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호기려] 승낙

#창호기려_전력_120분

<주의사항>

* 어두운 분위기

* 해피엔딩이 아닐 수 있음

* 그로테스크한 묘사 有

* 퇴고 없음

* 강창호가 김기려의 요청을 승낙합니다.


-그때 김기려 헌터가 게이트로 막 들어가는 거예요. 이야, 역시 명성이 자자한 S급 헌터는 다르다니까? 하하하… 아. 죄송합니다. 다시 할게요. 크흠. 게이트 앞에서 얼쩡거리면서 10분정도 지나니 김헌터가 안쪽에서 시체를 들고 나왔어요. 양손에 한명씩, 두 명이요. 네, 두 명. 안으로 빨려 들어간 건 세 명이었습니다. 그 중 두 명이 곤죽이 되어 나왔어요. 처음엔 몬스터 사체인줄 알았죠.

-그러니까, 사람 같지 않았어요. 제 동료들이요. 네. 겉과 속이 뒤바뀌었다고 해야 하나. 사람을 까뒤집으면 그렇게 되겠더라고요. 겉가죽은 안으로, 내용물은 밖으로. 아하하……. 표현이 너무 적나라했나요? 생방송으로 나가는 건가요 지금? 알아서 편집 해주시는 거겠죠. 네, 편지입… 욱… 흐윽… 으으윽… 제가……. 제가, 흡. 김기려 헌터, 김헌터에게 부, 탁했어요. 아직 한 명이. 한 명이 게이트 안에, 있다고……. 딸이 이제 한 살인, 제 동료인데… 꺼내줄 수 없겠냐고… 네……. 제가 그랬습니다. 제가 부탁했습니다. 저는 게이트가 그, 그대로 닫혀버릴 줄 정말 상상도 못했어요… 이럴 줄 몰랐다고요…….

 

B급 헌터의 인터뷰는 진행불가 판정을 받았는지 그대로 잘려나갔다. 뒤이어 민간인이 촬영한 1시간 전 영상이 자료화면으로 송출된다.

 

12월의 밤. 비처럼 내리는 폭설이 태블릿에 가득 찬다. 먼 거리에서 확대 촬영을 했는지 조그마한 움직임에도 시야가 거칠게 흔들린다. 순간 검은 구두코가 전조 없이 화면 안으로 성큼 걸어 들어왔다. 익숙한 착장의 남자는 코트 주머니에 양 손을 꽂아 넣은 채 망설임 없이 게이트 입구로 향했다. 창백하게 얼어붙은 뺨이 눈송이와 별반 다를 것 없어보였다. 희멀건 낯에 박힌 건조한 눈동자가 게이트를 위아래로 훑는다. 사이즈를 가늠하듯 무감하게 주위를 둘러보던 남자가 이내 거침없이 게이트로 들어선다.

 

강창호는 재생되던 뉴스를 정지시켰다. 남자의 옆모습에 닿아있던 손가락이 한참 후에야 떨어진다. 전체화면으로 설정된 화면을 축소시키자 이번 사고와 관련된 영상들이 주욱 따라붙었다. 섬네일의 패턴은 한결같았다. 돌연 사라진 게이트에 의해 던전에서 나오지 못한 네 번째 S급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달려있다. 섬네일에 장식당한 김기려는 강창호의 집을 뛰쳐나갔던 모습 그대로였다.

 


시발, 더 이상 못 참아주겠네.

이제 강창호라면 이골이 난다는 듯 이를 바득 갈던 김기려가 중얼거렸다. 강창호는 웬일로 김헌터와 마음이 맞았다며 대놓고 이죽댔다. 눈이 펑펑 오니 나가지 말고 침대에서 뒹굴자던 둘만의 계획은 박살난지 오래였다. 김기려는 메마른 눈가를 꾹꾹 눌러가며 포유류에 관련된 욕설을 세 번 정도 했다. 포유류 강창호는 포유류 김기려가 되는대로 나불거리는 걸 세 번까진 들어주었다.

네 번째로 지구인에 대한 모욕을 하려던 김기려는 고장난 인형처럼 덜컥 멈춰 섰다. 무채색 카펫 위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조차 미동하지 않는다. 실핏줄 하나 보이지 않는 허연 눈알이 옆으로 도로록 굴렀다. 강창호는 저 반응을 질리도록 잘 알고 있었다. 여기서 이 새끼를 더 상대할 바에야 내가 나가고 말지, 라는 되바라진 사고가 함유된 제스처였다. 그런 방식으로 곧잘 자신의 곁을 뜨는 김기려를 향해 강창호가 한쪽 입꼬리를 비뚜름하게 올렸다.

