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ido

2부 외전: 카리타스

헤일로의 사망소식 전달~장례식까지

“성하, 북부에서 급하게 전령이 왔습니다.”

정기 회의가 한창 진행되던 중, 누군가가 무례하게 회의실 문을 세게 열어젖혔다. 예산안을 조정하느라 달궈져 있던 방은 순간 침묵했다가 다시 술렁였고, 교황의 귀에 짧게 뭐라 속삭인 시종이 편지를 그에게 건넸다. 교황은 살짝 커진 눈으로 편지를 빠르게 읽어내려갔고, 아까완 다르게 낮아진 목소리로 당장 회의를 중지하겠다 선언했다. 눈치를 살피던 사제 중 오토 대주교가 손을 들고 교황에게 물었다.

“죄송하지만, 성하, 무슨 일입니까? 설명을 해주셔야….”

“헤일로 기사단장이 신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순찰 중에 갑작스러운 악마의 습격이 있었다고 하는군요. 편지는 현재 수행단에 계신 아페 전하께서 작성해서 보내주셨으니 한 치의 거짓도 없을 겁니다.”

좌중은 충격에 입을 달싹거리지도 못했다. 카리타스가 회의 내용을 기록하던 책을 떨어뜨렸지만, 아무도 그것을 지적할 수 없었다. 교황은 다른 사제들이 알아선 안 되는 일이라며 입단속을 시키고 사람들을 내보냈다.

“성녀께서는 나중에 제 방으로 와주십시오. 대책을… 논의해야 할 일이 생겼으니까요.”

언제나 침착하고 뻔뻔하게 모두를 대하던 교황이 착잡한 목소리로 지시하자, 카리타스는 허둥지둥 책을 주워서 일어나며 고개를 끄덕였다. 교황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건 나중에 알아챈 사실이었고 이때의 카리타스는 제 방으로 향하며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기 바빴다.

‘이게, 이게 무슨 일이지? 그분이 그렇게 쉽게 돌아가실 분이 아닌데. 시도폰은, 다른 사람들은 무사한 거야?’

“성녀님, 아까 북부에서 온 전령이 편지를 두고 갔습니다.”

시종은 구태여 무슨 일인지 묻지 않고 방을 나갔고 카리타스는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뜯어 편지지를 꺼냈다. 종이의 첫머리에 쓰인 자신의 이름을 확인하고 나서야 카리타스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익숙한 필기체가 반가웠던 것도 잠시, 내용을 전부 머릿속에 집어넣은 카리타스는 제 눈을 의심하며 두 번 정도 더 편지를 읽었다.

[카리타스에게. 잘 지냈어? 편지를 보낸 지 얼마 안 돼서 별다른 일은 없었을 것 같지만, 그래도 아무 일 없었으면 좋겠네. 이미 교황 성하께도 같은 내용을 보내긴 했는데 너한테도 보내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이 편지를 보내.

아까 헤일로 단장님의 사망을 확인했어. 평소처럼 경계를 순찰했는데 악마가 나오지 않던 구역에서 갑자기 출몰하는 바람에 다른 기사들을 지키기 위해 단장이 나섰고, 우리가 나중에 그걸 알고 지원하러 갔지만… 너무 늦어버렸어. 조금만 빨리 구하러 갔으면 살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아, 오래 추모하고 싶었는데 단장의 빈자리를 메꾸려면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더라.

그래서, 남부에서 북부로 기사들을 차출해줬으면 좋겠어. 앞으로 3년은 추가 인원의 지원이 필요해. 너도 바쁘겠지만 이번만 도와줘. 내가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는데 혼자선 안 되는 게 많아 보여. 북부가 무너지면 모두가 위험하다고만 말해줘.

마음 같아선 직접 가서 부탁하고 싶은데 그건 안 될 것 같아. 베론이 없는 동안은 최고 책임자가 나라서 북부를 나갈 수 없다고 하더라. 베론에게 수행단을 데리고 남부로 돌아가라고 할 거거든, 장례식도 그때 치르겠지. 올해는 단장에게 북부를 맡겨두고 베론이랑 남부로 놀러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안 되겠네. 미안해. 그래도 (뒷부분은 잉크로 검게 칠해져 있다). 잘 지내. 시도폰으로부터.]

카리타스는 심란한 마음을 안고 편지를 내려놓았다. 헤일로 단장이 죽었다. 그것도 일상적인 순찰 중에, 갑작스러운 악마들의 등장으로. 시도폰은 사태의 원인을 설명하지 않았지만, 알고도 하지 않은 것인지 아직 파악하는 중인지는 알 수 없었다. 심장을 꽉 조이는 고통에 카리타스는 무의식적으로 숨을 참았다. 눈물이 눈꼬리에 고여 잠깐 달랑거리자, 카리타스는 소매로 눈가를 닦았다.

