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아이스 웜을 비롯한 행성 봉쇄 기구의 대대적인 섬멸. 봉쇄 기구의 퇴각. 거기에 이은 워치 포인트의 발견. 모든 일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고, 여전히 특무 기체의 노획은 아르카부스의 전유물이었다. 발람과 아르카부스는 너나 할 것 없이 워치 포인트-알파의 깊숙한 대심도로 뛰어들었다. 둘은 여유롭게 준비해나갔다. 들개가 없으면 대심도의 공략은 진행되지 않는다.

여전히 발람의 상층부는 들개에게 의뢰를 맡기는 것을 허가하지 않았다. 그 개자식들… 이구아수는 저도 모르게 턱에 힘을 주었다. 그는 레드 건 부대와 함께 들개에 앞서 심도 2로 내려갔다.

*

이명이 가깝다. 놈이 올 시간이었다. 들개가 심도 아래로 하강하고, 레드 건이 다른 이들의 발을 묶어두기 위해 남겨두었던 네펜테스를 부수고서 심도 2에 내려앉았다. 이구아수는 그 앞에 나서 들개를 맞이했다.

“?! 이구아수, 배신한 거냐?”

공격적인 태도로 쏘아붙이는 올버니의 물음. 그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 정도는 예상한 반응이다. 녀석이 이구아수를 탐탁지 않게 여긴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아니, 개인적으로 고용했다. 그냥 보내줘. 이 자식과 맞붙어서 전력이 손실되는 것 보단, 이 놈은 보내고 우리가 뒤에 따라붙거나 곧 후발대로 올 아르카부스를 부수는 것이 더 이득이다.”

로더 4의 고개가 돌아간다. 뭐, 어쩌라고. 니가 하는 일이라는 게 다 처부수고 지나가는 것 아니었나. 돌연 로더 4가 헤드 브링어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함께 가지.”

이 자식은 이런 순간에조차 당당했다.

“내가 왜?”

“…부수겠다.”

또 협박이다. 이 자식은 협박이 아니면 설득을 못하나?

“하아……”

이구아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헤드 브링어가 발걸음을 옮긴다. 되도 않는 장단에 맞춰준다. 그래, 인포서든 뭐든 둘이서 부수는 편이 빠를 것이다.

*

“어이 들개, 도대체 네가 바라는 게 뭐냐?”

이구아수는 그리 물었다. 선택지니, 우군이니… 들개가 바라는 것은 언제나 추상적이었다. 놈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도 모른다면, 이렇게 뒤틀린 미래에서 무슨 일이 새로이 생겨날지 알 수 없었다.

“새로운, 선택지.”

“그딴 것 말고, 네가 진짜로 있었으면 하는 결말이나…”

“……”

들개가 침묵한다. 생각을 이어간다.

“아무도 죽지 않고,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졌으면 했다.”

“고작 그 것 하나가 힘들어서 이 짓거리를 하냐? 하긴, 나도 나지만…”

이구아수 또한, 되돌아온 시간에 대한 수혜자였다. 월벽에서 죽었을 친구를 살려냈고, 또한 그 월벽을 장악한 것도 이번엔 아르카부스가 아닌 발람이었다. 그가 미래를 알았기에 바꾸어 낸 결과였다.

“…월터는, 코랄을 불태우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것은 러스티와, 에어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다수의 루비코니언 또한 그랬을 거다.”

“그의 대척점에 섰을 때, …월터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코랄과 인간이 함께하는 미래를 수용했다. 그러나… 그가 맞은 개인적인 파멸을, 나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랬기에 다시 한 번 이전으로 돌아왔음에 감사했다.”

“…네가 한 게 아니었다고?”

“그것은, 올 마인드가 주관하고 있었다. 다만, 이전 생에서 우리가… 그녀를 죽임으로써 맞이한 종국에선, 시간을 되돌린 것은 나다.”

“올 마인드가…”

그 자식은 통합 이후에도 의도적으로 정보를 차단하고있었다. 올마인드가 아닌 이구아수로서 들개를 죽일 수 있게 해 달라 했던 계약을 감안하면, 그가 완전한 통합에 이르지 못했기에 알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몰랐으나…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지. 넌 씨발 뭐가 문젠데?”

지금은 해야 할 것이 있었다. 짜증이 치밀었다. 아니, 이건 짜증이 아니다. 순수한 분노다. 이구아수는 들개의 뺨을 주먹으로 갈겼다.

“네가 뭔데 시간을 또 되돌리고 말고를 정하냐고…!”

결말 이전으로의 회귀가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겨지던 때와는 달리, 이 문제의 원흉이 눈앞에 있다고 생각하니 그는 참을 수가 없었다. 들개는 저항 없이 그가 내뻗는 대로 맞아주고만 있다. 이구아수의 주먹은 어느새 얼얼한 감각만이 남고, 들개의 눈동자는 평상시와 같이 흐릿하다. 사람이 아닌 마네킹을 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니가, 씨발, 니가 뭔데…!”

이구아수는 주먹을 내려놓았다. 들개를 감싼 붕대 너머로 붉은 빛이 스며났다. 이미 그의 주먹엔 발간 피가 묻어나오고 있다. 이전 생에서는 끝내 욱여넣고 삼켰던 눈물이 이제서야 흘러내렸다.

“이 개자식아…,”

왜 내가 이딴 일을 겪어야 하는데, 왜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하는데. 네가 시간을 되돌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대로 죽을 수 있었는데.

미시간도, 볼타도, 레드도, 그리고 레드 건의 모두를. 이해하지 못한 채, 섞이지 못한 채 죽었더라면, 성장하지 못했더라면. 이구아수는 자신이 아무리 부정해도 레드 건이었듯이 레드 건 전체가 그를 받아들이고 아끼고 있었다는 것을 모른 채로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제서야 그들에게 그들만의 방식으로 사랑받고 있었고, 자신 또한 그들을 사랑했음을 깨닫게 되었기에 비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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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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