 

이번엔 어디로 가시려고?

강창호 씨가 알아서 뭐합니까.

 

저보다 어린 애인이 눈을 치켜뜨며 꽤나 옹골차게 대답했다. 테이블을 두드리던 강창호의 손짓이 멎었다. 의자에 걸려있던 코트를 낚아챈 김기려는 그대로 등을 돌렸다. 파충류의 형상을 한 동공이 그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노랗고 부스스한 머리통 밑으로 희게 드러난 목덜미를 잡아 누르려는 마음을 갈무리한다. 강창호가 목울대에 힘을 주는 사이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테이블에 기댄 강창호는 저택의 시커먼 복도 너머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언제쯤 데리러 가야 우리 김기려 헌터의 화가 풀리지?

….

 

한사람 분의 발걸음이 잠시 길을 잃었다. 외부에서 들이닥치는 눈보라가 괴성을 질렀다. 그 틈으로 인간을 흉내 낸 정갈한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이제 안 올 겁니다.

 

쾅, 하고 문이 닫힘과 동시에 찬바람이 뚝 끊겼다. 강창호는 김기려의 마지막 발언이 헛된 것임을 알기에 그를 붙잡지 않았다. 수속성 마법사께선 이처럼 철없는 파도같이 굴었다. 떠났다가, 돌아오고. 떠났다가, 돌아오고. 주변의 모래를 꾸역꾸역 파헤치면서, 남의 속을 아득바득 갉아먹으면서 강창호에게 돌아온다. 그러니 강창호는 속단을 하고 만다.

 

이번에도 며칠 동안 엉뚱한 곳에서 놀다가 들어오겠거니- 하고.

 

 

속보가 하나 떴다. 주제는 같았지만 곧이어 지상파의 모든 방송에서 보도를 시작했다. 검은 배경아래 눈을 뒤집어쓴 기자가 이를 덜덜 부딪치며 마이크를 잡았다. 대한민국의 S급 헌터가 게이트와 함께 모습을 감췄습니다. 게이트에 먹힌 그의 나이는 고작 스물여섯이었고, 크리스마스까지는 이틀을 앞둔 새벽이었다.

 


강창호는 한때 던전 쇼크를 피해 낯선 나라에 발을 디딘 적이 있다. 그의 가족들이 도피처로 선택한 마을은 서울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고 고요했다. 거리는 한적했지만 정겨운 냄새가 가득했고 주민들은 편안히 마을을 활보했다. 던전 쇼크와는 동떨어진 광경이 무척 이질적이었다. 마치 이곳이 별세계인 것처럼 생활하던 사람들은 달이 뜨지 않는 밤이 되면 문과 창문을 죄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곳에는 괴물이 살아요.

 

이방인에게 비밀을 알려주기 위해 잡화점의 직원이 좀 더 고개를 기울였다. 강창호는 지금 언급된 괴물이 전 세계를 혼란으로 몰아넣은 몬스터인지 되물으려다 말았다. 아직 어린 청년에게서 어렴풋이 불신의 기세가 보였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전해지는 이야기라, 요즘엔 안 믿는 추세긴 해요. 하지만 풍습을 어기면 펄쩍 뛰는 어른들이 계셔서요. 다들 밤에 창문 꽉 닫고 살아요.

 

사람의 껍데기를 뒤집어쓰려는 괴물은, 초대를 받지 않으면 집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러니 창문 앞에 서서 하염없이 허락을 구한다. 아둔한 집주인이 자신을 초대해주길 바라며. 인간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몸뚱이로 창문을 긁으며, 이렇게 요청한다.

 

 

강창호 씨.

 

들여보내주세요.

 


 

비어있는 옆자리를 습관처럼 더듬던 강창호가 느리게 몸을 일으켰다. 꿈과 현실이 아직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한밤중. 육중한 엽사의 그림자가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온다. 강창호 씨. 꿈과 현실이 아직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한밤중. 육중한 엽사의 그림자가 천천히 방을 가로지른다. 강창호 씨. 꿈과 현실이 아직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한밤중. 육중한 엽사의 그림자가 창문에 다가선다. 강창호 씨.

