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ido

2부 1화

첫 오순절 행사(출발편)

북부의 4월은 꽤 분주했다. 오순절 행사에 참석하기 전에 미리 악마들에 대한 대비를 해두어야, 경계와 그 주변이 안전하기 때문이었다. 악마들이 자주 나타나는 곳에 미리 신성력으로 만든 함정을 설치해두어 밟는 즉시 다리 네 개쯤은 날아갈 수 있게 했고,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악마 토벌을 자주 나갔다. 민간인 중에 지원자를 받아 신성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하기도 했는데, 기사들처럼 검이나 창 등을 직접 들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투석기처럼 원거리 무기를 이용한 전투가 가능하게 만든 정도였다.

“오순절 행사에 대해선 베론 형제님께서 잘 설명해주실 겁니다.”

슈바헨의 말에 폰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요한 훈련장 안엔 두 사람뿐이었는데, 폰은 한창 훈련을 하던 중 찾아온 슈바헨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그 전에 해야 할 것이 있어 이리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이쪽을 봐주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폰은 슈바헨 옆에 줄줄이 놓여있는 무기들이 신경 쓰이던 참이었다. 거대한 검과 작은 단도, 육중한 철퇴와 늘씬한 창이 각양각색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다만,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는데, 어떤 무기든 순수하게 금속으로만 만들어져 있고 그 표면에 문자들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아도 되겠습니까?”

폰이 흥미를 보이자 슈바헨은 마음이 끌리는 것을 하나 골라보시라며 뒤로 물러났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전부 같은 콘피테오르가 새겨져 있었다.

[형상 또한 의지에 달렸으니, 행하는 자에게 답하라.]

마음속으로 따라 읽은 그 구절은 초대 집행자 요한이 길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집어 들고 외쳤던 말이다. 살아있는 나뭇가지를 꺾지 않은 집행자를 의아해하던 사람들은 요한의 말이 끝나자마자 거대한 창으로 변한 나뭇가지를 보고 나자빠졌다고 한다. 억지로 외우게 된 지식이었지만 이렇게 보니 퍽 반가웠다. 폰은 무기를 하나씩 살펴보다, 제 키만 한 창을 손에 들어보았다. 꽤 묵직했지만 들지 못할 정도는 아니어서 폰은 속이 비어있느냐고 물었다. 슈바헨은 잔잔한 미소를 띠며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뒤늦게 도착한 베론이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폰에게 창을 휘둘러 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저는 창을 사용해본 적이 전혀 없는걸요.”

“괜찮습니다. 단지 휘두르는 것만으로 누군가가 다치거나 당신께서 벌을 받으시는 일은 없습니다.”

그들에게서 두 발짝 더 멀어진 폰이 망설이다가 창을 한번 휘둘러 보았다.

‘어떻게 힘을 줘야 하는지 알 것 같아.’

마음이 가는 대로 몇 번 허공에서 창을 돌리던 폰은, 시야에 들어온 짚 인형을 무심코 반 토막 냈다.

“앗!”

“…찾으신 것 같군요.”

슈바헨은 감격한 표정으로 폰에게 다가갔다. 얼떨떨한 폰은 혹시 짚 인형을 자른 것처럼 그를 다치게 할까 봐 슈바헨에게 다가오지 말아달라 소리쳤으나, 그는 듣지 못하게 된 사람인 것처럼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베론이 지켜보다가 급하게 나서서 슈바헨을 붙잡지 않았더라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시도폰은 황급히 무기를 원래 자리로 내려놓았다.

“왜 무기를 내려놓으신 겁니까? 당신께 가장 잘 맞는 것을 이미 찾으셨는데요.”

“다, 다른 것도 사용할 수 있는지 궁금해서요.”

폰이 살짝 떨리는 손으로 다른 무기를 집어 들었지만 가볍게 휘두르기는커녕, 제대로 들고 서 있을 수도 없었다. 질질 끌리는 대검을 겨우 원래 자리로 돌려둔 폰은 작은 단검으로 바꾸어 들었지만, 도대체 이 조막만 한 검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그것도 한숨을 쉬며 내려놓았다. 결국, 다시 창을 쥐어 든 폰은 더부룩한 부담감을 안고 자리에 섰다. 흐뭇한 슈바헨은 거기 적힌 콘피테오르를 천천히 읽어달라고 요청했고, 자신이 살아있을 때 이런 광경을 볼 수 있어서 영광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형상 또한 의지에 달렸으니, 행하는 자에게 답하라.]”

