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夜騒ぎ

호열대만

비행중 by 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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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 요헤이 x 20살 미츠이

  • 요헤이가 하룻밤 동안 미츠이의 자취방에서 신세를 집니다

「…요헤이?」

「오랜만, 밋치.」

나 기억해? 소년은 태평하게 물었다. 문앞에 있는 소년은 분명 미토가 맞았다. 미토 요헤이, 쇼호쿠 고등학교 후배이자 사쿠라기의 절친. 거기까진 미츠이도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을 죽일 기세로 흠씬 두들겨 패던 녀석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미츠이가 놀란 지점은 거기가 아니었다. 쇼호쿠 고등학교는 카나가와구 가마쿠라시에 있고, 현재 미츠이는 도쿄시 이케부쿠로의 외각에서 자취 중이다. 가마쿠라역에서 이케부쿠로역까지 최소 한 시간이 걸리니, 어림 잡아도 두 시간은 걸리는 거리인데, 대체 어떻게, 무슨 생각으로 새벽 세 시에 여기를 찾아온단 말인가. 그리고 미츠이의 기억이 맞다면 그는 미토에게 집 주소를 알려준 기억이 없었다. 사쿠라기랑 미야기에겐 자주 놀러오라고 슬쩍 언질해줬던 거 같은데. 그 둘 중 하나가 흘렸나? 아무튼 그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미토가 새벽 세 시에 큰 배낭 하나를 덜렁 메고 제 집 앞에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얼빠진 낯을 하고 있으니 미토가 충분히 이해한다는 어투로 말했다.

「갑자기 찾아와서 놀랐지?」

「어? 어…. 시계를 봐라, 임마.」

미츠이가 눈을 흘기면서 타박하자 미토는 아하, 하고 힘없이 웃기만 했다. 마치 세상 다 산 아저씨 같은 반응에 미츠이의 표정이 더 굳어졌다. 내가 아는 미토는 분위기를 잡아야 할 땐 잡더라도 평소에는 사쿠라기네랑 같이 시시덕대기를 좋아하는 바보였는데. 저런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같은 모습은 어쩐지 낯설기만 해 쉽게 입이 열리지 않았다.

「미안, 그런데 나 하룻밤만 묵게 해줘라.」

「뭐?」

고작 하룻밤 묵는다고 새벽 세 시에 찾아와? 미츠이는 어이가 없었지만 미토는 뻔뻔하게 눈을 똑바로 뜨고 그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무튼 사정이 있어서 그래. 딱 내일 밤에 나갈게. 재워줄 수 있지?」

미츠이는 난감한 표정으로 뒷목을 긁었다. 아무리 어른스럽게 굴어도 고작 열여덟 살이다. 고등학생짜리가 이 시간에 밖으로 나가서 묵을 곳이 PC방이나 룸카페 말고 또 어디가 있단 말인가. 사람 된 도리로서 할 짓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대뜸 묵겠다고 하는 녀석을 <그래!>하고 순순히 들이는 것도 좀 이상하지 않나. 그러나 미츠이에겐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는 그렇게 냉혈한이 아니었다. 미츠이가 한숨을 쉬면서 문을 더 활짝 열었다.

「오늘밤만 묵으면 되는 거지?」

「앗싸, 고마워 밋치.」

끝까지 반말에 별명으로 부르지만, 미츠이는 어쩐지 <미츠이라고 부르라고!>라며 미토를 타막할 수 없었다. 괜찮은 척 해맑게 웃으며 들어가는 미토의 턱에 맺힌 푸른 멍을 본 탓이었다.

주먹질은 그만둔 줄 알았는데. 미토를 안으로 부른 미츠이는 주방으로 들어가 냉장고를 열었다.