 

….

 

창밖은 세상이 사라진 것처럼 어두웠다. 그날부터 이틀 내내 내리던 눈이 이제야 그친 게 아니었다. 무언가가 창문 앞에 우뚝 서서 설경을 가로막고 있다. 강창호의 키를 웃도는 창문 너머로 형체가 흐트러진 반투명한 살점이 다닥다닥 붙었다. 그것들은 살아있음을 강조하듯 조금씩 꿈틀거리며 외벽을 기어 다녔다. 저택의 창문을 전부 가로막고도 남는 크기. 절대로 인간이 될 수 없는 그것은 적막을 뚫고 차가운 유리창에 온 몸을 기댄다.

 

강창호 씨. 들여보내주세요.

 

강창호의 기억에 저장된 목소리가 아니었다. 고저 없이 자신을 부르는 저 음성은. 언어라기 보단 파동에 가까운 울림. 유리에 달라붙은 그것의 몸체가 허물어졌다 재생되기를 반복한다.

 

들어가도 됩니까? 강창호 씨.

 

담담하게 허락을 구하는 장면에서 기시감이 느껴진다. 낯선 이국의 땅에서 들은 설화가 문득 떠오른다.

사람의 껍데기를 뒤집어쓰려는 괴물은, 초대를 받지 않으면 집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러니 창문 앞에 서서 하염없이 허락을 구한다.

 

들여보내주세요.

 

아둔한 집주인이 자신을 초대해주길 바라며.

 

…….

강창호 씨.

 

유리창을 가득채운 미지의 존재가 꿈틀거린다. 저택이 심해에 거꾸로 처박힌 기분이 들었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방안에서 강창호는 자신의 귀가 점점 멀어가는 것을 느낀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생소한 감각에 도리어 용의 눈이 형형해진다. 강창호의 헌터 생활에 지대한 공로를 세운 아이템은 이번에도 그 값을 톡톡히 치루고 만다.

 

그러니까, 반지였다.

시커멓고 얼룩덜룩한 점액사이에 가시처럼 박힌 장신구는. 강창호의 약지에 끼인 반지와 같은 디자인의 그것은. 그 난리법석을 피우며 매번 싸우기 일쑤지만 의무감인지 뭔지, 천하의 김기려께서 성실하게 끼고 다니는 그들의 반지였다.

 

강창호는 터져 나오는 실소를 참지 않았다. 투박한 손아귀에 이마를 처박고 보란 듯이 웃다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뒤이어 꺾인 콧대를 꾹꾹 누르던 강창호가 양 손을 펼친다. 선이 다부진 어깨가 질 낮은 농담을 들은 것처럼 으쓱이다 내려온다. 턱을 치켜든 강창호가 창문에 바짝 다가선다. 지구 출신이 아닌 생명체를 올려다보며 창틀에 손을 얹는다.

 

들어가도 됩니까.

 

‘이것’은 김기려가 아니다.

 

강창호 씨.

 

그러나 ‘이것’ 또한 김기려였다.

 

유리에 붙은 김기려의 일부가 녹아내렸다. 강창호는 창문의 잠금을 풀었다. 엄지가 닿은 유리에 뿌연 김이 서렸다. 둘 사이를 가로막은 창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강창호가 미소를 지었다. 둔하고, 때론 지나치게 예민하며, 오만한 연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정해져있었다.

 

들어와.

김기려.


* 애인이 인외이면 좋은점: 크툴루 러브를 먹을 수 있다.

* 참고 영화- 렛미인(Let Me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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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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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긍정적인 플라밍고

    정말 재밌었어요.... 승낙해야지만 들어올 수 있는 이매망량같은 존재들의 이야기가 너무 좋고... 사라진 김기려가 인간이 아닌 존재로 돌아온다고 해도 결국 자신의 선 안으로 들여놓기를 허락하고 마는.. 이 아슬아슬하면서도 확실히 겹쳐져 있는 관계의 이야기가 너무 재밌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긍정적인 산양

    분위기 최고.......렛미인 생각나는... 춥고 먹먹한 분위기 진짜 잘 살려주셔서 재미있게 읽었어요...🥺🥺🥺 천재의 글 드디어 글리프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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