그러자 시도폰 키와 비슷한 길이였던 창은 길게 자라나 베론의 키와 맞먹게 되었다. 단순한 스피어 형태였던 날도 베는 데 특화된 할버드 형태로 변했다.

“콘피테오르가 사라졌는데 괜찮은 건가요?”

“괜찮습니다. 이제 이 무기는 여기서 변화할 일 없으니까요, 온전히 당신만의 것입니다. 기사단 기념관에서 여러 신성 무기를 보셨지요? 무기에 새겨진 콘피테오르를 집행자께서 읽으시면 무기는 가장 적합한 형태로 제 형상을 고친다고 합니다. 물론 어떤 무기를 선택할지는 오직 집행자께 달린 것이고요. 언젠가 당신께서 신의 뜻을 모두 수행하시고 그분의 품에서 안식을 얻게 되시면, 무기와 무장이 남아 이 기사단을, 나아가 대륙을 지키는 신물로 모셔질 것입니다.”

태연하게 제 죽음을 들먹이는 슈바헨을 보며 폰은 두려움을 느꼈지만, 베론은 무엇이 이상한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기념관에는 초대 요한의 황금의 창부터 바로 직전 집행자였던 11대 집행자 필리포스의 낫까지 모셔져 있었는데, 그 무기들은 녹이 슬지도 않았고 부서진 곳 하나 없었다. 사람은 죽었지만, 그 무기는 영원히 남아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섬뜩하게 다가왔다. 슈바헨이 이후 교육은 베론에게 맡긴다며 방을 나서자마자, 폰은 신물이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인지 몰랐다고 토로했다.

“모든 일을 마치고 죽어서까지 제 흔적이 그렇게 생생히 남아있을 거라는 게 좀 무섭네요.”

“영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후세를 지킬 수 있는 일이니까요.”

틀렸다. 다정하다고 생각한 베론이었지만, 그는 시도폰이 집행자가 된 후엔 언제나 신실한 신도의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할 말을 잃은 시도폰은 묵묵히 베론에게 오순절 행사에 대해 들었고, 의외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적다는 사실에 놀랐다.

“신성력을 확인받을 때 외친 콘피테오르를 그대로 다시 외우기만 하면 된다고요?”

“네, 당신께서 빛을 밝히시면 적당한 때에 교황 성하께서 빛을 꺼트려 주실 겁니다.”

“하지만 그건 집행자의 자격을 증명하는 구절이 아니잖아요.”

“아마 염두에 두고 계실 그 구절은 기밀이라, 여기서도 함부로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강력한 구절이기에 남용했다가는 그 힘이 오염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폰이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입장하실 때는 지금 그 무기를 들고 계실 테니까요. 당신께서 당신의 자격을 증명하는 데엔 부족함이 없으실 겁니다.”

베론은 폰의 심정을 정확하게 빗나간 대답을 내놓았다. 빛과 어둠으로 쌍을 이루는 두 구절은 시도폰이 카리타스와 함께 읊었던 것이고 카리타스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말이었다.

‘그걸 생판 처음 뵙는 교황 성하와 해야 한다고?’

성하껜 죄송하지만, 상당히 아니꼬운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카리타스와의 추억이 다른 사람과의 것으로 덧씌워지는 상황은 피하고 싶었는데. 거절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핑계가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물을 마시던 폰은, 베론이 이번 오순절 행사에 보호소 아이들 몇을 데려갈 생각이라고 말하자마자 사레가 들렸다. 베론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한껏 굽은 폰의 등을 두드리려다가 손을 거두었다. 결국 혼자 안정을 찾은 폰이 겨우겨우 말을 이었다.

“쿨럭, 갑자기 아이들은 왜 같이 가게 되나요?”

“괜찮으십니까? 이번 사태 때문에 아이들의 정신 건강이 걱정되는 것도 있고, 아이들에게 교리를 되새겨 신앙심을 고취하기에 이 행사가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솔라라는 아이가 가장 먼저 자원했다고 들었습니다. 기사가 되겠다며 매일 따로 검술 훈련을 한다고 하더군요. 물론 신성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대단하네요….”

제 병문안을 왔던 솔라를 생각하면 놀랍지 않은 일이었다. 지나치게 저를 올곧게 바라보는 눈빛은 카리타스와 닮았지만, 솔라는 자신을 바라본다기보다는 그 너머의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까 전, 슈바헨이 아무렇지도 않게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도 그렇고, 이 사람들은 나를 ‘나’로 보고 있기는 한 걸까. 베론은 설명이 끝났으니 훈련을 재개하자며 벽에 기대져 있던 창을 뽑아 들었다.