一夜騒ぎ

「배고프진 않아? 계란찜이라도 해줄까?」

「밋치, 그런 고급 음식도 할 줄 알아?」

「계속 그렇게 까불어봐라.」

미츠이는 미토를 집안으로 들인 뒤 화장실로 밀어넣었다. 시간이 늦었으니까, 손이랑 얼굴만이라도 씻어라. 가방 안에서 잠옷으로 보이는 옷을 꺼내 화장실 앞에 놓은 뒤 부엌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달걀이 두 개 남아 있었다. 내일 훈련 끝나고 장을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미츠이는 큰 그릇에 계란을 풀었다.

세수를 했는지 미토의 얼굴은 반질반질해졌으나 턱에 달린 멍은 떨어지지 않았다. 시퍼런 상태를 보아 오늘(아니, 어제) 맞은 듯했다. 미츠이가 기억하는 미토는 쉽게 맞아주는 사람이 아니다. 남들은 다 터져서 엉망진창이 될 때에도 미토는 머리카락이 조금 헝클어지거나 입술이 찢기는 정도에 그쳤다. 멍이 들 정도로 세게 때렸는데 그걸 피하지 않았다? 대체 미토를 이렇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게 내내 신경 쓰였다.

전자레인지에서 띵 소리가 났다. 미츠이는 냄비 받침대를 올려놓고 장갑까지 척척 낀 다음 계란찜을 꺼냈다. 미토가 자리에 앉았고, 미츠이는 여분의 숟가락을 꺼내 그의 앞에 놓아주었다.

「참고로 나는 젓갈파라, 맛이 좀 다를 수도 있어. 그대로 그냥 먹어라.」

「젓갈파야? 의외네. 소금만 넣어서 만들 줄 알았는데.」

「왜, 별로야?」

「아니, 별로 그런 거 안 따져서.」

미토는 숟가락을 들어 조심스럽게 계란찜을 떴다. 매끈한 표면에 오목하게 홈이 파였다. 미토는 한참이나 계란찜을 쳐다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안에 넣고 우물거렸다. 미츠이는 살짝 긴장하여 물었다.

「간은 됐냐?」

「응. 맛있게 잘 됐어.」

진심인가 싶을 만큼 즉답이었지만 거짓말을 하는 듯 보이진 않았다. 미츠이는 묻고 싶은 게 아직도 한가득이었지만 침묵하는 쪽을 택했다. <너 이렇게 돌아다니다간 부모님이 걱정하신다>라는 둥의 말을 하면 바로 분위기가 이상해질 게 뻔했다. 그 정도의 눈치는 있었다.

「너 오는 줄 알았으면 냉장고 좀 가득 채워둘 건데.」

대신 다른 말을 했다. 바로 미토의 얼굴이 환하게 풀렸다.

「됐어, 이걸로도 충분해.」

「천천히 먹어. 아, 그런데 나 이불이랑 베개 하나밖에 없어. 쿠션은 있긴 한데.」

미츠이는 미토의 머리카락을 헤집듯 쓰다듬은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아차했다. 대학생 혼자 사는 자취방에, 누군가가 수시로 잠자러 오는 것도 아닌 마당에 이불이며 베개가 하나씩 더 있을 리 있겠는가. 여타의 사회 초년생이 그러하듯 미츠이 역시 제 것만 가지고 있었다. 무슨 말이냐면, 미토랑 같이 나란히 침대에 누워야 한다는 뜻이었다.

난감해하는 미츠이는 눈치채고 미토가 여상하게 말했다.

「담요는 없어? 그거 덮고 바닥에서 자면 되는데.」

「아니, 그래도 손님을 어떻게 바닥에서 재우냐. 나 카펫도 걷어서 바닥 딱딱하다고.」

어차피 침대도 널럴하니까 그냥 같이 누워서 자. 미츠이는 화장실로 들어가 여분 칫솔 하나를 까 양치컵 안에 넣어두었다. 밖으로 나와면서 칫솔을 두었다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숟가락을 문 채 가만히 미츠이를 쳐다보면 미토가 말했다.

