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미에 로터스] 백합은 가시 덩굴에서 자란다.

 

백합은 가시덩굴에서 자란다.

 

 

로터스家는 평화로웠다. 장남인 펜틸 로터스가 태어났을 때에도 차남인 루미에 로터스가 태어났을 때에도 평화는 변하지 않았다.

 

루미에의 어머니 리아트 A. 로터스는 하녀가 낳고 간 아이를 제 아이로 받아들이는 관대함을 보였다. 그것은 결혼 생활 9년간 자식이 없었기 때문도 있지만, 아이에게는 죄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정작 그 선택을 못마땅해 했던 것 샬로메 로터스 후작이었다. 그는 핏줄을 중시하는 귀족이었고, 그런 그에게 하녀의 핏줄을 이은 펜틸은 못마땅한 자식이었다.

 

리아트는 그런 남편의 의견에도 직속 시녀 하나를 펜틸에게 내주어 그의 유모로 삼았다.

 

루미에가 태어나기 1년 전의 일이었다.

 

1년 후, 리아트는 샬로메 후작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다. 그에 샬로메 후작은 크게 기뻐하며 파티를 열었고, 루미에는 축복 속에서 무사히 태어났다. 리아트는 그런 와중에도 펜틸이 마음에 걸려 펜틸의 유모에게 루미에도 같이 맡겼다. 그러면 루미에가 받을 샬로메 후작의 총애를 펜틸도 같이 받을 수 있게 되리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리아트의 예상은 반만 맞았다. 샬로메 후작은 루미에에게만 호위 기사를 내렸고, 빛이 가장 잘 드는 장남의 방을 내주었다. 그 반대로 펜틸에게는 그 어떠한 것도 하사하지 않았고, 오히려 차별 적으로 대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럴 때마다 리아트가 곧잘 펜틸의 편을 들며 샬로메 후작의 행동을 막았다.

 

“이 이름도 없이 천한 것이-, 로터스의 이름을 받았으면 그걸 과분하게 생각하고 로터스에 충성을 다 해야지 진짜 제가 로터스인 양 돌아다니는 꼴이라니!”

 

펜틸에게 샬로메 후작의 폭언이 이어지는 날에는 리아트는 항상 펜틸을 끌어안고 듣지 말라며 펜틸의 침실까지 펜틸을 데리고 가서 직접 재워주고는 했다.

 

비록 후작의 사랑은 받지 못했지만, 리아트의 사랑으로 펜틸 또한 무럭무럭 자랐고, 펜틸의 나이 13. 이내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일을 맞이하게 된다.

 

그 무렵의 후작은 자신의 의견에 맞서기만 하는 리아트를 두고 바람을 피우고 있었는데, 그 상대는 제 짝과 사별을 한 과부였다. 예전 후작의 약혼녀였다는 그녀는 펜틸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아이를 데리고 있었는데, 이름은 아그네스로 금빛 머리칼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자아이였다. 펜틸은 그런 아그네스에게 첫눈에 반하고 말았다.

 

아그네스는 그를 알고 교묘하게 펜틸을 꾀기 시작했다. 리아트가 있는 한, 아그네스와 그 어미는 작위도 없는 정부와 그 아이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리아트가 가장 약하게 구는 펜틸을 노린 것이었다.

 

“이걸, 부인의 차에 넣어봐. 로젤리아 풀이야. 차의 향기를 돋우곤 하지. 너도 이 정도는 알지? 후작부인도 분명 널 칭찬하실 거야.”

 

로젤리아 풀은 평민들 사이에서 물의 맛이 떫거나 싼 차를 마실 때, 향을 불어넣기 위해 쓰는 풀로 펜틸도 알고 있는 풀이었다. 다만, 리아트가 주로 마시는 차에 들어가는 꽃잎과는 상극으로 같이 먹으면 목숨을 잃을 가능성도 있었다.

 

펜틸은 선택해야 했다, 다만, 그의 앞에 선 여자가 너무 눈부셨으므로 로젤리아 풀을 조금 주머니에 챙겼다. 아주 조금, 치사량은 되지 않을 만큼.

 

그리고 밤잠을 못 이루던 새벽, 제 옆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새근새근 자고 있는 루미에를 보며 소리 죽여 울었다. 제가 할 짓이 너무 무서워서, 그깟 사랑 때문에 리아트의 은혜를 배신해야만 하는 게 죄스러워서.

 

다음 날, 눈이 팅팅 부은 펜틸을 리아트가 불렀다. 펜틸은 리아트 몰래 로젤리아 풀을 찻잎 사이에 넣었다. 그 찻잎이 끓여지고 평소와 달리 조용한 리아트를 펜틸은 의아하게 바라볼 때쯤, 리아트가 펜틸을 향해 물었다.

