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남친 잡아먹기

상호종수

페일 펜슬 by 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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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고 읽고 원작자 붙잡아 필.버함


“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딸기프라푸치노 한 잔, 블루베리 스무디 한 잔 맞으세요.”

오늘 초면이지만 몇 십분동안 질리도록 본 덕인가 익숙해진 포스기를 띡띡 누르며 기상호가 말했다. 네, 네. 대답하는 제 앞의 손님은 손으로는 카드를 내밀면서 눈으로는 제 뒤에서 열심히 뛰어다닌다고 바쁘신 사장님을 보고 있었다.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어서 제대로 알 수는 없지만 아마 그 사장님은 또 갱신된 영수증을 보면서 메뉴를 확인하고 커피샷을 내리기 위해 뛰어가고 있겠지.

최종수의 가게는 정말 잘 됐다. 너무 잘 됐다. 디저트와 음료들이 잘생기고 사장님이 맛있어요 가게라서 그랬다. 최종수라는 인간은 뭘 하기로 하면 그게 가라여도 허투루 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인지라 제빵기능사 자격증과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놓는 것은 물론 그 뒤로 연습도 꾸준히 했단다. 게다가 돈 많은 인간이라 퍼주는 것까진 아니어도 좋은 재료에 걸맞은 적당한 가격에, 사장님이 끝장나게 잘생긴 덕에 인기가 더럽게 많았다.

기상호는 그걸 몰랐다. 인기가 많다는 걸 듣긴 했는데 딱 듣기만 했었다. 여기서의 첫만남도 열기 전에 준비중이던 최종수랑 마주친 게 전부였다. 그 뒤로는 일하느라 바쁘니 나중에 오라는 말을 듣고 돌아갔었고. 낮에 연락이 거의 안 되기도 했으니 정말 바쁜가보다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바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상상도 못한 기상호는 오늘 남친을 만나러 오기 위해 나름 때빼고 광낸 꼬라지를 하고 있었다. 부모님이 사준 거 말고, 누나가 코디해준 옷에 화장은 아니어도 나름 이래저래 깔끔한 꼬라지로. 자신이 연하임을 알고 있는 기상호는 되도 않는 어른인 척을 하느니 그냥 나잇대에 맞게 입으라는 누나의 조언으로 귀여움을 어필하기 위해 널널한 셔츠에 하늘색 민소매 니트, 베이지색 면바지까지. 나름의 청춘을 뽐내는 룩을 입고 왔다. 그리고 오자마자 마주친, 이미 기력이 반쯤 빨려가는 최종수를 보며 자기도 모르게 다가가 도와드릴까요…? 라고 물어버렸다.

그리하여, 둘은 정말 쉬지도 못하고 일을 했다. 상호가 갔던건 10시였는데 어느정도 숨을 돌릴 수 있게 된 시각은 4시였다. 종수는 곧 바로 밀린 설거지를 시작했고 상호 역시 눈치껏 움직이며 테이블을 치우고 어느새 가득찬 쓰레기통을 비웠다.

종수는 드디어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자 달콤한 음료수를 하나 준비했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단 음료를 좋아하는 그 식성을 뻔히 알기 때문이다. 아쉬운 소리 하기 싫어서 별 말 안 했는데 녀석이 질린 얼굴로 도와줄까요 묻는 모습 보자니 그것마저 쳐내는 건 미련한 일이다 싶어 수락했다. 카페 일은 따로 해본 적 없다는데 기술이 필요없는 자잘한 일을 모두 도맡아서 해주니 바쁜 건 여전해도 숨통은 확실히 틔였다. 그래도 이틀 후면 급하게 뽑은 알바생이 온다고 했으니 그때까지만 버티면 될 일이다.

생각을 끝낸 종수는 밖에서 쓰레기를 버리고 온 녀석에게 만든 음료수 잔을 내밀었다. 환한 얼굴로 감사하다 말하며 받는 얼굴이 보기 좋았다. 그대로 컵을 잡아 고개를 살짝 돌린 채 옆으로 음료수를 쭉- 들이켜는 모습을 보며 종수는.

“….”

아까까진 너무 바빠서 솔직히 얼굴도 제대로 못 봤는데 이제보니 꾸민 태가 난다. 외국에 살 때는 저건 뭐 교복인가 싶었던 좆같은 체크무늬 남방이 아닌, 딱 봐도 신경써서 입은 듯한 파란색 니트도 그렇고…. 셔츠도 싸구려가 아닌 게 느껴졌다. 그 마저도 일하느라 더운 탓인가 소매를 팔꿈치까지 거둬놓은 덕에 팔뚝이 선명하다. 목에 단추도 두어개 풀어있는 터라, 그대로 원샷하며 꿀렁이는 목젖이 선명하게 보인다. 최종수는 어쩐지, 그 모습을 멍하게 계속 쳐다봤다. 다 마신 기상호가 정말 맛있었다며, 컵은 자기가 씻어놓겠다고 말하며 자기 옆을 지나갈 때까지 계속.

