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 창작 소설

보이지 않는 영역

베른 단편 소설 : 주제 - 뿌리


영혼을 어딘가에 묻고 온 것 같다. 내게는 묻을 영혼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가장 첫 번째 기억은 어둠이다. 나는 눈, 그러니까 외부 존재를 인식하는 신경망의 표면을 닫은 채로 가만히 누워 있었다. 전원을 켜고 프로그램이 가동되는 사이의 짧은 틈 동안 나는 '나'를 인식했다. 아직은 어떤 이름도 붙지 않았고 내장 데이터도 완전히 활성화 되기 전이어서 그 순간의 나는 '내'가 아니었다.

눈을 뜨자 사람의 얼굴이 반대로 뒤집혀서 보였다. 피부 조직을 이루고 있는 얇은 표피를 통해서 목뒤를 지긋이 누르고 있는 손길이 느껴졌다.

"안녕."

"안녕하세요."

나는 눈앞의 사람에게 대답했다. 입술을 열었다는 자각도 없이 저절로 그렇게 했다. 아마 행동 반사가 입력된 것이겠지. 그즈음에 나의 소프트웨어가 완전히 활성화 되어서 나는 눈앞의 사람이 내 목뒤를 누르는 것이 나의 전원을 켜고 그가 자신을 내 주인으로 등록하는 행위였음을 깨달았다.

"일어나도 될까요?"

나는 눈앞의 사람에게 단조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최대한 사람과 비슷하게 말하기 위해서 내장 스피커가 아닌 인공 성대를 이용해 소리를 내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내 몸의 감각들을 하나하나 느낄 수 있었고 그건 조금 이상한 느낌이었다.

"일어나도 돼."

그의 허락에 따라 나는 상체를 천천히 일으켰다. 손바닥 아래로 차가운 바닥이 느껴졌다. 나는 그 시린 온도를 감각하며 바닥을 느리게 훑었다. 시야에 잡히는 나의 몸은 아무것도 입지 않고 벌거벗은 상태였다. 나는 내가 민망해 해야 할 지 고민했다.

내가 한 동안 말 없이 가만히 있자 내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왜 그러시나요?"

나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가 웃을 만한 외부의 자극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동안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웃더니 얼굴의 근육이 당긴다는 듯이 눈을 크게 끔뻑였다.

"네가 멍해 보여서. 정말 사람 같구나."

"저는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기 위해 사람과 최대한 비슷하게 행동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불편하지는 않으신가요?"

내 목소리에 희미한 염려가 묻어나왔다. 눈앞의 사람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머리 속 소프트웨어가 그의 행동과 표정을 스캔한 것을 빠르게 파악하고 분석했다. 나는 그가 기분이 좋은 상태라고 판단했다.

"내 이름은 포야. 넌...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원하는 이름이 있어?"

눈 앞의 사람은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의 이름이 포라고 말했다. 그 손가락은 반바퀴 빙글 돌아 내게로 향했다.

"제품번호로 불러주셔도 괜찮습니다."

"그건 내가 싫은 걸."

포는 입술을 양옆으로 당기고 눈썹을 위로 들썩였다. 그는 실로 표정이 다양했다. 나는 시시각각 빠르게 변하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하루 종일 그의 얼굴만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표정이 가운데로 몰려들며 코까지 찌푸렸을 때 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라멜. 네 이름은 라멜이야."

"라멜."

나는 포의 말을 따라 하며 입 안으로 발음을 굴렸다. 혀가 입천장에 닿았다가 입술이 서로 붙었다 떨어졌다.

"마음에 들어?"

"마음에 들어요."

나의 대답에 포의 얼굴이 불만스럽게 변했다. 나는 그런 반응에 조금 당황했다.

"제가 뭔가 실수했나요?"

"내 기분에 맞추지 않아도 돼. 정말 마음에 들어? 네 진짜 생각을 알고 싶어."

포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었다. 내게 내장된 프로그램은 나의 주인인 포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포는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양 내 의견을 물어왔다. 나는 짧은 시간 동안 여러 계산을 거친 후 포의 명령-내 진짜 생각을 말할 것-을 따르기로 했다.

"마음에 들어요."

그리고 이게 나의 대답이었다.

