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삐뚤거려도 모른 척 넘어가.
도원괴이담9
인간은 시간을 사는 종이다. 사는 것買이든 사는 것生이든. 물물교환의 시대를 지나 바야흐로 화폐의 시대가 개막되며 시간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말이 나돌지마는 그럴 능력은 몇몇의 높으신 나으리들 뿐이요. 시간은 대개 인간을 기다리지 않고, 제멋대로 굴었다. 그에 속하지 못하는 이들이 그나마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는 방법으로는 장인의 작업물을 매매하는 것이었다. 화폐경제가 발달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에 속했는데, 가끔 세상에는 시대를 거스르는 자가 있기 마련이다. 굳이 언급할 필요없는 천도량이나, 혹은 그가 전문가이거나, 그도 아니라면 낭만이란 미명아래 파멸적인 손재주를 뽐내곤 하는 이들을 일컫자면 끝도 없었다.
아야-...! 아악, 꺅! 또 찔렸어. 오랜만에 바늘 좀 잡았다고 비명이 끝도없이 터진다. 그나마 살갗 위로 옅게 부딪히면 하얗게 각질이나 올라오고 말 일이다만.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있는 힘껏 찔렀을 때가 문제였다. 작은 사명이라도 되는 양, 천도량의 손에 피 맺힐 적이면 입으로 가져갔다. 이 정도 양이라면 기분 나쁘고 말 일이지만 문제는 입 안에 내내 맴돌아 괴롭다는 점이다. 스스로 초래한 결과니 남을 탓하지도 못하고, 탓한다 하더라도 왜 댕기에 수놓을 생각을 했는지부터 걸렸다. 작은 꽃머리만 장식하고 말 일이라며 자신만만하게 시작했던 일이었다. 연하게 색죽은 노란색 댕기에 하얀색으로 난초를 수놓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솔직히 조금은 우쭐거리고픈 마음이었다만, 그건 이제와 중요치 않다. 댕기는 험난한 여정을 겪은 것치고는 멀끔했다. 그래, 너라도 신수가 훤하니 다행이다. 천도량은 답할 이없는 대화를 나누며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갈색머리 곱게 길러 댕기 하나 선물해주고픈 벗을 생각하며 벌러덩 눕는다. 너절하게 늘어진 수예도구를 올린 반상의 옆이 눈에 들면, 그곳은 또 달리 약조한 증표가 하나 있었다.
약조-이라기엔 그저 천도량이 넓으신 우정 주체하지 못하고 주겠다 한 까닭이지만. 분명 수련장에 붙박히신 붉은머리의 그분이 먼저 말을 꺼내었으니 천도량의 입장에서 이를 거절할 수 있을 리야 없지 않은가. 그러다 문득 품을 들여 선물하고픈 생각이 불쑥 쳐든 것이다. 이제는 군복을 벗고, 도복도 벗을 친우를 위해서 어떤 색을 고를지부터 문제였고, 어느정도 거추장스러움은 감수할 수 있다곤 하나 너무 크고 번거로운 패물도 탈락이다. 그러다보니 남은 것이 매듭노리개였다. 보석 장식 없는 국화매듭 노리개. 가명출신에게 찾아가 함께 고심했다. 행운과 신변보호를 의미한다는 국화매듭을 채택하였으나, 오로지 끈만으로 보석 못지않은 화려함을 뽐낼 때부터 짐작했음이 옳았다. 끈이 엉키는 건 예삿일이고 순서 뒤바뀌고 완성하고보니 예쁘지 않아 풀어내렸다. 나 분명 손재주 있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비맞은 개처럼 초라해진 천도량은 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따스하다 못해 뜨거울 계절이라 열어놓은 창에 봄바람이 솔솔 불었다. 날씨 좋다. 햇살을 함께 맞아도 좋을 테다. 그와 별개로 이맘때쯤 찾아오는 나른함이 온 바닥을 물들여 누워만 있고 싶은 마음도 든다. 불쑥 하품이 나왔다. 바람 아래에 깔린 듯이 몸이 묵직하다. 이거 언제 완성한담. 일단 자고 해볼까...
하루하루가 모여 만들어지는데 돌아보면 많은 날들은 그저 과거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정의된다. 언젠가 기억될 흔한 날들 중에서 적어도 추억할 거리가 있는 선물이 됐으면 좋겠다고-. 혼몽한 정신 속에서 그런 감상적인 생각을 했더랬다. 봄 지나려면 한참이라.
휴식기간 전에 드리고 싶었는데... 늦었습니다^,ㅜ
쓰고보니 태그드리기도 애매해 일단 일반로그로 올려요.
어휴 착각하여 급히 내렸다가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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