤실거렸다. 책상 위 어질러져 있던 연필깎이를 한 번 정리해주고 방에서 나왔더니 밖에는 쉬는시간인건지 늘어져 있는 애들과 막 씻고 샤워코롱 냄새를 풍기며 나온 류권하가 있었다. 류권하는 그새를 못 참고 구조다에게 아까 배운 걸 테스트 했는데, 알려주는 자세가 뭔가 이상했다.

뭔가,… 이상했다. 뒤에서 연필을 붙잡고, 한 손은 구씹새의 어깨에 올렸는데, 뒤에 사람이 있을거란 생각은 못한건지 등 뒤에서 아주 왈츠를 추고 지랄이 났다. 단순히 쓸어내리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는 문제를 알려주다말고 류권하가 구조다를 진득히 쳐다본다. 막 씻은 바디워시 냄새가 여기까지 풍겼다. 구찐따에게 안 날리가 없었다. 구조다는 문제를 풀며 고민하는 척 팔을 뒤로 뺐다가 자연스레 류권하의 허리에 손을 얹었다. 허리를 둥글리며 만진다. 저 손길을 스기하라가 못알아볼 리 없었다. 저렇게 쓸데없고 낭비적이고 소모적인 움직임을.

했구나.

지 동생 아낀다고 꺼지라며 나한테는 몇 주 동안 그 지랄을 떨더니,

니네는 이 집에서, 몇 번이나, 해댔구나.

스기하라가 생각했다.

니미, 씨발!

구조다가 읽으라 한 책: why 사춘기와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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