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중앙 빙원에 온 이후,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가끔 오류로 인해 탐사 구역을 벗어난 드론을 추적해 주워오는 것과, 개인 회선으로 레드의 정기 브리핑을 듣거나 볼타와 가끔 수다를 떨며 말린 밀웜과 동결건조된 전투 식량 따위를 짓씹는 것이 전부였다. 외롭거나 지루하기도 했지만 간만에 평화롭다고 할만한 시간이었다.
강화 인간이라는 것은 본디 필요할 때에 깨어나고 원하는 대로 수면 모드에 들어가기를 반복하며 시간따위 마음껏 죽일 수 있었지만, 이구아수는 그것을 내키지 않아했다. 아니, 오히려 혐오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는 자의로 강화 인간이 된 것이 아니니만큼 인간이라는 생명체라면 할 수 없을 일들을 벌여 스스로 그 정체성에서 유리되고싶지 않았다.
문득 이구아수는 같은 4세대 강화 인간이자 유이하게 중앙 빙원에 진출했던 나머지 한 명의 행방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놈이 추락했던 장소는 아슬아슬하게 발람제 드론의 조사 영역에서 벗어난 경계 지역. 더군다나 최근엔 눈보라가 자주 불어닥쳤던 터다. 그덕에 놈이 여전히 수면 상태인지, 아니면 깨어 활동하고 있는지 따위는 직접 찾아가야만 알 수 있는 일일 터. 다만, 그는 아직 들개를 마주하고싶지는 않았다.
[경고: 미확인 AC 감지]
그리 생각하자마자 조사 드론이 경고음을 울린다. 그래, 양반은 못 되는군. 아직까진 항로가 정리되지 않아 AC들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건너 오지 못한다. 또 다시 카고 런처를 타고 오는 미친놈이 있지 않는 이상, 발람의 영역에 침입한 것은 들개였다.
콰아아아아아—
AC 특유의 부스터로 인한 배기음이 적막하던 빙원의 하늘을 찢는다. 수 주간 들을 일 없던 이명이 점차 가까워진다. 특유의 머리통을 쪼갤듯 울리던 말소리가 들린다.
“레이… 당신이 임무 외…… 일어나 있는… 거의—”
그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놈은 어썰트 부스터를 켜고, 코앞까지 다가온 지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그대로 갖다 처박을 심산인 듯 했다.
[메인 시스템, 전투 모드 기동]
거친 방문 인사를 받아칠 준비를 한다. 놈은 여유롭게 왼쪽 어깨의 웨폰 행거에 걸린 무기와 손에 든 무기를 바꾸기를 반복해가며 날아오고 있었다. 진짜 미친 새낀가? 그런 동작이 묘하게 놀리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 짐머만? 파일벙커? 아니, 놈이 하는 짓이라면 뻔했다. 놈을 향해 똑같이 어썰트 부스터를 켜고 날아간다. 들개는 늘 발차기로 전투를 시작하는 버릇이 있었다. 부스터 킥은 부스터 킥으로 상쇄된다. 발차기를 상쇄하고, 다음에 일어날 수들을 생각한다. 놈을 이기기 위해 분석하고 내놓은 패턴이 수십 가지였다. 그러나, 별안간 들개가 공중에 멈춰 선다.
“뭐…? 씨발, 무슨—”
이렇게 처들어와놓고 싸울 생각은 없단 건가? 그러나 이미 헤드 브링어를 멈추기엔 늦었다. 참 고맙다, 들개 새끼야. 긁어 부스럼 만든 꼴로 만들어 줘서.
텅———
짧은 사이에 놈은 다시 부스터를 켜 헤드 브링어의 각부를 마주 걷어찬다. 부스트 킥은 부스트 킥으로 상쇄된다. 자신이 여지껏 그려왔던 전장은, 이것으로 첫 수 만에 들개의 흐름으로 넘어갔다.
부딪힘이 있은 직후, 두 기체는 서로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채 천천히 하강해 이윽고 얼음 벌판 위에서 대치했다. 그를 마주 보는 로더 4의 카메라가 부담스러웠다. 이구아수는 이내 말을 내뱉는다.
“어이 들개… 여태 잠잠하더니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지? 아르카부스나 해방전선으로부터 사주라도 받았나?”
들개는 침묵한다. 놈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늘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녀석을 상대로 대화를 시도하는 스스로가 바보같았다.
“…레이븐, 잊고 계시는 것 같아 말씀드리지만, 인간과의 대화는 성대의 울림으로써 성립해요.”
귀를 찢는 소리, 이번엔 명확히 들렸다. 그녀의 목소리가 지나간 후, 마침내 그는 입을 연다. 오른손에 든 무기를 퍼지하고서, AC의 손가락을 들어 이구아수를 향해 가리킨다.
“너를…, 찾아왔다.”
그것은 단단히 미친 소리였다.
“작정하고 왔나보군, 야, 들개. 기어코 내 모가지를 따야 직성이 풀리겠냐?”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침묵. 씨발, 역시 그때 죽였어야—
놈은 이어 남은 세 개의 무기마저 떼어냈다. 그러고도 모자라 AC의 왼팔로 오른팔을 떼어내려는 듯이 긁어내다가, 이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멈칫하고선 코어의 콕핏을 열어제꼈다.
