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03] 태극전기AU 야고라이+아키메구
1일1최애CP(를 목표로 하다)
- 태극전기 AU(옥족 후운지 + 인족 라크로와)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힐 때까지 숨을 죽이고 있던 히사모리는, 완전히 조용해지고 나서야 침대에서 기어 나왔다. 살금살금 반대편의 침대로 향해,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쓴 상대에게 말을 건다.
“야고 씨.”
“…뭐야.”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하며, 야고가 이불 안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물끄러미 이쪽을 보는 새까만 눈을 마주하고, 히사모리는 부러 한숨을 내쉬었다.
“계약, 또 거절했어요?”
“…….”
“라이죠 씨와 말싸움하는 거 다 들었으니까 모를 수가 없어요. 야고 씨도 완고하네요. 벌써 몇 주째예요?”
“몰라.”
야고와 함께 사쿠라마 마을에 머무르게 되고, 야고가 라이죠의 계약 제안을 거절한 것도 슬슬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시간에 무관심한 옥족에게는 그리 길게 느껴질 것도 아니지만, 인간에게는 절대 짧지 않은 기간임을 히사모리는 알고 있다.
“라이죠 씨가 싫은 것도 아니면서, 왜 계속 거절하는 거예요?”
무표정을 고수하던 야고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정곡을 찔렀겠거니 짐작하니, 몸을 뒤척여 그대로 등을 돌린 야고가 내뱉듯이 말했다.
“…사이키와 빨리 계약하고 싶으면 걔한테 말해.”
“…….”
마찬가지로 정곡을 찔렸기에 히사모리는 입을 다물었다.
히사모리가 사이키에게 계약의 제안을 받은 건 몇 주 전이다. 다만 그 제안은 정확히, ‘라이죠가 야고와 계약한다면, 자신과 계약해 주었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계약을 거부하는 야고는 언제든지 떠날 수 있을 터인데, 야고의 동료인 히사모리를 제가 묶어둘 수는 없다는 게 이유였다. …히사모리는 딱히 야고의 동료도 아니고, 애초에 옥족에게 동료라는 개념은 없는데 말이다. 다만 ‘동료가 아니라면 히사모리는 왜 야고 씨와 같이 있는 거지?’라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묻는 사이키에게, 솔직히 저도 그것이 의문이었던 히사모리는 대답할 수가 없었던 거다.
아무튼 히사모리는 라이죠나 키리야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사이키가 마음에 들었다. 그동안 인족의 설화에 느껴왔던 호감과는 조금 방향성이 다르지만,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계약을 하게 되면 알게 되지 않을까, 기대가 없다면 거짓말이리라.
“…제 사정보다는 야고 씨가 먼저예요. 왜 계속 거절하는 거예요? 정말로 싫으면 진작에 떠났을 거잖아요.”
정말로 계약이, 라이죠가 싫었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을을 떠났을 거다. 야고의 성격을 떠나서, 애초에 옥족의 성질이라는 건 그런 거다.
“…저게 떠나는 걸로 될 녀석이냐? 분명 쫓아올걸.”
“설마 그 정도…기는 하네요…? 라이죠 씨, 여러모로 굉장한 사람이니….”
인족 중에서도 가끔 옥족과 대등할 정도로 강한 자가 있다는 건 히사모리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 설화로만 접했던 말이고, 직접 보게 된 건 처음이었다. 태양을 보면 이런 느낌일까 생각했을 정도로 눈부신 양의 기운을 품은, 야고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인족. 야고에게 일방적으로 유린되지 않을 만한 능력을 지닌 자는 옥족 중에서도 드문데도 말이다. …그리고 그 힘과는 별개로, 폭풍처럼 저돌적이고 화려한 성격의 사람이기도 하다. 솔직히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달까, 히사모리에게는 좀 어려운 상대다.
야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여전히 히사모리에게 등을 돌린 채로 미동도 하지 않는다. 설마 얘기 도중에 잠들었나 생각할 즈음, 야고가 입을 열었다.
“…마음에 안 드니까.”
“뭐가요?”
“내가 알던 거랑 달라, 저거. …저렇게 커다란 놈도 아니었고, 저런 금색도 없었어. 그게 마음에 안 들어.”
“아~……아하하….”
그러고 보니, 야고는 라이죠와 이전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듯싶다. 라이죠의 말대로라면 10년 전이리라. 히사모리는 그 만남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야고가 뭘 말하고 싶은 건지는 얼추 알 수 있었다.
야고는 라이죠가 10년 사이에 달라진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옥족은 보통 변화라는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옥족도 성장은 하지만 그건 긴 수명과 비교하면 한없이 짧을 시기에 끝난다. 성장하면서 제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기억하는 옥족은 극히 드물 거다. 히사모리도 기억하지 못하니까 말이다.
“…눈은 그렇다고 쳐도, 자란 건 어쩔 수 없잖아요. 인족은 수명이나 성장의 개념이 저희와 전혀 다르니까.”
“몰라.”
“야고 씨는 그렇겠죠….”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야고의 태도는 상당히 부루퉁하다. 대체 10년 전 보았던 라이죠 씨가 얼마나 마음에 들었던 건가요?…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은 건 야고가 정말로 기분 나빠 할 것을 짐작해서다. 히사모리는 야고의 선이 어디까지인지를 잘 알고 있다.
‘뭐, 한 달째 이러고 있단 점에서 누가 이길지는 불 보듯 뻔하긴 하다만….’
아마 제가 사이키와 계약하게 될 날도 그리 멀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히사모리는 야고에게서 등을 돌리고 책장으로 향했다. 고민 끝에 고른 책을 꺼내어 침대로 돌아왔을 때, 야고는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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