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없으면 망하는 게임 01.

원부 / 퇴고x 주기적으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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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단순한 변덕이었다.

길드원의 외치기는 컨텐츠를 제공해준다는 말에 꺼놨던 설정을 킨 것도, 평소 좋아하지 않는 원색적인 표현이 섞인 채팅들을 천천히 읽어내린 것도. 정말 오랜만에 끝의 끝까지 할 일을 박박 끌어다 전부 끝내버린 탓에 할 게 없어서 생긴 변덕. 단순한 심경의 변화. 원우는 다 마신 몬스터 캔을 찌그러트리며 화면을 응시했다.

[외치기] 해발아기(레그2): 뭔닉이다잇대<< ㅋㅋ한입충개날먹수준

[외치기] 건전한닉06(레그2): 저렙존 한입은 괜찮을줄아네 그래놓고 입터는거 수준보이죠?

[외치기] 미케케케코(미트레인1): 아몬드가 죽으면? 다이아몬드 엌ㅋㅋ

[외치기] 뭔닉이다잇대(카릭스1): 제가 한입을 한 게 아니라 선생님들이 강하셔서 필드가 쓸린 거잖아요

[외치기] llIIlIIlIl(리트란2): 10강화석 2 / 11강화석 4 팝니다 일괄환영 귓@@@@

[외치기] 파파야자수(미트레인3): 얘들아외치기로작작싸우고니들끼리해결해라 안궁금하니까

[외치기] llIIlIIlIl(리트란2): 아니 상식적으로 2억 4억이겠냐고ㅋㅋ; 2개 4개임 가격은 시세맞춤ㅇㅇ;;

늘 그랬듯 개판이었다. 근 몇달만에 켜 보는 외치기라 감회가 좀 새로웠을지도 모르겠다. 살만한 건 전부 샀고, 맞춰야 하는 것은 다 맞춘 상태의 엔드 유저인 원우 자신에게 장사꾼들의 채팅을 볼 필요도, 특정 희귀 매물을 구할 필요도 없으니 늘 설정에서 꺼 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짧은 상념을 떨쳐내고는 채팅에 집중했다. 상황을 보아하니 레벨대가 낮은 던전에서 추방이 뜨고 시비가 붙은 모양이었다. 캐릭터간의 성능 차이나 스킬의 범위 차이는 유구하게 말이 나오는 부분이고, 이에 따른 유저들의 불만은 언제나 포화 상태였기 때문에 사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애시당초 밸런스망겜에 뭘 바라냐고 포기한 사람도 많았으니까. 회사가 알아서 잘 하면 되는 부분이라지만….

…근데 어지간하면 낮은 레벨대에선 추방 떠도 넘어가지 않나. 암묵적으로 뉴비겠거니 하고 넘어가는 느낌 아니었나? 원우가 그렇게 생각하며 새로운 몬스터 캔을 따는 순간이었다.

[외치기] 건전한닉06(레그2): 그럼 홀슈들고 추방띄우는게 정상이냐? 걍 접어라ㅋㅋ

[외치기] 해발아기(레그2): 치킨집이 말이 많네 ㅋㅋ ㄹㅇ 혐모기 그자체

…홀슈는 좀 그렇긴 하지. 원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홀슈는 자신 또한 랜덤 매칭에서 자주 만났고, 50%라는 확률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사람이 걸리곤 했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멸칭을 쓰는 게 보기 좋다는 뜻은 아니지만. 입이 써진 원우는 괜히 입맛만 다셨다.

홀슈가 무엇이냐면, 특정 직업의 이름이었다. 풀네임은 ‘홀리 슈프림’. 캐릭터 ‘리시아‘ 의 세번째 길이다. 신실한 사제로써, 신을 위해 마족을 잡는 고행길에 올랐다… 라는 설정의 전투 사제.

