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열 (단편)

[백호열] 좋아하는 만큼 KISS

* 성인

* 농구선수 강백호 X 직장인 양호열

* 뒷북 키스데이 연성

* 보고싶은 부분만 써서 짧음

* 주의!! 백호소연 언급 있음!!!

* 캐붕!

***

호열은 눈 앞에서 얼굴을 붉게 물들인 붉은 머리의 남자를 보았다. 제 앞에 내밀어진 꽃다발이 참으로 수줍게 느껴질 정도로 붉은기 도는 손끝이 달달 떨리는 게 보였다. 그나마 사람이 많은 거리에서 이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할 말이 있다며 퇴근하는대로 놀러오라는 연락을 받고 다잡지 못한 마음을 애써 누른 채로 찾아온 것 까지는 좋았는데.

친하게 지냈던 중-고등학교 시절만큼이나 여전히 가까워서 서로의 집 비밀번호까지 공유하는 사이라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간 것 까지는 좋았는데. 자신이 이렇게 도착했다고 연락하지 않고 도어락의 잠금을 풀고 들어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 들어서자 마자 문 닫히기 무섭게 ‘좋아해!!’ 라며 꽃다발이 내밀어진 상황이라니.

호열은 그를 닮은 붉은 장미 꽃다발과 그만큼 귀까지 붉어진 남자를 번갈아보았다. 자신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쑥맥을 보며 소리없이 숨을 고른다. 주먹을 쥐었다 편 손바닥이 축축했다.

“이게 뭐냐, 강백호.”

백호는 말이 없었다. 호열의 손 끝이 꽃다발 포장지를 살짝 건드렸다. 바스락하는 비닐이 구겨지는 소리가 나자 백호가 크게 움찔했다. 슬쩍 눈을 떠 호열과 눈을 마주친다. 꽃다발을 호열에게 밀자 결국 받아든다. 장미 꽃다발을 내려다보는 호열을 내려다보며 백호가 말했다.

“고, 고백이야.”

“고백?”

“어엉.”

“나한테?”

“엉.”

“너 소연이 좋아했잖아.”

“그건, 그렇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는 각도라 그런지 도톰한 호열의 입술이 유독 눈에 띄었다. 백호가 마른침을 삼켰다.

“결국 소연이보다 농구를 택했고…….”

호열은 농구에 흠뻑 빠진 백호가 처음의 가벼운 자세가 아닌 진지한 자세로 소연에게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말을 하던 때를 상기했다. 그 때이후로 10년이 지났나. 소연 역시 백호의 마음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던 것까지 기억에 남았다. 그 뒤에 둘이 사귀었던가, 사귀지 않았던가 까지는 모르겠다. 솔직한 마음으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사실 가장 최악은 자신이었으니까. 그 장면을 눈 앞에서 봐놓고도, 그만큼 강백호가 채소연에게 진심이라는 것까지 봐놓고 마음을 접을 생각을 못 했으니까. 백호의 경기는 모두 챙겨보고 시간이 될 때마다 그의 경기를 보러 갔을지언정 소연과 함께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도무지 가까이 갈 생각을 못 했으니까. 가까이에서 응원하고 싶었고, 격려하고 싶었고, 힘이 되어주고 싶었는데도.

그런 강백호가 채소연이 아닌 농구를 택했다고 말해온다. 호열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문득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때의 송태섭이 떠올랐다. 한나 선배를 그렇게 좋아했으면서 그 역시 한나 선배에게 고백도 하지 않고 미국으로 떠났지 않나. 백호 역시 미국에서 농구를 하다 돌아오기도 했고. 미국에 남은 송태섭과 한국으로 돌아온 백호의 차이는 농구를 시작하는 계기이냐, 아니냐의 차이였다. 송태섭은 한나 선배가 아니었어도 이전부터 농구를 해왔던 사람이고, 백호는 소연의 ‘농구 좋아하세요?’ 라는 한 마디로 농구를 시작한 사람이다. 이걸 놓고 보면 송태섭과 백호는 비교할 케이스가 아니긴 했다. 백호가 농구를 시작한 계기는 소연이었다. 백호의 농구는 소연으로 이루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것이 진심이 되어 부상을 감내해가면서, 그 부상을 딛고 일어서 다시 리그에 오를 정도로 그를 불타오르게 만든 스포츠인 만큼, 그 시작인 소연의 존재감이란 결코 가볍게 떨쳐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 백호가 소연이 아닌 농구를 택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오늘, 자신에게 꽃다발을 내밀며 좋아한다고 말해온다. 호열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왜? 어째서? 갑자기? 무슨 이유로?

“근데 왜 나야?”

“엉?”

“소연이보다 농구를 택해서 네가 실력 확실하고 유명한 농구선수가 된 건 알겠는데. 왜 이 꽃다발이 소연이가 아닌 나에게 오는 건지 모르겠어, 백호야.”