「의외네.」

「뭐가.」

「정말로 이렇게까지 신경 써 줄 줄은 몰랐는데.」

미토의 말이 미츠이는 더 어이가 없었다. 갑작스런 방문이긴 하지만, 그래도 집에 들어온 손님을 어떻게 매몰차게 대한다는 건가? 방금 전 문앞에 서 있던 사람이 미토가 아니라 사쿠라기나 미야기, 혹은 루카와였다고 해도 미츠이는 똑같이 행동했으리라. 계란찜이라도 만들어주고, 여분 칫솔을 꺼내주고, 짐에서 잠옷을 꺼내주거나 없으면 제 옷을 내주고, 침대에서 같이 자자고 하고(체구가 비슷한 미야기라면 모를까 사쿠라기나 루카와는 너무 커서 침대를 다 내줘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건 딱히 미츠이가 상냥하다던가 미토를 특별하게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그냥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하니까 최소한의 예의를 베푸는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의외라면서, 신경써줄 줄 몰랐다고 말하면. 내가 다 의식하게 된다고. 미츠이는 느리게 뒷통수를 긁적였다. 해야 할 만큼 했을 뿐인데, 호사라고 생각하면 미츠이가 곤란하다. 편의점이라도 들러서 컵누들이라도 사줘야 할 거 같고, 겨울 이불이라도 내줘야 할 거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단 말이다. 새벽 세 시, 대학교 새내기인 미츠이가 상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면 아직 그 정도밖에 없는데.

어쩌지를 못하는 미츠이를 빤히 바라보며 미토는 남은 계란찜을 전부 해치웠다. 사쿠라기랑 놀러다니는 것치곤 입이 짧았다. 그리 많이 해준 것도 아니었는데 20분이 지나고서야 미토는 그릇을 비웠다. 잘 먹었어, 미토는 그릇과 수저를 싱크대에 넣어두곤 화장실로 들어갔다. 컵에 물을 받는 소리를 들으면서 미츠이는 잠자리를 정돈하러 갔다.

미츠이는 고민 끝에 옷장에서 거대한 담요를 하나 꺼냈다. 몇 번 사쿠라기와 미야기가 놀러와 잠까지 자고 갔던 탓에, 그때를 대비해 쟁여둔 대형 담요 하나였다. 얇지만 극세사라고 하니 춥진 않을 것이다. 5월로 접어들고 있는 지금 보온성이 중요한가는 차치하기로 하고. 미츠이는 양치를 마치고 나온 미토에게 그의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에서 자. 혹시 이불 덮고 자고 싶으면 말하고.」

미토가 <이불 덮고 싶은데>라고 말하면 미츠이는 얼마든지 이불을 가로로 돌려 같이 덮고 잘 생각이 있었다. 진작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미토가 저와 몸을 붙이고 자길 원치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까닭이었다. 이불 밖으로 제 다리가 비죽 튀어나오는 게 좀 거슬린 것도 있었고.

그러나 미토는 살랑살랑 고개를 저었다. 이것으로 충분하다며 목에 걸치고 있던 수건을 화장실에 도로 걸어놓곤 알아서 담요를 덮고 누웠다. 군말 없이 주는 대로 받아 먹고, 바닥에 누워 자도 된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얌전히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미츠이는 멍하니 침대 옆에 서 있었다. 눈을 감았던 미토가 오른쪽 눈만 슬쩍 뜨더니 미츠이를 쳐다보며 물었다.

「밋치, 불 꺼줘.」

「어? 아, 엉.」

미츠이는 멍청하게 대답하고는 얌전히 형광등을 끄고 협탁에 놓인 스탠드를 켰다. 자취를 시작한 뒤로 생긴 버릇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혼자서도 어둠 속에서 잘 잤는데, 이상하게 이 집으로 독립한 후로는 잠이 영 오지 않았다. 그나마 무드등을 켜두면 30분 내로 잠들긴 했다.

