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完)
이구아수가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그리드 086의 숙소였다. 이미 많은 일이 지나간 뒤였다. 들개는 단신으로 바스큘러 플랜트를 모조리 박살낸 뒤였고, 레드 건은 루비콘 행성 내의 발람 본사 직원들을 모조리 찍어누르고서 부대 째 발람에게서 독립했다. 그 뒤에는 오버시어와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을 터였다.
종막이 성큼 다가와있었다.
이구아수와 레이븐은 대심도의 입구로 향했다. 그곳에는 선객이 있었다. 해방 전선의 정신적 지주. 섬 돌마얀. 그는 심도 안쪽으로 모여드는 코랄의 붉은 빛무리를 눈에 담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이네요. 이걸로 더 이상 당신들은 저와 교신하지 못하겠죠.”
에어가 말했다. 모든 코랄, 그것은 구세대형 강화 인간의 시술에 사용되어 그들의 뇌에 함께 뒤섞인 것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보이지 않아도 알았다. 에어는 그들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이구아수, 그리고, 레이븐… 안녕히.”
그 말로 끝이었다. 뇌 속에서 무언가가 영영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이명이 멈춘다. 그리고,
“욱—, 커헉, 흑,”
얼굴에 나 있는 모든 구멍으로 코랄이 새어나왔다. 피비린내 같은 것이 입 안에 선하다. 한바탕 기침을 하며 그것들을 토해낸 후에야 비로소 코랄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구아수는 들개 쪽을 흘끗 보았다. 놈은 붕대 아래로 새어나오는 코랄들을 손에 받고서, 그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에서 흘러나오는 코랄이 붉은 눈물같았다. 그의 손에 놓인 코랄은 순식간에 기화하여 바람결처럼 날렸다. 붉은 빛무리들이 심도 아래로 침잠한다. 얼마 가지 않아, 코랄의 붉은 빛은 땅 위와 하늘,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고, 회색빛 하늘만이 보였다. 얼마 가지 않아, 땅 밑에서는 굉음이 울렸다. 빙원에서 벗어나야 할 시간이었다.
에어와 모든 코랄들은 루비콘 기술연구도시가 있던 지하에서 살기로 합의했고, 그대로 이행했다. 더 이상 빙원에 지하로 통하는 입구는 없었다. 워치 포인트를 모조리 박살낸 여파로 간신히 퍼 올리던 루비콘의 우물은 말랐다. 코랄이 영영 없어졌기에, 봉쇄는 조만간 끝을 보이고 식량의 보급은 레드 건과 오버시어가 맡아줄 것이었다. 코랄이 더이상 없기에 이런 얼어붙은 행성에 붙어있을 이유가 없어 떠나는 이들도 많았다. 그 혼란 속에서, 수부 돌마얀은 말한다.
“코랄이여, 루비콘의 안에 있을지니. 코랄은 더이상 우리와 함께하지 않지만, 그들은 사라짐으로써 루비콘이 더이상 성외의 위협에 시달리지 않게 했다. 그들의 희생에 경의를.”
그들이 약속한 문장이었다. 코랄이 사라지며 초래할 혼란과 다가올 평화. 그것을 해방 전선의 수부가 공표하게 만들었다. 코랄이 정확히 어떻게 되었는가, 그것은 다른 이들에게 설명할 수 없었다. 설명해서는 안 됐다. 그저 모두 불타 사라졌다고 생각되는 게 더 안전할 것이었다. 행성 봉쇄 기구도, 외성 기업도 모두 속이기 위해서. 그랬기에 그들도 루비콘에 언제고 머무를 수는 없다. 워치 포인트에 불을 붙이고 다닌 미친놈에 대한 이야기는 공공연했다.
워치 포인트가 전부 파괴된 탓에 코랄이 전부 불타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대기권에 잔류하던 코랄들의 이동이 전국적으로 이루어졌기에, 그 흐름을 기억하고 여전히 코랄을 종교화하는 이들은 존재했다. 수부의 성명 이후 루비코니언의 해방 전선은 와해되었다. 그 자리엔 루비코니언 정부라는 새로운 단체가 설립되었다. 그 자리에 추대된 인사들은 아마 이전과 비슷할 터였다. 더이상의 도저도 없었다. 더 이상 그들의 뇌내에도 코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일련의 모든 일을 끝마친 뒤. 이구아수와 레이븐, 둘은 루비콘 성계에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워치 포인트가 있던 자리를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그들은 강화 인간인 채였다. 코랄로 활성화되었던 감각은 이전보다 무뎌지긴 했으나, 몸에 강제로 심겨진 의체와 부속품은 그대로였다. 다만 뇌 심부 코랄 디바이스나, 그로 인한 빌어먹을 이명은 이젠 없을 것이었다. 이구아수는 들개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붕대로 감겨 얼굴은 알아볼 수 없다. 다만 눈빛은 이전과는 조금 달리 보였다. 이명이 사라진 지금. 침묵을 깨고, 그가 물었다.
"야, 들개. 이 결말은 마음에 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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