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 창작 소설

베른 단편 소설 : 주제 - 새


그 시대에는 새가 귀했다. 새만 귀한 것은 아니었고 살아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뭐든 귀하게 여겼다. 동물, 식물, 심지어는 인간까지도. 많은 종들이 사라졌다. 태어난 것들은 죽는 것이 당연한데 하나의 종이 사멸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극지방에 사는 해양 생물들이었다. 그다음으로는 밀림에 사는 동물들이 사라졌다. 밀림의 동물들은 인간에게 사냥당해 사라졌다. 사람들은 미래에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 현재에 영원히 머무를 줄로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현재가 여기에 있다는 것은 미래가 오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고 시간이 찾아온다는 의미였음에도 인간은 무지했다. 정확히 고쳐 말하자면 무지하고자 했다. 오늘을 산다는 말은 그저 편리했다.

그리고 새가 보이지 않게 된 것은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마키누엘은 그날의 일을 어제처럼 선명하게 기억했다.

여느 때처럼 먼지가 풀풀 날리는 도로를 걸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가방에는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와 책이 몇 권 들어 있었고 가방은 마르고 키만 껑충하게 컸던 마키누엘의 어깨에 걸쳐져 있기에 다소 무거웠다. 몇 번이고 가방을 추켜 올리며 고쳐 맸고 신발은 밑창이 다 해어져서 오래도록 걸으면 발바닥이 아팠다. 그런 신발을 신고 축구를 뛰고 오는 길이었어서 묵직하게 아픈 발만 계속 내려다 보며 걸었다. 도로에 널린 돌들이 발에 채였다. 하나를 축구공처럼 크게 굴려 차자 돌이 아스팔트에 부딪히며 날아갔다.

그 순간 푸드덕 하는 소리가 바로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까마귀가 전봇대에 앉아서 날갯짓을 하더니 더 높은 상공을 향해 몸을 던졌다. 까마귀는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뿌연 하늘로, 마치 추진하는 로켓처럼 날아오르더니 가장 높은 지점을 찍은 후 땅으로 강하하여 아스팔트 도로 위로 처박혔다.

마키누엘은 까마귀가 바닥에 온몸으로 부닥치는 소리를 들었다.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이었다. 뼈가 부서지고 부리가 박살이 나고 속의 내장이 터져나가는 소리. 마키누엘은 그런 소리를 처음 들은 것은 아니었다. 크고 작은 전쟁이 많은 시대였고 마키누엘은 그러한 전쟁을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달 받을 수 있는 매체에 쉽게 노출되곤 했다. 사람들의 죽음이 손안의 작은 기계 안에서 재현됐다. 총성이 울리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른다. 건물이 무너지고 그 안에서 먼지투성이가 된,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를 수 없게 된 몸들이 꺼내지고 누군가 울부짖는다. 마키누엘은 그런 것에 익숙했다. 죽음은 그다지 멀리 있지 않았다.

마키누엘은 죽은 까마귀의 사체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검은색의 깃털에 검붉은 피와 내장이 흘러나와 있었다. 까마귀가 떨어진 곳을 중심으로 아스팔트 위를 덮은 모래들이 둥근 모양새로 흩어져 있었다.

새를 땅에 묻어줄까 싶었지만 바닥에 엉긴 것을 들추어내기가 꺼림칙했다. 하지만 그곳은 마키누엘이 매일 학교를 등하교하며 지나다니는 길이었고 차들이 감속하지 않고 내달리는 도로였기 때문에 다음 날 즈음이 되면 새가 어떤 꼴이 되어 있을지는 뻔했다. 마키누엘은 죽은 새가 눌어붙은 도로를 지나다니고 싶지 않았다.

가방에서 노트를 부욱 뜯어서 한 번 접고 그 종이로 새를 땅에서 떠냈다. 까마귀는 생각보다 더 컸다. 양손으로 잡아 도로 옆의 마른 땅 위에 내려놓고 돌을 그 위에 쌓아서 돌무더기를 만들었다. 마르고 단단한 땅을 파내기는 어려웠으므로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마키누엘은 돌무더기 앞에서 잠시간 멈춰 서서 그것을 내려다 보았다. 들개가 냄새를 맡고 돌무더기를 파헤쳐 놓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지만 그 이상으로 무언가를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키누엘은 모래로 버석거리는 손을 털고 남은 먼지를 바지에 대충 슥슥 닦은 후 다시 집을 향해 걸었다.