오렌지색 불빛을 보고 미토가 살짝 인상을 썼으나 나는 그냥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미토가 잘 때 불을 켜는 걸 싫어할 수도 있겠다는 데까지 미처 생각이 닿지 못했다. 더군다나 미토도, 30분 전엔 뻔뻔하게 재워달라고 처들어온 주제에 <불 끄면 안 돼?>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미츠이는 잠을 좀 설치더라도 기꺼이 불을 껐을 것이다.

오늘은 불을 켜지 않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미토와 등을 딱 대고 잠이 든 미츠이는 불과 10분 만에 꿈나라로 향했다. 아, 미토한테 멍 빼는 약 발라준다는 걸 깜빡했네, 잠들기 직전 그런 생각을 했던 게 기억났다.

어김없이 여섯 시 반에 알람이 울렸다. 평소 기상 시각이지만 불과 세 시간 전 예고도 없이 찾아온 미토를 보살피느라 잠깐 깼던 탓에 미츠이는 꽤나 피곤한 상태였다. 미츠이는 손을 뻗어 핸드폰 알람을 끄곤 다시 이불을 가져갔다. 으, 소리가 나면서 뒤에 있던 누군가가 움츠러드는 기색이 느껴졌다. 아, 맞다. 요헤이. 미츠이는 느리게 몸을 돌려 제가 가져간 이불을 미토에게 도롣 덮어 주었다. 미토는 그가 돌려준 이불을 소중히 껴안고 다시 잠들었다. 가물거리는 눈을 힘겹게 뜬 미츠이는 일어날지 조금 더 잘지를 고민하다가, 일곱 시간 수면을 채우기 위해 도로 누웠다.

그리고 일어났을 때는 아침 여덟 시였다.

미친, 완전 푹 잤네. 미츠이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침대에 앉아 있었다. 오늘은 하필이면 아침 아홉 시부터 수업이 있었다. 그리고 이 지역의 버스는 어떻게 되먹은 건지, 30분에 한 대씩 오면서 빙빙 돌아가는 탓에 학교까지 족히 40분이 걸린다. 즉 아무리 빨리 준비해도 20분 전에 마치지 못하면 버스를 놓쳐버리고, 그대로 첫 수업에 지각하게 된다는 뜻이다.

미츠이가 허겁지겁 침대에서 내려와 화장실로 들어가자 미토도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부산스럽게 옷을 갈아입는 미츠이를 보면서 미토가 말을 걸었다.

「밋치?」

「미안, 나 지금 빨리 학교에 가야 해서.」

「음, 학교까지 얼마나 걸리는데?」

「버스로 40분이다. 하 이놈의 지랄맞은 버스.」

「자동차로는?」

미츠이는 손을 멈추고 잠깐 계산을 했다. 예전에 정문 근처 술집에서 거나하게 마시고 택시를 탔을 때 얼마나 걸렸더라. 기억을 더듬은 미츠이가 대답했다.

「한, 20분 정도?」

「20분이구나. 천천히 준비해. 태워다줄 테니까.」

미토는 태평하게 말하면서 하품을 하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고작 다섯 시간 전에 들어온 주제에 자기 집만큼 자연스러웠다. 미츠이는 천천히 셔츠를 주워 입었다. 미토에게 오토바이가 있다는 이야기는 사쿠라기에게 진작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까지 그걸 타고 왔다고?

미츠이는 미토가 자정 무렵에 출발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고 가정하면 더 늦은 시각에 출발했을지도 모른다. 그 깊은 밤에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는데도 부모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미츠이는 의아함에 고개를 계속 갸웃거렸다. 자신의 일탈을 한순간의 비행이라고 생각하고 가만히 기다렸던 부모님도, 가끔 미츠이가 늦은 밤에 나가려고 하거나 외박을 하면 무섭게 잔소리를 했다.

