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록

[나기레오] 배신

세상에서 가장 변하지 않는 사랑을

캐붕모음 by 메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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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 몇 시간째 잠들지 못한 미카게 레오는 억지로 감고 있던 눈을 떴다. 피곤해서인지 머리 뒷쪽이 욱씬거렸지만 무시하고 몸을 일으킨다. 한참 뛰고 나면 잠들 수 있으리라. 비어있는 축구장에서 기계적으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그는 가끔 나기 세이시로에 대해 생각한다. 자신의 보석을. 축구를 할 때면 특히 그렇다. 월드컵 우승이라는 목표에 스타트 버튼을 누르게 한 것이 그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반 년쯤 전에, 그들은 함께 월드컵에서 우승하기로 정했다. 그러니 분명 레오의 것인데. 자신이 발견한 보석인데, 그가 가장 밝게 빛날 때 레오는 그 곁에 있을 수 없다. 그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터무니없는 상실감이 그를 한없이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자신의 것을 뺏겨서 화가 나는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니까. 아니면 그저 원망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그는 욕심이 많듯이 생각도 많은 사람이므로. 혹은 자신이 나기의 성장을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어 두려운 것일까... 레오는 이를 악물고 있는 힘껏 공을 찼다. 좌절을 날려버릴 수 있을 만큼 강하게, 이 모든 절망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세게.

공은 골키퍼도 없는 골대의 옆면을 맞고 튕겨져나갔다. 아아, 정말... 말도 안 되는 바보짓이다. 뒷머리를 신경질적으로 헝클어뜨리며 차가운 벽면에 기대어 앉는다. 숨을 길게 들이쉬고 내뱉었다.

하쿠호에서도 저지른 적 없는 실수였다. 실전에서 이따위로 행동했다간 블루록을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럼 전부 끝이겠지. 아랫입술을 짓씹으면서 두 무릎을 껴안았다. 몸을 한껏 웅크린다. 하쿠호에서는... 저지를 리 없는 실수. 

그리고 레오는 그 날을 떠올렸다. 여름이 끝나 해가 일찍 지기 시작하던, 미적지근한 바람이 땀을 식혀주던 그 날. 노을을 등지고 나기를 바라보았던.

그깟 달리기가 뭐라고 그랬던 건지. 조금쯤 덥다고 느껴지던 날씨가, 그런 그를 달래듯 불어오던 바람이, 얼빠진 사람처럼 자신을 바라보던 나기 세이시로가. 그 당연하던 것들이 왜 그리도 소중하게 느껴졌는지. 그 날 그들은 고작 반대편 트랙에서 달리기 시작해 서로를 마주본 것 뿐이었는데.

그 때의 그는 인생의 어느 때보다 자유로웠고, 자신감이 넘쳤고, 미래를 향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필드를 달릴 때면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성취감과 옆에서 함께 달려줄 이가 있다는 안정감을 만끽할 수 있었으니까, 충분히 행복했다.

하쿠호에서의 미카게 레오가 낯설게 느껴진다. 아득히 먼 옛날인 것처럼. 고작 몇 달 밖에 지나지 않은 일인 것은 알고 있지만.

레오는 어찌할 길 없는 외로움을 느꼈다. 그렇다, 지금의 그는 후회하고 있었다. 자신이 정말로 뼈에 사무치게 후회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껏 해왔던 모든 일들에.

눈가를 비비며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만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너무 많이 왔고, 이제와서 고작 후회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만둘 수는 없다. 무엇보다 어째서 미카게 레오가 나기 세이시로 탓에 꿈을 포기해야 하는가? 그는 스스로의 생각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만둔다니, 말도 안 되잖아. 보란듯이 성공해보여야지. 나는 너 없이도 잘할 거라고, 보여줘야지. 

이제 너 같은 건 필요 없어. 웅크린 무릎 사이로 고개를 파묻었다. 너한테 나 같은 건 필요 없듯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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