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에이 씨… 마지막 병은 까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구아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빈 속을 물로 채운다. 술을 밀반입해온 범인은 팔자 좋게 그의 어깨 너머에 두 발을 쭉 뻗은 채 곯아떨어진 채였다. 레드 건 부대가 바다를 건너온 직후 재배정받은 방, 2인실 한 켠엔 둘이서 마신 주류들이 내용물을 비운 채 쌓여있었다.
“저 양을 용케 안 걸리고 처먹었네…”
알면서도 모른 척 해준 건가? 쯧, 그는 짧게 혀를 찼다. 예전같았으면 그저 운이 좋았다고 치부했을 일을 이런식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된 게 좋은 일인지 아닌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경고: 미확인 적 기체]
별안간 부대 시설 전체에 사이렌이 울린다. 뻗어 자고 있던 볼타마저 벌떡 일어나 환복을 시작하고있었다. 마침내 올 게 왔나, 젠장, 바다를 건넌지 고작 며칠 됐다고. 아르카부스 놈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이구아수는 볼타를 뒤로하고 먼저 문을 박차고 나갔다.
상황실에는 이미 미시간과 레드를 비롯한 몇 명이 자리하고있었다.
“적 규모는?”
“AC, 단 한 기… 로더 4. ‘레이븐’입니다!”
“젠장, 독립 용병 주제에 왜 히알마르까지 오냐고…!”
히알마르? 익숙한 지명이다. 본디 아르카부스의 거점이 될 곳이었고, 발람에서 레이븐에게 관측 데이터의 탈취를 의뢰했던, …그리고 행성 봉쇄 기구가 함선을 이끌고 튀어나왔던 곳.
‘씨발, 여기가 히알마르였어?’
좆 됐다. 이를 직감한 이구아수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진다.
“저 새끼랑 이런 식으로 엮이는 건 사양이야. 철수를 추천하지.”
“빵점이다, 이구아수! 여태까지의 네 패기는 어디로 간 거냐! 월터의 강아지가 무서워서 벌써부터 바지에 오줌이라도 지렸나?!”
“영감쟁이가 뭘 알아! 난 여기서 저 들개 놈이랑 사이 좋게 묻히고 싶지 않거든?!”
미시간은 드물게 침묵한다. 그러곤 누런 이를 드러내며 씩 웃는다. …그렇게, 이구아수는 전장에 투입되었다.
“선배, 작전 지역에 도착했으니 타겟 정보를 송신합니다.”
“씨발… 진짜 뒤지게 생겼군.”
헤드 브링어는 단신으로 우군 MT 부대를 넘어 놈을 향해 날아갔다. 로더 4가 시야에 잡히기 시작한다. 붉은 색으로 표시된 방향 레이더상의 점이 오늘은 유독 크게 보였다. 로더 4도 헤드 브링어를 향해 헤드 파츠를 돌린다.
“…”
들개의 로더 4는 조용히 빙원에 착륙한다. 공격하지 않는다. 다만, 이번엔 무기를 내려놓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암호화된 회선으로 메시지가 수신된다.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실에서는 읽지 못할 암호. 구세대 강화 인간 특유의 코랄 디바이스만이 읽어낼 수 있는 구시대의 유물이었다. 내용은 한 마디로 일축할 수 있었다. ‘비켜.’
“지랄하지 마. 여기서 나가야 할 건 너다. 여긴 발람의 영역이야.”
조종대에 걸린 손가락이 초조하게 핸들을 두드렸다. 시간을 끌다간 봉쇄 기구에 걸린다. 화려하게 저질러도, 봉쇄 기구에 걸린다. 순순히 비키면, 미시간이 지옥을 보여줄 것이다. 행성 봉쇄 기구가 오고 있는 걸 모르는 상황실에서는 시끄럽게 통신을 걸어대는 중이었다.
“또 의뢰냐? 고용주는? 아르카부스? 해방전선? 아니면 네 주인인가?”
