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아이스 웜의 토벌이 있은지 사흘. 이구아수는 썩 내키진 않았지만 들개의 상태를 보러 병문안을 갔다. 놈은 축적된 스태거 횟수에 스턴 니들 런처까지 정통으로 맞은 여파로 여태껏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들개도 결국은 인간이라는 건가. 언제나 높이 날아오르던 놈이 추락했다고 생각하니 영 찝찝했다.

그 사흘 동안 웜 슬레이어니 뭐니 하는 낯간지러운 소리를 들으며 주위에서 띄워줘도 이구아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명성이다. 마지막에 들개 놈이 몸으로 아이스 웜을 막아낸 것은 놈의 곁에 있던 코랄에 의한 재밍으로 빙원 밖의 사람들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유일한 목격자였을 RaD는 그것을 함구했다. …저 자식이 일어나던가 해야 이 칭호를 반납하든가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긴 복도를 걷는다. 헤멜 일은 없었다. 이명이 가깝다. 코랄 중에서도 이런 소리를 내는 존재는 하나밖에 없다. 병실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순식간에 이명이 잦아들었다. 그 안엔 이미 선객이 있다.

“너인가.”

들개 녀석의 주인, 핸들러 월터. 그동안은 코빼기도 비추지 않던 양반이 꼴에 주인이기는 한 양 들개가 다치니 자리를 지킨다. 나 원, 누가 개고 누가 주인인지. 이구아수는 대충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하고는 병상에 누운 들개를 내려다보았다.

“———”

별안간 들개가 눈을 떴다. 이구아수는 놀라 주춤했다. 들개가 이리저리 눈을 굴린다. 드물게 멍한 눈이 아니라 감정이 읽힌다. 저건, 두려움이었다.

“…”

놈의 입을 덮은 붕대가 달싹인다.

“…월터,”

들개가 주인을 찾아 손을 뻗는다. 들개의 주인이 지팡이를 짚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을 잡아주지는 않는다. 다만 일어나 놈의 시야 내에 들어설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들개는 안심한듯 다시 평상시의 멍한 눈으로 돌아온다. 손을 내리고 눈을 감으며, 녀석이 말한다.

“G5와… 할 얘기가 있습니다.”

그것으로 놈의 핸들러는 순순히 자리를 피해준다. 강화 인간과 그 주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행동들이었다. 쉽게 말해, 위아래가 없었다.

“야, 들개. 묻고 싶은 게 많지만… 왜 그런거냐?”

“…그 무기를, 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없으면 토벌은 성립되지 않는다. 맡아줄 타인이… 필요했다.”

이구아수는 한숨을 쉰다. 또 들개 자식의 되도 않는 고집대로 휘말린 꼴이었다.

“니들 런처가 왜? 거기에 이딴 도박을 걸어가면서까지 피할 이유가 있었냐?”

“…방금 깨어났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아르카부스의 손아귀에 떨어진 것이 아닌지 두려웠다.”

그가 모르는 이야기다. 이 자식은 뭐 하나 제대로 전달한 게 없었다.

“니들 런처를 맞는 경험은… 두 번으로 끝일 거라 생각했다.”

“두 번?”

이구아수의 되물음에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들개는 손을 떤다. 천장을 보고 있는 눈에 다시금 두려움이 맺혔다. 놈은 아직 하지 않은 말이 더 많았다. 이전 기억에 대해 감정이 없다고 한 놈이었지만, 지금 모습을 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이구아수는 이런 상태의 사람을 지난 7년간 미시간을 따라 전장을 굴러다니며 숱하게 마주했다. 전형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반응이었다.

들개가 직접적으로 이야기 한 것은 아니지만, 앞뒤를 짜맞추어 그럴듯한 맥락을 파악할 수는 있었다. 하나, 어디서인진 모르겠으나 들개가 스턴 니들 런처에 맞는다. 둘, 아르카부스의 언급이나 니들 런처의 제조사나, 어느 모로 보아 그걸 쏘아 맞춘 범인은 아르카부스에 있다. 셋, 아르카부스가 그들 자신에 대한 공포를 심어줄만한 건 하나 뿐이었다.

“재교육 센터…”

그가 낮게 중얼거린다. 병상 옆의 바이탈 사인이 옅게 요동친다. 놈의 심박수가 오른다. 들개가 숨을 들이쉬고, 들이쉬고, 다시 또 공기를 들이켠다. 발작에 가까운 호흡이 이어지지 못한다. 들개가 손을 뻗는다.

“월, 터…”

녀석의 핸들러는 나간 상태다. 이구아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놈의 손을 잡아줄 이라곤 그 하나 뿐이었다. 이구아수는 들개가 뻗은 손을 잡아주었다. 녀석의 뺨 위에 손을 얹었다.

“야, 진정하고… 니가 말하는 그 빌어먹을 ‘무조건적인 우군’이란 게 뭔지 들어나 보자.”

들개는 말이 통하지 않는 기계 부품이 아니었다. 놈 또한 하나의 인간이었다. 놈의 인간성을 마주하게 된 그는 더이상 무시할 수가 없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긍정해 줄 수 있고,”

“시작부터 너무 큰 걸 바라. 아주 배가 불러 터지셨어.”

“…죽지 않고 살아서 나란히 끝을 마주볼 사람.”

이구아수는 눈을 굴렸다. 이 자식한테는 이미 그런 존재가 있었을 터다.

“니 옆에 이미 하나 있잖아.”

잠잠하던 이명이 작게 울린다. 그래, 저거. 직전 생에서는 아예 놈의 우군기로서 전장에 나서기까지 했던 충실한 우군. 그보다 더 이전에선 어땠을지 몰라도, 들개에겐 이미 그런 존재가 있었다. 아이스 웜 때도 기꺼이 나서지 않았던가.

“……”

들개는 침묵한다. 손을 뻗어 병상에 놓인 리모컨을 조작한다. 침대가 구부러지며 놈을 일으켜 앉혔다. 붉은 눈이 이구아수를 마주 본다.

“이번에 내게 다른 선택지를 보여주기로 한 것은, 너다.”

“그런 계약이었지.”

하지만, 그건 불공정한 계약이었다. 놈이 제시한 것은 발람 측 의뢰에 대한 우선적인 수주. 누구를 살리겠다, 누구를 죽여주겠다 따위의 말도, 아르카부스의 의뢰가 들어오는 족족 거절하겠다는 말도, 하다못해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게서 그의 편을 들어주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얻는 제대로 된 게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네가 제시한 보수는 값어치가 너무 낮아. 레드 건에 아예 입대하던지———”

아니, 그가 할 말은 이게 아니었다.

“—레드 건을, 살려 줘.”

그가 해야 할 말은, 이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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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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