게임 ‘일루네아 사가‘ 는 일종의 평행우주론을 채택한 게임이었다. 캐릭터마다 일정 분기점의 선택에 따라 각기 다른 성장을 하고, 다른 직업이 된다. 이를테면 소중한 연인을 잃은 뒤 복수를 하느냐, 마음에 묻고 앞으로 나아가느냐… 뭐 그런 느낌의. 그러다 보니 같은 캐릭터의 다른 전직끼리 만나면 상대방이 ’또다른 나’ 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메타적인 요소를 초반에는 단순한 이스터 에그로만 쓰다 몇년쯤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스토리에도 등장했다고는 하는데…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 너무 오래됐다.

아무튼… 그 중에서도 세번째 길은 첫번째, 두번째에 비해 뒤늦게 추가된, 비교적 최근 직업인 만큼 수많은 이슈가 있었다. 뜬금없는 설정, 오묘한-단적으로 말하자면 별로인-디자인, 그림체에 맞지 않는 외주 일러스트 등등을 차치하고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괴랄한 성능에 있었다.

그중에서도 홀슈는 가장 독보적이었다.

힐과 각종 버프/디버프 스킬들까진 그렇다 쳐도, '전투‘ 사제랍시고 범위, 딜량, 시전속도까지 다 챙겼다. 전자만 보면 서포트 직업군인데, 후자의 이유로 딜까지 가능하니 포지션이 애매해졌다 이 말이다. 서포트에 묶이는 친구들은 보통 딜량이 약하기 때문에, 일반 던전이 아닌 레이드 같은 곳에서는 꼼짝없이 파티원을 보조할 수 있는 장비를 입어야만 했는데… 홀슈는 아니었다. 얜 딜이 강해서 다른 서포트 직군인 사람이 있으면 딜러 장비로 스위칭해서 그냥 딜을 하면 됐다. 그러면 어지간한 딜러만큼의 수치가 찍혔다. 그 정도였다.

그런 성능인 캐가 필드에서마저 온갖 유도기, 범위기를 시전 즉시 사용까지 하니 뭐 어떻겠는가? 몇몇 캐릭터들은 스킬을 사용하는 사이사이에 채팅을 칠 수 있을 정도의 여유를 가진 수준이기도 한 말이다. 그만큼 날먹을 하고자 하는 사람도 많았고, 사기캐라니 일단 잡고 헛짓거리를 하는 사람도 많았다. 게임에서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서포터 역할이라곤 하나도 하지 않는다거나… 그러다 보니 해당 직업군에 단순한 싫어함을 넘어서 증오를 하는 사람들 또한 제법 있었다. 게임에 과하게 몰입해서 인성까지 팔아먹은 사람들이 말이다.

당장 저 치킨집이라는 말도 슈프림이 모 프랜차이즈의 양념치킨 메뉴와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붙은 별칭이고-특정 사이트에서만 쓴다-모기라는 말도 스킬을 하도 연달아 써서 사운드가 묻혀 앵앵거린답시고 붙은 것이라-마찬가지로 특정 사이트에서만 쓴다-저흰 이 사람과 오늘 처음 만났지만 캐릭터가 이 직업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이러고 있습니다 라는 자기소개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원우는 아무리 이 게임이 좋아도 한낱 게임일 뿐인데 뭘 또 그렇게까지 하나 싶었지만, 멸칭으로 상대를 지칭하거나 조롱을 하는 사람들과는 애초에 사고방식 자체가 안 맞았기 때문에 그냥 선을 긋고 남처럼 살아왔었다.

캔을 기울이며 시선을 조금 내리니 길드 채팅이 시끌시끌했다.

[길드] 체리: 홀슈가 한입이 되나? 스킬 막 날리면 되는데

[길드] 체리: 육성때 한입할 이유도 없고 걍 뉴비 아냐? 

[길드] 1004: 뉴비라기엔 외치기로 입을 제법 잘 터는데

[길드] 체리: 흠 구경하러 가볼까

[길드] 아지: 갑자기 구경을 간다고??레이ㄷ드는

[길드] 아지: 9시출이라매

[길드] 체리: 아니 뉴비면 도와줘야 하니까

[길드] 체리: ㅡㅡ 너네도 다 뉴비때 내가 주워온건데  

[길드] 룡: 그건 글쳐

[길드] 아지: 아니

[길드] 룡: 지금 생각해보면 웃겨요 지인길드라더니

[길드] 룡: 지인된지 5초된 사람 데려와서 지인길드ㅎ

[길드] 아지: 아닞내가 뉴비팽하잔것도아니고 출2분전이니까 그러지 ^^;;

[길드] 레오: 체리형

[길드] 레오: 정수 어케 만듬?