자세하게는 알 수 없지만, 미토의 집이 평범하지 않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그것을 굳이 당사자에게 물어볼 만큼 미츠이는 눈치가 없진 않았다. 오히려 이런 점에서 미츠이는 다른 사람보다 눈치가 좋고 입이 무거운 편이었다.

바지만 대충 갈아입은 미토가 현관 앞에서 신발을 신다가 미츠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밋치, 학교 안 갈 거야? 어, 아니. 가야지 당연히! 미츠이가 큰소리를 치면서 재킷을 걸쳤다.

그들은 나란히 빌라를 나와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미토의 핫핑크색 스쿠터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손잡이에 걸려 있던 헬멧을 미츠이에게 건넸다.

「여기요. 나야 머리가 깨져도 상관없지만 밋치는 시합 나가야 하잖아요.」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자신은 어찌 되든 상관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미토에게 살짝 화가 났다. 지금 누군느 턱에 달린 멍이 신경 쓰여서 잠을 설폈는데, 머리가 깨지고 어쩌고. 그런 말은 쉽게 뱉으면 안 되는 말이지 않나. 미츠이가 드물게 정색을 하면서 말하자 미토는 살짝 눈썹을 씰룩이더니, 다시 헬멧을 내밀면서 물었다.

「그래서, 안 쓸 거예요?」

「…써야지.」

미츠이는 투덜거리면서 헬멧을 썼다. 미토는 덩치에 비해 머리가 큰 편인지 헬멧이 덜렁거렸다. 끝까지 줄을 당기고서야 머리에 딱 맞았다. 미츠이는 뒷자리에 앉아 미토의 허리를 잡았다. 미토는 노루발을 올리고 부드럽게 핸들을 쥔 다음, 시동을 걸었다. 부릉, 소리를 내며 작은 스쿠터가 움직였다.

출근 시간대가 지난 도로는 한산했다. 미토는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스쿠터를 몰았다. 딱히 어느 대학 무슨 건물이라고 말한 적도 없는데 미토는 기가 막히게 길을 찾아갔다. 학교야 이 근방에 릿쿄대 하나밖에 없으니 그렇다고 쳐도, 체육대 건물이 어디 있는지는 어떻게 아는 건지. 이리로 가라 저리로 가라 지시할 생각이었던 미츠이는 한 번에 길을 찾아가는 미토를 보고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차마 어떻게 알고 있느냐고 물어보지도 못했다. 신호를 기다리며 뒤를 돌아본 미토가 부루퉁해진 미츠이를 보곤 웃으면서 말했다.

「밋치, 왜 이렇게 심술이 났어.」

「딱히, 아무것도 아니거든?」

「왜 아는 건지 궁금해서 그러지?」

정곡을 찔렸다. 미츠이는 더욱 입술을 내밀었다. 초록불이 들어왔고, 미토는 다시 속도를 올리며 대꾸했다.

「음, 저번에 밋치네 학교 시합 구경하러 갔잖아. 사실 그때 길을 얼추 외웠거든. 밋치 지취방 주소야 하나미치에게 들은 게 있었고.」

「너 왔었어? 난 몰랐는데.」

미츠이는 화들짝 놀라서 물었다. 지금이 6월이니 아마 미토가 말하는 저번 경기는 5월 경에 있었던 그것이리라. 그때 관중석에 앉아 있던 북산 농구부와 사쿠라기의 다른 친구는 기억하지만, 미토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그런데 왔다고? 언제?

「아르바이트가 겹쳐서, 경기 막바지에 잠깐 보러 갔게든요. 4쿼터 때였나. 그래서 얼마 못 보고 바로 나왔어요. 딱히 밋치에게 할 이야기가 없어서.」

그 이야기를 하니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이 났다. 지난 5월 1일 나고야 대학과 있었던 경기다. 미츠이는 전반전을 뛰다가 컨디션 조절을 위해 3쿼터 중반에 교체되었다. 그러니 4쿼터 때에 들어왔다는 미토는 미츠이의 활약상을 보지 못했을 것이고, 그래서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해 돌아갔으리라.

