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화]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샘이 숨겨져 있기 때문

그렇다면 바다가 아름다운 것은

쿠죠 죠타로는 가끔,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간다. 금어기가 되어 어선이 쓸모가 없어졌을 때에 그는 어부에게서 배 한 척을 빌린다. 죽으러 가는 건 아니지? 늙은 어부가 그리 말하면 죠타로는, 나는 빌린 것은 반드시 갚는다, 고 말하며 작은 배의 시동을 건다. 날씨는 쾌청. 바람도 잔잔하다. 그런 날만을 골라 배를 빌린다. 가끔 그는 참을 수 없이 무언가를 욕망하게 될 때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사람인지,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서 그는 무작정 바다로 나가는 것이다. 바다는 모든 곳으로 통하는 통로니까.

그렇지만 배를 타고 나가서 하는 일은 별로 없다. 강렬하게 번쩍이는 햇볕에 눈이 상하지 않도록 선글라스를 쓰고 저멀리 수평선을 바라보거나 수면 위로 펄쩍 뛰어오르는 물고기를 구경한다. 낚싯대를 드리우다가 운 좋게 - 물고기에게는 운 나쁘게 - 잡은 물고기는 바닷물로 간을 해서 구워먹는다. 욕망하는 것을 찾기 위한 여정이라고는 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그래도 바다에 오면 언젠가는 찾게 될 것이란 기분이 든다. 죠타로의 그런 막연한 추측은 그가 바다에 나선지 열 번이 넘어갔을 무렵 실현되었다.

유독 습기가 강해 땀조차 마르지 않고 끈적하게 흐르던 날이었다. 하늘은 맑지만 어째선지 햇볕이 밝지는 않아서 변덕스러운 바다 날씨를 피해 이만 돌아갈까 생각했었다. 육지는 인류의 땅일지 몰라도 바다는 아직 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구역이기에 기상청도 믿을 수 없는 곳이니까. 그렇게 키를 돌리려는 순간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핸드폰조차 배를 빌린 담보로 어부에게 맡겼는데, 바다 한가운데에서 노랫소리가 들릴 리가 없었다. 귀신을 믿지 않는 죠타로지만 인간의 뇌로 이해할 수 없는 비논리적인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 그게 누구든 공포와 당황스러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어부가 놓고 간 라디오일지도 모른다며 애써 무시하려는데,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라디오는 스스로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다. 스스로 움직이는 무언가가 노랫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서 이 비상식적인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날 보러 오라는 듯. 죠타로는 바다에 오래 있던 이들이 갑자기 바다로 뛰어드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구조된 후,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는 증언을 똑같이 했다는 것도. 어쩌면 그들도… 이 소리를 듣고 확인하러 간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더더욱 키를 돌려 육지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도 손은 저절로 키에서 떨어졌다. 살짝만 확인하는 거다. 선실에서 나가지 않고 고개만 빼서 그 방향을 보는 거다. 별 거 아니란 걸 확인하면 이 공포심은 사라지고 겨우 이런 것에 겁먹었냐며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죠타로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 노래가 들려오는 곳을 향했다.

그것은 낯선 생물이었다. 매끈하고 흰 피부에, 머리에만 붉은 털이 길게 나 있었다. 기이한 색을 띈 눈은 두 개였고 코가 필요 이상으로 툭 튀어나와 있는데다 입 안에는 육식동물의 송곳니와 초식동물의 어금니가 혼재했다. 이 모든 정보를 조합한 뒤에야 죠타로는 이 생물이 무엇인지 결론내릴 수 있었다. 인간이었다.

사람이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그것도 맨몸으로. 죠타로가 나온 바다는 이미 사람이 육지에서부터 헤엄쳐서 나올 만한 거리가 아니었다. 차라리 조난당한 사람이 여기까지 떠내려왔다는 게 더 그럴싸했다. 그러나 지금 그가 보고 있는 ‘사람’은 오랫동안 차가운 바닷물에 노출된 사람이라기엔 너무나도 건강해 보였고, 무엇보다…….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직접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던 죠타로는 판단을 그만두고 일단 바다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로 했다. 사연은 나중에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죠타로가 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손을 뻗자 그는 노래를 멈추고 죠타로의 손을 피하는 기색을 보였다. 구조를 원치 않는 건가? 당황한 죠타로가 다시 팔을 뻗어도 그는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몇 번 실랑이가 오간 뒤에야 그는 입을 열었다.

“구하려 하지 말아요. 나는 인어니까.”

인어. 물을 벗어날 수 없는 물고기의 몸을 가졌으면서 인간의 말을 이해하고 구사하는 생물. 노래를 불러 선원들을 바다에 빠뜨린다는 전설 속의 생물. 하지만 이 인어가 죠타로를 바다에 빠뜨리려면 얼마든지 기회가 있었다. 그가 팔을 뻗을 때 잡아채서 바다에 끌고 가기만 하면 되니까. 그래도 인어는 보랏빛 눈으로 죠타로를 올려다보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전설에 대해 죠타로가 묻자 인어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죠타로는 한숨을 쉬고 뱃전에 걸터앉았다. 이 인어가 노래를 불렀다면 바다 한가운데에서 노랫소리가 들린 것도,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 것도, 사람의 모습을 한 생물이 이 깊은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것도 말이 됐다. 그가 눈앞에 있는 이 인어의 존재를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모든 비논리는 해결되는 것이었다. 한숨을 한 번 더 쉰 죠타로가 흥미로운 듯, 인어는 배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헤엄쳤다.

