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

넌 혹시, 난 괜히

태섭대만

비행중 by 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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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대운 신간 『결국 아무것도 알 수 없었지만』 유료 외전입니다.

  • 태섭 시점,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 전에도

네 거 사실 내가 숨겼어

빨리 가버리지 않았음 해서

그날따라 날이 좋아서

평소보다 네가 더 반짝거려서 그런 거야 미안

_LUCY, 넌 혹시 난 괜히

“미국 유학이요?”

잘못 들었나 싶어 느리게 눈을 끔뻑였다. 볼이라도 쭉 잡아 당기고 싶었지만 안 선생님과 한나 앞이라 참았다. 한나가 밝은 얼굴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래! 내년 졸업 예정자 대상으로 18개월 유학을 보내주는 프로그램이래.”

“아, 하지만 장학금이….”

안 가고 싶다면 거짓말이지. 농구의 고장인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준다는데 그걸 누가 걷어차. 하지만 내가 망설이는 이유는 금전적인 문제였다. 유학, 특히 미국 유학은 돈이 어마무지하게 든다. 어머니 외벌이로 겨우 월세를 내고 공립학교를 다니고 농구 물품을 구하는 우리 집안이 어떻게 미국 유학 비용까지 댄단 말인가. 아무리 넉넉하게 장학금을 준다고 해도 일정 부분은 우리 집이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 있을 텐데. 당장 미국에서 생활해야 하는 것도 골치가 아프다. 생활비 엄청 비싸겠지. 농구하면서 아르바이트 할 시간이 있긴 하려나. 그때는 성인이라 파트 타임으로 일을 할 수는 있을 텐데….

조금이라도 있는 집이었다면 생각하지도 않았을 일들이 발목을 잡았다. 이런 걸 생각한다는 것은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뜻 아닐까? 그러나 안 선생님은 내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다 안다는 태도로, 평소처럼 부처님 같이 인자한 미소로 말했다.

“걱정 마세요. 전액 장학금에, 환급할 필요도 없다고 하니까요.”

“네? 그게 정말이에요?”

전액에 환급할 필요도 없다니. 이 장학 재단의 이사는 부자 중의 부자인가 보다. 아니면 돈에 상관 없이 농구에 미친 사람이거나. 어쨌든 나한테는 두말 할 나위 없이 절호의 기회다. ‘그런데 왜 윤대협도 신준섭도 아닌 나지?’라는 의문은 접어두고, 태섭은 안 선생님으로부터 지원서와 이력서를 받아 반으로 돌아갔다.

복도를 걷는 내내 싱숭생숭한 기분이 전신을 감쌌다.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미국 유학을 이렇게 쉽게 받아낸 것이 얼떨떨하면서도, 농구를 더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다. 동시에 그래도 생활비는 내가 알아서 마련할 수밖에 없나, 하면서 한숨을 쉬고 싶었고, 아직 확정은 아니라면서 괜히 불안해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이 사실을 빨리 알려주고 싶었다. 저 미국에 가게 되었어요, 농구를 더 많이 배울지도 몰라요.

그런데 누구한테?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은 역시 가족이었다. 그러나 태섭은 아직 어머니에게 알릴 일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아라라면 분명 잘되었다고 칭찬하겠지만, 어머니라면 생활비를 걱정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가 그런 사람이라 속상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는 가장이고 아직까진 이 집을 책임지는 사람이니, 경제적인 것을 먼저 고민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러나 어머니의 그 걱정에 속상해질까봐 태섭은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다음으로는 현 농구부 멤버가 떠올랐다. 백호라면 분명 오버액션 수준으로 놀라면서 ‘이 천재나 여우 자식보다 먼저 미국에 가다니, 어떻게 된 거야!’하면서 순수하게 부러워하고 질투할 것이다. 서태웅 성격이라면 조용히 승부욕을 태우고 있을지도. 달재는 속없는 사람처럼 아무런 사심없이 축하의 말을 해주리라. 그 외에 다른 농구부원들도, 주장이 최고라며 떠받들어줄지 모르지.