[길드] 체리: 아 그거 

[길드] 체리: 전문직업 연금 맞음? 본캐보다는 부캐로 하는 게 나을텐데

[길드] 레오: 오 그런가

외치기 못지않게 개판이었다. 정확하겐 사람이 많으니 말이 꼬인다, 가 맞겠다. 지인의 지인만 은밀하게 받아왔는데도 어느 새인가 12명이 되어버린 동접 수는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이 정도면 소규모는 아니고 제법 중견 길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원우는 자신이 이전에 속했던 길드에 30명 정도가 있었던 것은 기억 저편에 묻어 버리며 이를 제법 뿌듯하게 여겼다. 나름 초대 길드원인 만큼 당연한 마음이었다.

[외치기] 해발아기(레그2): 뭔닉이다잇대<< ㄷㄷ예의바른척 입터는거 킹받네ㅋㅋㅋㅋ

[외치기] 뭔닉이다잇대(카릭스1): 아니 찾아오지 마세요 귓도 그만 주세요 ㅠㅠ 죄송해요

[외치기] 건전한닉06(레그2): 저는 모기고 님들 피 빨아먹고 그돈으로 장비뽑습니당!!!

[외치기] Reilstinger(레그1): 본인 룰루로 골삼찍음ㅋㅋ ㅊㄳ ㅇㅈ?

[외치기] 미묘(미트레인1): 딴겜하지말고 우리껨이나해 폐공장 5/6 님오출@@@@@@@@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체리는 저렇게 얘기하다 뉴비(추정)에게 가지는 못 할 것 같았다. 아지의 말마따나 레이드 출발 시간이 곧이기도 했고.

자신은 이미 어제 클했으니까 상관 없는 얘기지만... 원우는 찌그러트린 캔을 매만지며 잠시 고민했다. 짧은 고민이었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엔터키를 눌러 채팅 하나를 보내고 있었다.

[길드] 전원: 내가 가볼게.

그리고 귀신같이 활발했던 길드 채팅이 얼리기라도 한 듯 멈췄다. 원우는 마시던 몬스터를 옆자리에 두곤 잠시 느긋하게 스트레칭을 했다. 삼십 분마다 한 번씩은 하는 게 좋다고, 길드 톡방에서 권장하던 탓에-건강하게 오래오래. 그게 체리가 미는 길드 표어였다-반쯤 습관이 들었다. 손목을 푸는 사이 언제 멈췄냐는 듯 다시 채팅이 우르르 올라왔다.

[길드] 룡: 와 형 접속하고 계신줄도 몰랐어요

[길드] 1004: 뭐야? 일퀘 다 돌았어? 다 돌기 전엔 딴거 안하자나

[길드] 레오: 저 형

[길드] 레오: 한 다섯시간 전부터 있었어요

[길드] 1004: 움 다하고도 남았겠군

[길드] 1004: 버스태워달라 할랬는뎅ㅎㅎ아쉽

넉살 좋게 말을 붙이는 길드원들의 모습에 웃음이 다 나왔다. 던전보다도 친목이 제일 재미있는 옷장아바타채팅게임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 했다. 웃음을 머금은 원우가 레오의 감사합니다, 라는 채팅을 마지막으로 조용해진 체리의 캐릭터를 흘끔 바라보았다. 별 말이 없는 걸 보니... 알아서 하라는 뜻이겠지?

가타부타 말을 더 얹지 않고 뭔닉이다잇대의 닉네임을 서치해 캐릭터의 현재 위치를 조회했다. 카릭스 1채... 미트레인에 있네. 바로 해당 마을로 이동한 원우는 대여섯 명의 캐릭터들 속에 해당 캐릭터가 함께 파묻혀 있음을 확인하고 슬금슬금 가까이 다가가 섰다. 조금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슬쩍 귓속말을 보냈다.

[귓속말] 전원(to 뭔닉이다잇대): 게임 혼자 하세요?