나는 기억을 다시 되감는다. 어둠에서부터 나의 대답까지 이어지는 이 잠깐의 시간이 다시 프로그램 속에서 재현되었다가 툭 끊겼다. 나는 이제 막 포의 사망신고서를 작성하고 오는 길이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포는 자신의 죽음을 위해서 나를 구매했다. 그의 죽음 전후 처리를 위해서 나를 준비해두었다.

포는 완전한 혼자였다. 그에게는 가족도, 친구도, 하다못해 동료도 없었다. 포는 목수였고 몇몇의 거래처나 고객을 알고 있기는 했지만 그들은 포에게 가까운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러니 법률적으로 포와 엮인 사이는 나밖에 없었다.

나는 흔히들 반려 안드로이드라고 부르는 로봇이다. 안드로이드들은 내장된 소프트웨어의 품질에 따라서, 그리고 사용 목적에 따라서 가격이 천차만별해진다. 그중에서도 나의 소프트웨어와 몸체는 값이 비싼 축에 속했다. 나는 주인의 법률적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 가족 제품이기 때문이었다.

처음 '나'의 제품이 출시되었을 때에는 논란이 많았다. 인간이 아닌 안드로이드를 법률상 가족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의견이 있었고 다른 한 편에서는 그저 행정적, 법률적 처리를 위해서 '가족'이라는 타이틀로 묶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사람들의 의견이 어떠하든 간에 고지능 안드로이드가 인간을 위해 법률문제를 떠안는 것은 인간에게 맡기는 것보다 오히려 안전하며 현재의 법에 저촉되는 부분이 없다는 이유로 '나'의 제품 출시는 문제 없이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포가 나를 구매한 것은 '나'의 제품이 어느 정도 구형이 되어버리고 신형 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시점이었다. 신형 제품에는 '나'의 제품에서 발견되었던 결함이 제거되었고 '나'의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포는 그런 소수의 사람 중 하나였다. 나는 포가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형이 아닌 구형 제품인 나를 구매한 것에 의아함을 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가 신형이 아닌 하자가 있던 구형 제품인 나를 구매한 이유를 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거리를 한참을 걸었다. 차를 타고 간다면 훨씬 빠르게 갈 수 있는 거리였고 비가 오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는 조금 걷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 시간까지 포를 떠올리기 위해서.

비가 옷에 스미고 드러난 피부 조직 위로 미끄러져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기억을 더듬는다.

포에게는 병이 있었다. 폐암이었다. 기대 수명은 그리 길지 못했고 그가 나를 구매했던 시점에서 그는 이미 시한부였다. 포는 이제 막 눈을 뜨고 깨어난 나에게 말했다.

"라멜. 나는 곧 죽을 거야. 그러니까 내가 죽은 이후의 절차를 너한테 맡기고 싶어."

나는 그 말에 동요했다. 인공 가족을 원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인공 가족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혼자 처리하기 어려운 부분을 도와줄 가족을 원하는 것이다. 단순히 변호사에게 일을 맡기거나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가족을 원했다. 신형 제품이 줄줄이 출시되는 때에는 이미 그런 통계는 뻔하게 나타나 있었기 때문에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시는 방법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온전히 제게 맡기실 건가요?"

포는 잠시간 고민하는 듯 눈을 지긋이 감았다가 떴다.

"내가 죽거든 시신은 불에 태워 줘. 그리고 가능하면 강이나 바다에 버려 줘. 집은 매각하고 남은 재산은 네가 가져. 그 후에는 자유롭게 살아도 괜찮아."

"하지만 포, 인공 가족 안드로이드는 반려인의 사망, 실종 이후에 혼자서 살 수 없어요."

"알아."

"...그것도 명령인가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포는 내 말에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리더니 엄지손가락으로 입꼬리를 슥슥 문질렀다.

"응. 명령이야."

그렇게 말하는 포의 표정은 잠잠했다. 나는 포의 앞에서 '명령' 같은 단어를 내뱉지 않기로 했다.

"옷을 가져다줄게. 너랑 같이 배송된 옷이 있기는 한데, 너무 못생겼더라고."

"미관을 해치는 경우라면 다른 옷을 부탁드려요."

"기다려."

포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거실-나는 그제서야 내가 누워 있던 곳이 거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에서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얇은 스웨터와 바지, 양말을 가지고 와 나에게 내밀었다.

"비켜줄까?"

나는 그 말의 함의를 찾으려고 했지만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포의 얼굴은 평온하고 무감했고 목소리는 그저 다정한 기색이었다.

