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phany

Epiphany - 6

TOHELL by TO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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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 4일차. 다리가 덜덜 떨려왔다. 틈만나면 담배냄새가 나냐고 물어본 통에 다들 도망간 것인지 대기실 안은 텅 비어있었다. 손톱을 물어뜯으려다 겨우 참고 입 안에 금연껌을 털어넣었다. 거칠게 껌을 씹어대며 거울을 바라보자 금단현상인지 조금 퀭한 얼굴의 제 모습이 보였다. 그 때, 문에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선배님.”

고개를 돌리자 수애가 머뭇거리며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얼마만이지, 그 때 연습실에서 그렇게 나가고 처음 보나. 그녀의 목소리만 들었다 하면 마음이 착잡해져 담배가 생각났던 탓에 저도 모르게 그녀와의 만남을 계속해서 피하고 있었다. 오늘 촬영 없는 걸로 알고있는데…. 휴지에 씹던 껌을 뱉어 쓰레기통에 넣고는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려 앉았다.

“어쩐일이야?”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앉아서 얘기하라는 듯 손짓으로 벽에 붙은 소파를 가리켰다. 조심스럽게 자리를 잡은 수애가 한참을 망설이더니 이내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며칠 후에…. 일정 바뀌어서 먼저 촬영하기로 한 장면이요.”

“응.”

“제가… 제가 정말 못하지만…. 실력도 없는 거 알고는 있는데요….”

꾸역꾸역 말을 뱉는 수애의 입술이 조금씩 울렁인다. 울음을 참는 듯 보였으나, 결국 조금씩 방울지며 눈물이 떨어진다.

“그래도, 제가… 연습을, 어떻게 해서라도 할 테니까, 그러니까 걱정 마세요…. 촬영,에 폐 안 끼치게 할게요….”

“…뭐?”

울먹이며 말하는 탓에 제대로 들리지 않은건지, 자신이 잘못 이해한건지 그녀의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미간을 찌푸리며 되묻자 수애가 고개를 들어 잔뜩 젖은 눈으로 웨이를 바라보았다.

“제가 다른, 사람한테, 부탁을 해서라도… 키스신 연습할게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저 계속, 연기 알려주시면, 안 돼요…?”

결국 눈을 질끈 감은 수애가 고개를 푹 숙였다. 이 상황이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그 한 마디만큼은 이상하게 귀에 선명히 들렸다. 뭘 다른 사람이랑 연습해?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담배를 며칠째 끊고 있는데? 갑자기 올라오는 열에 제 머리를 헝클이듯 쓸어올렸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 앞 테이블에 걸터앉아 손을 뻗어서 수애의 눈가를 쓸어주었다. 거친 손길에 눈물이 닦이자 수애가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동그란 눈을 보고 나니 웃음이 터져 웨이가 키득이며 그대로 수애를 끌어안았다.

“바보 여자야…. 다른 사람한테 그런거 부탁하면 큰일난다….”

“그치만…. 제가 키스도 못해봐서 촬영 잘 못할까봐… 기분 안 좋으셨잖아요….”

“누가 그래.”

“그 때 연습실에서….”

수애의 등을 쓸어내리듯 토닥이던 웨이가 미간을 찌푸리며 끌어안은 몸을 떼고 마주보았다. 눈동자를 사선으로 올려 기억을 더듬은 끝에 마지막에 만난 대화를 떠올렸다.

“그건… 첫키스가 이런 아저씨여도 괜찮아?”

“…….”

“…싫은가보네. 난 그래도 신경써서 담배도 끊고 있는데.”

“아, 아뇨…! 싫은 게 아니라…. 그런 걸 신경쓰실 줄은 몰라서….”

수애의 얼굴이 당황으로 붉게 물들었다. 연기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애정신을 촬영할 일이 생기면 어쩌나 지레 겁을 먹었었는데, 왜인지 그와 촬영할 생각에 드는 걱정은 이전에 들었던 감정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와 있으면 마음이 편해서 그런 것일까. 혼란스러운 마음에 그를 바라보지 못하고 시선이 이리저리 맴돌았다. 그 모습을 보던 웨이가 키득거리며 수애의 손을 잡고 살살 흔들었다.

“그럼 싫은 건 아니라는거네.”

“네, 그럼요….”

“연습도 할 수 있고?”

“…그거야 당연히… 그런데 연습은 어떻게 하나요…?”

“나 담배 끊었다. 담배냄새 안 나는지 봐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닌 엉뚱한 요구에 수애가 고개를 갸웃하다가도 이내 눈을 내리깔고 풍기는 향에 집중했다. 원래도 거의 나지 않던 담배향이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사라진 듯 그의 향수인지 스킨인지 모를 향만 풍기고 있었다.

“냄새 안 나요. 하나도.”

“그렇게만 맡으면 모를텐데.”

싫으면 밀어. 말을 덧붙인 웨이가 그녀의 뒷목을 감싸 입을 맞추었다. 당황한 듯 그대로 굳어 감지도 못한 그녀의 눈을 바라보던 웨이가 입꼬리를 올리며 조금씩 아랫입술을 빨아들이듯 머금기 시작했다. 눈을 감은 그의 모습에 수애가 따라서 눈을 내리깔았다. 허락을 구하듯 느리게 혀를 밀어넣는 모습에 다문 입술을 살짝 열자 기다렸다는 듯 그의 혀가 입천장을 누르며 더 깊이 들어왔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은 듯 몸을 잘게 떨자 웨이가 다독이듯 반대쪽 팔로 몸을 끌어안았다. 화한 향이 섞인 그의 키스에 정신을 차릴 수 없어 그의 옷을 붙잡고 늘어졌다. 이어진 입맞춤에 조금씩 숨이 가빠져 그의 어깨를 밀어내었다. 손이 닿기 무섭게 떨어진 입술에 그를 바라보자 웨이가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혀로 젖은 제 입술을 핥아올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손으로 입술을 만지작거리자 웨이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끌어안은 몸을 천천히 놓았다.

“어때. 담배 냄새 있어?”

“아…아뇨. 없어,요….”

“다행이네.”

“촬영…촬영장에서도, 이렇게 해요…?”

이런 건 드라마에서는 못 봤는데. 중얼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웨이가 키득이며 그녀의 뺨에 손가락을 쿡 눌렀다.

“글쎄. 이렇게 해도 되고, 혀는 안 섞어도 되고. 새영과 류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머뭇거리던 수애의 얼굴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한참을 생각에 빠진 그녀가 겨우 입을 열며 말했다.

“새영은 더 적극적으로 할 것 같아요. 갈증난 사람처럼, 매달리는 것처럼.”

“거기에 류는 당황했지만 금방 차분하게 받아줄거고.”

“새영에게는 첫키스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이랑 하는 첫키스. 컨트롤 할 수 없는 큰 몸을 한순간에 가져버린 아이처럼 굴 것 같아요.”

“그렇게 할 수 있겠어?”

“…웨이가 했던 것 처럼 하면 되는 거 아니예요…?”

물음에 웨이가 어깨를 으쓱였다. 머뭇거리던 수애가 몸을 기울여 그의 어깨에 두 손을 짚고 숨결이 섞일 정도로 간격을 좁혔다.

“한번 해봐도… 돼요…?”

“why not?”

“…….”

이내 두 사람의 입술이 포개지고 수애가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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