10살이나 어린 녀석과 키스도 하고 사귀기까지 한 마당에 할 생각은 아니긴 했지만 그 녀석에게서 묘한 감정을 느끼고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은 것은 좀, 어른으로서 양심이 쿡쿡 찔리는 일이었다. 살면서 어린놈에게도 늙은놈에게도 이런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는데. 종수의 머리 속에서 허리를 짚느라 불거져나왔던 팔뚝의 근육과 울렁이던 목젖이 계속 떠오른다. 이어 입술에 묻은 것을 가볍게 할짝이는 얼굴과 자신을 보며 환히 웃던 어린 얼굴도 떠올랐다.

컵을 깨끗이 씻은 녀석이 손을 탁탁 털더니 아직까지 멍하게 있는 종수 쪽으로 다가온다. 호칭에 대해 짧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남친한테 아저씨는 그렇고 자기야라고 부르기엔 둘 다 성격에 맞지 않아 결국 상호는 종수를 조금 친근하게 부르기로 했다.

“햄? 왜요? 마이 힘들어요?”

가까이 다가온 녀석이 손을 올린다. 아직 물기가 남아있는 따뜻한 손이 이마에 얹혀진다. 솔직히 종수도 뭐에 꽂힌지는 모르겠다. 아니 사실 알고 있다. 부풀어오른 마음에 조금 걱정 어린 얼굴로 쳐다보는 얼굴이 진짜 개-꼴렸다. 종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너. 카페 접을 거니까 정리만 좀 도와줘. 저녁은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어, 진짜요? 그래도 돼요?”

“내가 힘들어서 못하겠다는데 뭐 어때?”

“그렇…, 긴 하죠…?”

원래 장사라는 게 이렇게 엿장수 마음대로 하면 안 되는 법이지만 알 바인가? 최종수는 이 카페가 망해도 먹고 살 길은 많았다. 하지만 지금 제 앞의 기상호는 어떻지? 이 옷을 언제 또 입으러 오겠는가. 언제 이렇게까지 힘들게 도와줄 거고? 지금의 기상호는 지금 밖에 없었고 최종수는 지금 꼴렸다. 밖으로 나간 최종수는 냅다 클로즈 간판부터 걸고 돌아와 마감 준비를 했다. 그래봤자 재료들 집어넣고 바닥 한 번 쓰는 게 전부긴 했지만.

짧은 정리가 끝나면 최종수는 벗어 건네는 앞치마를 대충 물류창고에 던져넣은 뒤 기상호를 제 차에 태웠다. 세단은 너무 눈에 띄니까 좀 적당한 것 중에서 골랐던 카니발이었다. 덕에 공간은 넓어 기상호도 편히 등을 기대 앉는다. 에어컨을 틀어주니 시원하다 말하던 녀석이 뒤늦게 깨달은 듯 몸을 훅 세운다. 마음이 급한 최종수는 손을 뻗어 벨트를 직접 메주며 왜? 라고 물었다.

“땀을 좀 흘렸는데 묻을까봐요.”

“신경 쓰지마. 나중에 세차 맡기면 되지.”

부드럽게 나아가는 차에 기상호가 와- 소리를 내더니 다시 얌전히 있었다. 그러든 말든 최종수는 네비에 목적지를 찍었다. 근처에 좋은 호텔이었다. 자신의 집을 지나쳐야 했지만 제 집보다야 호텔에서 하는 게 훨씬 편하다. 그 뒤에 애 밥 먹이기도 그렇고. 목적지를 확인한 기상호가 의아한 목소리로 묻는다.

“호텔로 가요?”

“어. 찝찝하기도 하고 거기 호텔 밥 맛있어.”

“아하. 저, 갈아입을 옷 없는데….”

“내가 사줄테니까 걱정말고.”

고저없이 평온하게 대답하는 종수를 보며 상호도 이내 납득한 듯 고개를 돌린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순진한 꼴이 웃기다. 어둠의 세계로 끌고 들어갈 때는 고슴도치마냥 가슴 삐죽 세우며 전전긍긍하더니 이런 쪽으론 또 눈치가 없었다. 모르는 척 하는 건가? 뭐든 상관없지. 하기 싫다고 반항만 안 하면야.