“…왜 혼자 있지?”

골머리를 앓던 죠타로가 겨우 꺼낸 첫 마디였다. 상대가 사람이든 진짜 인어든 판단하지 않으려 하는 의도가 담긴 질문이었다. 인어는 그런 의도를 알아챈 건지 뭔지 꺄르르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쭉 혼자였어요.”

“지금은 아닌가?”

“네가 있으니까.”

인어의 긴 머리카락이 바닷물에 젖어 피부에 달라붙은 것을 떼어주며 죠타로는 생각했다. 이 인어를 발견한 뒤부터 심장이 편해졌다고. 그 날은 해가 지기 전에 배를 돌렸지만 노을을 등진 인어의 그림자를 보며 죠타로는 스스로가 다시 이 곳에 돌아올 것임을, 그리고 인어 또한 그러할 것임을 알았다.

육지의 일상은 여전했다. 이젠 욕망의 대상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 심장의 조임이 더 심해졌다는 것을 빼면. 인어의 상반신은 남성체였기에 죠타로는 자신이 수컷 인어를 욕망하는 것인지 고민했다. 그리고 고민이 끝나기도 전에 인어를 찾으러 바다에 가고, 육지에 돌아와서 또 고민하고. 이것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 동안 죠타로는 인어의 이름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며 아주 오랫동안 혼자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고 인어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카쿄인 노리아키.”

“그게 무슨 뜻인데?”

“꽃이…….”

“꽃이 뭔데?”

“육지에서 자라는 산호 같은 거야.”

파도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웃는 카쿄인은 정말 아름다웠다. 아, 그렇지만 욕망이란 어째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더 커지기만 하는지! 인어와 지낸 시간이 한 달을 넘기면서 죠타로는 점점 육지에 돌아가는 시간을 늦추었다. 날씨가 조금 안 좋아도 감안하고 배를 빌렸고 용돈을 모아 금어기가 아닐 때에도 어부의 배를 빌렸다. 지폐의 수를 세던 늙은 어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형씨, 죽으러 가는 건 아니지? 죠타로가 답했다. 친구가 기다리고 있으니 죽을 수는 없다고. 그의 얼굴은 기쁨과 행복, 욕망, 욕심, 기대… 이런 것들로 물들어 있었다.

한 번은 죠타로가 물었다. 네 하반신을 본 적이 없다고. 너의 인간적인 모습은 본 적 있지만 바다생물 같은 모습은 본 적이 없다고 하자 카쿄인은 조금 머뭇거리며 답했다. 꼬리를 다른 종족에게 보이면 자살해야 하는 풍습이 있다고. 푸른 바닷물에 잠긴 카쿄인의 하반신은 어렴풋이 실루엣만 보일 뿐인 것이 죠타로에게 있어선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그래도 그는 똑똑한 사람이라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겨우 욕망하던 것을 얻었는데, 꼬리 하나 보자고 평생 카쿄인을 그리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생각을 곧이 말하자 카쿄인은 또 웃었다.

죠타로와 카쿄인의 관계는 날이 갈수록 가까워졌다. 죠타로는 이제 배를 빌리기보다 아예 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배 주인인 어부도 상당히 늙었다. 여생을 고기잡이만 하며 보낼 수는 없을테다. 그러면 어부의 노후를 책임질 만한 금액으로 배를 사버리면 되는 거 아닐까? 그러다 문득, 자신이 꽤 카쿄인에게 빠져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확실히 그랬다. 그는 카쿄인과 어떻게 해서든 더 오래 있고 싶었고 가능하다면 그를 육지로 데려오거나 자신이 바다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싶었다. 그리고, 카쿄인과 입맞추며 사랑하고 싶었다. 꼬리를 보이면 안 되는 풍습 따위 좆까라지. 다른 인어들에게서 카쿄인을 떼어놓으면 될 일 아닌가? 풍습이란 건 혼자 있을 때는 의미 없어지는 것이니까. 죠타로는 그럴 의지가 있었고 그럴 만한 능력이 됐다. 평생 카쿄인을 다른 인어와 세상 그 어떤 것에게서도 지켜줄 수 있었다. 그러고 싶었다! 눈을 감은 죠타로는 날이 밝으면 카쿄인에게 이 생각을 전하기로 마음먹었다.

남자는 사람의 형태를 한 것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것은 아름다운 소리로 웃었다. 그것은 배에 가까이 다가가 남자를 끌어안았다. 남자도 마주안아 주었다. 남자가 탄 배의 어군탐지기가 이 아래 거대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는 것도 까맣게 모른 채로. 바다 아래 거대한 것의 머리와 몸은 따로 있으며,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은 그저 몸끝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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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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