그래도 라커룸에 왔으면 반겨주었을 텐데. 미츠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경기를 함께하는 것보다, 마지막 10분이라도 보기 위해 두 시간 거리를 기꺼이 달려오는 것이 더 어려운 일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미토의 대답이 아쉬웠다. 그냥 오지, 평소엔느 뻔뻔하게 철면피 잘 깔고 이야기하는 녀석이.

미토의 스쿠터가 힘을 내준 덕에 미츠이는 수업 시작 시간보다 10분 일찍 체육과 건물 앞에 도착했다. 뒷자리에서 내려 헬멧을 건네주면서 미츠이가 말했다.

「멍 빼는 약.」

「응?」

「침실 왼쪽에서 두 번째 서랍, 위에서 세 번째 칸 안에 있어. 꺼내 써」

미츠이는 미토의 턱을 가리키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오, 밋짱 오늘은 안 늦었네! 시끄러워. 미츠이는 동기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미토는 그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그를 바라보다가 스쿠터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빌어먹도록 날이 좋았다. 초여름과 청춘을 실물로 옮겨놓으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대학생들은 고등학생 때 누리지 못한 젊음을 만끽하고 있었고, 여기저기에서 활기가 넘쳤다. 물론 졸업을 앞둔 사람들은 조금 찌든 표정으로 교정을 걸어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들의 눈에는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다는 희마한 열정이 반짝이고 있었다.

미토는 다시 체대 건물을 돌아봤다. 지금쯤 미츠이는 강의실에 앉아 체질에 맞지 않는 이론 수업을 듣느라 몸이 배배 꼬여가고 있을 것이다. 이런 것보다 빨리 코트로 나가서 농구 한 판 뛰고 싶은데,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것을 잘하고, 그것에 전력을 쏟을 수 있다는 건 축복이었다.

그렇게 눈에 거슬렸나. 미토는 제 턱에 여전히 들러붙어 있는 멍을 손가락 끝으로 쓸었다. 아직 가라앉지 않아 닿을 때마다 따끔거렸다. 쓸린 상처와 터진 피부, 멍은 미토에게 일상적인 것이었으므로 굳이 약을 발라야 하나 싶었지만, 미츠이가 그렇게 하라고 했으니까. 어거지로 들어와 하룻동안 신세를 지게 되었으니, 주인장 말을 따를까. 신호가 다시 바뀌었다. 미토는 스쿠터의 속도를 올렸다. 미츠이와 군단은 여전히 이것을 스쿠터로 오해하고 있지만, 사실은 시속 100키로까지 올라갈 수 있는 오토바이다. 오토바이가 부아앙, 소리를 내면서 도로를 가로질렀다.

미토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미츠이의 침실로 들어가 서랍을 뒤졌다. 침실 왼쪽에서 두 번째 서랍, 세 번째 칸에는 각종 약품이 들어 있었다. 붙이는 파스며 바르는 파스, 소화제, 해열제, 밴드와 각종 보호대, 연고를 꺼내고 나니 멍 빼는 약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토는 화장실로 들어가 연고 뚜껑을 열고 보이는 곳에 약을 발랐다. 따끔거리면서도 화한 느낌이 상처를 감쌌다.

사쿠라기며 다른 군단 녀석들에게 약을 발라준 적은 있지만, 미토가 스스로 약을 바른 적은 없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고, 그만큼 자신을 챙겨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약을 바르고 나오는데 주머니에서 성난 전화음이 울렸다. 또 그 인간이군. 아마 지금 어디냐고, 후딱 들어오지 않느냐고 닦달하려고 전화를 건 것이리라. 새벽에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사람이 누군데. 미토는 돌아보지도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래도 차단까진 하지 않았다. 한두 해도 아니고, 그의 행동패턴이라면 훤히 꿰고 있었다. 아마 몇 시간 동안 저를 생가갛며 길길이 날뛰다가, 집에 돌아갈 때 즈음이 되면 다 풀어져서 어디 갔느냐고, 미안하다고 사과할 것이다. 대체 이 나라는 왜 열일곱 살을 성인으로 쳐주지 않는 건지. 게다가 미토는 생일도 느려 법적 성인이 되려면 남들보다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한다. 한마디로 3년이 지나더라도, 당장 집을 구해 나갈 수가 없다는 뜻이다.