그 외에 치수 선배와 준호 선배까지 떠올렸으나, 어째서인지 모두 금방 흩어져버리고 제일 신경 쓰려 하지 않았으면서 제일 거슬리는 사람 하나가 남았다. 그는 태섭에게 있어 뜯어도 뜯어도 금방 일어나고 마는 손톱 거스러미 같은 인간이었다. 가만히 두려고 해도 은근히 짜증나게 하는 사람. 깔끔하게 정리하면 그만인데, 손톱깎이 같은 것으로 잘라내지 못하고 손으로 뜯어서 결국 흉지게 만드는 사람. 태섭은 그 사람을 두고 앞선 이들보다 꽤나 길게 고민했다. 연락할까, 말까. 일 년이나 소식이 뜸했는데 갑자기 불러내서 미국에 가게 되었다고 폭탄을 떨어트려도 괜찮을까. 시즌 중은 아니지만, 그래도 은근히 마음에 담을 거 같은데.

그러면서 태섭의 발걸음은 착실하게 교내 공중전화 부스로 향했다. 이제는 쓰는 사람도 없고(오히려 사용법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너무 오래되어 제대로 전화가 갈까 싶은 공중전화 앞에 태섭은 결연하게 서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건지, 라며 자조하면서도 태섭은 자연스럽게 동전을 넣고 열한 자리 숫자를 눌렀다. 일년 동안 써본 적 없는 번호인데도 손가락은 그 긴 숫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수업 시간인지 신호음이 길게 갔다. 아, 핸드폰으로 문자를 남겨두는 게 먼저였나, 후회하고 있을 때 기적적으로 전화가 연결되었다. 여보세요, 그는 무미건조하게 물었다. 이 인간은 오랜만에 보는 사이에 왜 이렇게 섭섭하게 대꾸하지. 입술이 댓발 나오려다가 말았다. 맞다, 공중전화는 발신인이 표시가 안 되지. 부끄러움이 확 몰려와 허둥지둥 이름을 댔다.

“대만 선배, 저 송태섭인데요.”

“…어? 네가 웬일이냐. 그런데 핸드폰으로 안 걸고 웬 공중전화?”

“저기, 갑자기 뜬금없이 연락해서 미안한데.”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그냥 미국 가게 되었다고 말하면 되나?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실없는 농담이나 악다구니를 주고받으면서 허물 없이 지냈던 거 같은데. 1년 만에 전화하려니 왜 이렇게 말이 이어지지 않는지. 목구멍에 돌멩이가 꽉 찬 것처럼 목소리가 시원하게 나오지 않는다. 수화기 너머 정대만도 이상을 눈치채고 걱정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야, 너 지금 괜찮은 거 맞냐? 이번에 준결승까지 갔다는데 무리한 거 아냐? 그래도 우리 소식을 전해 듣고 있긴 하구나. 아직 그와 이어져 있다는 안도감이 들면서 그에게 걱정을 끼쳤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졌다. 나는 또 버릇처럼 허세를 부리고 말았다. 주제를 아예 회피해버린 것이다.

“선배, 나 소원 하나만 들어줘요.”

갑자기 정대만의 목소리가 멈추었다. 뭐? 그는 갑작스런 부탁이 퍽이나 당황스러운 듯 말을 고르다가 나처럼 허세를 부렸다. 그래, 이 형님이 뭐든 못 이뤄주겠냐. 편하게 얘기해라. 무슨 사촌 동생을 다루는 듯한 행동에 열받으면서도, 그래 이게 정대만이지 싶었다.

“그래서, 무슨 소원인데?”

그제야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뭐라고 대답해야 정대만이 의심을 안 할까. 바보트리오 첫째 주제에 그는 타인의 변화나 상태에 예민했다. 내가 쫄아 있다는 걸 유일하게 눈치챌 정도로. 왜 그의 앞에만 서면 내 부끄럽고 감초고 싶은 부분이 껍질 벗겨진 양파마냥 발가 벗겨지고 해체되어 사람들 앞에 드러나는지. 방금 전 미국 유학 프로그램 홍보 팜플렛을 떠올리다가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말을 뱉었다.

“나, 눈 보고 싶어요.”


