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에 대한 기록

도원괴이담10

한 존재에 대한 온전한 기록이 존재하는가? 에 대한 질문에 천도량은 답할 수 없다. 그는 기록자가 아니었으므로, 극의 출연자로서 무대에 오를 뿐이다. 유한성의 존재야 매일 무한성을 상상하곤 한다지만, 천도량이 보기에 온전한 기록은 실로 무한성에 닿으려는 노력처럼 느껴졌다. 얼핏 광오하게까지 들리는 이 말을 실행에 옮기는 이들을 알았을 때에서야 천도량은 과연 인간이란 이런 존재로구나를 실감했다. 다만 신유하는 말한다. 잊혀지지 않기 위해 기록한다고. 그 말이 더욱 인간을 불완전한 존재로서 정의하는 가장 멋진 명제같다고- 천도량은 생각한다. 그러니 흥미가 동하는 것이다. 나도 어디 한 번, 일기라도 써봐? 한 번 해보겠나? 검사는 못 해줘도 칭찬 도장정돈 찍어줄 수 있겠다.나 천가 도량, 이런 거 거부하는 이가 아니지. 혹시 열개 채우면 상도 줘? 네가 거부하는 게 있기야 한지 이쯤되면 궁금할 지경이야. 그래. 뭐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내가 사주마.

979년 5월 7일 윷놀이

뭘 써야 잘 썼다고 소문이 날까? 애초에 일기는 어찌 쓰는 거람. 첫 줄, 붓으로 긋고 새로 시작하다.

어제부터 휘명제가 열렸다. 친구들이랑 놀았다.

아니 이건, 진짜 아니다. 첫 장을 찢어내고 새로 붓을 들다. 아, 윷놀이는 8일이었지?

979년 5월 8일 윷놀이

어제부터 휘명제가 열려 요란한 소리가 도원 바깥까지 이어졌다. 음악이 끊이질 않고 웃음소리또한 연이어졌다. 새로 사귄 요괴친구들과도 놀았다. 몇몇과는 개인적으로 거리를 탐방하기도 했고 저녁에는 아예 윷놀이판을 벌려 다함께 즐겼다. 우리조는 현천국의 말을 얻게 되었다. (...혹시 이것때문에 꼴찌했나? 에이, 설마.) 자주 접하지 않았던 놀이라 처음에는 기억을 되살리느라 혼란했으나 조금씩 재미를 찾았다. 조금많이 의외의 사실. 청현이 우리조의 두뇌를 담당했는데(오월이랑 적태가 인정하지 않으면 어쩌지? 몰라, 억울하면 청현이랑 싸워서 이기라고해~)어쩐지 장군의 기질이 보이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중간부터 수호신이 없던 우리조만 윷이 잘 나오지 않아 굉장히 억울하단 생각이 들었으나, 찻물을 떠놓고 빌었더니 귀신같이 잘나오기 시작했다. 애들아, 이 방법 통한다. 된다. 너희도 해봐. (나 누구한테 애기해? 유하 보라고하지 뭐.) 서무조가 우리를 감옥에 가둬 모가 나올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운을 나눠주던 것이 결국 다음 주자를 둘러싸고 우리만의 의식을 치뤘다. 청현이가 스스로 운이 좋지 않다고 했는데 아니야, 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야!

추신...? 맞나?

유하는 윷놀이의 신이다. 절대 일기를 잘 봐주고 칭찬도장 찍어달라는 아부가 아니다.

다음날 천도량 답지 않게 이른 아침에 신유하의 방에 찾아갔음은 물론이되, 경악할만한 글솜씨로 놀라게했다는 점은 덤이다. 변명을 해보자면 천도량은 내도록 스스로를 들여다본 적이 없는 이였다. 이를 계기로 꼬박 하루를 정리하는 일지를 쓰게 됨은 신유하가 천도량에게 끼친 스승적 면모라 할 수 있으리라.


항상 느려서 슬플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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