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4회차의 이구아수가 기억을... 아무튼 if 아이스웜

결국, 니들 런처를 든 채 중앙 빙원으로 되돌아왔다. 루비콘의 기후라는 게 원래 그 모양이긴 하지만, 중앙 빙원은 그 이름답게 유독 추위가 살벌하다. 헤드 브링어의 콕핏 사이로도 한기가 스며들고있었다. 이구아수는 걷어뒀던 소매를 내렸다. 이명이 가까워 온다. 수송기에서 강하한다.

“즐거운 소풍의 시작이다! G5, G13! 소풍 준비물은 잘 챙겨 왔겠지? 아르카부스가 억만금을 부어 만든 초 호화 장난감을…”

타이밍을 맞추어 따라 내린 들개를 흘끗 본다. 뭔가 이상하다. 로더 4의 장비는…

“이 자식! 가져오지 않은 거냐, G13! 준비물을 챙기는 건 기본중의 기본이 아니냐!!”

미시간의 말대로 들개는, 아니 저 미친 새끼는 니들 런처를 가져오지 않았다. 이제 니들 런처를 들고 맞출 수 있는 것은, 이구아수 한 명 뿐이라는 뜻이었다. 갑작스럽게 얹혀진 짐이 어깨를 짓누른다.

“들개, 이게 지금 무슨 짓거리지?”

“…”

묵묵부답. 이번엔 메시지조차 없다. 놈은 팔자 좋게 침묵한다. 저절로 이가 갈렸다.

“이 씨ㅂ—”

땅이 크게 울린다. 아이스 웜이 가깝다. 레이더에 붉은 점이 찍혀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G5, 네가 해야한다! 저 벌레 자식한테 한 방 먹여주도록 해라!”

“젠장, 내가 왜…!”

헤드 브링어의 부스터를 가동한다. 이미 벌어진 일이다. 수습하거나, 몰살당하거나. 강제로 들이밀어진 양자 택일의 선택지라는 것에 그가 고를 권한 따위는 없었다.

경고음이 시끄럽게 울린다. 그에 맞추어 이명도 더욱 커진다. 아이스 웜이 부상할 시간이었다. 모래가 진동하고, 얼음이 흩날렸다.

쿠우웅—

무식하게 큰 벌레가 머리를 처들며 지면을 갈랐다. 파쇄기가 붙은 놈의 머리가 지상을 내려다본다. 놈의 머리는, 로더 4를 보며 하강했다. 들개는 그것을 비웃듯 가볍게 피한다.

“야 들개, 비켜!!”

이구아수가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아이스 웜의 실드를 무력화 하기 위해선, 파쇄기가 있는 전면부를 맞춰야한다. 그러나 그것이 들개를 향하고 있는 지금은 니들 런처를 쏴맞출 기회라고는 없었다. 들개와 붙어다니거나, 아예 저 벌레의 시선을 끌어야 했다.

“…이구—수,”

정신없는 와중, 유독 큰 이명이 들려온다. 들개 녀석의 옆에 붙어 있던 그것이다.

“윽, 젠장… 시끄러워!!”

“이구아수, 상대는 에너지 반응이 강한 기체를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 레이븐을 노리고 있는 것은 아마 저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당신에게도 고출력의 에너지를 방출하는 무기가 있습니다.”

웅웅거리는 고주파 음은 그의 신경질에도 아랑곳 않고 말을 계속한다. 뇌를 두들기는듯한 이명 사이로 정보값이 때려박힌다. 상대가 말하려는 바는 명확하다. 스턴 니들 런처, 순간적으로 높은 전력을 방사하는 무기이자 아르카부스의 괴작. 굳이 아이스 웜의 머리를 맞추어 실드를 부수는 것이 아니더라도, 이 무기를 발사할 때 생기는 에너지량은 시선을 끌기 충분하다는 뜻이었다.

터엉——

순간적으로 날아간 니들 런처의 길쭉한 탄두가 굉음을 내며 아이스 웜의 몸통에 틀어박힌다. 그에 그치지 않고 이구아수는 총알 세례를 그 위에 퍼부었다. 지금은 실드를 부수는 것보다, 놈의 이목을 끄는 것이 우선이었다. 아이스 웜이 잠시 정지한다. 붉은 빛으로 진동하는 머리가, 이쪽을 본다. 이구아수를 향해 맹렬히 미끄러져 내려온다. 재장전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이구아수는 부스터를 올렸다. 헤드 브링어의 제너레이터가 AC 특유의 구동음을 내며 출력을 상승시킨다. 퀵 부스트로 간발의 차로 파쇄기를 피했으나—

텅—

“윽, 씨발…!”

아이스 웜의 머리는 피했지만, 그 뒤로 따라붙는 몸체 마디마디가 구불거리며 헤드 브링어를 옆으로 튕겨냈다. 놈의 공격 범위가 넓었다. 아이스 웜을 상대로 싸우는 것은 AC와 MT를 위시한 인간형 적 만을 상대로 전투를 수행하던 레드 건에겐 상성이 나빴다.

“이래서 오기 싫었는데…!”

“G5! 다시 한번 온다!”

미시간의 무전 통신이 다시 한번 울렸다. 이번엔 뒤다. 헤드 브링어는 빠르게 뒤돌아, 니들 런처를 발사했다. 이번엔 확실히 명중이었다. 아이스 웜이 빠르게 땅속으로 숨어든다.

“드디어 내가 나설 기회를 내어주는군, 실망시키진 않도록 하지.”

잡음 섞인 목소리와 함께 빙원의 지평선과 구름 너머로, 점차 빛이 밝아온다. 오버드 레일 캐논이 충전을 시작했다.