그냥 밋치에게 같이 살자고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미토는 냉장고를 열었다. 역시 반찬 몇 개를 빼면 텅 비어 있었다. 새벽에 자신에게 해준 계란찜이 마지막 달걀이었는지, 달걀 통도 휑했다. 신세를 졌으니 밥값은 해야지. 미토는 어딘가에서 용케 장바구니를 찾아 나갔다.

아무도 없는 집, 그게 미토에게 가장 편한 공간이었다. 미토는 흥얼거리며 먹거리를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아두곤 베란다로 향했다. 좁은 베란다에는 진작에 마른 빨랫감이 널려 펄럭이고 있었다. 미토는 그것들을 걷어 거실에서 개었다. 미츠이가 옷을 어디에 보관하는지는 몰라서 개운 채로 방치했다. 그러고 몇 시간을 더 기다리니 집전화가 울렸다. 요즘 시대에 집 전화라니, 당시에 무슨 생각으로 놓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탁월한 선택이었다. 미토도 미츠이도 서로의 전화번호를 몰랐으니까, 미츠이가 미토에게 연락을 하려면 집전화로 하는 수밖에 없다.

「네, 요헤이입니다.」

「아, 요헤이. 역시 집에 있었구나? 나 이제 끝나는데, 혹시 먹고 싶은 거 있어? 나 집밥은 꽤 잘 하거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내가 재료 사갈 테니까! 미츠이가 큰소리를 쳤다. 그가 의외로 손이 야무지고 요리를 잘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쩌지, 내가 이미 장을 다 봤는데. 미토는 숨기지도 않고 미츠이에게 말했다.

「고마워요. 그런데 장은 이미 봐서.」

「뭐? 그 사이에?」

「왜요, 안 돼요?」

안 되는 건 아닌데. 미츠이가 말을 흐렸다. 분명 자기가 해주고 싶었는데 미토가 선수를 쳐서 불퉁해진 것이리라. 미토는 왼손을 꼼질거리며 말했다.

「그러면 와서 고등어 가지 구이나 해줘요. 다 사다 놓았으니까.」

어, 응. 미츠이는 우물쭈물하며 전화를 끊으려다가 급하게 말했다. 아 그러면 너 나중에 전화번호 좀 알려줘라. 나중에 연락 좀 하면서 지내게. 미토는 잠깐 고민하닥, 순순히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 자식에게서 계속 연락이 오는 건 피곤하지만, 밋치는 괜찮으니까.

「있지, 밋치.」

「엉.」

「나 그냥 내일 밤도 자고 가면 안 돼요?」

어쩌면 그래서 충동적으로 뱉었는지도 모른다. 밋치는 좋은 사람이니까, 나를 절대로 밀어내지 않고, 물어보지도 않을 거라는 어떤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밋치에게는 조금 귄찮겠지만, 이 정도 욕심 부리는 건 괜찮지 않을까. 미토는 그러면서도 혹시나 미츠이가 그건 곤란하다고 말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옷깃을 다른 손으로 꽉 쥐고 있었다.

곧 수화기 너머에서 미츠이가 엑, 하고 당황한 소리를 내다가 말했다.

「뭐…. 그러던가.」

「뭐야, 나 그냥 가?」

「아니, 너 있고 싶은 만큼 있다가 가.」

그런데 그러면 나 이불 구해와야 하는데. 미츠이가 뒷목을 문지르면서 중얼거리는 모습이 눈앞에 선명했다. 미토는 어쩔 수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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