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위가 사과를 낳았다.
거위의 뱃속에 사과나무가 자라고 있어.
아이를 버릴 생각을 품었다. 가족의 연을 맺으러 들지는 않았지만, 이 아이는 슈의 손녀딸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슈는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얘야. 그게 끝이었다. 슈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손녀딸을 업고 민가를 지나 숲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숲 근처에는 거위들이 살고 있었다. 민가에 사는 사람들이 치는 거위였다. 그것들은 사나웠기 때문에 슈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기적…….
아이가 작게 속삭였다.
기적이에요, 슈, 저길 봐요!
슈는 아이의 말을 따르지 않는 척 했지만, 곁눈질로 아이가 말한 곳을 힐끔 보았다. 그냥 사과였다. 아마 거위들 먹으라고 둔 것이겠지.
거위가 사과를 낳았어요. 이건 기적이에요. 제가 여기 올 줄 안거죠.
사람들이 흘린 사과다, 얘야.
아니에요. 거위 뱃속에서 나무가 자란거에요. 그래서 사과를 낳았어요.
허튼 소리.
슈는 아이를 업고 거위떼들 사이로 들어갔다. 거위들은 곽곽거리며 슈를 쫓아내려고 했다. 슈는 아이를 업은 채 사과를 주웠다.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거위들은 공격할 틈을 노리고 있었고, 아이는 제법 묵직했다.
봐.
사과는 지천에 널려있었다.
사과잖아.
슈는 사과를 던졌다. 느릅나무에 맞고 사과는 바삭 깨졌다. 슈의 눈이 커졌다. 사과 부스러기가 바닥에 떨어지고, 느릅나무의 껍질에는 노른자와 흰자가 섞여 흐르고 있었다.
기적이에요.
저주처럼 아이가 속삭였다.
그럴 리 없어.
슈는 더러운 것을 잡았다는 듯 손을 바지에 문지르고 아이를 업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도 아이는 버리지 못했다. 아이를 눕히고 잠시 두드려주자 아이는 곧 잠이 들었다. 흰 얼굴, 똘망한 눈동자, 포동한 뺨, 그리고 잠투정 없이 곧 잘 잠드는 모습, 이 아이를 입양하고자 하는 양부모는 많았다. 그 중에는 슈의 마음에 드는 부부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되돌아왔다. 슈에게, 끊임없이.
이 아이는 가르칠 수 없습니다.
점잖은 여자 보호자가 슈에게 엄중히 주의를 주었다.
너무 깊게 세뇌당했어요. 우리도 교육자로 여러 아이들을 맡아봤지만, 이 아이는…….
슈는 자기의 무릎 위에 앉은 손녀딸을 보았다. 올해로 일곱 살이 되었다. 이 년 간 같이 하면서, 슈는 아이가 자기 어머니의 폭력을, 자기 할머니의 폭력을 그대로 흡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뼈저리게, 깨달았다.
과거에 있었다는 “소년병” 들을 닮았습니다. 제가 관련된 자료를 가져왔으니, 한번 읽어보셔요.
여자 보호자는 낡은 논문을 슈의 손에 쥐어주고 자신의 반려와 함께 떠났다. 슈는 논문을 버렸다. 아이는 항상, 모든 것을 가리키며 자신이 일으킨 기적이라고 얘기했다. 치유의 뜻도 모른 채 치유를 하겠다고 슈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슈는 진절머리를 쳤다.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길 수 없다면 아이를 숲 속에다 버리겠다고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슈의 아내 역할을 해줬던 이사벨은 애프리콧을 위해 전쟁까지 일으켰다. 두 모녀는 자신의 권력과 평안을 위해 폭력을 휘둘렀고……. 애프리콧은 자신의 딸마저도 권력을 위한 소재로 삼았다. 슈는 애프리콧에게 실망해 그 애의 목을 베었지만.
그 둘에 비해선 내가 무능한 사람이긴 했어요.
아이를 재워놓고, 슈가 트로이메라이에게 말했다.
어미가 저 아이를 키우게 두었다면.
애프리콧.
트로이메라이가 정정하였다. 슈는 고개를 저었다.
그 이름을 쓰고 싶지는 않아요.