 

“루미에를 부탁해도 되겠니, 펜틸?”

“루미에요?”

“그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란다.”

“왜, 루미에를 부탁하시는 건가요. 어머니?”

 

리아트는 그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펜틸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가 너를 사랑했음을 잊지 말렴, 펜틸.”

 

그리곤 자신의 찻잔에만 차를 따르고는 차를 우아하게 마셨다.

 

잠시 후, 리아트의 입가에 선혈이 한 줄기 흘렀다. 펜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리아트에게로 다가갔다.

 

“어머니! 의사!!! 의사를...!”

 

리아트는 펜틸의 외침에 펜틸의 옷자락을 잡고서 말했다.

 

“로젤리아는 향이 강하니, 함부로 쓰지는 말렴. 의사는 괜찮다. 이건 내 선택이야.”

“어머니! 아니에요, 제 잘못이에요. 눈을 감지 마세요. 어머니!”

 

그때 문을 열고 의사들이 들어와서 후작부인을 감쌌다. 어른들 사이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루미에가 펜틸에게 다가왔다.

 

“형, 울어?”

 

의사들은 끝끝내 리아트를 고쳐내지 못했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리아트가 독을 먹고 있었다고 전했다. 로젤리아 풀은 그저 그 독들을 발발 시키는 도화선 역할을 했을 뿐이었다고······. 하지만 펜틸은 이것이 자신의 잘못 같았다. 장례식장에서 엉엉 울며 어머니를 찾는 루미에를 보면, 또 베일에 가려진 채로 흐드러지게 웃는 아그네스의 얼굴을 보면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러니,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돌아온 루미에가 자신에게 차를 마시자고 했을 때부터. 아니, 첫 방학 때, 같이 자랐던 유모와 호위 기사들이 죽었던 날 이후로부터. 루미에가 자신을 원망하고 죽일 것임을 알고 있었으니까.

 

아마도 독이 들었을 찻잔을 그때의 리아트를 생각하며 우아하게 들었다. 얼마나 대단한 조력자를 찾은 건지, 독은 아무런 색도, 냄새도, 맛도 나지 않았다.

 

그저 문득 이 자리에 앉아서 죽어간 제 어머니, 리아트만이 생각 났다. 차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루미에의 눈이 빛난다.

 

‘어머니, 아무것도 몰랐던 그 아이가 이만큼이나 컸어요.’

 

펜틸은 루미에가 원하는 만큼의 차를 마시고 물었다.

 

“바로 죽는 건 아닌가 보구나.”

 

루미에는 조금 놀란 듯 자신을 보았다.

 

“알고 있었습니까?”

“그럼, 난 네 생각보다 너를 사랑하거든.”

“말도 안 되는 소리.”

 

단호하고 냉정하게 일갈하는 루미에를 보며 펜틸은 웃었다.

 

‘어머니, 그때 심정이 이러셨습니까?’

 

천천히 속이 아려 온다.

 

“루미에.”

“뭡니까, 자꾸.”

“내가 사실은 너를 사랑했음을 알아주렴.”

 

펜틸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마구간으로 갔다. 루미에에게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죄악감을 씌우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래전, 리아트가 선물해 줬던 망아지는 늙은 말이 되어 아무것도 모른 채 달렸다. 시원한 바람이 머리를 비우게 만든다.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루미에, 좋은 조력자를 얻었구나.’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으며 정신을 잃었다. 흙바닥에 구르는 소리가 몇 번이고 들렸던 것도 같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

 

“죽었네, 바보 같은 남자.”

 

아그네스는 창문에 커튼을 치며 말했다.

 

“끝까지, 바보같이 죽긴.”

“글쎄요, 은혜를 안다고 하는 게 맞는 거죠.”

 

아그네스는 갑작스럽게 들려온 제 형식상 동생의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루미에,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니?”

“혹시 누님도 제게 할 말이 있으신가 해서 와봤습니다만, 헛수고였군요.”

“왜, 나도 저리 죽이려고?”

 

아그네스의 말에 루미에는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요, 제가 어떻게 그리 잔인한 생각을 하겠습니까?”

“흐응.”

 

아그네스는 곁눈질로 제 루미에를 훑어보았다.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오더니, 제법 남자의 모양새를 하고 돌아왔다.

 

“내 충고는 먹히지 않았나 보구나?”

“무슨 소리 신지?”

