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뱅

필멸불멸상뱅 찌꺼기

상호병찬

페일 펜슬 by 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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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투성이로 쓰러진 이를 끌어안는다. 아직은 온기가 남아있으나 곧 남은 온기마저 사라질 것을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알 수 있었다. 쿨럭, 꺼져가는 생은 끝을 예감한다. 안 돼, 가지마…. 흐느낌이 공간을 채운다. 그리 울고 있는 병찬을 올려다보던 이가 떨리는 손을 천천히 들어 올린다. 차가워지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병찬은 기꺼이 그 손 위에 제 얼굴을 올렸다. 울고 있는 이를 달래듯 손길이 조심스럽다. 천천히 눈물을 닦아주고, 이어 그것마저 힘에 부치는 듯 손이 툭 하고 떨어진다. 이어 입이 열린다. 힘이 없는 몸은 마지막 말조차 쉬이 내뱉게 해주지 않아 병찬은 좀 더 몸을 기울였다. 끊어질 듯 여린 음성이 천천히, 마지막일 말을 뱉어낸다.

“병찬아, 있지….”

“응, 응….”

“나 죽으면, 절대, 아무도 사랑하지 마.”

“….”

“나 없이, 행복해, 지면 안, 돼.”

그 순간 병찬은 말을 듣기 위해 깊숙이 숙였던 고개를 든다. 여즉 저를 쳐다보고 있는 눈동자, 그 눈동자에 깊이 담겨있는 감정들을 마주한다. 제 마지막을 예감한, 더 이상 제가 아꼈던 것이 제 소유로 남지 않을 것을 깨달은 이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병찬은 그 마지막 발악조차도 서서히 꺼져가는 것을 보며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저 자신을 휘감는 것을 느낀다.

이미 깊은 슬픔에 빠져있는 와중에도 머리 속에 깨달음이 스친다. 아, 나는 네 말로 인해 다시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겠구나. 행복하지도 못하고, 이런 말을 남긴 너를 영원히 잊지 못하겠구나. 병찬은 그 사실이 사무치게 두려웠다. 원망과 슬픔, 그리움, 두려움이 섞인다. 병찬은 이미 식어가는 것을 으스러지게 끌어안았다. 가지마…, 내 옆에 있어 줘…. 날 외롭게 만들지 마. 제발. 그리 울부짖어도 그 말이 닿을 이는 이제 없다. 제발….

↑ 불멸자 병찬이가 행복해지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 그래서 일어나는 시련

둘은 마주 보고 있다. 한 명은 침대에 앉아서. 한 명은 그 앞에 무릎을 꿇고서. 검은 머리의 사람이 허공에 두었던 시선을 옮겨 제 앞의, 무릎을 꿇은 이를 쳐다본다. 갈색 머리의 사람은, 그 시선이 제게 닿을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며 제 앞의 이를 올려다볼 뿐이다. 시선이 마주친다. 마주침이 6초를 넘었을 때, 갈색 머리의 이가 서서히 다가간다. 편히 굽혀진 무릎 위에 손이 커다란 손이 얹어진다. 그대로 고개를 내밀면 따뜻한 숨이 점차 섞였다. 벅찬 것처럼, 검은 머리의 이의 숨이 조금씩 거칠어진다. 눈동자가 잘게 떨렸고 몸이 조금씩 비틀어졌다. 꼭 고통을 참는 것처럼. 그것을 빤히 보면서도 갈색 머리의 이는 다가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무릎에 있던 손이 올라와 상대방의 팔을 잡는다. 이제 둘은 코끝이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여전히 마주하는 시선이 일렁거린다. 조금 더…. 결국 입술이 닿으려 할 때 목이 졸린 것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상, 호야…. 미안해….”

그 목소리에 몸을 떼어낸 것은, 이제까지 계속해서 다가가던 이다. 상호는 제 앞의 이를 다시금 쳐다본다. 헐떡이는 숨이 괴롭기 그지없다. 견딜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제 목을 잡은 채로 켈록 거리는 모습을 보며 상호는 그저 한숨을 삼키고 천천히 그 웅크린 등을 쓸어준다. 미안해…. 떨리는 목소리에 상호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하려 노력한다.

“괜찮아요.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마세요.”

한참 등을 쓸어주면 점점 떨림이 멈춘다. 조금 더 붙어있고 싶다고 생각했으나 또다시 괴로워질까 몸을 떼어낸다. 겨우 고개를 드는 것에 다시 시선을 마주친다. 일렁거리는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상호는 결국 웃으며 말했다.

“나갈까요. 같이 영화 보기로 했잖아요.”

“...그랬지. 바로 나가자.”

마치 아까의 일이 없는 것처럼 둘은 서로를 쳐다보고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소소하게 까먹은 것은 없는지, 영화를 보고 나서는 하고 싶은 게 있는지 등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나갈 준비를 끝마친 둘은 문을 열고 나간다.

상호가 먼저, 그 뒤에 나온 이는 그대로 문을 닫는다. 그동안 얌전히 기다리던 상호는, 그가 앞서 걸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세 걸음을 걷고 나서야 뒤를 따라 걸었다. 일행이지만, 그리 친밀하지 않다는 것처럼. 그런 거리를 유지하며 둘은 아파트 현관을 빠져나간다.

↑ 이런 텐션 유지하다가 상호가 유언으로 맨 위의 저주를 풀어줄 예정이었는데 그렇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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