“대화를, 원한다.”
놈은 끝까지 두 손을 들어 완벽한 비무장임을 어필하며 그리 말했다. 이젠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이구아수는 놈이 뭘 말하려는건지 들어나 보기로 했다. 이미 수 번은 죽었을 목숨, 다음이 또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여기서마저 뒤통수를 맞게 된다면 그때는 아예 탈영해 루비콘 밖으로 탈출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
나름 손님인 녀석에게 내어준 주전부리는 고민하면서 고른 것이 무색하게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워졌다. 놈은 밀웜을 말린 육포를 으적이는 와중에도 성대를 놀렸다.
“…그래서, 이곳에 왔다.”
“——”
녀석의 말투는 어눌했지만, 알아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보다 문제가 되었던 건,
“이제껏 네게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다만…”
“———”
저 망할 소리였다. 시도때도없이 저 기생체는 숙주의 말에 수다스럽게 무언가를 덧붙이거나 정정하며 시끄럽게 울려대고 있었다.
“레이븐, 이구아수의 표정이 좋지 않네요. 아무래도 당신의 말이—”
“…야, 네 옆에 있는 녀석한테 제발 좀 닥치라고 해.”
“—, ——”
“…집중하지 않았군.”
“지금 그게 문제냐? 정신이 나갈 것 같다고, 저게 입을 한 번 열 때 마다 얼마나 시끄러운지 알아? 내가 왜 매번 이명에 시달렸다고 생각하는데? 니 새끼한테는 어떻게 들릴 지 몰라도 나는———”
이구아수는 거기까지 말하고 입을 닫아버렸다. 하, 씨발. 이래서 강화 인간은 안 되는 거다. 그놈의 성질머리라는 건, 꾹꾹 눌러담아봤자 언젠가는 터지고 마는 것이었다.
“…”
침묵, 그놈의 침묵. 입을 다문 저 녀석은 늘 자신을 긴장하게 했다. 놈의 눈을 본다. 코랄과 같은 밝은 선홍빛, 아니, 어쩌면 핏빛일지도 몰랐다. 그 눈에선 무엇 하나 읽어낼 수 없었다. 얼굴의 반이 붕대였지만, 그 붕대가 없었다 한들 표정을 읽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놈은 늘 이구아수에게 비인간적인 존재로부터 오는 불쾌감을 들이밀고있었다.
“이구아수. 당신을 배려해 ‘교신’을 잠시 멈추도록 하겠습니다.”
긴장의 침묵을 깨트린 것은, 그녀였다. 그 말을 끝으로 이명은 멈췄다. 머릿속은 개운해졌지만 덕분에 굉장히 불편한 자리가 되었다. 이구아수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씨발,”
“…다시 말하도록 하겠다.”
*
정리하자면, 들개의 입장은 이러했다. 파편적인 기억은 남아있다. 자신의 대략적인 행동과 결과는 어렴풋하게 기억하지만, 그것을 어째서 행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전의 자신에게 공감할 수 없기에, 놈은 늘 다른 선택지가 주어지면 그것을 거절할 수 없다.
“빌어먹을 호기심이군.”
“호기심인가.”
놈은 스스로의 상태도 판단하지 못했다. 타인이 그 상태를 규정하면 고개를 끄덕이고 받아들일 뿐이었다. 그런 점이 짜증을 치미게 했다. 이구아수는 다시 그것을 눌러 담는다.
“그래서, 또 레드 건에 파국을 내려주실 건가?”
그래, 중요한 것은 이 것이었다. 놈은 미시간을 비롯해 레드 건의 주요 부대를 박살낸 전적이 있었다. 아니, 놈이 아니어도 베스퍼의 웬 늑대 새끼가 그들을 물어 찢는다. 당시의 이구아수로선 이미 레드 건을 벗어나 탈영한 상태였음에도, 그에 대한 기억은 잊지 않았다. 어쩌면 원한이라고도 부를 만 한 것. 그것을 구태여 파내지 않은 이유는, 앞서 말한 그의 탈영 때문이었다. 부대를 버렸던 그는 당시의 일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질 자격도 없었다. 이구아수는 그리 생각했다.
“…그 점에서, 의뢰가 있다.”
“들어나 보지. 지껄여 봐.”
“네 기억과 의견, 그리고 새로운 선택지의 제시. 보수로는… 앞으로의 미션에서 발람의 의뢰를 우선적으로 수주하겠다.”
으득, 이가 갈렸다. 놈이 한 말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었다. ‘레드 건을 살리고 싶다면, 아르카부스가 너희를 없애달라고 하기 전에 맞추어 의뢰를 넣어라.’ 자의로 살려주겠다는 말은 하지도 않았다. 이 말인 즉슨, 그에게 나비효과로 인한 새로운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레드 건이라는 것 따윈 버튼 한 번 누르듯 가볍게 지워버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르카부스에도 해방 전선에도. PCA, 그리고 올마인드에조차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래, 이 씨발놈은 끝까지 위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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