[귓속말] 뭔닉이다잇대(to 전원): 아 ♡♡나봐

그리고 돌아온 것은 필터링된 욕설이었다.

어라. 반사적으로 멈칫했다. 그야 선의로 보낸 귓이 욕으로 돌아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괜히 말 걸었나. 괜히 체리가 아닌 내가 온다고 했던가.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이어지던 길드 채팅에 자리를 쉽사리 뜨지 않았던 그를 회상한 원우가 마른침을 삼켰다. 

애초 남의 일에 쉬이 관심을 가지는 편이 아니기도 했던-특히 게임에서는 더더욱-자신이라, 뒤늦게 답지 않은 행동이었나 싶어 제 결정을 곱씹던 찰나.

[귓속말] 뭔닉이다잇대(to 전원): 제발 좀 가세요 남의 일에 관심 그만 가지시고 

[귓속말] 뭔닉이다잇대(to 전원): 어

[귓속말] 뭔닉이다잇대(to 전원): 아 죄송합니다 지금 귓이 너무 많이 와서 ㅠㅠ 잘못 보냈어요

[귓속말] 뭔닉이다잇대(to 전원): 진짜 죄송해요ㅠㅠ 

아주 약간의 텀을 두고 귓속말이 와르르 날아왔다. 원우는 그 채팅을 멍하니 바라보다 흘러내린 안경을 추켜올리곤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던전을 돌며 주운 악세란 악세는 다 입은 건지, 다소 난잡한 상태의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들 사이에서 마구마구 점프하고 있었다. 이 점프는... 미안하다는... 건가? 한참 생각하고 있자니 귓속말이 몇개 더 날아왔다.

저기, 죄송해요, 혹시 상처받으셨다면 죄송합니다... 눈만 깜빡이던 원우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그런 말에 상처받을 멘탈이라면 온라인 게임은 못 했겠죠. 그러나 좀 유쾌한 기분이 되어서, 손을 움직여 여전히 점프하고 있는-귓속말이 오기 직전엔 잠시 얌전했었다-캐릭터를 우클릭했다.

[뭔닉이다잇대 님을(를) 파티에 초대하였습니다.]

[뭔닉이다잇대 님이 파티에 가입하였습니다.]

[귓속말] 뭔닉이다잇대(to 전원): ?

초대를 받을까 싶었던 것은 괜한 걱정이었을 정도로 칼같은 수락이었다. 그러나 연달아 날아온 귓속말은 엔터를 치다가 엉겁결에 받아버린 게 분명해서, 원우는 괜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재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파티] 전원: 설정

[파티] 전원: 에서 귓속말 차단 설정 가능해요. 그거 키시면 아무도 귓속말 못 보냄.

[귓속말] 뭔닉이다잇대(to 전원): 어

나지막한 단말마와 함께 점프하던 캐릭터가 그 자리에 멈춰 서고, 잠시 조용해진 틈을 타 파티원만 보기 상태를 킨 원우가-평소에도 키는 편이었으나, 이 뉴비를 찾기 쉽도록 꺼뒀었다-순식간에 필드 위에 둘만이 남은 게임을 들여다봤다. 

던전 드랍 악세로 뒤덮인 뭔닉이다잇대의 얼굴은... 제법 동글동글했다. 그래, 동글동글했다. 머리와 눈색이 갈색이라서 그런지, 굴리면 데굴데굴 굴러갈... 초코볼처럼 생겼다. 리시아가 원래도 동그랗게 생겼긴 한데. 묘하게 더 동그란 느낌이었다. 착 붙은 헤어를 끼고 있어서 그런가….

형광색 기형 꽃 악세와 흉터, 악마 뿔 악세서리들이 상당히 기묘한 아우라를 자아내고 있었으나 저걸 다 떼어낸다면 말랑하게 생기지 않았을까? 우클릭 후 살펴보기로 끼고 있는 장비와 레벨을 확인했다. 89레벨에, 동조율이 있었다.

