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MS] 이 거리는 좁아지지 않는다
1차 캐릭터 커미션
글자 수 : 3150자
약간의 가스라이팅, 혐관 묘사가 들어있습니다.
1차 자관 신청입니다. 감사합니다!
My dear, my dear, no you don’t have to cry
내 친애하는, 친애하는 친구. 슬퍼할 필요 없답니다.
That ain’t a pretty legacy to leave behind
그건 남기고 갈 만한 유산으로서는 아름답지 않잖습니까
Stop and smell the roses while you’ve got the time
시간이 허락할 때, 장미의 향을 만끽하면서 웃어보는 건 어떻습니까
Pretty soon you’ll be pushing up daisies where the sun don’t shine
머지 않아, 당신은 햇볕 닿지 않는 당신 묘에서 데이지 꽃을 피워내게 될 테니까요
- DAISIES, Black Gryph0n&Baasik
영원히 좁아질 수 없는 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어떤 거리도 흥미를 가하면 좁아질 것이라고. 그리 여기던 때에는 막힘이 없어 그저 멍하니 흘러내릴 정도로 비좁은 거리에서 살았었다. 단 한 명만 아니었다면 영원히 거리는 생기지 않았을 테고, 증오로 덧붙여진 삶을 억지로 이어나갈 이유도 없었겠지.
─나는 네가 증오스럽다.
나도 안단다. 불멸의 존재가 그저 흥미를 조건으로 내미는 불멸에 자신이 우연히도 얻어 걸렸을 줄은. 죽음을 갈망하던 이에게 억지로 쥐여진 영원의 잔. 그 안의 넥타르를 권유를 가장한 강제에 의해 턱 아래로 삼켜내는 감상은 정말이지,
끔찍하다.
갖가지의 삶을 권유받았으나 차라리 모든 것을 상실한 지금에서는 죽음이 더욱이 가치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모든 것이 망자의 세계에 있고 나만이 망자가 되어 망각의 강을 내려가면 될 일이건만. 강을 건너는 뱃사공에게 노잣돈을 내밀려 하던 순간 제 손목을 붙잡고 지저에서 지상으로 나오게 하는 억지스런 구원자에게 걸렸던 때였다.
뇌간에 직접 손을 넣고 휘저어지는 기분. 잃으면 안 될 것을 잃는 감각. 이유 모를 불쾌감과 억울함, 갖가지 감정의 소용돌이가 머리에서 뒤섞인다. 원인 모를 서러움, 아쉬움, 안타까움. 상실의 기묘함만이 남아 눈 앞의 상대를 이유 없이─혹시 모른다. 이유가 있을 지도─밀어내는 상황. 순화한 말이 밀어내기지, 도망을 쳐도 어느 새인가 제 자리로 돌아오는 훈련된 개처럼 어지러운 머리가 된 채였다.
미겔은 자신의 앞에서 느긋하게 잔을 들어 마시는 상대를 매섭게 쏘아본다.
“ 마시겠니? ”
“ 마시고 싶지 않다. ”
“ 향이 좋은 차란다. ”
“ 가식에 불과한 것을 굳이. ”
거짓말. 그런 식으로 불멸의 강물을 내게 마시게 한 전적이 있으니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상대의 반응과 무관하게, 눈 앞에서 천사처럼 고결한 모습으로 앉은 이는 그저 안타깝다는 마냥으로 즐거운 미소를 지어내며, 사양 말고 앉으라는 듯 제 앞 자리를 권한다.
거절할 수 없음을 안다. 그렇게 길들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하얀 머리의 존재가 미겔, 하며 이름을 부를 적에는 또 훈련된 개처럼 의자에 다가와 앉는다. 얼굴은 아직도 사유 모를 불쾌감으로 일그러진 채. 마련된 잔과 내밀어지는 찻잔 접시에 놓인 티스푼에 미겔의 시선이 닿는다.
“ 한 모금 정도는 마셔야지. ”
“ 목이 마르지 않다. ”
“ 그럴 리가. ”
지금껏 권한 것을 거절한 적은 없었잖니? 다졍한 목소리는 그 높낮이와 다르게, 손을 뻗어 지휘하는 모습을 띤다. 박자에 맞추면 그대로 손이 움직여 잔을 들어올리고, 낡고 지쳐 메마른 입술에 찻잔이 가 닿는다. 당연하게도 마른 입술의 주인인 미겔은 이 일을 유쾌히 여기지 않았으니─마시면서 목울대가 울렁거린다. 당장이라도 게워내고 싶었다. 코 끝에는 온화한 봄을 닮은 찻잎 내음이 가득 퍼졌다지만 그에게는 끝없이 가식적인 일이기에.