“이걸로 하면 되나요?”

폰은 제 손에 들린 신성 무기를 가리켰다.

“예. 오늘부터 창술에 대해 배우게 되실 겁니다. 제가 기본적인 것을 가르쳐드리겠지만, 오순절 이후로는 다른 사범을 붙여드릴 겁니다. 그는 창술에 특화된 이니까 배울 점이 많을 겁니다.”

그날 훈련은 평소보다 늦게까지 이어졌고, 잘 맞는 무기를 들고 거의 날뛰다시피 한 시도폰은 훈련이 끝나자마자 씻다가 잠들어버렸다. 욕실이 너무 조용했던 점과 목욕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것에 의문을 품은 시종이 아니었다면, 위험한 일이 생겼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평소보다 더 열심히 훈련하셨나 봐요. 그래도 씻다가 주무시면 안 되죠! 위험하잖아요.”

폰의 전담 시종, 루카는 잔소리하면서도 머리카락을 말려주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이런 시중을 어색해하던 폰이, 제가 하겠다고 수건을 빼앗아 드는 게 평소 일과였으나 손가락 까딱할 힘도 없었던 폰은 가만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 되셨어요. 뭐라도 드시고 주무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미 반쯤 감긴 눈으로 폰은 고개를 젓다가,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잠들었다.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루카는 수건을 정리했다. 그는 잠든 폰의 위로 이불을 꼼꼼하게 덮어주고 문을 닫았다. 오순절 행사 때문에 북부에서 출발하기 전까지 폰은 비슷한 강도의 훈련을 반복했고, 베론은 자신이 더 가르칠 수 없을 것 같다며 두 손을 들었다.

“오순절 전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게 신기할 정도군요. 앞으로 더 잘하게 되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폰은 비처럼 내리는 땀을 닦아내고 훈련장을 나갔다. 이제는 씻으면서 기절하지도 않았고 씻고 나서도 무언가 할 기력이 남아있었다. 베론에게 전달받은 제 일기장을 펼치며, 폰은 여태껏 자신이 쓴 일기들을 톺아보았다. 어느 날은 훈련이 너무 힘들어 한 자도 쓰지 못했고 어느 날은 그래도 한 줄은 쓰고 잤다. 그리고 오늘, 폰의 일기는 한 페이지를 채웠다.

“루카, 내일 출발할 때도 네가 깨워주는 거지?”

“당연하죠. 미리 짐도 싸두었으니 그것만 들고 가시면 돼요.”

“아, 그러면 이것도 거기 넣어줘, 방금 일기를 다 썼거든.”

루카는 넘겨받은 일기장을 폰의 짐 보따리 안에 집어넣고 커튼을 쳤다.

“안녕히 주무세요. 내일 봬요.”

“응, 너도 잘자.”

웬일로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날이라 바깥은 조용했다. 불 꺼진 방은 완전한 침묵에 잠겼지만, 폰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도 시끄럽고 어지러웠다. 이리저리 뒤척거리던 폰은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걷었다. 위쪽 반이 조금 부푼 달은 밝게 빛났고 들짐승들도 자러 갔는지 풀숲은 흔들림이 없었다. 이렇게 조용했던 어느 날, 카리타스는 창문을 열고 바깥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지만, 그때도 어물쩍 넘어가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나는 별로 의지가 안 되는 걸까?”

한심한 말을 내뱉으니 스스로가 더 한심하게 느껴졌다. 애써 힘든 것을 가리려 하는 카리타스를 추궁할 순 없어서 말없이 다시 자러 가자고 말하긴 했었지만, 그게 정말 잘한 일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묻고, 카리타스는 답하지 않는다. 어느 여름날에 했던 고민이 이곳에서도 반복됐다. 꿈틀대던 복잡한 마음은 북부의 추위를 먹고 자랐는지, 그 크기가 가늠이 가지 않을 정도로 커졌다. 그것을 무시하려 애써 훈련에만 집중했고 어떻게든 카리를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는 것을 멈추는 게 가능할까? 나는 그 애를 숨 쉬듯 떠올렸고, 곧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심장은 요동쳐 잠이 오질 않는다. 의심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여전히 그 애는 나에게 신비로운 사람이었고, 불경한 말이지만, 신성해 보이기까지 했다. 내가 그 애 앞에서 나를 낮추면 의심조차 타당하지 않게 되려나.

