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해양 생물에 관한 실험 보고서 초안 (폐기)

필자: 쿠죠 죠타로 박사 휘하 모브키 모브타

이 보고서는 19■■년 ■■월 ■■일 쿠죠 죠타로 박사가 국가 J 인근 바다에서 발견, 채집한 신종 생물에 대한 연구 보고서이다. 이 생물은 기존 학계에 보고된 적이 전무하며 해당 국가의 설화에도 등장하지 않는 것을 보아 신종 생물이라 간주한다.

(사진이 붙어있어야 할 곳이 거칠게 찢어져 있다.)

외형: 투명한 슬라임 형태. 이 때문에 물 속에 있는 이 생물을 육안으로 구분하기는 매우 어렵다. 스스로 몸을 절단한 뒤 다시 합체하는 모습도 보이므로 그물 같은 인공물에 걸렸을 때 이와 같은 능력을 발휘하여 빠져나오는 탓에 한 번도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이 생물의 본 형태라고 판단하는 것은 이르다. 후술할 내용처럼 이 생물은 스스로의 외형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생물이라 판단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내용이 검은 잉크로 지워져 있다.) 이에 쿠죠 박사는 자신의 잠수복에 붙어있던 이것을 생물이라 판단하고 연구실로 가지고 돌아왔다. 다음에 서술된 실험들은 생물이 들어있던 수조 앞을 지나가던 연구원에 의해 우연히 시작됐다.

-실험 01

생물은 바닷물로 채운 2mx1mx60cm 크기의 수조 안에 들어간 순간부터 수조 벽에 붙어있기만 할 뿐,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었다. 먹이 활동을 유도하기 위해 이 개체가 어떤 것을 먹이로 삼고 있을지 토론하던 상태에서, 옆에 있는 수조의 금붕어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모브키 연구원이 수조에 가까이 다가가자 개체는 자신의 외형을 같은 연구진 소속 모브나카 연구원의 모습으로 바꾸었다. 수조 속 모브나카 연구원은 연구용 백의를 입은 상태였으며 안경 또한 제대로 걸치고 있었다. 이 발견에 쿠죠 박사는 잇따른 실험을 시도했다.

-실험 02

실험 01에서의 외형 변화 이후 모브키 연구원을 수조에서 떨어뜨리자 30cm 거리를 둔 순간부터 개체는 다시 투명한 슬라임 형태로 돌아갔다. 이후 마지막 실험을 제외하고 모든 실험에는 연구원을 수조에서 떨어뜨려 개체를 원 상태로 돌리는 과정이 포함되었다.

-실험 03

모브나카 연구원이 수조에 가까이 다가가자 개체의 외형이 어깨까지 오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플레이보이 잡지 모델로 바뀌었다. 모델 모습을 한 개체는 손으로 키스를 날리는 등 유혹적인 몸짓을 해보였다.

-실험 04

모브토 연구원이 수조에 가까이 다가가자 개체의 외형이 갈색 털을 가진 대형견으로 바뀌었다. 모브토 연구원이 한동안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아 다른 연구원들이 그를 억지로 끌어냈다.

-실험 05

모브무라 연구원이 수조에 가까이 다가가자 개체의 외형이 쿠죠 죠타로 박사로 바뀌었다. 연구진 모두 수조가 깨질까 당황했으나 다행히 물만 넘칠 뿐 수조는 깨지지 않았기에 쿠죠 박사는 개체가 외형만 바꿀 뿐, 개체의 질량은 바뀌지 않는다는 가설을 세웠다.

-실험 06

이 실험이 마지막 실험으로, 이 실험 이후 후술할 이유로 인해 우리는 개체를 영영 잃었다. 다음은 실험 진행을 수기로 옮긴 것이다.

쿠죠 박사(이하 쿠죠): 이 생물이 대체 어떤 기준으로 외형을 바꾸는지 모르겠군.

모브무라 연구원: 애초에 기준이란 게 있긴 한 걸까요? 성별도, 인종도 달랐고 심지어 인간이 아닐 때도 있었잖아요.

모브키 연구원: 바다에서만 쭉 살았을 이 생물이 어떻게 본 적도 없는 육지 생물을 흉내낼 수 있단 말입니까?

모브나카 연구원: 그건 그래. 나와 쿠죠 박사님은 본 적 있으니 그렇다 쳐도…….

쿠죠: 모브토의 생각은 어떻지?

모브토 연구원: 잘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저게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흉내내는 건지, 그냥 반사적으로 흉내내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쿠죠: 흠.

(잠시 침묵)

쿠죠: 일단 나까지 실험해 보고 오늘은 마치도록 하지.

쿠죠가 수조에 가까이 다가간다. 연구진은 그것을 집중하여 지켜본다.

쿠죠가 수조 유리 벽에 손을 댄 순간 개체는 물을 빠르게 빨아들이며 외형을 바꾸기 시작한다.

잠시 후 수조에 나타난 것은 붉은 머리와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일본인 소년으로, 특이하게도 녹색 교복에 귀에는 붉은 구슬 귀걸이를 매달고 있다.

소년이 쿠죠를 보고 살며시 웃는다.

쿠죠의 반응은 좋지 않다. 얼굴에 벌겋게 열이 오른 채 주먹을 꾹 쥔다. 화난 반응이다. ←화났다기보다 놀란 것 같지 않았나? ←난 흥분한 것 같았는데.

직후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수조가 반파되고 깨진 수조 사이로 공기가 유입되면서 개체는 원래대로 돌아간다.

작아진 개체가 수조의 깨진 틈으로 흘러나와 연구실 바닥에 철썩 떨어진다.

개체가 투명한 탓에 모두 개체를 밟지 않기 위해 움직이지 못한다.

오직 쿠죠만이 커다란 보폭으로 성큼성큼 연구실을 나선다.

30분 뒤 모브토 연구원이 발견한 개체는 비쩍 말라 죽어 있었다. (이 아래부터는 보고서가 찢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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