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이 안에는 사람이 없네요.”
둥글게 원을 그린 일곱 개의 의자. 누구와도 마주보지 않은 채 비뚜름하게 앉은 일곱 명의 학생. 맞은편에서 조금 오른쪽을 본 동기는 그렇게 말했다.
“인간성이 부재한 인간을 등장인물로 삼는 소설은 많죠. 대표적인 게 악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피카레스크가 있을 수 있겠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류의 인간성이 부재하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소설창작론1 강좌였다. 그녀는 명실상부 이번 기수의 탑이었다. 창작을 업으로 하고자 삼삼오오 모인 학생들에게 점수를 매기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는지에 대해 나는 항상 비관적이었지만, 어쨌거나 우리를 평가하는 건 창작을 업으로 삼아 성공한 대선배들이었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보고 정량적인 점수를 매길 수 있는 안목을 지니고 있는 엄선된 이들이었다.
“인간은 이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아요.”
무테 안경 뒤의 갈색 눈이 이쪽을 똑바로 바라본다. 아무런 감정이 실리지 않은 시선이다. 나는 그 시선을 받는다. 인간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인간은 보통 어떻게 행동하느냐고 물어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묻지 않았다. 내 안의 인간을 더 이상 부정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만이 합평이라는 굴욕적인 절차에서 조각된 나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에고였다.
그리고 그녀는 손에 들었던 나의 소설창작론1 원고를 반으로 찢는다. 두툼한 원고지 뭉치가 낱장처럼 가볍게 경쾌하게 찢어진다. 정확하게 절반으로 분리된 나의 문장이 바닥으로 뚝뚝 흘러내리는 모습을 나는 지켜보고 있었다.
이것만은 실제가 아니다. 이십 년 전의 수재는 남의 원고를 찢는 무식한 짓을 하지 않았다. 나는 알고 있다. 따라서 늘 이 장면에서 눈을 뜬다.
식은땀으로 젖은 이마가 싸늘했다. 아직 검게 물든 집 천장만이 뭘 그리 마음에 담아두고 있냐는 듯 무심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공동묘지라는 장소가 지닌 사위스러운 분위기는 이런저런 치장을 해 봐도 결국에는 치울 수 없는 것이었다. 이름을 추모공원으로 바꾸고 조경을 꾸미고 색색깔의 꽃을 무덤 앞에 꽂는다고 해도 결국 묘지는 묘지. 죽은 이들이 봉긋한 흙더미 아래에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가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서울 근교에 위치한 추모공원의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오면서 늘 그런 생각을 하는 현이었다. 그러나 묘지를 향해 걷는 그의 손에는 항상 조화가 들려 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10월의 셋째 주 수요일이면 묘지를 찾는다. 수많은 무덤을 지나 목적지까지 망설임 없이 걸어간다. 오늘은 누구도 추모하고 있지 않은 무덤들. 평일의 묘지에는 이상할 정도로 사람이 없다. 썰렁한 사잇길을 두어 번 지나니, 목표한 무덤은 언제나의 그곳에서 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의 이름이 쓰인 묘비 앞에 서면 대학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다. 조화의 거슬한 가짜 줄기와 원고지 더미의 미끈한 표면이 손바닥을 파고든다. 수풀도 꽃나무도 하나 없는 특색 없는 묘를 앞에 두고 현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너는 그래서 소설은 어떻게 쓰려고 그러니?
환청처럼 울리는 과거의 목소리. 죽은 친구는 늘 그렇게 물었다. 그리고 현은 늘 똑같이 대답했다. 겨우 그런 걸로 못 쓸 소설이면 애당초 쓸 만한 게 아니었다는 거겠지. 그러면 친구는 순한 눈매를 접어 웃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화제를 전환하듯 네가 좋아하는 곳에 가자, 하고 말하는 그의 시선은 이미 그 대문 즈음에 닿아서. 오늘은 사장이 가게 문을 열었는지 열지 않았는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오늘은 운이 좋은걸.
고등학교 부지만한, 작달막한 학교 캠퍼스 근처에는 북카페가 성행했다. 평범한 카페에 적당히 인기 있는 책이 꽂힌 책장을 가져다 두었을 뿐인데도 학생들은 분위기 있다며 좋아했다. 현은 북카페를 좋아하지 않았다. 음식물과 책을 한 공간에 두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본가에서는 달에 한두 번 정도 손님이 매대의 책에 음료를 쏟뜨렸다…….