도망치는거니? 네 딸을 살해한 죄책감에서?
속이 울렁거렸다. 그 아이를 쳐다보면서 그런 감상에 사로잡힐 때가 있었다. 나를 등에 업고 이사벨에서 애프리콧으로 내려온 폭력의 유산을 물려받는 것이 올바르지 않을까, 하지만 슈는 짧게 헛구역질을 했다.
아냐, 멜. 죄책감은 갖지 않아요.
승천자들이, 또 인류가 아무렇지도 않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볼 때면 애매한 불쾌감이 일어났다. 폭력은 불쾌한 것이 맞다. 그러나 이 불쾌함은 달랐다. 폭력을 혐오하는 마음이 아니었다. 다른 승천자처럼 행동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쾌함이었다. 슈는 착한 사람은 아니었다. 사람을 죽인 적도 있었고, 저 여행자를 따라왔다는 외계인들은 그보다 더 많이 죽였다. 당장에, 내 딸도 죽이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건 뭔가…….
뭔가 나하고 맞지 않는 느낌이야.
폭력은 다들 싫어해. 다른 승천자들도 그럴걸요?
아니, 그냥……. 이 시대가 내 옷이 아니란 느낌이야.
슈. 이런 슬픈 시대는 누구에게나 맞지 않아요.
아이가 뒤척이더니 눈을 떴다. 시간은 한밤중이었다. 슈는 이사벨과 애프리콧과의 공통점을 들키기 싫어 트로이메라이를 숨겼다.
여행자가 제게 계시를 줬어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아이가 말했다.
거위가 낳은 사과알에 대한 거에요.
그건 그냥 사과였어.
사과알은 부화할 수 없어요.
그건 그냥 사과였다고. 사과알은 없어.
하지만…….
자렴. 그런 환상 속에서만 살면 안된단다.
슈가 아이의 눈을 억지로 감겼다. 아이는 입 안으로 불만하는 소리를 냈지만, 곧 조용해졌다. 애프리콧은 아이를 위해 집을 지어주었다. 달콤한 과자집. 그 안에서 아이는 권력의 젖을 마셨다. 슈는 그걸 깰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애프리콧의 목을 벨 수 밖에 없었다. 슈는 하늘을 보았다……. 천장이 하늘에 눈길이 닿는 것을 방해하였다.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애프리콧의 목을 베고, 그 일대가 혼란에 휩싸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권력 균형은 무너졌고, 전쟁 군주들은 죽도록 싸웠으며, 그 틈바구니에서 일반인들은 수없이 죽었다. 슈는 잘 한 것이 없었다. 그는 문득, 자신도 이 아이처럼 거짓 속에서 사는게 아닌지 두려워졌다.
그 놈의 기적, 기적, 기적!
슈가 잠에 들었을 때, 아이는 슈 몰래 나가 거위들이 있는 곳 까지 갔다. 거위들은 사납게 아이를 쪼았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거위를 쫓고 아이를 구해주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하지도 않고 슈는 아이를 먼저 혼냈다.
거위는 사과를 낳지 않았다고 몇 번을 말해!
자신을 이기지 못했다. 아이는 울먹거렸다. 마을 사람 한 명이 아이를 보호하려는 듯 감싸안았다.
아버지가 많이 화가 나셨나봐, 자 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려.
하지만 슈, 분명히 거위가 낳은 사과알이 깨지면서…….
거짓말 하지 마라!
슈가 발을 굴렀다.
거짓말, 하지, 말라고!
쿵, 쿵, 쿵, 슈는 계속 발을 굴렀다. 마치 자해하듯. 마을 사람들이 그만 하라고 슈를 말려야 할 지경이었다. 아이는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려버렸고 슈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지 않으면 아이에게 쏟아낼 것 같았다. 네가 버겁다고, 네가 싫다고.
잠시 진정해야할 것 같네요. 아이는 저희가 돌볼테니, 점심 이후로 오세요.
