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지
도원괴이담12
도량의 어미는 꽃을 좋아했다. 도량도 마찬가지다. 머리 마냥 붉은 피를 타고 전해진 탓인지 애정이 여간하지 않았다. 혹은 어린 날의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 중 일부로 작용한 탓이다. 온전하게 고개들어 볼 수 있던 풍경이 뒤뜰인 적이 있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자식의 인생마저 책임져야했던 이는, 고작 그때문에 무너지지 않았다. 창 너머로 흘러오는 향기가 계절마다 바뀌었다. 창 타고오는 내음 맡노라면 봄이 지나고 여름이 도래하고, 가을을 맺고, 겨울이 움츠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량아, 우리 아가. 어미 다리 사이 떡하게 차지하고 품에 안겼다. 그러면 창 밖 풍경이 유난히 따뜻하다. 내리는 눈마저 부슬거리므로 마치 목화솜처럼 느껴지던 나날이 있었다. 그때에도 도량의 세상은 좁았으나 작진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나눈 벗이 있었다. 화관 만들며 나온 이야기인데, 이 꽃 볼 때마다 당신 생각을 하고싶다고 샛노랗게 부탁한 화관이 있었다. 시절따라 메마른 나머지 이젠 상자에서 꺼낼 수 없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으나. 도량은 가끔 화관을 볼 적이면 솜씨있게 잘 만들었다 소중히 여겼다. 하여 결국 생각의 흐름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고 종내 당도하는 곳은 그가 그려준 초상이었다. 불타오르는 듯한 이만이 남은 독특한 화풍의 초상인데... 도량은 그를 볼 때마다 유쾌해지는 기분을 참을 수 없어 책상 맡에 두고 기회 될 때마다 감상하다시피 했다.
도화지는 항상 여백이다. 출발은 여백이므로,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를 채우는 책임은 오롯이 한 개인에게 있노라니. 그 도화지는 누가 채워주지도, 채워줄 수도 없다. 간혹 다른 이의 먹이 튀는 경우가 있으나 그또한 일부이다. 여백은 공백이며 공백은 공허이다. 막막함이 밀려드나 시간은 흘러간다. 끝날 때까지 반복되는 일련의 과정을 일부는 일컫어 삶이라 부른다. 그래, 혜연은 일련의 과정을 거쳐 도량의 얼굴을 완성했다. 색 없이 알아볼 수 있는 부슬거리는 머리칼, 웃는 눈꼬리. ...이건 귀고리고, 잘 보면 상처도 있다. (근데 옆은 뭐지?) 도량의 집 벽에는 바라보노라면 미소가 절로 피어나는 그림이 걸려있다. 그림 애지중지하는 꼴에 동거인이 어린 날 그린 자당이시냐며 물었다가 도량의 웃음을 크게 산 적 있었다. 그러나 생각하면 다를 것도 없다. 살짝 튕겨나가는 머리칼하며 웃고있는 낯하며 몰래 휘명제 나갔다 고른 귀고리도 같으니 퉁치면 얼추 빼다박았다. 그 후론 유쾌해질 뿐만 아니라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는 그림이 되고 말았다.
"이번 한 번만 다시 믿어줄게. 나중에 놀러 가서 진짜 걸어놨는지 안 걸어놨는지 확인할 거야. 마음의 준비를 해두도록 해."
"걸어둔 건 진짜래도? 새 초상화도 당연히 옆에다 번듯하게 걸어놓을 생각이었지!"
그에게 하지 않은 말이 있던 터라, 여간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역극으로 언급하기 애매했던 뒷이야기 올려봅니다...
언급된 아이에 대해 불편한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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