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5 이야기 하나

하라다 무테이, 우츠기 란기리

백업 by 結

여기, 은은한 조명 아래, 중앙에 크리스마스트리가 놓여 있다.

 인물은 장식을 하나씩 손질하여, 트리에 건다. 붉은 방울, 모조 선물상자, 알록달록한 지팡이, 눈사람 인형……. 창문 밖에서 눈이 뭉텅이로 묵묵하게 내린다. 새카만 밤하늘 속 별빛 하나 없이, 바람이 휘몰아치고…… 창이 이따금 삐걱거린다. 그 소리에 응답하듯, 인물이 작은 캐럴을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다만 곡조는, 당신이 연상할 수 있음 직한, 여느 것과도 같지 않다.

 벽난로에서는 무언가가 타는 듯, 불꽃이 가벼운 왈츠를 춘다. 그것이 가진 색채가 내부를 가득 채운다. 매서운 추위와는 대조되게 안락한 실내다.

 

 ‘자네가 나와 유학을 떠나겠다니! 이 얼마나 굉장한 일인가?’

 ‘일본만을 무대로 삼기에는, 아쉽지 않겠어? 나에게는 좀 더 넓은 세계가 필요해. 유학은 그 물꼬를 터 줄 테지.’

 ‘과연 그대다운 이유야. 응! 견식을 넓히려거든 타국 땅을 밟고, 그들 문화 속에 살아 보는 것만큼 좋은 경험도 없지!’

 

 “……. 무테이, 그런 대화를 나누었던 걸 기억하고 있나?”

 

 작가는, 상대가 멋대로 왜곡한 기억을 구태여 지적하지 않는다.

 눈을 마주한다. 그것만으로도 등장인물은 긍정으로 알아들으리라. 그는 친우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와, 곁에 앉았다. 소파에 사람이 꽉 찬다.

 

 “우리가 여기에서 처음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지?”

 “그래. 생각보다 요란하군.”

 “이것도 이국에서 누릴 수 있는 문화가 아니겠어!”

 “꽤 들뜬 모양이지.”

 소파가 잠시 흔들린다. 인물이 급하게 일어난 덕분이다. “자네 또한?”

 “음. 부정은 않겠다만.” 그는 읽던 책에 갈피를 끼워 덮었다.

 “그러니, 무테이.”

 

 인물은 큼직한 상자를 앞까지 들고 오더니, 생색이라도 내듯, 물건이 무겁단 시늉을 하면서 내려놓는다. 붉은 포장지를 쓰고 리본은 녹색으로 묶었다.

 

 “자네를 위한 선물이야!”

 “역시나.”

 “예상했지만 덤덤하군?”

 “답례가 필요할까. 무슨 선물을 받고 싶은지 말해 보겠어?”

 “이건 예상 밖인데!”

 

 객석으로 바짝 붙은 눈동자에, 경탄이 깃든다. 다른 인물은 책을 탁상 한쪽에 가지런히 올려 둔다. 앉은 자세가 그때 잠시 흐트러졌다가, 금방, 곧게 돌아온다. 이어지는 목소리에서는, 상대와 어울려 줄 요량인지 거리감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인물은 리본 끄트머리를 당기며 샐쭉 웃기만 했다.

 

 “무엇이든 줄 것처럼 말하는군.”

 “오늘 하루 정도는 고민해 볼 수도 있겠지.”

 

 정적.

 

 “내가 자네를 갉아먹는 선물을 원한다 해도?”

 “그런데, 란기리.”

 “응?”

 “너, 입 밖에만 내고 실행할 의지가 전무하잖아.”

 

 재차 정적이 이어진다. 배역들이 객석을 응시한다.

 

 “아하하! 그대에게는 영 못 당하겠어.” 인물은 한 손으로 배를 잡고 웃었다.

 “이건 따스하고 평화로운 이야기야. 네가 준비한 물건이 무엇인지 볼까.”

 “아! 그렇다면 더더욱 이 장에서는 열 수 없겠는데. 개봉하는 순간 장르가 바뀔 테니!

 

 작가는 미간을 찌푸렸다. 애당초 관측되지 않은 영역이다. 무엇을 더 담을 수 있겠는가? 이것보다는, 다른 글을 쓰자.

 조명이 느릿하게 꺼지기 시작한다.

 

 벽난로 불길이 찰나 거세졌다.

 종이 타는 냄새가 방 안을 채우다가도, 남은 장작 위에서나 마저 노니고, 사라져 간다.

 어디선가 목소리만이 울린다.

 

 “불이 참 따스하군.”

 “땔감이 큰 몫을 했지.”

 “잠깐, 자네…… 원고를 태운 건가?”

 “그래. 본래는 기록되지 않을 것이었으니.”

 “이거, 제법 아쉽군그래. 조금은 타지 않고 남아 줘도 괜찮지 않을까? 응?”

 “네 입에서 그런 말을.”

 “그래도! 이런 방식으로 따스한 이야기가 되는군!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극한 평화이기도 하지. 그럼 이만, 종막이다.”

 

 이제 무대 위는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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