─여기는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책을 사 모으는 곳이잖아. 그러니 책이 오염되면 근처 서점에서 같은 책 한 권이 더 팔리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네가 싫다면 어쩔 수 없지만.
북카페가 산재한 대학가에서 약간은 동떨어진 좁은 골목 한구석에, 고즈넉한 티룸이 있었다. 그곳에는 책이 한 권도 없었다. 손님 수도 적었다. 상당히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가게인 터라, 모두가 학교에서 좀 떨어진 이곳까지 발품을 팔았다가 허탕을 치는 일을 피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인적 없는 티룸의 앤틱한 소파에 앉아 눈에 띄게 편안해하는 현을 보면서 그는 다시 웃었다.
─실은 책을 싫어하는 거 아니야?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라서 종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한지도 몰라. 장난스럽게 뱉고 나서야 그 안에 약간의 진심이 실려있다는 사실을 현은 내심 깨달았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오래된 서점의 2층이 그의 집이었다. 현이 자아라는 걸 갖췄을 때 즈음엔 이미 1층에서 팔리지 않은 재고가 창고를 채우다 못해 2층의 주거 공간까지 밀려들어왔다. 아버지는 사람이 좋았다. 총판에서 건네는 추가 재고를 거절하지 못하고 받았다. 팔리지 않는 책인데도 매대에 쌓아두다가 단골 손님이 오면 쥐여주곤 했다. 그럼에도 흘러 넘친 잔여분은 줄어들지를 않아서.
─왠지 알 것 같네, 아버님 마음.
죽은 친구는 그리 말하며 숄더백에서 원고지 묶음을 꺼냈다. 지난 학기 소설창작론 강의에 제출했던 과제의 사본이었다. 에이 플러스라는 최상위의 점수를 받은, 검증된 완성도의 과제였다.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람마다 만들어내는 글이 달라서, 참고랄 게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되었으면 좋겠어.
원고의 표지를 넘기며 마셨던 차의 부드러운 단내를 아직도 기억해낼 수 있다.
─가져도 돼. 종이가 지긋지긋하다면 버려도 되고.
지긋지긋한 종이 묶음을 현은 버리지 못했다. 지긋지긋한 아버지의 서점을 현은 물려받았다. 지긋지긋한 상념을 현은 결국에 떨치지 못했다.
서점을 물려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물려받았다. 동생에게 떠넘기지 않고, 어머니에게도 떠넘기지 않고. 자신이 서점의 주인이 되었다.
그저 죽은 친구의 글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책과는 아무 연고도 없는 제 서랍장 안에 넣어두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에. 책으로 만든 성전이 필요했다. 죽은 친구의 글을 모셔둘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넋을 기릴 제단이 자신에게는 필요했다.
그래야만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이 죽인 친구에게. 자신이 없애버린 그 세계에게.
“난 아직도 인간이 뭔지 모르겠어.”
묘비 옆 화병에 붉은 조화를 꽂았다. 지난 해 두었던 노란 조화는 사라져 있었다. 자식의 성묘를 온 그의 부모가 치웠는지, 묘지를 둘러보던 관리인이 치웠는지는 모를 일이다. 어쩌면 향이 나지 않는 꽃에 홀린 다람쥐가 물고 갔을지도 모르고.
비스듬히 세워진 조화 앞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하늘은 새파랗다. 흘러가는 뭉게구름은 하얗다 못해 꼭 파란 하늘에 구멍을 낸 듯하다. 서늘한 가을의 바람이 뺨을 스치는 걸 느끼면서 현은 둥글게 말린 원고지를 조심스레 펴냈다. 손때가 묻지 않도록 주의했는데도 세월은 이길 수가 없어서, 원고의 표지는 종이의 질감을 잃고 미끈해진 지 오래였다.
“네 안의 인간과 내 안의 인간이 얼마나 달랐는지를, 지금도 알지 못하겠다는 말이야.”
성묘객 하나 보이지 않는 고즈넉한 평일의 묘지에서 현은 가만히 그의 유작을 읽기 시작했다.