결과적으로 그 변명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내가 가게 될 곳은 애리조나 주 대학으로, 그곳은 스텝 기후라 눈을 거의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래, 이 정도면 꽤나 괜찮은 소원 아닌가. 은근슬쩍 이 얘기를 꺼내면서 미국 유학을 가게 됬노라 고백하면 되겠다. 사실 이렇게 복잡하고 장황하게 드러날 일은 아닌데, 내가 괜히 사태를 키웠다. 아니, 잘못은 정대만에게 있다. 나는 얼마 뒤 정대만으로부터 온 문자를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건 다 눈 보고 싶다는 말을 거창하게 받아들인 몹쓸 선배 때문이다. 하교하면서 그에게서 온 연락을 확인하다가 나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인천에서 강릉으로 가는 열차 표가 날아왔기 때문이다. 정대만은 내게 상의 한 번 없이 1박 2일 여행 일정을 만들어버렸다. 아예 빼도 박도 못하게 아래에 문자까지 첨부했다.

일주일 뒤 새벽 여섯 시 기차다. 후딱 준비하고 나오는 게 좋을 거야.

그러니까 이런 순발력과 적극성은 필요 없다고…! 항의하고 싶었지만 이미 숙소까지 야무지게 잡아서 스크린샷을 보낸 그와 말싸움을 하고 싶진 않았다. 고작 1년이지만 나는 정대만을 그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 성격 상 내가 거절하면 ‘너 이 새끼 니가 눈 보고 싶대서 내가 성수기에 강릉행 열차도 왕복으로 끊어주고 숙소까지 잡고 렌트카 대여까지 했는데 너는 안 된다고 하면 그만이냐? 어?’라고 30분 동안 온갖 성질이란 성질은 다 부릴 것이다.

대체 이 답 없는 선배를 어떡하면 좋지. 나는 한숨을 푹푹 쉬면서도 윈터컵을 준비했다. 앞으로 일주일 뒤, 이번 전국대회 성적이 미국행을 결정지을 것이다. 유학을 가기 위해선 전국대회 4강에 들어가야 한다. 만약 8강이나 16강에서 맥아리 없이 떨어진다면 기회는 나보다 더 재능 있고 실적 좋은 사람에게 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절대 지고 싶지 않았다.

미국과 정대만을 두고 복잡해진 머리와 무관하게 대회 날짜는 다가왔고, 우리는 준비한 만큼 최선을 다했다. 다행히 결과는 노력에 비례해서 나왔다. 4강 진출에 성공한 것이다. 모든 대회를 통틀어 가장 좋은 성적으로 내 고교 농구선수 생활은 끝이 났다. 물론 4강에서 만족할 생각은 없었다. 기껏 4강에 들어갔는데 탈락하면 아쉽지 않은가. 나는 시합이 끝나자마자 애들을 다독여 이왕 준우승, 아니 우승까지 노려보자가 연설했다. 강백호는 당연한 소리 아니냐며 고함을 질렀고, 서태웅은 여전히 과묵했지만 눈에서 불꽃이 튀고 있었다. 역시 열정 있는 사람과 같이 뛴다는 건 가슴이 들끓는 일이다. 덕분에 나도 개운한 마음으로 4강 경기를 준비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우리는 바로 4강 시합에서 떨어졌다. 겨우 8점 차이였다. 8강에서 내가 손목을 접지르는 바람에 시합에서 결장해버린 탓이었다. 원래 회복이 빠른 편인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경기 직전까지 낫지 않았다. 나는 뛸 수 있다고 고집을 부렸으나 한나와 안 선생님이 막았다. 한나는 나를 따로 불러내 타일렀다.

“송태섭, 너 미국 가야 해.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덧나서 메디컬 체크에서 탈락하면? 그게 더 아쉽지 않아?”

나는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겨우 조건을 충족했는데 손목 부상에 발목 잡힐 수는 없었다. 결국 한나의 의견대로 나는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주요 전력이 하나 빠진 상태에서 북산은 무거운 마음으로 경기를 시작했다. 달재와 호식이 각각 전반과 후반에 최선을 다했고 다른 선수들도 디펜딩에 집중하는 전력으로 실점을 최소화했으나 결국 졌다. 스포츠는 결과론이다. 선수 개개인의 노력은 최종 스코어 앞에서 물거품이 된다. 경기를 마치고 벤치로 돌아온 후배들 중에 나를 탓하는 이는 없었지만, 나는 심해의 수압과 같은 미안함과 책임감을 느꼈다. 내가 그때 좀 더 조심했다면, 정말 우승까지 노릴 만 했는데.