아이를 보호하려고 한 마을 사람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우는 아이를 안고 달래며 슈에게서 멀어졌다. 마을 사람들도 차츰차츰 슈를 떠났다. 모두가 그 자리를 뜨자, 슈는 빠른 걸음으로 거위를 보러 갔다. 곽곽하고 시끄럽게 울며 그것들은 슈를 노려보았다. 아이가 놓친 것이 분명한 사과 한 알이 보였다. 거위를 치던 소년이 물었다.
혹시 아이 아버지신가요?
슈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휴, 아주 난장판이었어요. 그 애가 사과를 흩뿌리나요? 거위한테 아무 먹이나 주면 안되요.
주의를 주겠습니다.
거위 사이사이로 붉은 사과가 굴러다니는 것을 보았다. 슈는 동떨어져있는 사과를 주워들고 자리를 떴다. 왜인지 자신이 할 짓을 들켜서는 안될 것 같았다. 슈는 숲 속으로 들어갔다. 5분 정도 걸었을까, 거위들이 여기까지 들어올 리가 없는데 어디서 곽곽하는 소리가 났다. 길을 잃은 거위일까? 트로이메라이의 도움을 받으려고 슈는 허공을 보았다. 그리고 거대한 거위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거대한 거위는 둥지 위에 앉아있었는데, 그럼에도 슈 만큼이나 컸다. 거대한 거위는 자신의 덩치를 믿는 것인지 상당히 유순했다. 슈는 갑자기 그래야한다고 생각했다. 손을 뻗어 거위의 배 밑으로 사과알을 집어넣었다. 과악-! 하는 괴성이 숲을 울렸다. 슈는 재빨리 손을 뺐다. 사과알은 거위의 깃털 속에 잘 들어갔다.
다른……. 다른 알들도 가져올까?
슈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거대한 거위는 다시 과악-! 하고 울었다. 귀가 찢어질 것 같았다. 덜컥 겁이 났다. 이 거대한 거위를 보면 자신의 딸이 얼마나 날뛸지 감당이 되지 않았다. 소매 속에 숨겨둔 칼을 꺼냈다.
미안하다, 네게는 원한이 없어.
어차피 거위와는 말이 안 통하는데도, 슈는 그렇게 말했다.
슈.
슈는 고개를 들었다. 트로이메라이가 떠있었다.
꿈과 환상이길 바랐는데.
트로이메라이는 그 말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슈……. 저건 그냥 게사니일 뿐이야. 좀 거대한. 사서 걱정하는 것 아냐?
멜, 난 솔직히 그 애가 너무 버거워요.
하지만 너도 알고 있잖아. 네 딸의 목을 친 것 처럼, 게사니의 목을 친다고 네 손녀가 저절로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어떡해야하죠. 그 애는 너무 어려. 어디까지가 악업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알려줄 수 없어요.
슈. 하지만 넌 알고 있잖니?
슈는 다시 고개를 들어 거대한 거위를 보았다. 거위는 무서울 정도로 안광이 없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슈는 칼을 거두었다. 거대한 거위가 과악-! 하고 울었다. 익숙해진건지 아니면 이번엔 좀 작게 운 것인지, 들어줄 만 했다. 슈는 거대한 거위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숲길을 걸어 내려왔다. 아이를 데려올 시간이었다. 슈는 자신이 가진 진실은 항상 자신의 몸 안에 도사리고 있었음을 옛날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쳐다보는 건 너무 무서웠다. 그 진실이 마치 자신을 해할 것 처럼. 자신에 대한 질문에 슈는 해답을 내렸다. 손녀딸을 안고, 그는 숙소로 들어가 하룻 밤을 보냈다. 다음 날 두 사람은 짐을 챙겨서 숲 속으로 들어갔다.
자. 사과알이야.
슈가 곯아버린 사과알을 보여주었다. 커다란 둥지에 버려진 사과알들이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아이는 슈가 자신을 안고 사과알을 하나도 남김없이 발로 밟아 깨뜨리는 것을 쳐다보았다. 그들이 커다란 바람소리에 고개를 들었을 때, 거대한 거위 한 마리가 날개를 펴고 숲 위로 날아가고 있었다. 놀랍도록 조용했다.
기적이에요.
아이가 경이로운 눈빛으로 거대한 거위를 보았다.
그래. 우리가 본 마지막 기적이다.
슈가 다정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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