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타임 노 씨
직무태만 성과 보고서
마지막으로 쓴 포스트가 4월이라니. 그 땐 일주일에 한 개 정도는 꾸준히 쓰고 말 것이라는 마음가짐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세 편 쓰고 잊어버리고 말았다. 저거 세 개 쓰고 지인들 몇 명에게 보여주면서 “헤헷 앞으로 열심히 쓸테니 다음 글도 기대해주세요><” 했는데…… 면목이 없어졌다. 그래도 이 만큼이나 쓴 것이 어딘가 싶다. 하나 쓰고 그만할 줄 알았는데 작심삼일보다는 더 갔다. 그렇다. 난 나에 대한 기대치가 낮은 편이다. 왜요?
변명을 하자면, 원래 글은 회사에서 일이 없을 때 쓰곤 하는데 중간에 일이 몰리는 시기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봤자 일 없이 탱자탱자 놀았던 건 또 몇 주는 되었으니 괜찮은 핑곗거리가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우리 회사는 원래 바쁠 때와 한가할 때의 갭이 상당히 큰 편이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내가 할 일 다 팽개치고 노는 건 아니라는 변명을 하나 더 해본다.
글리프에 접속한 김에 임시저장함을 슬쩍 들여다 보았는데 예전에 쓰다 만 글이 있긴 있다.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했던 것 같은데… 이건 나중에 마저 쓰려 한다. 이건 업로드한 글들과는 달리 쓴 기억도 안 나서 사실 조금 새롭다.
한 달 하고 보름 정도 되는 시간동안 꽤 많은 일이 있었다. 시크릿 투톤으로 머리를 염색했고 경주로 여행도 다녀왔다. 좋아하는 캐릭터의 생일 카페도 다녀왔으며 뮤지컬도 보고 오랜만에 대학 동기 친구도 만났다. 즐거운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일기로 모두 정리하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 보다도 우선, 글을 쓰고자 쓰기 시작한 일기 블로그였으니 성과부터 발표하고자 한다. 드디어 내가 최애 cp 글을 썼다!
대단한 내용은 아니고 나의 캐해석을 중심으로 담아낸 원작 위주의 단편이었다. cp 글이라고는 했지만 내 취향 상 로맨스의 기류 없이 논컾에 가까운 글인데다 대사는 적고 독백과 지문만 구구절절 늘어놓은 글이었다. 전개되는 이야기도 없고, 반전도 없고, 하다못해 재밌어지라고 키스하는 것도 아니고……. 우선 뭐라도 도전하는 의의를 가진 채 작성했지만 쓰는 내내 이게 재미있는 글이 맞는지, 읽는 사람에게 글의 내용이 제대로 전달이 되긴 할지 전혀 알 수 없어 괴로웠다. 새 문장을 쓰는 것보다 기존 문장을 고치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하느라 진행도 더뎠다. 글러들은 지금까지 이런 지난하고 고달픈 과정을 거쳐가며 글을 써왔단 말인가. 리스펙을 올린다.
절반 정도 완성한 글을 두 손으로 꼭 쥐고 내 주변에서 글을 가장 잘 쓰는 문창과 대학원생 친구에게 가장 먼저 피드백을 부탁했다. 정말이지 미켈란젤로에게 졸라맨 그림을 보여주는 기분이었다. 그러면서도 너무 자신감이 떨어지는 나머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좋은 말과 무한한 따봉만을 요구했다. 날강도가 따로 없는 강요에 어거지로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친구는 처음 쓴 글 치고는 굉장히 잘 쓴 글이라고 칭찬해 주었다. 이해가 되지 않거나 막히는 부분도 없어 취미로 쓴 글로서는 훌륭한 데다 내가 바라는 캐릭터들의 해석이 그대로 녹아있어서 흥미로웠다고 해주었다.
정말, 정말로… 너무 기뻤다. 정말정말 기뻤다! 문장이나 어휘의 부족함은 인지하고 있었던 터라 그저 읽는 이에게 내가 원하는 두 캐릭터의 심리와 행동이 보였으면 했는데 그 부분이 가장 잘 와닿았다는 말이 말도 못 하게 기뻤다. 전해졌구나! 내가 원하는 이야기가!
친구의 응원에 힘입어 준비해 둔 뒷 이야기까지 줄줄이 쓰고 글자수를 세어보니 7천 자가 조금 넘었다. 친구의 말로는 첫 글에 7천 자나 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며 격려해 주었다. 자신감을 가지고 다른 친구들 몇몇에게 보여주었는데 다들 너무나 감사하게도 호평을 내려주었다. 그리고 네 취향 알만하다는 극찬도 받았다. 고맙다. 그게 내 추구미다.
그 글은 내 포스타입에 올라가 있다. 다 쓰고 올린 후 다시 읽어보니 내심 뿌듯했다. 설마 내가 포스타입에다 cp 태그를 단 포스트를, 그것도 글 연성으로 올리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쩐지 어색했다. 장르계 트친 분들께도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고……. 아기 글러 하나 키우는데 온 마을에게 도움을 받은 기분이다. 이 자리를 빌어 용기를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 글은 A 캐릭터의 입장에서 작성한 글이었으니, 다음에는 B 캐릭터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진 않았지만 못 할 건 없을 거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무엇이든 부딪히고 도전해보는 것이 나아가는 길을 만들어내는 것이구나. 앞으로도 종종 글을 써보고자 한다. …당연히 일기는 더 꾸준히 쓰도록 노력하고. 오타쿠 글 연성 이야기다.
처음 해보는 것에 대한 도전에 성공했으니 다른 것도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긴다. 당장은… 오타쿠 적인 노력보다 내 이직 준비가 우선이니 잠시 미뤄두고. 이직을 하겠다고 올해 초부터 나불거리고 다녔는데 준비를 하나도 하지 못했다. 정말 발등에 불이 떨어져 이제 노릇노릇하게 굽다 못해 타기 일보 직전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일단 질러봐야겠다는 마음에 학원을 등록했다. 6월부터는… 놀지 못하겠지. 뽀로로같은 내면의 성인 여성 직장인은 조금 슬퍼졌다.
+
저 장르 글을 쓴 것도 한 달정도 됐다. 그만큼 글을 쓴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소리다. 그러다보니 어휘도 문장력도 많이 낮아졌다는 게 체감이 된다.
사실 이건 직장에서 너무 졸려서 쓰기 시작한 글이었는데 잠은 또 깨지 않아서 비몽사몽한 상태로 작성했더니 퇴고하기가 두려워진다…….
그래서 그냥 퇴고는 안 할라고. 그렇게 됐다. 다음엔 더 재밌는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소재가 있다면.
20240528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