동조율은 일종의 서브 레벨, 같은 거였다. 100레벨을 찍고 난 뒤 열 수 있는 추가 시스템으로, 따지자면 레벨 확장과 비슷한 개념이겠으나… 이 동조율이라는 것은 만렙을 찍으라고 만들어 둔 것이 아닌지, 올리기 상당히 빡센 탓에 제아무리 높아도 4, 500대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물론 소위 말하는 게임에 영혼을 팔아넘긴 수준의 일부 유저들은 7, 800대까지도 올려 놓고도 만족을 못 하고 있지만….

아무튼. 100레벨이 캐릭터 개인 레벨이라면, 이 동조율은 계정 단위의 레벨이라 유저의 스펙과 플레이 기간을 얼추 가늠할 수 있는 척도이기도 했다. 먼닉이다잇대... 아, 너무 길어. 줄여서 먼닉은 이 동조율이 꼴랑 64였다.

그래도 완전 쌩뉴비는 아니고 다른 걸 키우긴 했다는 거네. 그렇다면 캐릭터 운용 자체가 달라서 홀슈의 기본 사이클을 이해를 못 한 상태로 89렙까지 키웠을 가능성이 있었다. 일단 뉴비임을 확인한 원우가 잠시 고민하는 사이 채팅이 빠르게 올라왔다.

[파티] 뭔닉이다잇대: 와 진짜 감사합니다 ㅠㅠ 좀 살겠어요

[파티] 뭔닉이다잇대: 너무 오랜만에 와서 하나도 모르겠어가지구

[파티] 뭔닉이다잇대: 그런김에 아무거나 골라서 새로 키워야지 싶어서 하고 있었거든요

[파티] 뭔닉이다잇대: 근데 조작이 너무 어려워서...

[파티] 뭔닉이다잇대: 아 외치기 보셨나 저 그런 거 일부러 하는 사람 아니에요 ㅠㅠ

[파티] 뭔닉이다잇대: 사실 그전까지 혼자 매칭되니까 그냥 막 돌았었는데

[파티] 뭔닉이다잇대: 들어가고 보니까 파티원이 있어서…

[파티] 뭔닉이다잇대: 물론 잘 모르는데 무작정 간 건 제 잘못이지만요 ㅜㅜ

[파티] 전원: 아니에요. 어차피 100레벨까진 스토리 던전인데 잘 모를 수도 있죠. 잘못하신 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대뜸 빈 하트를 박았던 첫 귓속말과 다르게 제법 예의 바른 채팅이었다. 띄어쓰기도 챙기고. 맞춤법도 챙기고. 게임하면서 이만한 사람 보기 힘든데. 구구절절 나오는 채팅 중 스스로를 질타하는 말에 빠르게 부정의 답을 하고는, 머릿속 길드 가입조건 표에서 뉴비와 첫인상에 동그라미 표를 친 원우가 슬쩍 질문을 건넸다.

[파티] 전원: 그런데 게임 혼자 하세요? 친구라거나 없으신가.

조건 세 번째. 지인이 아예 없을 것. 조금 더 정확하게는 케어해주는 사람이 없을 것.

그 확인을 위한 질문이었다. 없을 게 뻔했지만, 그래도 교차검증이라는 게 있지 않나. 원우는 왠지 모를 초조함을 느끼며 뭔닉의 답장을 기다렸다. 없다고 해 줬으면 좋겠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어서, 괜히 구겨놨던 몬스터 캔만 괴롭혔다. 

아니, 그치만. 동조율 올리기도 더 높이면 부캐 신상 특정되기 쉬우니 이정도면 됐다고 스탑해놨고. 레이드 졸업은 진작에 끝내서 부캐나 돌리고 있었고. 신 컨텐츠랍시고 내놓은 던전들은 그냥 체력 계수만 무지막지하게 올려놓은, 재미도 없는 곳들이라-물론 스토리에는 감동이 있었고, 새로운 npc들은 충분히 귀여웠지만 그건 다른 이야기이다-더 돌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 한 마디로 할 게 없었다.