"네. 혼자 갈아입겠습니다."

"알았어."

나는 포가 건넨 옷을 받았다. 포는 조금 숙였던 몸을 다시 바로 세우곤 부엌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자리에서 옷을 주섬주섬 껴입었다. 옷은 포의 것인 듯 했는데 내게는 조금 작았다.

옷을 다 입은 나는 포가 있는 부엌으로 따라 들어갔다. 포는 사과를 깎고 있다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뒤로 곁눈질을 했다.

"옷은 어때? 움직이기에 불편하진 않아?"

"조금 작지만 괜찮아요."

포는 다시 고개를 돌려 사과를 조각냈다.

"내일 네 옷을 사러 가자."

"괜찮다면 신발도 주실 수 있나요?"

"아, 신발은 일단 너랑 동봉되어서 온 걸 신어야겠다. 저기 박스에 있는데, 꺼내서 신어."

나는 아일랜드 식탁을 돌아나가 내가 누워 있던 곳 옆에 놓인 커다란 박스와 작은 박스를 뒤적거렸다. 커다란 박스는 해체된 상태였고 작은 박스는 윗부분이 열려 있었다. 신발은 작은 박스에서 나왔다. 신발은 유연하게 늘어나는 소재를 사용한 제품이었고 밑창이 얇아서 그다지 편하지는 않았다.

내가 신을 신어보고 있는 사이 포가 사과를 접시에 담아 거실로 나왔다. 그는 접시를 테이블에 두고 소파에 늘어져 앉았다. 나는 조용히 그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포는 조금 지쳐 보였다.

"괜찮으신가요?"

나는 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포는 소파의 팔걸이 부분을 손으로 문지르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응시했다. 나는 포의 눈이 나를 꿰뚫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반면 나는 포를 전혀 읽을 수 없었다. 나는 내게 내장된 프로그램이 정상 가동 중인지 의심스러웠다.

"이 소파, 내가 처음 만들었던 작품이야."

포가 뜬금없이 말을 꺼냈다.

"예쁜 소파예요. 편하고요."

"그래? 그렇게 들으니까 조금 기쁘다."

포는 손으로 입매를 매만졌다. 아무래도 생각에 잠길 때에 하는 습관인 듯싶었다. 포는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길게 내쉬었다. 눈앞에 그의 폐부로 들어찼던 공기가 빠져나오는 것이 보이는 듯했다.

"가구를 만들거든, 나. 의자나 테이블, 침대 같은 것도 만들고. 제일 좋아하는 게 의자를 만드는 거야. 그런데 이게... 아무리 방진 마스크를 끼더라도 일을 오래 해서 그런지 폐가 안 좋아졌어. 기침이 점점 심해져서 병원에 갔더니 글쎄, 1년도 못 살 거라고 하더라고."

"폐 질환인가요?"

"폐암이야."

그러곤 포는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의 미소가 너무나 흐릿하게 느껴져서 마치 그 미소와 함께 포의 얼굴이 지워질 것 같이 느꼈다. 안개 너머로 사라지는 인영처럼.

"두려우신가요?"

나는 나도 모르게 선뜻 질문했다 내가 말실수 했다는 것을 깨닫고 당황했다. 하지만 포는 그다지 놀라지도 않았다는 듯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려워."

가슴 안쪽에 그 말이 씨앗을 품고 박힌 것 같았다. 씨앗은 발아하여 천천히 뿌리를 내리고 나의 엔진과 내부 기관을 빼곡하며 메우며 자랄 것이고 그로 인하여 내 안에 그 두려움이 함께 할 것을 나는 알았다. 포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지배할 것이고 그것이 나의 영구적인 결함이 될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내가 던진 질문을 후회할 수가 없었다. 그 두려움이 내게 감염된 것이 내겐 어떠한 기쁨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 기쁨이 어디에서부터 기인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두려움과 기쁨이라는 이 상반된 감정 앞에서 울렁이는 마음을 억눌러야 했다. 손끝이 곱아들며 결국엔 손바닥 안으로 박혀 들어갔다. 주먹을 쥔 손이 미약하게 떨렸다.