SNS에 새들이 땅으로, 바다로, 강으로, 나무로, 도로로 떨어져서 죽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죽은 새에 대한 글은 전 세계에서 우후죽순으로 나타났다. 새들은 한 날, 한 시에 하늘로 활공했다 아래로 떨어져서 죽었다. 어떤 지역에서는 수많은 철새들이 하늘을 떼 지어 날다가 떨어져 그 군집의 추락 바로 아래에 있던 사람이 새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뉴스에 자연에 사는 새들이 멸종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새장 안의 새들은 몇 번이고 짧은 추락을 반복하다 죽었다고 했다. 펭귄들은 바다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 때문에 바다며 강이 오염되었고 땅은 그야말로 무덤이었다.

그 날 이후로 하늘에서 새를 볼 수 없었다. 새들의 집단 자살을 두고 사람들은 세상이 멸망할 징조라고 떠들어댔다. 마키누엘은 세상이 정말 멸망할지 궁금했다. 그래도 변하는 것은 없는 것 같았다. 언제나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등교 준비를 하고 학교에 가서 지루한 수업을 들었다. 들풀도 변변찮게 나는 마르고 척박한 땅 위를 공 하나를 두고 쫓아다니며 뛰는 짓을 반복했다. 안젤라 선생님은 마키누엘의 성적이 떨어지고 있는 것을 걱정했고 어머니나 아버지와 면담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밤늦게야 일을 마치고 들어와 자기 전까지 술을 마시며 티브이를 보았다. 티브이에서는 주로 오래된 영화가 송출되었고 때때로 뉴스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새들이 죽은 이후에는 뉴스가 틀어져 있는 날이 더 많았다.

"정말 새들이 다 죽은 걸까? 한 마리도 빠짐 없이?"

"사람들이 그렇다는데 그런 거겠지."

디에고가 축구화가 든 가방을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마키누엘은 그의 질문에 그날 묻어주었던 까마귀를 떠올렸다. 벼락처럼 곤두박질치던 모습이 잔상처럼 아른거렸다.

"유명한 과학자가 새 다음에도 다른 동물들이 죽을 거라고 했대. 그렇게 한 종씩 사라져서 결국에 다 죽어 없어질 거라고."

"그러면 나중엔 인간들도 죽어? 집단 자살로?"

"으음... 그건 잘 모르겠는데. 난 죽을 생각이 안 들거든."

미간을 잔뜩 찌푸린 디에고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역시 안 할 것 같아."하고 덧붙여 말했다. 마키누엘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나도." 하고 짧게 대답했다.

"새들이 왜 죽은 걸까? 진짜 멸망의 징후일까?"

"예전에도 동물들이 집단 자살하는 일들이 종종 있었대."

마키누엘이 어깨를 으쓱이며 답하자 디에고는 목 안쪽을 긁는 듯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탁탁 찼다. 마키누엘은 그 모습을 보고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고 생각했다. 디에고는 불만스러운 일이 있으면 그런 침음을 흘리곤 했다.

"하지만 전부 죽은 건 아니었잖아. 지금은 새가 멸종했고 말이야."

"그래서?"

"완전 성질이 다른 일이라는 거지. 원인이 있어서 집단 폐사하는 거랑 갑자기 한 종의 동물이 이유 없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건 다르다고."

그 말에 마키누엘은 어쩐지 발끈하는 기분이 들었다. 마키누엘은 디에고에게 그가 보았던 죽은 까마귀에 대해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 처참한 광경에 대해서 떠들어대고 죽은 까마귀가 묻힌 돌무더기 앞으로 디에고를 데려가 돌무더기를 파헤치고 그 안에서 부패하고 있을 새를 꺼내어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죽음을 봤다고, 아무것도 제대로 본 적 없는 너는 내 앞에서 그렇게 내놓듯 말할 수 없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건 호승심이기도 했고 삶과 죽음의 본연적 질서를 목도한 사람 특유의 흥분이기도 했다. 전쟁이나 폭력의 처참함을 절절하게 느끼면서도 그 힘을 손에 쥐거나 가까이서 느꼈을 때 얻는 유치한 격양과도 비슷했다. 마키누엘은 그런 들끓는 감정을 천천히 억누르며 부러 느리게 말을 꺼냈다.

"멸종도 처음 있는 일이 아니야. 벨루가나 북극여우가 없어진 것도 얼마 되지 않은 일인 걸."

그것에 대해서는 디에고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교과목에서부터 멸종위기종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고 매년 새로운 종이 멸종해서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벨루가나 북극여우 뿐만 아니라 판다, 벵갈 호랑이, 고래상어 같은 동물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동물원은 멸종위기종의 보호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희귀종의 동물들을 전시했고 사람들은 귀엽고 희귀한 동물들을 보러 동물원에 갔다. 동물들은 철창 안에서 죽어갔다. 느린 죽음이 아니었다. 그 종 전체를 보았을 때 그들의 죽음은 순식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멸종한 동물은 매년 교과서를 개편하면서 종이 추가되었다. 한 종이 사라질 때마다 사람들은 탄식했지만 그 탄식 역시 길지 않았다. 다음, 그리고 그다음의 죽음을 맞이하며 사람들은 죽음에 익숙해져 갔다.