그러면 끄고 다른 할 일을 하면 되지 않겠냐, 싶지만 그게 쉽게 되나. 몇 년 전의 건실한 대학생 전원우라면 그랬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 겸, 현실 도피 겸... 뭐 그러려고 게임 하는 건데. 그러니 뉴비 하나쯤, 오랜만에 키워보는 것도 좋은 컨텐츠가 되어주지 않을까. 절대 길드에 홀슈가 아무도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절대 홀슈의 물공뻥이 탐나서 그런 게 아니라고. 절대 며칠 전에 파티 찾기로 만난 홀슈의 시너지가 너무 좋아서 자체 딜표 갱신을 했던 것 때문은 아니다…. 원우가 그렇게 정신 승리를 하는 동안 머뭇거리던 뭔닉의 채팅이 이어 올라왔다.

[파티] 뭔닉이다잇대: 엇

[파티] 뭔닉이다잇대: 2년 전에 할 때 하던 사람들 있긴 한데… 지금 뭐 하고 사는지 모르겠어요

[파티] 뭔닉이다잇대: 그 UI 개선한 것 같던데

[파티] 뭔닉이다잇대: 친창에서 온라인 상태 확인하는 게 아예 없어졌더라고요?? 전엔 다른 캐로 접중이면

[파티] 뭔닉이다잇대: 온라인으로 떴던 거 같은데

[파티] 뭔닉이다잇대: 아무튼 그래서 주기적으로 친구 맺어놨던 캐 들어가서 한번씩 확인하고 있긴 해요

[파티] 뭔닉이다잇대: 근데 아직 마주치진 못 했어요… 캐를 아예 안 들어오는듯

[파티] 뭔닉이다잇대: 그런데 왜요?

사회성이 좋구나. 가뜩이나 시끄러운 길드 채팅을 더 시끄럽게 만들어줄 것만 같았다. 만족스러운데? 원래 자신같이 과묵한 사람에겐 이런 사람이 필요했다. 그냥 자신을 닦아줄 물공뻥 보조직군 깔… 아니, 친구를 원하는 거였으나 당장은, 그렇게 믿었다. 내 츄르가 되어줘…. 다소 피곤한 뇌가 멋대로 생각한다.

[길드] 전원: 전투력 7만 홀슈. 동조 64임. 뉴비 맞는 듯.

[길드] 전원: 친구 없는 것 같은데 데려와도 될까요?

그의 채팅에 대답하지 않고 길드에 우선적으로 의견을 구했다. 다들 선뜻 괜찮다 할 것을 알면서도 굳이 물어보는 것은 마지막 양심이었다.

자신과 엮이는 것과 더불어 이 시끄러운 길드에 정말로 그를 들여도 괜찮은지. 첨언하자면 이 괜찮은지, 는 길드에 그가 들어가도 괜찮은지… 가 아니라, 짓궂은 길드원들에게 뭔닉이라는 새로운 먹이를 주어도 괜찮은지… 라는, 스스로에게 묻는 확인. 물론 당연히 괜찮다는, 레이드에 가지 않은 길드원들의 채팅을 확인하곤 천천히 대답했다.

[파티] 전원: 별 건 아니고요. 혹시 뉴비시면 제가 도와드려도 되나 해서요.

[파티] 전원: 저희 길드도 초대해 드릴게요.

[파티] 전원: 불편하시면 친구만 해도 되는데, 길드 버프가 제법 쏠쏠해서… 있으면 좋거든요.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는지, 방금까지 600타는 되지 않을까 싶었던 속도로 채팅을 치던 뭔닉이 잠잠했다. 갑작스런 침묵에 속이 탄 원우가 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파티] 전원: 불편하시면 만렙이랑 정착까지만이라도 돕게 해 주세요.

[파티] 전원: 홀슈 운용법도 알려 드릴게요. 뉴비시니까요. 

[파티] 전원: 일루사가 이렇게까지 뉴비한테 박한 게임이 아닌데… 요즘 좀 민심이 흉흉했던 거라.

[파티] 전원: 아무튼 도와드리고 싶어요. 하다못해 아까 그 두 명을 잊을 정도만이라도….

[파티] 전원: 저희 그런 게임이 아니라는 걸 증명할 기회를 주세요. ㅠㅠ.