교통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열심히 밟아 호텔에 도착하면 바로 방을 하나 달라하고 키를 받아 올라간다. 여전히 순진한 제 어린 남친께서는 아직도 무슨 상황인지 인식하지 못한 얼굴이길래, 최종수는 부드러운 낯으로 방에 들어가서는 어린 녀석의 등을 떠밀어 욕실에 집어넣었다.

“저 옷….”

“안에 가운 있으니까 그거 입고 나와. 옷은 나중에 줄게.”

결국 그렇게 욕실에 들어간 녀석을 보며 종수는 작게 콧노래를 불렀다. 원래 콧노래를 자주 흥얼거리는 타입은 아닌데 근래에 매일 음악을 들어서 그런가 귀에 익은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기상호가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보는 동안 최종수는 조용하게 프런트에 추가적인 요구사항을 말했다. 뭐냐면, 욕실이 두 개 있는 방을 달라는 것. 둘이서 번갈아 씻는 건 비효율적이니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욕실로 들어가 따뜻한 물부터 튼다. 자 어쩐다. 저 귀여운 녀석을 어떻게 해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데려온 건 좋았는데 제일 중요한 게 남았다. 누가 깔리느냐지. 살면서 깔려본 적은 없다. 당연하지. 누가 깔겠다고 덤벼? 아예 없던 건 아니지만 그것들은 하나같이 물고기 먹이가 된 지 오래다. 역시 익숙한 쪽으로 하는 게 좋을까. 샴푸거품을 씻어내며 잠깐 생각에 잠겼던 최종수는 얼굴을 쓸어올려 물기를 닦아내며 결정을 내린다. 일단 깔아보고 싫어하면 생각하지 뭐.

생각을 끝내고 밖으로 나가니 아직 나오지 않은 듯 침실엔 아무도 없었다. 곧 나오겠지. 느긋하게 생각하며 침대에 앉아 제 머리를 말리고 있으면 달칵, 문 여는 소리가 들린다. 타이밍 좋게 다 씻은 녀석이 밖으로 나온다. 삐죽거리던 머리카락은 물에 젖어 가라앉아있는 덕에 평소보다 더 차분해보이는 얼굴이었다. 가운을 입어서 그런가. 가슴팍이나 복근이 살짝 보인다. 최종수가 거기에 시선을 주니 시선을 따라가던 녀석이 깨닫고 조금 당황하며 가리는 꼴이…. 하, 진짜 못 참겠네. 최종수는 머리를 말려주겠다는 듯 드라이기를 꺼내들고 제 옆을 툭툭 쳤다.

“기상호, 이리 와.”

“…. 전부터 생각했는데 그거 너무 강새이 부르듯이….”

“강새이?”

“강아지요.”

“아.”

강아지같진 않지. 개는 배신 안 하잖아. 그래도 삐죽거리는 꼴이 귀여워 최종수는 작게 웃으면서 손을 까닥였다.

“상호야, 이리와볼래.”

다정하게 말하니 슬그머니 다가오는 꼴도 웃겼다. 그러고는 등을 보인 채로 제 옆에 앉는다. 최종수는 드라이기를 켰다. 그대로 머리 속을 살살 말려주니 기상호가 말한다.

“햄은 어째 드라이기도 잘 못 쓸 것 같았는데 잘 쓰네요.”

“누가 내 머리 만지는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

“그럼 머리 자르는 건 어째요.”

“그건 가끔하니까 별 수 없고, 말리는 것 정돈 직접 하는 거지.”

머리숱이 꽤 있는지라 말리는 건 좀 오래 걸렸다. 최종수는 말려주면서도 시선을 내려 드러난 목덜미를 보다가…. 드라이기를 끄고 고개를 숙인다. 뒷덜미를 살짝 깨물면 헉, 하고 숨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당황한듯 몸이 굳는데 그러면서도 밀쳐내진 않아서, 최종수는 그대로 가운 위로 기상호의 허리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기상호, 너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따라왔어?”

“모, 모, 몰랐는데요…!”

“그래? 너 진짜 순진하네.”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그리 말하며 이제는 목덜미를 살짝 깨문다.

“아직도 모르겠어?”

“그래도 이건 알아요….”

“그래? 이번 감상은 어때? 긍정적인 것만 들려줘봐.”

“….”

최종수는 시선을 올려 기상호의 귓바퀴를 바라보았다. 일부러 그러는 건가. 귀가 움찔움찔, 작게 떠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그 귀가 아주 새빨갛게 달아오른 것도.

“엄청 야한 것 같아요….”

“다행이네.”

어지간히 순진한 놈들은 이런 거에 기겁하며 도망가기도 하던데, 기상호는 그 정도로 순진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최종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기상호의 어깨를 잡아돌려 눈을 맞춘다. 근래에 익숙해졌던, 아주 새빨간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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