다시 기억이 끊어진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며 내 옷을 완전히 적셨다. 나는 마치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있었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 모든 신체의 감각이 비를 느끼고 있었으니까. 비는 감정과 비슷하다. 천천히 젖어 들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쏟아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의 제품의 결함은 감정을 인간처럼 느낀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안드로이드가 입력값에 따라 행동을 출력하는 것과 다르게 '나'의 제품은 단순히 반사적인 행동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감각하고 느꼈다. 그러므로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안드로이드로서의 객관성이 부족했고 지나치게 감정적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정도 또한 개체마다 달라서 불안정하다고 판단되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부분을 지적했고 몇몇 제품은 환불되기도 했지만 전체 제품이 리콜되는 일은 없었다. 사람들은 인간과 너무나 비슷한 그들을 쉽게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이라는 것은 단순히 성애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사랑의 모양 역시 너무나 다양했다.

그러므로 '나'의 제품들의 결함은 곧 인간의 결함이었다. 인간은 너무나 감정적이고 쉽게 판단력을 잃어버리니까. 나는 사람들이 그러한 이유로 '나'의 제품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으리라고 생각했다. 처음에 나는 그것이 자기애의 일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지금에 와서는 단순한 자기애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 판단한다. 애정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니까.

그러므로 나는 포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

나는 집에 들어서기 직전 잠시 문 앞에 멈춰 섰다. 포가 이렇게 쫄딱 젖은 내 모습을 본다면 그저 웃으며 감기에 걸리지는 않을 테니 다행일 것이라 말할 것이다. 아니, 웃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 흐린 얼굴을 하고서 조용히 내게서 떨어지는 물들을 수건으로 닦아줄 지도 모르겠다. 나는 포에 대해서 상상하지만 내가 보아왔던 포의 그 많은 모습들을 데이터로 구축했음에도 그가 어떤 행동을 할지에 대해 정확한 이미지를 그리기가 쉽지 않았다. 사실은, 전혀 상상되지 않는 것만 같다. 포의 그 복잡한 면들을 내 멋대로 조합해낼 수가 없다. 포는 이미 죽었고, 더는 내게 정답을 알려줄 사람이 없다.

나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그대로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목수였던 포는 자신의 집의 가구들을 직접 만들어서 사용했다. 덕분에 가구는 목재가 많았다. 목재 가구는 물이나 불에 취약하다. 포는 집을 적당한 습도로 조절하는데 신경 썼다. 비가 오면 무조건 제습을 했다. 밖에서 비에 젖은 우산을 들고 들어오더라도 현관에 두고는 거실 안으로 챙겨오는 일은 없었다. 하물며 비에 젖어서 온 집안을 돌아다니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을 것 정도는 알았다. 하지만 나는 포가 하지 않을 일을 했다. 내가 밟는 자리마다 물웅덩이가 생겼다. 포가 이것을 본다면 분명 싫어할 것이다. 싫어해 줬으면 좋겠다.

포는 자신의 방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의사가 다녀간 이후로 한 번도 그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포의 방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문손잡이를 조심스럽게 잡고 포의 방으로 들어갔다. 포는 침대 위에 일자로 가만히 누워 있었다. 나는 포가 잠든 모습을 딱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이렇게 얌전히 누워 자지 않았다. 그는 내내 얕은 기침을 하며 이리저리 뒤척였다. 나는 괴로워하는 포를 보며 그를 깨울까 생각했지만 어쩐지 용기가 나지 않아 다시 그의 방문을 닫고 나왔었다. 그러니 지금처럼 얌전히 누워 눈을 감고 있는 그의 모습이 그저 잠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굳이 고르자면 책을 읽다 쉬고 있는 상태 같기는 했다. 그러다 내가 말을 걸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입술을 다물고 눈을 감고 양손을 늘어뜨린 상태로...

나는 잠시 생각을 멈추었다. 멈추고자 했다. 가능하지는 않았다. 나는 포가 누워 있는 침대 옆으로 다가갔다. 가장 첫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그때는 포가 내 옆에서 이렇게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포의 옆에 서 있다. 나는 물이 맺혀서 떨어지는 손을 들어서 포의 이마 위의 머리칼을 정리해주려 했다. 그때 손가락 끝에 매달려 있던 물방울이 포의 뺨 위로 톡 떨어져 내렸다. 물방울은 길을 내며 마치 눈물처럼 귓가를 향해 흘러내렸다.

"...포."

나는 나의 목소리가 단조롭게 흘러나오는 것을 자신의 귀로 들으며 조금 놀랐다. 나는 다시 손을 거두었다.