허나 찻잔을 지휘하는 손의 주인은 이것마저 즐거운 일이다. 함께 있는 것이 꽤 즐거운 일이 아닌가? 왜 이런 즐거운 일을 거부하는지 도통 알 수 없으니 언젠가는 알 수 있도록 그저 권유하는 것이다.
“ 맛이 어떠니. ”
“ 끔찍하군. ”
“ 칭찬 고맙구나. ”
상대의 반응이라고는 고려하지 않는 모습에 질린 지도 꽤 되었다. 놓아주리라는 말에는 기대조차 않지만 적어도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기회만은 달라고. 허나 제 곁에 두고 예뻐하는 다 낡은 사냥개나 엽총처럼 다루는 행동이 싫었다. 놓아주지도 않을 거면서 어째서 자신을 이리 삶 속에 담가 놓고 발버둥 치는 꼴을 좋아하는지.
이유를 알지만 언급하기도 입 밖에 내기도 싫었다.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인지, 알지 못 해서 더욱 그렇게 구는 것인지. 묻는다면 어느 쪽도 답하지 않는 것이 가브리엘이었다.
구분할 의향조차 없을 정도로 그저 흥미를 본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그는 그저 모든 일이 호의적이라 가장했을 뿐.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않아도 절로 끌려오도록 만드는 것이 익숙하다. 뜻 없이 구는 행동에 뜻을 붙인다면 그것이 뜻이라 인정하겠다만 그것이 본심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터였지.
지금의 찻잔도 같다. 상대는 마시기 싫어한 적이 없다 허나 마시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마시게 하는 것도 꽤나 행복한 일 아닌가? 타인의 성정을 생각할 필요 없이 행복하게 만들면 될 일이라며 잔을 내려두고 헛구역질을 하는 미겔에게 시선을 두는 가브리엘이 미소를 띄워낸다.
“ 다음 차는 무얼 마시는 게 좋을까. ”
“ 관심 없다. ”
까칠하게 굴기는. 잔을 도로 거두어 다음의 잔을 채워넣을 차를 고민하는 가브리엘은 원래 차를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건만, 상대를 위하는 가장을 위해 선택한 수단으로 최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상대의 일그러진 표정은 얼마나 유쾌한가. 마음 속에 피어나는 생각들은 끼어들 틈도 없다는 것처럼 다음의 행동을 준비한다.
이번에는 차라리 하지 말아달라고 하게 유도할까? 아니면 그저 둬 달라고 말하도록 할까? 어떤 변덕을 부리고 어떤 선택을 할까? 생각하며 가브리엘은 자신의 앞에 빈 잔을 내려둔다.
미겔은 이런 상황이 작위적이기에 구역질이 났다. 그만둘 생각조차 없으면서 순수를 가장한 악의를 제 속에 흘려보낸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삼켜낸 것을 몇 번의 헛구역질로 토해내듯 굴면 제 앞에서 즐겁다는 듯 웃는 상대도 역겨웠건만, 어떤 행동을 해도 죽음에 도달할 수 없는 자신의 삶이 더욱이 끔찍했다.
상실의 순간이 있었다. 허나 무엇을 잃었는지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저 지금의 상황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과, 그 원인이 어렴풋이 지금 눈 앞에 보이는 저 순수한 악의라는 것 정도가 고작일 뿐. 안개가 흩뿌려진 아득한 채 헤집어 보아도 찾을 수 없으리라는 것은 알지만.
그러니 별 수 없이,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그 앞에 앉아 끔찍한 티 타임을 이어가는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존재와 있으면 안 되는 존재간의 간격을 좁힐 수 없음을 알기에 더더욱 모순적인 티 테이블에는 흔한 티푸드도 놓여 있지 않다.
가브리엘의 유흥으로만 철저히 이루어진 보이지 않는 울타리와 새장 안에 갇힌 낡은 새는 날개를 꺾인 채 으르렁거리기 바쁘다.
“ 그러면 다음에는. ”
“ 그만 하라고 했을 터인데. ”
“ 즐겁다는 의미지? ”
“ 통하지 않는 말은 언제까지 할 생각인가. ”
“ 네가 이 상황을 즐길 때까지? ”
“ 악취미. ”
“ 다른 칭찬 고맙구나.
잔이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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