익숙하다 못해 이제는 암송도 할 수 있는 도입부 안에서 그는 현에게 인사를 건넸다.
나이를 먹을수록 부고 소식을 듣는 일이 잦아졌다. 대부분 아버지대의 지인들이다. 충분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삶을 누린 뒤 세상을 뜨는 60대들. 현의 아버지는 쉰 몇살에 돌아가셨지만 그리 이르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돌아가시기 한참 전부터 병원에 누워계셨으니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은 차고 넘쳤다.
그러나 죽은 친구는 인생을 오래 즐기지 못했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없이 한순간 세상을 떴다. 현의 아버지가 죽기 이 년 전의 일이다.
그가 죽기 전까지 현은 대단한 착각에 빠져 있었다. 사람은 언젠가 죽지만 죽기 전에는 어떠한 징조가 있어 그를 떠나보내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고. 이성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물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약은 면이 있어서, 자신의 주위에는 충분한 유예가 있는 죽음만이 다가올 것이라고 믿게 된다. 바로 곁에 투병 생활을 오래도록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 착각을 현은 이십 몇년의 인생 속에서 하고 있었다.
사람은 참 덧없이 죽는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죽는다. 단지 그날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죽는다. 불운은 이따금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다.
단지 그날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은 죽는다.
하지만 그날 그곳에 있었던 이유가 자신 때문이었다면?
그날 다른 곳에서 만나자고 했다면, 내가 별것도 아닌 일 때문에 늦지 않았다면, 기다리다 지쳐 주변을 둘러보다가 난폭운전자의 차에 받히지 않았다면, 그 운전자를 폭주하도록 부추긴 게 별것도 아닌 일을 해결하기 위해 움직인 나였다면.
결국 내가 그를 죽인 꼴이 된다면.
네가 탐정 놀이 같은 걸 하자고 해서 이딴, 일이 일어난 거잖아. 전부 네가 잘못한 거야. 전부 네가, 잘못한 거야. 네가……. (그럴 리 없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잘못한 거야? 아니, 우리가……. (우리라는 간단한 면피가 역겨워서 나는 토기가 치밀었다) 내가, 씨발, 내가……. 전부 내가……. 나 때문에…….
멱살을 잡힌 오동현은 멍청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놀란 것도 같고 슬퍼하는 것도 같은, 동시에 화가 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또 유래없는 당황에 휩싸인 얼굴로 현을 올려다보았다. 개 같은 눈동자를 굴리면서 입술을 몇 번 달싹대다가 결국에는 미안하다고 했다. 일단 진정하라고. 지금 너무 흥분했으니까. 너 답지 않게.
너 답지 않게?
나 다운 건 뭐였을까? 내부에 인간을 키우지 못하는 열등생? 그런 주제에 오지랖은 넓은 참견꾼? 우등생의 글에 반한 것도 나고 거슬리는 게 있으면 넘어갈 수 없는 것도 내가 맞았다. 그러나 끝끝내 인간을 만들지 못한 것도 나였고 흥미를 위해 남을 파멸까지 이끌고 간 것도 나였다.
그 이후의 기억은 모호했다. 동현의 멱살을 잡고 무어라 욕설을 내지른 후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현은 떠올릴 수 없었다. 옆에 있었던 동현만은 기억하고 있을 테지만 구태여 그날의 기억을 물을 용기가 현에게는 없었다. 자신이 동현을 따라 심부름센터에 발을 들이지 않은 걸 보면 그와 자신 사이에 어떤 비틀림이 있었던 모양이라고 짐작이나 할 뿐이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등단하지 못하면 널 따라 갈 거라고 약속했던 사이니까. 현은 결국 등단하지 못했지만 동현을 따라가는 일은 없었다. 동현도 등단하지 못한 그를 서점에서 끌어내는 일은 없었다. 그런 애매한 관계가 두 사람 사이에는 성립하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나도 참 인간은 못 됐다고 생각하는 게…….”
다 읽은 원고를 무릎 위에 두고 중얼거려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이웃 중에 웃긴 사람이 있어. 낮에는 흥신소에서 일하고 밤에는 인터넷 방송을 해. 흥신소 사람들은 그 사람이 밤에 인터넷 방송을 한다는 걸 모르고, 인터넷 방송의 시청자들은 그 사람이 낮에 흥신소에서 일한다는 걸 모르지. 완벽하게 나눠진 두 개의 페르소나로 생활하고 있는 거야. 소설 속이 아닌 현실에서.”