"레오가 기르는 새도 죽었대."

디에고가 문득 떠오른 양 입을 열었다.

"무슨 새였는데?"

"앵무새. 이상한 소리가 나서 봤더니 새장 안에서 곤죽이 되어선 죽어 있었다더라."

"아끼는 새였대?"

"그냥 밥이나 주는 정도였을 걸. 새가 죽은 걸 엄청 대단한 일인 것처럼 자랑하던데? 아끼는 새였으면 그런 식으론 말하지 않았겠지."

디에고가 코웃음을 치며 발치의 돌을 멀리 차버렸다. 마키누엘은 그 돌이 멀찍이 날아가 앞에 세워져 있던 번지르르한 차에 부딪히는 것을 보고 빠른 걸음으로 걸으며 차를 지나쳤다. 차 안에서 수염이 뾰족하게 자란 남자가 험악한 얼굴을 하고 내렸다. 디에고는 마키누엘의 옆에서 걷다가 남자를 보곤 도망치기 시작했다.

남자가 욕설을 지껄이며 위협적으로 다가왔고 마키누엘은 집을 향해 달렸다. 남자의 목소리가 멀어지고서야 집의 현관문 앞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디에고도 남자도 없었고 다른 사람들도 없었다. 마치 지구 상에서 모든 생물들이 사라진 것 같은 풍경이었다. 언제나와 같았지만 언제나처럼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키누엘이 대학 진학을 걱정할 즈음에는 북극곰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고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대형 물류센터의 운전사로 취직했을 때에는 코알라와 사막여우가 사라졌다.

밀림은 이제는 밀림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아졌다. 그런 작은 밀림 안에서 내전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전쟁 중에 많은 동물들이 숲에서 쫓겨났고 죽었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인간은 숲을 빼앗았고 그 안팎에서 서로를 죽이고 죽었다.

마키누엘은 일주일에 한 번, 쉬는 날에도 운전 아르바이트를 했다. 마을에서 몇 시간을 운전해 나가면 나오는, 이제는 그저 숲이라고 할 수 있을 면적의 밀림에 있는 용병들에게 무기와 먹을 것을 전달하는 일이었다. 일이 위험한 만큼 보수도 두둑했기 때문에 마키누엘은 그 일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이른 새벽 3시경, 마키누엘은 트럭을 몰고 물자를 실으러 사막 가운데에 숨겨진 굴의 입구로 향했다. 물자는 어디에서 오는지는 몰라도 항상 그 굴 안의 창고에서 마키누엘의 트럭으로 옮겨졌다.

마키누엘이 모는 트럭이 굴 앞에 도착하자 체격이 좋은 초소병이 트럭을 멈춰 세웠다. 마키누엘의 얼굴과 신원을 확인한 초소병이 트럭을 통과 시켰다. 트럭은 창고 앞에 세워졌다. 마키누엘은 트럭에서 내려 담당자에게 눈인사를 했다. 말을 나누는 일은 없었다. 모든 것은 침묵 속에서 이루어졌다. 담당자와 마키누엘은 나무 상자에 담긴 보급품을 트럭에 쌓아 올리고 단단히 고정한 후 커다란 포로 덮어서 그것 역시 트럭에 고정시켰다. 담당자가 인계를 완료했다고 어디론가 전화를 했고 출발 신호가 떨어지면 마키누엘은 다시 트럭에 올라 타서 물자를 싣고 밀림으로 향했다. 사막에서 밀림까지는 2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마키누엘은 사막의 모래를 가르며 밤새 달렸다. 그러고 나면 동이 틀 무렵이 되었다. 너른 지평선 너머로 해가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해가 뜨면 마키누엘은 서서히 등줄기를 타고 긴장이 서리는 것을 느꼈다. 낮은 밤보다 위험했다. 밤에 은신하고 있던 위협들이 낮에는 형형한 눈을 하고서 마키누엘을 쫓았다. 마키누엘은 그것들에게서 벗어나려는 듯이 달리고 또 달려야 했다.

멀리서 숲의 끝자락이 보였다. 아직은 총성이 울리지 않는 아침이었다. 먼지를 풀풀 날리는 사막을 뒤로하고 트럭이 숲의 입구로 들어서자 차갑게 식은 눅눅한 공기가 차창에 달라붙었다. 와이퍼가 차의 앞 유리에 들러붙은 모래를 닦아내고 나면 음산한 초록색의 숲이 더욱 선명해졌다.