경기 기록을 곱씹어 본다. 8점 차. 그래도 달재와 호식의 역량을 고려하면 굉장한 선전이었다. 만약 정대만처럼 정교한 3점슛이 가능한 슈터가 있었다면 후반전에 뒤집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러 모로 아쉬운 경기가 아닐 수 없었다.

“뭐 이렇게 축 처져 있어! 4강 진출도 대단한 거야. 자 받아라!”

라커룸으로 들어오자 어떻게 미리 들어와 기다리고 있었는지, 선배들이 꽃다발을 들고 우리를 반겼다. 대만은 기운 없어 보이는 후배들을 돌아보다가 내게 덥석 꽃다발을 안겼다.

“이제 송태섭도 고교 은퇴하네. 고생 많았다.”

고생 많았다, 그 말이 뭐 그렇게 가슴 저린지.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직후 백호가 우냐며 계속 고개를 들이미는 바람에 웃음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내가 부탁한 눈 보러 가는 날이 다가왔다.


우리는 인천역에서 출발했다. 혹시나 늦을까 싶어 10분 정도 여유를 두고 나왔는데 삼십 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이래서 경기도 버스는 믿으면 안 된다니까. 나는 벤치에 앉아 옷차림을 다시 한 번 살폈다. 목도리에 모자, 숏패딩에 기모 바지와 앵클 부츠. 고작 하루 눈 보러 가는데 너무 오바를 했나 싶을 만큼 단단한 무장이었다. 그 인간이 보면 자지러지게 웃을 텐데. 그에게 놀림받고 싶지 않다는 치기가 불쑥 고개를 들었다. 나는 바로 모자와 목소리를 벗어 캐리어에 넣었다. 그래, 숏패딩이랑 앵클부츠 정도면 되겠지. 정대만이 설마 기모바지인 걸 알아챌 리는 없을 테고.

너무 일찍부터 준비해 나온 탓인지 잠이 몰려왔다. 한 달 동안 윈터컵 준비를 한다고 스스로 몰아붙인 탓도 있을 것이다. 와중에 공부를 놓으면 안 되었기에 자정에 가까운 시간까지 시험 공부를 하다가 다섯 시간 만에 일어나 연습을 하고, 수업을 듣고 또 연습을 하고. 전략 분석도 하고. 그렇게 한 달을 산 부작용이 몰려오는 듯하다. 아, 그래도 자고 싶진 않은데. 잤다가 대만 선배가 나 못 보고 지나쳐 버리면 어떡하지….

“야, 나 왔다.”

바로 지척에서 대만 선배의 목소리가 들렸다. 덕분에 몰려오던 잠도 홀라당 놀라 달아났다. 고개를 드니 그는 나보다 좀 더 가벼운 차림이었다. 코트에 목도리, 장갑. 그래도 저렇게 입고 가면 좀 춥지 않을까, 내 옷은 저 인간에게 맞지도 않을 텐데, 하고 생각한 순간 그가 물었다.

“일찍도 왔네. 많이 기다렸냐?”

그는 내 차림을 위아래로 훑듯이 살피더니 피식 웃었다. 역시 이럴 줄 알았다. 이런 상황에서 삼십 분이나 일찍 왔다고 하면 적도에서 살다 온 것도 아니고 눈이 그렇게 보고 싶었냐고 놀림 받을 것이다. 나는 어깨를 피면서 허세를 부렸다.

“3분 전에 왔어요.”

“5분도 아니고 10분도 아니고 3분이야? 하여튼 이상한 새끼.”

욕 먹은 건 똑같았다. 그냥 삼십 분 전에 왔다고 할걸. 귀여움받는 게 이상한 새끼 소리 듣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 같다. 대만 선배는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5분 뒤에 기차 도착한다. 빨리 내려가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캐리어를 끌었다.

플랫폼에 서자마자 안내방송이 울렸다. 잠시 후 강릉으로 가는 열차가 승강장 6번으로 들어올 예정입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노란선 안쪽으로 물러나 주시길 바랍니다…. 멍하니 방송을 듣는데 옆에서 대만 선배가 물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또 눈이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차가 들어왔다. 기차는 적당한 속도로 들어와 우리 앞에 멈추었다. 사람들이 하나 둘 기차에 올라타 우리 차례가 될 때까지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솔직히 할 말이 없었다. 나도 왜 그런 부탁을 했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대답을 할 수 있는가? 그 사이 대만 선배가 먼저 올라가 손을 내밀었다. 네 캐리어, 달라고. 방금 전 대답은 그닥 궁금하지 않았다는 듯 무심한 태도였다. 나는 캐리어를 건네고 머뭇대며 기차 위로 올라왔다. 내 뒤로 문이 닫힌 뒤에야 나는 퉁명스럽게 둘러댔다.