살면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애원하듯 말했던 적이 있었나. 나름 고심해서 채팅을 친 원우가 턱을 괴고 뭔닉이다잇대를 바라보았다. 동글동글한 캐릭터는 멀뚱히 자신-전원-의 옆에 서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딱인데. 물공 퓨어딜러 캐릭터인 자신에게, 홀슈는 너무 딱 맞는 캐릭터였다. 도와주기에도 딱 좋은 명분. 그가 아직 승낙하지 않았음에도 원우는 뭔닉과 레이드를 제패하는 상상을 했다…. 음… 새로운 컨텐츠의 맛.

얼마나 기다렸을까. 뭔닉의 캐릭터 위로 파란 말풍선이 떠올랐다.

[파티] 뭔닉이다잇대: 좋아요

[파티] 뭔닉이다잇대: 대신 이상한 거 시키거나 그러시면 바로 튈거니까 알아두세요 갑자기 길드탈퇴하는거로 뭐라하면 안 돼요

짧은 긍정 이후 꽉 낀 채팅창을 가라보던 원우는 저도 모르게 살풋 미소지었다. 됐다. 순식간에 뉴비 하나를 키울 계획이 그의 머릿속에 촘촘히 짜여지기 시작했다. 포션도 챙겨주고 투명 악세사리도 줘야지. 저 괴랄한 던전 악세들도 싹 가려지고 보기 좋은 룩템으로 하나씩 덮어줄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파티] 전원: 네 ㅎㅎ.

[파티] 전원: 이상한 거 안 시켜요. 괜찮을 거예요. 길드원들도 착해요. 잠시만요.

[귓속말] 체리(to 전원): 원우야

[귓속말] 체리(to 전원): 괜찮겠어?

가볍게 말을 덧붙인 원우가 가벼운 마음으로 길드 초대를 하기 위해 마우스에 손을 올렸을 때, 그새 레이드 던전 하나를 클리어하고 나왔는지 명백한 걱정이 담긴 체리의 귓속말이 날아왔다. 그리고 그가 무엇을 염려하는 건지 원우는, 잘 알았다. 

체리, 학교 선배였던 승철은 정이 많고 승부욕이 강해 애교로 넘어갈 수 있는 범위의 부정행위는 곧잘 저지르는 사람이지만, 그만큼 잘못된 일에는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이었다. 치트나 핵 사용에도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이였고, 그래서… 원우가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눈 앞에 온갖 말로 도배되었던 커뮤니티 창이 아른거렸다.

괜찮냐고 물으면… 무어라 대답해야 할 지 모르게 된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것은, 그 당시보다 지금의 자신은 훨씬 무뎌진 상태라는 것. 그러니까… 원우는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착실하게 손을 움직여 귓속말을 보냈다.

[귓속말] 전원(to 체리): 당연하지

[귓속말] 전원(to 체리): 괜찮아.

[귓속말] 전원(to 체리): 고마워 형

그래. 괜찮았다. 괜찮아야만 했다. 즐거워야 할 게임이었으니까…. 온점을 꼬박꼬박 붙여 채팅을 치는 버릇이 있는 원우는 다소 급하게 보낸 탓에 빼먹고 만 마지막 문장을 보았다. 그렇게 잠시, 짧은 시간을 멍하니 바라만 보다가 손을 움직였다.

[뭔닉이다잇대 님을(를) 길드에 초대하였습니다.]

[뭔닉이다잇대 님이 길드에 가입하였습니다! 새로운 길드원을 환영해 주세요.]

…아마 괜찮을 것이다. 좋은 사람인 것 같았으니까. 

그가 길드에 잘 정착하면, 11강 강화석을 다섯 개 구해다 줘야겠다. 일일 퀘스트로 장비 강화재료는 많이 쌓여있으니까 직접 만들어 줘야지…. 원우는 적금을 깨야만 하는 소비 계획과 함께 길드 아지트로 돌아갔다. 저보다 조금 먼저 이동한 뭔닉이 길드원들의 틈에 껴 환영을 받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 뭐…. 잘 지낼 것 같기도 하고. 괜히 심호흡을 한 원우가 생각했다.

이제 뭔닉은 내 물공뻥 츄르다. 다소 어긋난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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