죽은 친구는 가만히 그의 말을 듣기나 할 뿐이다.
“인간은 분명 다면적이지만 개인의 행동이 분열될 때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된다고, 그게 개연성이라고.”
술렁이는 바람에 원고의 표지가 펄럭댔다. 현은 한 손으로 원고를 지그시 누른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개연성이 없어…….”
밤마다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의 벌이가 시원찮아 부업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흥신소 일을 하며 개인적으로 찾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에게 빚을 져 그걸 흥신소 업무로 갚아나가고 있는 것도 아니며 하다못해 협박을 당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이중생활을 계속한다. 단순히, 그 이중의 페르소나가 재미있기 때문에. 흥신소 일도 인터넷 방송도 재미있어서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현실의 인간에게도 개연성이 없는데, 현실의 일부인 소설 속의 인간에게 개연성을 바라는 건 역시 무리가 아니었을까……. 이제 와서 이런 고민을 진지하게 하고 있는 건 아냐. 펜은 한참 전에 꺾었으니까.”
말을 마치고 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용서받기 어려운 말을 꺼내야만 한다는 죄악감이 뱃가죽 안에서 슬금슬금 피어올랐다.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친구는 이미 죽어 싸늘한 땅 속에 있는데도. 이젠 누구에게도 용서를 빌 수 없는데도. 이 세상의 누구도 용서할 수 없는 말을 기어코 입 밖으로 뱉으려 하는 자신이 조금 역겨웠다.
나는 무얼 위해 이걸 발화해야 하는가. 무얼 위해, 라고 묻는다면 여태까지의 듣는 이 없는 발화는 무엇을 위한 거였나. 우스운 고민에 잠겨 이도저도 못하기 전에 현은 발작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나도 개연성이 없는 삶을 살아보고 싶어서…….”
묘비 뒤에서 친구가 의아한 목소리를 낸 것만 같았다.
“대학생 때, 오동현이랑 같이 다녔을 때. 정말 즐거웠어. 남의 비밀을 캐고 만천하에 까발리는 게 그렇게 재밌을 수 없었지. 어쩌면 글이 아니라 이게 내 천직이 아닐까 싶기도 했어. 그래서야. 오동현이랑 그런 약속을 했던 게. 네가 기막혀했던 그런 약속을 했던 게.”
그런데 나는 그깟 탐정 놀음으로 너를 죽여버렸다…….
사람을 죽인 탐정이 다시 탐정짓을 하겠다니 웃기지도 않고 개연성도 없다.
이게 소설이었다면 독자들에게서 돌팔매가 날아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이기에 돌팔매를 맞는 일은 없다. 현실은 소설과 달라서, 인간의 행동에 개연성을 따지지 않는다. 어젯밤 총을 든 남자가 다음 날 묘한 변덕으로 사냥을 나가지 않아도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현실의 인간에게 오직 그래야만 하는 당위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러니 개연성이 없는 인간을 그려서 펜을 꺾은 글쟁이에게 개연성 없는 삶이란 필연적인 게 아니겠는가.
“십 년이 넘었어.”
그동안 뭘 했냐고 땅 속의 친구가 묻는 것만 같았다.
“용서해 줘. 내가 불온한 방향으로 가더라도.”
묘에 난 잡초가 바람에 흩날렸다. 스스스…… 하며, 이따금 바스락…… 하며. 풀벌레를 닮은 소리를 흘렸다. 친구가 웃는 소리 같기도 했고 우는 소리 같기도 했다. 현은 생전의 그가 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웃는 모습은 매일 같이 보았다. 느슨한 호선을 그리며 웃는 그의 얼굴을 언젠가부터는 쉽사리 떠올릴 수 없었다.
땅에 닿은 종아리가 시려왔다. 죽은 이들을 고이 덮은 땅은 영상의 날씨에도 이상하게 차갑다. 슬슬 끝낼까, 하고 현은 생각했다. 죽은 지 사천 일이 훌쩍 넘은 친구에게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자신이 죽인 친구에게 용서를 빌어봤자 닿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곳을 자신의 알량한 평안을 위한 고해소 정도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현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죽은 이를 추모하는 의식은 언제나 산 자를 위한 것인데…….