“보고 싶으니까 보러 가자고 했죠.”

대답을 들은 선배의 표정은,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냐’고 당장 일갈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역시 이걸로는 납득할 수 없나. 평소엔 단순한 주제에 이런 곳에서만 집요하게 굴고. 자리에 앉아 외투를 벗으면서 나는 말을 덧붙였다.

“제가 고향이 남쪽이라서, 눈 구경을 잘 못했거든요.”

반은 거짓말이고, 반은 진짜다. 내 고향은 제주도니까 인천을 기준으로 하면 남쪽이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주가 눈이 오지 않는 동네냐 하면 그건 아니다. 오히려 겨울마다 눈이 무릎까지 쌓여 제주 애들은 눈이라면 질린다고 고개를 젓는다. 왠지 예전에 제주도에서 살았다고 말한 거 같긴 한데, 농구 외엔 관심 없는 정대만이라면 내가 어디에서 살았는지도 까맣게 잊어버렸을 거다. 어쩌면 제주도가 겨울에 눈이 얼마나 오는지 모를지도.

대만 선배가 하는 말이 먹먹하게 들린다. 역시 수면 부족이 심하구나,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니 눈을 좀 붙일까 하는데 옆에서 손이 다가왔다. 내 손과 달리 길고 하얗게 빠진 손이다. 피아니스트에 가까운 손이지만 손바닥에 박힌 굳은살과 물집이 맺혔다 터진 자국이 그가 운동 선수임을 암시했다. 그 손이 참 좋다. 포기가 안 되서 생떼 쓰듯이 돌아와 다시 한 번 달려가고 있는 손. 만족과 안주를 모르고 새로운 고점을 바라는 손이 점차 내게 가까워졌다. 어쩐지 부담스러워 몸을 빼자 갑자기 어깨를 세게 안은 채 끌어당겨 내 머리를 제 어깨에 기대어 놓았다. 대체 무슨 상황인지 감도 잡히지 않아 눈만 끔뻑이고 있으니 그 조차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차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좀 자 둬라. 한 시간 정도 시간 있으니까.”

그 말에 무슨 마법이라도 걸렸는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나는 정말로 깊은 잠에 빠졌다. 이따금 기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깨어나 뒤척였지만, 그래도 모자란 잠을 보충하기엔 적당한 시간이었다.

강릉에 도착하자 창밖으로 새하얀 풍경이 지나갔다. 따뜻한 기차에 앉아 겨울 풍경을 구경하는 것까진 좋았는데, 역에 내리고 나서가 문제였다. 알고 보니 그날 강릉엔 폭설 경보가 내려져 있었다. 눈은 정강이 절반까지 쌓여 있었고, 지독한 눈 탓에 무엇 하나 멀쩡한 게 없었다. 길은 눈으로 덮여 운전할 염두가 나지 않았고, 가게는 죄다 <금일 휴업>이라는 팻말을 달고 있었으며 버스도 모조리 연착이었다. 와, 제대로 망했네. 대만 선배는 이럴 줄은 몰랐다는 듯 뒤통수를 벅벅 긁다가 머쓱하게 물었다.

“그냥 숙소 갈까?”

“그래야겠는데요?”

강릉에 가면 정동진이나 경포대에 가봐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런 날씨에는 실내에 가만히 틀어박혀 있는 게 상책이다. 결국 아무 소득도 없이 겨우 택시를 잡아 예약해둔 민박집으로 향했다. 대만 선배는 다음엔 근사한 펜션이나 호텔에서 묵자고 말했지만, 다음에도 이런 상태라면 강릉 여행은 조금 고려를 해봐야 할 것 같다. 아니면 여름에만 온다든가.