입이 썼다. 호열은 이 나라에서 같은 성을 가진 이들이 연인이 되면 앞으로 어떤 고난과 역경이 펼쳐질지 모르지 않았다. 자신이 백호의 집에 자연스럽게 드나드는 것도 중학교 시절부터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백호의 팬들이나, 백호를 아는 일반인들의 시선에 자신이 얼마나 잡혀있는지 알고 있다. SNS 만 슬쩍 봐도 ‘둘이 엄청 친하긴 한가봐. 또 놀러왔어.’ 라는 식의 게시글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백호가 농구를 잘 하는 선수고, 리액션도 좋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에 대해 싫은 인식을 가진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저 둘 되게 수상하지 않아?’, ‘여친도 안 만들고… 혹시?’ 라는 식으로 입방아를 찧기 시작하면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이 더 빠르게 확산되는 만큼 그에게 큰 타격이 될 것이다. 호열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10년은 더 한참 된 마음을 제대로 접지 못한 것은 자신뿐이다. 자신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잘 숨겨오면 될 일이었다. 어차피 자신은 수 백만명 중 한 명인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고. 어디 나쁜 소문이 난다 하더라도 웃는 얼굴로 손사래치면 될 일이다. 실력만큼 이미지가 중요한 농구선수와는 다르게.

사실 정말로 백호가 자신에게 꽃다발을 주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것도 컸다. 백호는 10년 전보다 많이 성숙해졌지만, 백호 군단끼리 모이거나, 고등학교 농구부 출신들을 만나면 고등학생 강백호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백호의 농구 훈련부터 시작해 농구부 최후의 날까지 함께한 백호 군단 역시 종종 그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최근에 연락을 주고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백호의 이런 상태에 대한 얘기는 일절 들은 적이 없었는데. 그렇다면 그들 역시 백호가 왜 이러는지 모른다는 뜻이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시원하다 못해 차가운 맥주 한 캔을 목구멍에 들이붓고 싶었다. 그리고 이불 덮고 누워 자고만 싶었다. 호열이 장미꽃다발을 내려다보았다. 꽃다발도 보통은, 여자들이 좋아하잖아. 아닌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런 말하면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

“소연이랑 너, 닮았어.”

“…허?”

꽃다발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포장지가 구겨지고, 백호가 움찔하다 손을 내저으며 외쳤다.

“비, 비슷해서 좋아한다는 게 아니야!! 내 말 끝까지 들어!!”

“…….”

호열의 서늘한 눈빛을 보며 다급히 외치던 백호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헷갈렸다는 거야!!”

소연이도, 너도. 내게 친절과 사랑만 줬으니까!!

“…어?”

서늘한 눈빛은 온데간데 없이 호열이 멍하게 백호를 보았다. 백호가 손을 들어 제 얼굴을 쓸어내린 뒤 말했다.

“처음엔 소연이한테 첫 눈에 반한 게 맞아. 소연이가 나를 좋아해줬으면 했고,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으니까.”

백호가 호열을 보았다. 호열이 멍하게 백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농구를 하던 모든 순간에 소연이가 있었고… 네가 있었지.”

“그건,”

“알아.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였다는 거. 난 천재였지만, 혼자서는 단기간에 실력을 끌어올리기는 천재라도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

“그래서 더 몰랐어. 소연이만 눈에 보였으니까, 그 뒤에 항상 한 걸음 뒤에 서 있던 너를 보지 못 해서. 그래서 몰랐어.”

“…….”

“미국으로 유학 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소연이를 생각했지만 농구가 더 소중해서 미국에 가는 걸 택했어.”

“…그랬지.”

“그리고,”

백호가 손을 들었다. 조심스레 호열의 뺨을 쓸어내린다. 호열의 눈이 커졌다.

“미국에서 지내면서 생각난 건 소연이가 아니라 호열이 너였어.”

그러고 나서야 깨달은 거야. 소연이는 내가 농구를 시작할 수 있게 해준 계기이고, 빛이었고. 너는 내가 미국에 갈 때까지,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뒤에서 묵묵히 기다려준 그림자와도 같은 사람이었던 걸.

“내 모든 시간에는 양호열 네가 있었는데.”

“…….”

“그걸 몰랐어.”

호열이 앓는 소리를 내며 꽃다발 속으로 얼굴을 파묻었다. 은은한 장미향이 호열의 곁을 맴돌았다.

“내가 소연이를 좋아했으니까 알아. 나를 보는 네 시선이, 표정이, 내가 소연이를 좋아하면서 보였던 것과 같다는 걸.”

“…….”

“호열아.”

“…….”

“양호열.”

백호의 손이 조심스레 호열의 손을 내렸다. 힘없이 호열의 손이 내려가고, 호열의 머리 위에 장미꽃잎 하나가 붙은 채로 꽃다발이 호열의 손에 쥐어진 채 밑으로 향했다. 백호의 다른 손이 호열의 머리 위에 붙은 꽃잎을 떼낸다. 상대적으로 하얀 호열의 얼굴이 붉어져있었다.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내가 밉지 않았냐?”

“네게 돌아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백호가 웅얼거렸다. 그 모습을 보던 호열이 백호가 잡은 제 손을 놓게 하더니 그의 옷 가슴팍을 쥐고 끌어내렸다. 백호의 허리가 굽혀지고, 호열이 말했다.

“너무 늦었잖아, 바보야.”

“…천재의 고백 거절하지 않는 걸로 알아들어도 되지?”

“그으래. 대신…….”

호열이 백호의 허리를 더 숙이게 했다. 백호의 얼굴이 호열의 얼굴에 가까워진다. 서로의 얼굴이 붉어진 상태로, 귀와 목까지 붉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호열이 백호의 입술에 제 입술을 스치며 말했다.

“좋아하는 만큼 내게 키스해.”

- 좋아하는 만큼 KISS,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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