“레일 캐논 출력 70퍼센트… 85, 90퍼센트…”

이젠 하늘에 태양이 두 개가 걸린 듯 광원이 선명하다. 레이더가 울린다. 땅 속으로 숨어든 벌레가 다시 부상할 시간이었다.

“놓치지 않겠다.”

그 말과 동시에, 아이스 웜이 땅 위로 고개를 처든다. 이번엔 회피할 필요가 없다.

타앙—

노란 섬광과도 같은 탄환이 지평선 너머에서부터 날아와 아이스 웜의 머리를 꿰뚫는다. 탄두의 궤적을 따라 핏빛의 코랄이 빙원 하늘에 흩뿌려졌다. 아이스 웜의 머리에서 새어나오는 코랄, 그것의 비명 소리가 선명하다.

“윽, 이명이…!”

이구아수는 무의식적으로 조종간을 놓고 귀를 감싸쥐었다. 그를 제외한 모두가, 일제히 쓰러진 아이스 웜을 향해 날아갔다. 들개는 이미 놈의 머리 앞에 서 있다. 곧이어 새빨간 빛을 발하는 파쇄기에 무자비한 폭력을 꽂아 넣는다. 고개를 털며 정신을 차린 이구아수는 들개의 모습을 보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얼마 가지 않아, 아이스 웜은 다시 그 큰 몸체를 일으킨다. 꺼진 가전도구에 전원을 켜듯 붉은 빛이 웅웅거린다. 벌레의 실드가 다시 복구된다. 새빨간 코랄파를 내뿜으며 부속기가 전개된다. 까다로운 것은 지금부터였다. 이전에 헤드 브링어가 파괴되었던 일을 떠올린다. 이번만큼은 그리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 되어서는 안 됐다.

이미 아이스 웜에 위험 대상으로 낙인찍힌 헤드 브링어, 그랬기에 두번째로 맞추는 것은 쉬웠다. 레이더를 보고, 놈이 뛰어오르고, 니들 런처는 빠르게 날아간다. 아이스 웜에 비하면 말 그대로 바늘 따위에 불과한, 단지 그것만으로 벌레는 움직임을 멈춘다. 다시, 하늘 너머에서 섬광이 일고 파쇄기를 들개가 두들긴다. 코랄 파동에 휩쓸릴 뻔한 적이 두 번이 있었고, 현장 감독을 맡은 스네일은 이미 퇴각했다. 리페어 키트는 앞으로 하나. 이정도면 여유로웠다.

세 번째. 마지막이다. 마지막은 탄두를 두 번 맞춰야 했다. 이명 사이로 흩어질것같은 집중력을 그러모은다. 이미 한 번은 맞춘 상태다. 이것으로 끝이었다. 아이스 웜이 헤드 브링어를 향해 미끄러지듯 돌진한다. 파쇄기를 목전에 두고, 이구아수는 쏘아 맞춘다. 그러나, 벌레의 맹진은 멈추지 않았다.

“뭐?! 씨발, 무슨—”

이미 피하기엔 늦었다. 끝이라고 생각했기에 안일하게 대처한 대가를 치를 시간이었다. 니들 런처의 재장전 시간은 5초. 이구아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옆으로 로더 4가 날아왔다. 이어, 새빨간 빛이 명멸한다.

터엉———

아이스 웜 하단의 바퀴가 들려 끼긱거리는 소리를 냈다. 로더 4는 헤드 브링어를 밀어내고서, 코랄 방벽을 들고 벌레와 부딪혔다. 기술 연구소의 유산인 붉은 빛의 실드는 단숨에 파괴되었다. 그에 잇따라 더 큰 빛이 터져나온다.

[터미널 아머 발동 확인, 리페어 키트 사용.]

[기체 수복 프로토콜 시행]

기계적인 음성이 눈앞의 기체에서 새어나왔다. 어느새 놈의 제너레이터는 코랄의 붉은 색으로 물들어있었다. 웅웅거리는 이명이 크다. 씨발, 하다하다 제 옆의 코랄까지 태워? 그러나 그 효과는 확실했다. 애초에 아이스 웜에 비하면 개미만한 AC. 체급부터가 게임이 될 수 있는 판이 아니었다.

“쏴라, 이구아수.”

씨발, 말이 쉽지. 그는 계기판을 바라본다. 재장전 시간, 앞으로 1.2초, 0.9초, 0.8초… 1초가 이렇게 길었나? 이구아수는 발사될 리 없는 버튼을 계속해서 두들겼다.

탕———

마침내 니들 런처가 날아갔을 때, 때맞춰 들개의 터미널 아머도 해제됐다. 들개의 로더 4, 그 각부를 꿰뚫고 전면부에 바늘이 틀어박혔다. 그리고 이어지는 방전. 이구아수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바늘에 꽂혀 아이스 웜에 고정된 로더 4, 벌레가 머리를 뒤흔들고 지면 아래로 파고들자 그제서야 들개의 AC는 파쇄기에서 떨어져 나왔다.

“레드 건. 내방자는 내가 회수해 가겠다. 뒷처리를 부탁하지.”

RaD의 기체가 무기를 떼어놓고 다가와 말했다. 채티 스틱이 두 손으로 로더 4를 집어들었다. 파쇄기에 반쯤 갈려나간 로더 4가 화면에 선명했다. 걸레짝이 된 채로도 여전히 생명 신호가 잡힌다는 것이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알았다.”

이제 빙원에는 이구아수만이 남았다. 그는 홀로 지평선 너머에서 넘실거리는 여명을 지켜보았다.

일을 끝마칠 시간이었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