민박에 도착하자 주인 아주머니는 하얗다못해 파랗게 질린 우리를 보고 기겁하며 안으로 들였다. 뜨끈하게 난방이 된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드러누워 있으니 역시나 따뜻하게 데운 식혜가 안으로 들어왔다. 대만 선배가 먼저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가 인상을 쓰면서 말했다. 이거 계피를 탄 거 같아. 그 말에 호기심이 들어 따라 한 입 마셨다. 계피 특유의 씁쓰름한 맛이 마음에 들어 순식간에 한 잔을 비웠다. 대만 선배는 신기하다는 투로 말했다.

“그게 맛있냐, 너 먹어라.”

“선배는 계피 탄 거 안 좋아해요?”

“안 좋아한다기보단 뭐랄까, 영 안 당긴다고 해야 하나.”

“그럼 저 줘요. 기껏 준 거 남기면 아깝잖아.”

벽에 기대앉아 야금야금 선배 몫의 계피 식혜를 마셨다. 창밖으로는 여전히 눈이 소리없이 쌓이고 있었다. 시야에 아른거리는 눈발 너머로 겨울 바다가 보였다. 바다는 오늘도 쉼없이 파도치고 있었다. 얼마나 내려야 바다가 눈송이에 잠겨버릴까. 대만 선배가 창밖을 구경하면서 중얼거렸다.

“눈은 원없이 보고 가겠네.”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 표현하는 게 차라리 나았으려나, 어째선지 우리 사이에 흐르는 어색함은 깨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 역시 할 말이 없어 계속 바깥만 보고 있었다.

“윈터컵은…. 좀 아까웠다.”

그가 어렵게 꺼낸 말에 나는 실소를 감출 수 없었다.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서 윈터컵 이야기를 꺼내다니, 당신도 참 센스가 없다. 눈치 없는 주제인 건 알고 있는지 제가 먼저 꺼내놓고는 안절부절못한다. 나는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시며 말했다.

“네에, 잘 안 되더라고요.”

안 그런 척하면서 내심 계속 신경 쓰고 있었구나. 그가 조금이나마 나를 걱정하고 있다는 걸 확인해서인지 마음은 한결 편했다. 슬그머니 다리를 쭉 펴고, 몸에서 힘을 뺴 느슨하게 기대 앉았다. 내 자세가 풀어진 걸 보고 대만 선배가 피식 웃었다. 나 또한 미소를 지었다.

겨우 트인 물꼬도 금방 막혔다. 고등학생 때는 이렇게 어색하지 않았는데, 서로 지내는 곳이 달라지니 대화가 뚝뚝 끊겼다. 이렇게까지 어색한 사이가 될 줄 알았으면 내 쪽에서라도 틈틈이 전화할걸. 아니 좀 더 여유 있는 정대만 쪽이 후배들 보러 자주 와야 했던 거 아냐? 미운 마음이 샘솟으며 나는 대만 선배를 살폈다. 이 분위기가 낯설어 죽겠는 건 그 선배도 마찬가지인지 손가락을 잠시도 쉬지를 않았다. 그 초조한 모습 위로 미국에 가기 위해 농구에 매달리던 내가 보였다. 참 희한한 일이지, 농구 외에는 접점이 거의 없는 사이인데, 왜 나는 항상 당신에게서 내 일부를 발견할까.

이따금, 무언가를 해야 하는 순간이라는 느낌이 오곤 한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내가 그에게 눈을 보고 싶다고 한 이유. 그를 불러내 단둘이 남은 이유. 지금은 그걸 말해야 할 때였다. 더 늦으면 의미가 없었다.

“눈 보고 싶다는 말은 사실이었어요.”

대만 선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진작 내 속내 정도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는 듯이. 나 역시 그의 반응이 놀랍진 않았다. 그는 내가 위축되는 순간을 정확히 파악하므로. 하지만 이번에는 그가 놀랄 차례였다. 나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갈무리하려고 노력하며 입을 열었다.

“아마, 한동안은 못 볼 수도 있어서.”

한동안 못 본다는 말에 대만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마 대구나 부산 같은 경상도 지방을 상상하고 있겠지. 그가 내 반응을 살피면서 떠보듯 말했다.

“뭐, 어디 남쪽 나라라도 가냐?”

“음, 그보다는 사막이려나.”

“사막?”

대만 선배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천장을 보았다. 적당히 놀리고 제대로 좀 말하라고 시위하는 듯한 행색이었다. 나는 옅게 웃다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저, 미국 갈지도 몰라요. 거긴 사막 지역이라 눈이 안 온대요.”

그의 입이 헤 하고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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