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phany

Epiphany - 5

TOHELL by TO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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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살랑이는 바람이 불어오자 웨이의 입에서 새어나온 담배연기가 빌딩 숲 사이로 사라졌다. 필터 가까이 타버린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끄고는 담배 곽에서 새 담배를 이로 물어 꺼내었다. 라이터로 불을 붙이기 무섭게 윤 감독이 커피를 들고 다가왔다.

“어디갔나 했네. 담배는 아직도 안 끊었어?”

“끊을 이유 없으니까.”

“수애, 비흡연자인데.”

“그게 왜?”

“너네 다음주에 키스신 찍는다.”

“…그거 마지막 촬영 아니야?”

“현장이 다 그렇지 뭐. 수애한테는 방금 통화로 얘기했어. 일정 바뀌었으니까 참고하라고.”

“…시발.”

“욕도 좀 끊고.”

웨이가 신경질적으로 방금 불을 붙인 새 담배를 부러뜨리고 재떨이에 처박았다. 그 모습을 보고 키득이던 윤 감독이 웨이 앞에 커피를 건네며 짖궃은 말투로 툭 던졌다.

“수애 키스신 처음이다.”

“알아서 해.”

“걔도 참…. 첫 키스신을 열 살이나 차이나는 아저씨랑….”

매섭게 눈을 뜨고 흘겨보는 그의 시선에 윤 감독이 고개를 돌리고 커피를 홀짝였다. 빠른 속도로 커피를 들이마시던 웨이가 빈 플라스틱 컵을 손으로 가볍게 구기고는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인사도 하지 않고 사라지는 그의 모습에 윤 감독이 커피를 삼키며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습…. 진짜 좋아하나….”

[ 어디야? ]

[ 연습실이요. ]

[ 기다려. ]

[ 지금요? ]

[ 웨이? ]

[ 오늘은 분명 안 오신다고 ]

수애가 초조하게 입술을 물어뜯으며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왜 답장이 없지? 오신다는건가? 오늘은 못 오신다고 하셨는데…. 고개를 들어 연습실 벽면을 가득 채운 거울을 바라보았다. 화장기 없이 수수한 맨 얼굴에 입술을 꽉 깨물고 손바닥으로 눈가를 가렸다. 화장도 못했는데…. 결심한 듯 얼굴을 굳힌 수애가 급하게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대본과 녹음기, 카메라를 집어넣고는 백팩을 등에 매고 캡모자를 푹 눌러썼다.

“어디가?”

인기척도 없이 들려온 그의 목소리에 수애가 화들짝 놀라며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놀란 탓에 심장이 조여오는지 가슴을 꾹 누르며 수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웨이…? 벌써, 왔어요…?”

“핸드폰 깨지겠다.”

웨이가 가까이 다가와 그녀의 핸드폰을 집어들자 수애가 황급히 모자를 더 깊게 눌러쓰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 모습에 웨이가 미간을 찌푸리고는 가볍게 모자를 튕기듯 들추었다. 순식간에 날아간 모자에 수애가 당황한 듯 난처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 안돼요. 저 오늘 안 오시는 줄 알고 화장도 못했고, 그리고….”

방금 윤 감독에게 변경된 촬영 일정에 대해 전해들었다. 마지막 촬영일로 정해졌던 그와의 키스신이 당장 다음주로 당겨졌다는 내용이었다. 세트장 철거 일정에 변동이 생겨 급하게 바뀌었다던데…. 사유는 중요하지 않다. 사소한 것에도 수없이 바뀌는 것이 촬영이었으니까. 문제는 그게 그와의 키스신이라는 것에 있었다. 단 한번도 애정신은 촬영해 본 적도 없었고 하다못해 제대로 된 연애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첫키스가 웨이라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스스로의 생각에 화들짝 놀라 눈을 질끈 감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자 웨이가 손을 들어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아랫입술을 꾹 눌렀다.

“깨물지 마. 상처난다. 그리고 화장 안 한 줄 몰랐다. 평소랑 똑같아서.”

그제야 수애가 정신을 차리고 턱에 힘을 풀었다. 촬영해야하는데 상처나면 안되지. 속으로 중얼거리며 가방을 고쳐매고 그가 건네는 핸드폰을 받았다. 머뭇거리다가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얘기… 들으셨어요? 다음주에….”

“…담배 냄새 싫어해?”

“…좋아하는 편은 아니죠…?”

웨이가 조용히 중국어로 욕을 읊조렸다. 알아듣지 못한 수애가 고개를 갸웃하자 그가 제 입을 손으로 가리며 반 걸음 물러났다.

“웨이, 연락 못 받았어요…? 다음주에 그… 마지막에 촬영하기로 한 게 다음주로 당겨져서….”

“들었다. 너 키스해 본 적 있어?”

“…….”

수애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웨이가 입을 가리던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어쩐지 조금 착잡해진 것 같은 그의 표정에 수애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역시 못미더운거겠지. 다른 것도 아니고 키스신 연기를, 아무리 웨이라도 어떻게 가르치겠어. 수애가 굳은 얼굴로 바닥에 떨어진 모자를 주워 다시 머리에 눌러썼다. 그리고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웨이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도망치듯 연습실 문을 열고 나섰다.

“저 먼저 가볼게요. 일정이 있어서….”

“너….”

순식간에 사라진 그녀의 뒤를 쫓을까 고민하던 웨이가 이내 머리를 쓸어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연습이 필요하다면 그게 무엇이 되었던 간에 해보면 될 일이었다. 키스도 다른 것도. 그런데 어째서인지 상대가 그녀라고 생각하니 섣불리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나이가 어려서일까. 아니면 이게 그녀의 첫키스라는 점 때문일까. 그제서야 내내 의심하던 이름모를 감정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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