마키누엘은 어려서부터 사막 인근 마을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이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숲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그가 상상하던 숲은 생명력이 넘치는, 아직은 인간의 손이 완전히 닿지 않은 미지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마주한 숲은 미지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두려움의 현형이었다. 숲에서는 죽음의 냄새가 났다. 생명이 시들고 부패하며 동시에 다시 태어나고 다시 죽어갔다. 그리고 그 자연의 거대한 이치를 뛰어넘어서 인간의 손으로 자행되는 죽음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마키누엘은 그 죽음에 두려움과 함께 죄책감을 느꼈다. 이 전쟁에 공조하고 있다는 데에서 오는 죄의식이었다. 그가 실어 나른 음식이 용병들을 먹이고 그 용병들은 마키누엘이 실어 나른 총기로 사람을 죽였다. 내전은 몇 년째 끝이 나지 않았고 마키누엘이 이 전쟁의 소용돌이 겉자락에 휩쓸리게 된 것은 아직 1년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키누엘은 많은 목숨이 자신의 발치에 떨어져 내리고 있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가 일을 멈출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번 크게 심호흡을 하고 숲의 깊은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흙길을 느리게 달렸다. 숲은 적막했다. 많은 생명들이 그 숲 안에서 숨을 죽이고 몸을 감춘 채로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었으므로 그 적막은 거짓이었다. 마키누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트럭이 내는 소음 뒤로 숨어든 조용한 공기는 아무리 해도 적응이 되질 않았다.

느리게 한참이라고 느껴지는 시간을 들어가다 보면 길이 끊어지는 곳이 나왔다. 마키누엘은 그곳에 차를 세웠다. 왼쪽에서 군복을 입고 무장한 군인이 나와 총을 마키누엘을 향해 들이댔다. 군인은 "창문 내려." 하고 그에게 명령했고 마키누엘은 그 명령에 따라 창문을 내리고 양손을 들어 보였다.

"암호."

"짖지 않는 개."

"내려."

군인이 몸을 뒤로 물렸다. 마키누엘은 차에서 내려 트럭의 뒤로 향했다. 그 사이에도 군인의 총 끝은 마키누엘을 향하고 있었다. 마키누엘은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신중한 동작으로 트럭 뒤를 덮은 포를 걷어내고 트럭에 실었던 나무 상자를 하나씩 내렸다. 나무 상자는 총 7개로 모든 상자의 크기가 같고 안의 내용물은 보이지 않았다. 마키누엘은 그 내용물이 무엇이냐고 물어볼 정도로 어리숙한 사람은 아니었고 그 내용물이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멍청한 사람도 아니었다.

군인은 상자의 수를 눈으로 세더니 수신호를 했고 숲 안에서 무장한 군인 2명이 나와 상자를 옮기기 시작했다. 마키누엘은 돌아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트럭 옆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상자 중 하나에서 무언가 둔탁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쇠나 플라스틱이 나무에 부딪히는 소리는 아니었다. 마키누엘은 본능적으로 그것이 살아 있는 생물이 내는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가 궁금증이 덕지덕지 붙은 눈으로 상자를 좇자 총구를 들이밀고 있던 군인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들었지?"

마키누엘은 그 질문이 자신을 향한 것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리지 못하고 잠시 침묵하다 조금 늦게서야 당황하고 말았다.

"아, 내용물에 대해선 저도 듣지 못했습니다."

군인은 미심쩍은 얼굴을 하고 상자를 옮기려던 군인을 멈췄다. 상자가 바닥으로 다시 내려가자 안에서 한 번 더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열어 봐."

군인이 상자를 옮기던 군인에게 명령했다. 명령을 받은 군인은 나무 상자의 위 뚜껑을 뜯어냈다. 그는 안을 들여다보고 "아!" 하는 탄식을 흘렸다.

"뭐지?"

그 순간 상자 안에서 하얀 앵무새가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날아 올랐다. 상자를 옮기던 군인들도, 명령을 하던 군인도, 마키누엘도 모두 숲 속으로 날아가는 앵무새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새는 모두 멸종한 게...."

군인이 중얼거리는 중간 총성이 울렸다. 마키누엘은 숲속으로 사라진 앵무새를 시선에서 놓치고 말았다. 그가 주변을 돌아보았을 때에는 이미 군인 세 명은 모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마키누엘은 세 사람의 시신을 보며 죽은 까마귀를 떠올렸다. 세상에서 모든 새들이 사라진 날, 까마귀가 하늘에서 떨어져 죽은 그날로 새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키누엘은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의 종말은 이렇게 찾아온다는 것을. 새들이 한날한시에 죽은 것처럼 인간 역시 멸종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마키누엘은 그 종말에 자신의 책임이 있었을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다시 한번 총성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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