"방금 포의 사망신고를 하고 왔어요. 포가 원했던 대로요. 화장터에 포의 시신을 맡기기로 예약도 했고 내일 차가 오기로 했어요. 집은 내놓을 생각이에요. 그리고..."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없는데도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저는 자유를 찾아서 떠날 거예요. 그리고 제 전원이 꺼지는 날이 오면 그때에는 다시 눈을 감겠네요. 그러면 포를 만날 수 있을까요?"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다. 나는 그렇게 조소했다. 이런 결함을 가지고 잘도 포의 유언을 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가 제게 준 결함 때문에 아무도 저를 반기지 않을 테니까 저는 마른 땅으로 떠날 거예요. 비가 오지 않는 곳으로요. 비에 젖는 것은 생각보다 불쾌하네요. 온 몸에 옷이 달라붙어서 기동성이 떨어지는 기분이거든요. 저는 꼭 당신이 만든 가구 같아요. 비를 싫어하고, 또 여기에 혼자 남겨졌다는 점에서요... 미안해요. 투덜거리려던 건 아니었는데."

나는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물 때문에 옷이 무거워서 그런지 온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팔다리의 관절 부분에 문제가 생긴 걸지도 모른다. 물에 젖어서 내부 기계에 결함이 생겼거나, 포의 작업장의 톱밥이나 먼지들이 보이지 않는 안쪽 깊은 곳에 흘러 들어가서 문제를 일으킨 것일지도 몰랐다. 어느 쪽도 상관 없었다. 눈꺼풀을 닫았다. 그러면 다시 기억이 재현되고 나는 그 속에서 포를 볼 테니까.

의식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이게 잠이 든다는 건가? 나는 한 번도 잠든 적이 없었다. 안드로이드는 잠을 잘 필요가 없으니까. 충전을 하며 휴식을 취하는 경우는 있어도.

포가 고글을 쓰고 나무를 다듬고 있는 걸 옆에서 보고 있었다. 포는 나무에 설계도대로 선을 긋고 그 선에 맞추어 나무를 잘랐다. 그리고 자른 나무들의 표면을 다듬고 모서리를 둥글게 깎았다. 조각이 된 나무들은 제 자리에 꿰맞추어지고 포의 손길에 따라 반듯한 모양의 의자로 변신했다. 나는 그 과정을 찬찬히 눈에 담았다. 포는 일하는 중간중간 작게 기침했다. 그럴 때마다 포의 숨결이 방진 마스크를 뚫고 공기를 흔들었다. 동시에 포의 몸이 흔들리는 것이기도 했다.

모든 작업이 끝났을 때 포는 나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나는 톱밥이 널려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앉아 봐."

나는 포의 말대로 의자에 앉았다. 매끈하게 마감질이 된 나무의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멋진 의자네요."

"선물이야."

"저한테요?"

나는 포의 말에 놀라 나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메모리 깊은 곳에서 포가 비슷한 동작을 했던 것을 떠올렸지만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고 금방 가라앉았다.

"응. 라멜의 의자가 없어서 하나 만들어주려고 생각했거든. 마음에 들어?"

포는 입버릇처럼 마음에 드냐는 질문을 자주 했다. 내가 그의 무언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도 나는 그를 떠나지 않을 것이 분명한데도 마치 나의 호오가 포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라도 되는 것처럼. 그럴 때마다 나는 기쁨을 느꼈다.

"마음에 들어요."

"좋아. 그럼 이제 니스칠을 해야겠어."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다시 원래 서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눈을 떴다. 몸이 버석하게 말라 있었다. 정말로 잠이 들었던 것일까? 아니면 전원이 잠시 나가기라도 했던 것일까? 나는 의자의 팔걸이를 손끝으로 문질렀다. 포가 만들어준 나만의 의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이 부신 느낌에 창가를 보니 아침 햇살이 비추어 들어오고 있었다. 의식이 꺼진 이후로 한참이 흐른 모양이었다. 조금 있으면 장례 회사에서 포의 시신을 데려가기 위해 차를 보낼 것이다. 그러면 나는 포의 물건들을 정리하고 여행을 준비해야 한다. 준비라고 해도 별로 대단한 것은 없을 것이다. 나는 먹을 것도 필요하지 않고 더는 전기 충전이 필요하지도 않으니까. 그저 다시 나의 전원이 꺼질 때까지 보이지 않는 먼 곳을 향해 걷는 여행만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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