작게 한숨을 뱉으며 몸을 일으켜세웠다. 그새 흙의 물기로 젖어버린 종아리가 축축했다. 무릎 위에 두었던 친구의 원고를 챙긴다. 묘비 옆 화병에 꽂힌 붉은 조화는 여전히 비스듬하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저것이 과연 언제까지 친구의 곁에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몸을 돌렸을 때였다.
몇 걸음 앞에 사람의 그림자가 있었다.
익숙하지 않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남자가 눈웃음을 지으며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순수한 소년을 닮은 맑은 목소리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한 현 씨라고 했던가. 현 씨 곁에는 그런 사람만 모이는 모양입니다.”
새치가 보이지는 않지만 이상하게 회색빛이 감도는 머리카락. 단정하게 다듬은 앞머리 밑에서 형형하게 빛나는 다갈색 눈동자. 무늬 하나 들어가지 않은 흰 와이셔츠 위에 베이지색 트렌치 코트를 걸쳤다. 바람에 따라 나부끼는 코트 자락을 그는 추스리지도 않고 내버려두었다.
“…그런 사람이요?”
“예.”
묘비 옆에 꽂힌 조화로 한 번 시선을 주었다가 그는 말을 이었다.
“페르소나가 여러 개인 사람.”
백정문이라는 개체는 그리 말했지만, 지금 말하고 있는 눈앞의 그가 대체 누구인지 현은 짐작하지 못했다.
한참 전의 일이다. 윤필규가 아직 작은 출판사에서 편집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던, 일본 유학을 실패하고 돌아온 화학 전공의 윤서천이 형의 자취를 따라 실패한 도시에 잠시 머물던 시절의 일이다. 서천의 박사과정 지도교수가 (그에게는 두 번째의 박사과정 지도교수였다) 학교 안에서 살인 미수를 당해 의식불명의 중태에 빠졌다.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공교롭게도 같은 학교 수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었던 현의 여동생이었다. 서천의 지도교수와 현의 여동생은 직접적인 연관이 없었다. 애시당초 과가 다르다. 몇 년 전 교양 강의에서 교수와 학생으로 만난 적은 있었지만 특별한 썸씽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살인 미수가 벌어진 현장이 매우 특수한 환경이었고 현의 여동생은 그곳을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으므로, 범죄의 가능성만을 따졌을 때 그녀보다 적합한 용의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범죄의 동기만을 따졌을 때에는, 그녀가 사건의 범인일 확률은 희박했다.
당시 같은 동네에 거주하고 있었던 서천은 아주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설마 두 번째 지도교수도 죽어버리는 건 아니겠지, 하고 농담조로 던진 말에는 분명 가시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별안간 동생이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현도 기분이 나쁜 건 매한가지라, 서천의 말을 들으나 마나 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둘의 곁에서 도진도 눈을 위로 치뜬 채 심기가 나빴다. 살인 미수를 당한 교수가 도진과 사이가 나쁜 사촌 형이었던 것이다. 불온한 공기가 도는 서점 안에서 필규의 모습만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서울에 위치한 출판사로 출근을 했다. 따지자면 넷 중에서는 가장 마음이 편한 사람이었다.
“첫 번째 교수는 왜 죽었다고 했지?”
계산대 안쪽의 둥그런 의자에 앉은 현이 서천에게 물었다.
“당뇨.”
서천은 불손한 어조로 한 마디만을 툭 내뱉었다.
“독물 연구를 한다고 하지 않았나?”
“맞는데, 왜?”
“학생한테 독살당한 거 아냐?”
서천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위로 향했다가 문예창작 전공의 서점 사장을 노려보았다.
“경찰을 바보로 아나. 병사랑 독살을 구분 못하게.”
“내 말은, 이쪽 교수도 학생한테 당한 거 아니냐는 소리지.”
“사방에 널린 게 독극물인 랩에서 굳이 머리를 때려 죽이려 했다고, 그것도 학생이.”
“독이 널려 있어도 먹이지 못하면 무슨 소용인데?”
“넌 하루종일 일하면서 커피도 한 잔 안 마시냐?”