“사랑 안에 두려움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요한 일서 4:18)

혼자서 끙끙 앓아봤자 의심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고 갑자기 카리타스가 모든 일을 이야기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내일 있을 여정을 위해 충분히 잠을 자두는 것뿐이다. 억지로 잠을 청한 폰은 거의 눈을 감았다고 생각하자마자 잠에서 깼다. 짹짹거리는 새소리가 얄밉게 들렸다.

“커튼은 왜 걷어두셨나요? 아침에 눈부시지 않으셨어요?”

“아, 잠깐 바람 좀 쐰다고 창문을 열었었는데 커튼 치는 걸 까먹었나 봐, 그렇게 눈부시지는 않았어.”

“그러셨군요. 다행이에요. 짐은 제가 미리 마차에 실어두었으니까 말에 타시기만 하면 돼요.”

폰은 고개를 끄덕이고 루카의 도움을 받아 의복을 갖췄다. 집행자니 평범한 옷을 입진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화려한 옷이었다. 연습할 때 입었던 갑옷보다 더 긴 옷에 시도폰은 당황하며 말에게 다가갔다.

“와, 이걸 입고 말을 타야 한다고? 나 떨어지진 않겠지?”

“여러 번 훈련하셨을 때도 괜찮으셨잖아요. 졸지만 않으시면 문제없을 거예요.”

길게 늘어지는 데다가 그 길이만큼 무겁기까지 했다. 흰색 천에 금색 자수가 빽빽하고 섬세하게 수놓아진 의상은 확실히 아름답긴 했다.

“이 정도면 말을 타고 난 뒤에 옷을 입어야겠어.”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들르는 마을마다 오르내리셔야 하니까 미리 익숙해지시는 게 좋을 거예요. 자, 여기, 잡아주시고요.”

루카의 지시대로 폰은 길게 늘어진 띠를 팔에 감았다. 그동안 루카는 바닥을 쓸고 있는 옷을 살짝 끌어 올려 폰의 양손에 쥐여주었고, 이대로 말에 조심히 오르라고 당부했다.

“루카도 같이 가면 좋을 텐데. 벌써 익숙해졌단 말이야.”

투덜거리는 시도폰에게 ‘어른스럽게 행동하셔야지요.’라고 말하는 루카의 얼굴에도 뿌듯함과 아쉬움이 묻어나왔다.

“제 몫까지 잘 즐기다 와주세요. 저는 그거면 돼요.”

“응, 다녀올게.”

폰이 떠난 뒤, 옷을 정리하던 루카는 문득,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남부로 향하는 일행이 무사히 돌아오길 빌었다. 슈바헨 사제는 일행을 배웅하려고 했는지, 기사단 건물 입구에 의자를 두고 앉아있었다. 남부에서 직접 임명식을 보고 싶은 마음은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 클 테지만, 속세 사람들 기준으로 이미 산 사람이 아닌 나이까지 도달한 사제이니 먼 여정을 떠나는 것은 무리였다.

“준비가 일찍 끝나서요. 루카가 열심히 준비해뒀더라고요.”

루카의 이름만 나오면 슈바헨은 목에 뭔가 걸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폰의 시종으로 루카를 배치한 것도 본인일 텐데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폰이었다.

“좌측 마차에 보호소 아이들이 타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인사라도 하고 오시겠습니까?”

화제를 돌리는 슈바헨에 폰은 난처한 표정으로 마차를 슬쩍 바라보았다. 애써 천을 뚫고 나오는 시선을 무시하고 서 있었는데, 폰이 고개를 돌리길 기다렸다는 듯 솔라가 마차에서 내렸다. 폰은 그런 솔라가 다가올 거라 예상하고 긴장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솔라는 멀찍이서 눈인사만 보낼 뿐이었다. 그러곤 다시 마차를 타버리는 바람에 긴장한 폰만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제가 제대로 아는 아이는 저 애밖에 없어서요. 굳이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출발 준비 완료했습니다. 헤일로 단장께서 곧 오실 겁니다.”

“베론 형제님도 몸조심하십시오. 북부는 이 늙은이가 잘 지키고 있겠습니다.”

“신께서는 최전방에 남은 신자들을 버리지 않으실 겁니다. 이쪽으로 와주시지요.”

슈바헨에게 인사한 폰과 베론은 말을 타고 기사단 건물을 나섰다. 팔에 감겨있던 띠를 풀고, 기다란 옷자락을 늘어뜨린 폰의 모습은 성화에 그려진 초대 요한의 것과 매우 비슷했다고들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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