“그래도 미소가 제법 자연스러워졌어. 그것 하나는 칭찬해 주마.”

 

루미에는 연신 어깨를 으쓱거리다가 피식,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내고서는 말했다.

 

“이제는 압니다. 누님께서도 제법 무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요.”

“······.”

“그럼, 다음에 또 뵙도록 하죠. 아그네스 D. 파버.”

 

아그네스 D. 파버(Favor), 로터스의 이름을 끝끝내 물려받지 못한 여자의 이름. 재수 없을 정도로 청명한 색의 은청색 머리가 나간 문 뒤로 부채를 던졌다. 남자를 못 맞출 건 알았지만, 분을 참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올해 25살이 넘은 그녀는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었다. 아닌척하지만, 샬로메 후작에게서 느껴지는 압박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샬로메 후작은 한결같았다. 자신의 핏줄이 아닌 자에게 로터스의 성을 물려주지 않는 것부터 루미에 로터스를 후계자 삼은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히. 그 푸른 백합 같은 상판을 보면 울컥 화가 치밀었다.

 

이제 것 제 어미와 제가 로터스 부자의 사이를 벌려 놓은 것이 무색하게 샬로메 후작은 강경했다.

 

펜틸이 살아 있을 때는 펜틸마저 은근하게 루미에의 편을 들고는 했으니, 루미에가 이렇게까지 큰 건 제 아버지와 펜틸의 능력이 컸다.

 

그놈의 핏줄이 뭐라고.

 

로터스家의 부흥기는 제 어미가 가져온 패물로 시작했다. 샬로메 후작은 후작부인을 죽인 자신을 들여보내주는 대가로 어마 무시한 가격의 예물을 요구했고, 제 어미는 자신의 패물 중 다수를 예물로 내놓아야 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루미에 로터스는 모르겠지만, 집안사람들은 저와 제 어미를 무시하고는 했다. 한 겨울 세숫물이 차가운 물로 나온 건 일도 아니었다. 로터스家 부자들이 없을 때면 식사조차 질이 떨어지고는 했다. 후작은 이 모든 걸 알면서도 묵인했고, 나는 살려면 어쩔 수 없이 로터스家의 주인이 되어야만 했다.

 

사실 이 모든 건 핑계다.

 

정부를 허용하겠다며 퍽 다정하게 굴던 후작부인을 죽인 것은 나였으며, 안주인을 죽인 자에게 충성을 할 자는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대우였을 것이다.

 

하지만 탐이 났다.

 

서부를 뒤덮은 푸른 백합의 가문은 유명했으니, 그 가문의 일원이 되는 것만으로도 큰 명예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파버가 아닌 로터스가.

 

다만, 내가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을 리가. 무슨 독을 써도 죽지 않는 샬로메 후작을 죽일 방법을 강구하던 중 루미에 로터스가 돌아왔다. 지긋지긋한 백합은 죽지 않고 뿌리를 내렸다.

 

은혜의 한 조각이 아닌 고고한 백합이 탐이 났다.

 

그리고 그 줄기로 내 목을 서서히 조였다. 루미에 로터스는 내 사업을 모두 막았고, 제 것을 서서히 돌려받았다. 집안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 루미에 로터스를 따랐고 모든 것은 이것이 순리라는 듯 흘러갔다.

 

조각난 은혜로는 절대 가질 수 없는 푸른 백합이.

 

로터스家의 모두가 정당한 후계자인 루미에 로터스에게 무릎을 꿇었다.

 

이제 것 루미에 로터스가 없을 동안 집안을 다스린 건 나 아그네스 D. 파버였거늘!

 

나에게는 한 조각의 향도 줄 수 없다는 듯 구는 백합이.

 

나에게 무릎 꿇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탐이 났다.

 

오히려 모두가 내 숨통을 막아버렸다.

 

.

 

아그네스의 죽음은 평온했다. 그녀는 우아하게, 방 안에 푸른 백합을 가득 채운 뒤 잠을 자는 것으로 생을 마무리했다.

 

루미에 로터스는 이렇게 마무리될 것을 알았다. 그녀의 손발을 끊는 것만으로도 자존심이 강한 그녀는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사실 루미에 로터스는 그녀가 조금 더 맞설 줄 알았다. 그녀가 왜 죽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고작 이 정도로 죽을 그녀가 아니었는데······. 누군가는 타살이라고 하는 죽음은 로터스家의 무덤이 아닌 영지의 공동묘지에 하얀 국화꽃을 올리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녀를 도대체 누가 죽인 것일까? 루미에 로터스는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그저 이렇게 그녀의 마지막을 마무리 시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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