그를 따라 지상에 내려앉은 헤드 브링어는 한 발 앞으로 나아간다. 놈은 침묵한다. 메시지가 하나 더 들어온다. ‘목표는 관측 데이터. 비키지 않는다면, 부수겠다.’
“어디 한번 덤벼 보던—”
그때, 지면이 크게 울린다. 이 진동은 이구아수가 익히 알던 것이었다. 지면 밑바닥에서 고밀도의 에너지가 감지된다. 이명이 가깝다. 그 울림은 잦아들지 않고, 오히려 점점 그 크기를 더해간다. 가까워지고 있었다. 귀를 찢는 메아리가 코앞에 닥친다. 마침내, 그것이 지층을 뚫고 존재감을 과시한다. 코랄병기 특유의 붉은 파동이 온 사방에 퍼져간다.
아이스웜이었다.
“씨발, 저게 왜——”
“G5, 후퇴해라!”
미시간이 빠르게 소리쳤다. 들개는 이미 높은 곳에 올라가 지상을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봉쇄 기구는 경고하지 않았다. 그들은 날벌레들에게 경고하며 물러나게 하는 것 보다 싹이 보이는 시점부터 중앙 빙원이라는 쓰레기장을 초토화시켜 청소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 판단했다. 부득, 턱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
중앙 빙원에서의 활동은 당분간 중단되었다. 아르카부스도 발람도 이 초유의 상황에 잠시동안의 휴전과 빙원에서의 일시적인 철수를 합의했다. 이는 그가 이미 알고있는 사항이었다. 과거에서 그리했다. 아이스 웜을 잡는 것은 들개가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 또한 그 전장에 나서게 되겠지. 또 가장 먼저 쓰러지는 타자가 될 터였다. 쯧, 이구아수는 혀를 찼다.
“이구아수, 너무 죽상으로 있지 마. 모처럼 벨리우스로 돌아왔으니 술이나 마시러 가자고.”
“넌 그렇게 마셔놓은 게 며칠이나 됐다고 그게 또 입에 들어가냐?”
태평한 자식. 말은 그렇게 하면서, 이구아수도 자리에서 일어난다. 빙원에서 술을 마실 일이라고는 없었다. 보급에 주류따위는 없었다. 수중에 있는 크레딧을 머릿속으로 셈하며,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
아이스 웜을 잡는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들개는 정커 코요테스의 앞마당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레일 캐논을 주워왔다. 아르카부스도, 선진 개발국의 연구진들을 채찍질해 니들 런처를 만들어왔다. 두 단체의 연합 브리핑이 시작된다. 여전히 그는 최전선의 멤버로 발탁되고, 들개의 손에 니들 런처가 쥐여진다. 이구아수는 놈을 흘끗 쳐다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린다. 들개가 그에게 다가온다. 거리가 가깝다.
“네가, 할텐가?”
“…지금 사람 놀리냐?”
귓속말이라고 하기엔 목소리가 크다. 이구아수가 미간을 팍 구긴다. 이건 놈에게 맡기기로 이미 합의가 된 사항이다. 자신의 역량으론 할 수도 없었다.
“뭡니까, 새 자원자입니까?”
미시간이 브리핑에 끼어든 뒤로 잠잠하던 목소리가 끼어든다. 베스퍼의 주인이나 다름없는 행세를 하는 녀석. 전투원들 사이 홀로 말쑥하게 빼 입은 정장이 이질적이었다. 스네일은 이구아수와 레이븐을 시선에 담다가, 잠시 생각하듯 눈동자를 굴리더니 답을 내 놓았다.
“…뭐, 괜찮겠죠. 시제품이지만 양산할 목적이었으니 한 두개 정돈 더 만들 수 있습니다. 한 명만 맡는 것 보단 두 명이 더 안정적이겠죠.”
그렇게, 이구아수의 손에도 니들 런처가 쥐여진다.
‘어차피 날뛰는 건 들개일 테니, 내가 쏠 타이밍 따윈 나지 않을 거다.’
헤드 브링어의 어깨에 걸린 니들 런처를 보며 그는 그리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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