성격 나쁜 두 남자의 고성이 오가는 서점 안에서 도진만이 입을 다문 채 머리를 붙잡고 낑낑대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사건의 범인은 학생이 아니었다. 동료 교수도 아니었다. 생뚱맞게도 범인은 외부인이었다. 수학과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현의 여동생, 그녀의 지도교수의, 남동생이 범인이었다.
그리고 현의 여동생은 한참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백정문의 밑에서 박사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제 곁에 다면적인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요.”
대체 제 혼잣말을 어디서부터 들은 건지. 페르소나 운운하는 걸 보면 적어도 백도화의 화제를 꺼냈을 때부터 뒤에 있었다는 거 아닌가. 오래도 서 있었다. 그리고 용케도 들키지 않고 있었다.
혼잣말을 들켰다는 부끄러움보다는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을 만났다는 당혹감이 훨씬 컸다. 한참 전의 사건에서 백정문은 분명 사건의 흑막의 위치에 서 있었다. 동생의 행동을 적절하게 조작해 범행으로 이끌었다. 살인 교사로 성립하지도 않는 수를 써서, 자신은 처벌을 피하고 동생만을 감옥으로 밀어넣었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그는 자신의 동생을 살인범으로 만들어 감옥에 집어넣기 위해 일련의 사건을 꾸민 것이라 했다. 전형적인 반사회적 인격장애. 그런 그에게 휘말린 서천의 지도교수는 참 운이 없었다.
현은 제 동생이 그런 인간에게서 학문을 배우는 게 싫었다. 따지자면 그 애도 정문의 손에 놀아나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게 아닌가. 하지만 동생은 연구실을 이동하지 않았다. 줄곧 그의 밑에서 학문을 수련하겠다고 했다. 대체 왜, 라고 물으면 백 교수님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가 있기 때문에, 라고 대답했다. 기가 막혔다. 설마 얘가 지도교수를 짝사랑이라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정문은 현보다 나이가 겨우 두 살 많았으니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니 정문에 대한 감정이 좋을 수가 없었다. 정문은 또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현은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동생의 목숨이 사이코패스의 손아귀 안에 있는 것 같아서, 그저 하루빨리 동생이 졸업이나 했으면 했다.
그리고 지금, 사이코패스는 태양을 등에 지고 현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입가에 걸린 미묘한 미소가 신경쓰였다. 미소인지, 비웃음인지. 영 알기 어려운 웃음이었다.
“서도진 씨는 정말 굉장했습니다.”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생각도 못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몇 년 전에 잠깐 보았을 뿐인 사람의 이름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천재니까, 스쳐가는 사람의 이름 정도는 전부 기억하는 걸까. 그런 현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문은 말을 이었다.
“두 자아가 완벽하게 혼합되어 있었죠. 그건 또 희귀한 케이스입니다. 정신과 치료는 받고 있습니까? 주치의의 소견이 궁금한데. 소개시켜주실 수 있습니까?”
“제가 소개시켜 드릴 건 없을 것 같습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냅니까?”
“잘 지내시죠.”
“요즘도 두 자아가 함께 지냅니까?”
“모릅니다.”
“대화를 해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요.”
“안 됩니다. 바쁘셔서. 그보다…….”
현은 정문이 무어라 대답을 꺼내기도 전에 재빠르게 물었다.
“교수님도 성묘를 오셨습니까?”
“아니요. 오늘은 추모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라는 물음을 현은 눈빛에 실어 보냈다. 싸늘한 가을의 바람이 정문의 단정한 머리칼을 헤집고 지나간다. 그는 회색빛이 도는 머리카락을 매만지다가 입을 열었다.
“평일의 묘지만큼 생각하기 좋은 장소는 또 없으니까.”
산책 코스로 묘지를 선택했다는 말이었다. 현은 그가 소속된 대학에서 이곳까지의 거리를 짐작해 본다. 그렇게까지 멀지는 않을 듯 싶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산책을 하기에 묘지는 좋은 곳이 아니다. 눈앞의 천재에게 상식을 요구하는 게 얼마나 헛된 일인지 알고는 있지만서도.
“두 개의 자아를 균등하게 유지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잠시 말을 멈추고 있으니 정문은 그 사이를 틈타 제 얘기를 시작했다. 현은 어쩐지 허를 찔린 기분이 된다.
“애당초 한 몸에 두 개의 자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도 하나의 큰 장벽입니다. 그렇기에 서도진 씨는 또다른 자아를 자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한 환각으로 여기고 있다가, 사고의 주도권이 그에게 완전히 넘어가는 순간에는 기억의 보존을 중단하거나, 혹은 심신상실 상태의 자신이 추태를 부리고 있다고 인지할 뿐이었죠.”
글쎄, 과연 그럴까. 서도진의 경우를 정말로 다중인격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도진은 이따금 환각을 보긴 한다. 정신 상태가 심히 좋지 않을 때 주로 그렇다. 그의 사촌 형이 살인 미수를 당해 병상에 누워 있을 때도 굉장히 힘들어하며 환각을 보다가 주기적으로 기억을 잃다가 했다.
하지만 그 외의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다. 서도진이라는 소심하고 유약한 하나의 자아로 삶을 이어나간다. 말하자면 병세가 지속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것은 다중인격, 해리성 인격 장애라기보다는 우울증으로 촉발된 현실도피성 증상이라고 보는 게 낫지 않은가. 최근 들어 현은 그런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현 씨가 말한 두 페르소나의 인물은 또 어떨까요? 낮에는 흥신소 일을 하고 밤에는 인터넷 방송을 한다는 그 인물. 그도 따지자면 두 개의 자아를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각각의 자아가 섞이는 일 없이 완벽하게 분리된 채로 살아갑니다.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다중인격이 아닙니까. 일반인의 뇌 활성으로 구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듯한데, 그는 잘 해냈군요.”
강의 투의 어조로 정문은 담담하게 말했다. 입가에 걸렸던 미묘한 미소가 점차 사라져간다. 무기질한 무표정만이 새하얀 얼굴에 남는다. 회색빛 머리칼에 창백한 뺨. 눈동자만이 색채 있는 다갈색으로 빛난다.
“그리고 제가 있습니다.”
가면을 쓴 것 같은 얼굴이, 한 발짝 다가온다. 현은 무심코 한 발짝 물러선다. 운동화 뒷축에 단단한 게 닿았다. 그것이 친구의 비석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친구를 짓밟는 것만 같아 반사적으로 발을 떼어냈다. 몸의 중심이 맞지 않았다. 이제는 묘비를 한 손으로 잡았다. 차갑게 식은 화강암의 감촉. 땅 속에 누운 친구를 대신해 서 있는 수고스러운 녀석이 현을 지탱했다. 그래, 여기에는 내 친구도 있다. 그러니 쫄 거 없다.
“두 개의 자아를 균등하게 유지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선천적으로 만들어진 다중인격이라도.”
축 처진 눈이 현을 내려다본다. 새삼스럽게 키가 컸다.
정문은 잠시 현의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살피다가, 말했다.
“그러니 제가 당신에게 개연성을 부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온몸의 피가 식는 기분이 들었다.
“불온하게도, 저도 찾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네 동생은 아직 내 손아귀에 있다. 그런 부차적인 설명을 정문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불온한 길로, 한번 가 주시겠습니까?”
발밑이 꺼진다. 땅 아래에서 곤히 잠을 자던 친구가 소란스러워 깨어난다. 이미 백골이 된 친구가 하늘에서 떨어진 나를 텅 빈 눈구멍으로 보곤 고개를 기울인다. 나는 그 눈구멍을 마주보다가 엉엉 울면서 이젠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은 갈비뼈를 껴안는다. 성대도 뱃가죽도 모두 잃은 친구는 나를 가엾게 여기지만 더 이상 해 줄 수 있는 말은 없다. 나는 그렇게 몇 날을 더 울다가 땅 밑에서 영원한 잠에 빠진다. 불온해지지 않은 채로. 나의 존재가 동생에게 위협이 되지 않은 채로. 내가 죽인 친구에게 부끄럼 없이 고개를 들 수 있는 채로. 개연성 없는 삶에 발을 들이지 않은 채로. 친구가 남긴 원고를 소중하게 간직해 나만의 성전에 모셔둔 채로.
현은 푸르고 높은 가을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가, 제 발밑이 꺼지지 않았다는 잔혹한 현실을 다시금 확인하고 나서, 잠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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