‘단장님께서 그렇게 허무하게 돌아가셨다는 게 안 믿겨…. 시도폰과 함께 북부를 지켜낼 거라고 하셨으면서. 순찰 중에 당하셨다는 걸 보면 무장도 전투 때만큼 꼼꼼하게 하지 않으셨을 텐데. 하…. 게다가 북부에 지원을 더 요청해달라니,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할 수 있을까?’

편지지를 문지르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카리타스는 잉크로 검게 칠해진 부분을 몇 번이고 만져보며 시도폰이 어떤 말을 생략했을지 상상했다. 단장을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집행자로서 남부로 가지 못한다는 것에 미안해하고 있었을까.

‘죄송해요, 단장님의 죽음을 더 슬퍼하고 싶었는데. 남아있는 사람들이 짊어져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당신께선 영원한 안식 속에 평안하시길.’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카리타스의 추모를 깨트렸다.

“교황 성하께서 부르셨습니다.”

“…가지.”

카리타스는 북부에 대한 지원을 어떻게 요청해야 할지 고민하며 평소와 같은 복도를 걸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제들이 평범하게 저녁 일과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일꾼들도 평소처럼 자기 일을 하기에 바빴다. 성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며 바로 문을 열어준 시종을 뒤로하고, 카리타스는 긴장한 채 집무실에 발을 들였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교황은 카리타스에게 심경이 어떻냐고 물었다.

“저는 비록 짧은 시간만 그분과 함께 보내었지만 정말 좋은 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신실하셨고, 강직하셨으며 우리가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주시는 다정한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께서 이미 이곳에 계시지 않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렇죠, 그는 이미 자비로운 분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교황은 등을 돌리고 있어, 카리타스 쪽에서는 그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카리타스는 교황이 씁쓸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의아한 눈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또 잠깐의 침묵이 지나가고, 카리타스는 언제 북부의 지원을 부탁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어느새 제 쪽으로 몸을 돌린 교황을 발견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그가 신전에 들어온 지 일주일 뒤였습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에 카리타스는 귀를 바짝 세웠다.

“가문의 부탁으로 저는 그에게 도움을 주려 했지만, 그는 당신께서 말씀하신 대로 강직한 이라, 제 도움을 거절하고 꿋꿋하게 시험을 통과하더군요. 단순한 시험이나 평가는 물론이고 북부 수행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기에 전대 기사단장의 눈에 들었고, 수행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고 그대로 북부에 자리를 잡겠다고 통보했습니다. 가문의 반대가 극렬했고, 저 또한 그런 인재가 북부에서 방패가 되어 굳어가겠다는 걸 말렸지요.”

“….”

“하지만 그는 북부에서 많은 사람을 구했고 악마들을 막아 우리의 생명을 온존케 하였습니다. 그런 이를 잃었다는 게 제게 얼마나 큰 상심을 안겨주는지는, 오직 위대하신 그분만이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교황은 미동도 없었으나, 카리타스는 그의 눈에서 연민을 읽어내고 당황하여 고개를 숙였다. 예언의 진의를 왜곡하고 왕당파를 제거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았던 사람이, 이렇게 한 사람의 죽음에 깊은 슬픔을 말하고 있다니. 카리타스가 다시 고개를 들자 교황의 얼굴에서 그런 침침한 감정은 사라지고 없었다.

‘헛걸 봤나.’

교황은 차분한 몸짓으로 의자에 앉아 등을 기대었다. 그는 자신이 말한 일이 없었던 것처럼 느긋한 얼굴로 돌아왔지만, 책상에 뜯긴 채로 놓인 편지는 정리하지도 않고 외면하고 있었다. 물건이 조금이라도 난잡하게 배치되어 있으면 아니꼬워하던 모습과 대조되는 행동에, 카리타스는 또 꺼림칙한 느낌을 받았다. 미풍조차 불지 않는 맑은 날이라, 방은 산 사람이 없는 것처럼 조용했다.

“장례 절차에 대해 북부 쪽에서 본가로 연락했다고는 하나, 가문의 성격상 단장의 장례식은 남부의 신전에서 치러질 것 같습니다. 그러니 확답을 받기 전에 미리 준비해두어도 문제는 없을 겁니다.”

‘또 장례식을 내가 준비해야 하는구나.’

“알겠습니다. 준비해두겠습니다. 한데 성하, 단장께서 그렇게 되신 이후로 북부가 위태롭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기사단 인원이 원체 부족한 상태였는데, 이번 사태로 지원자도 줄 거라 예상되는 데다가 북부 주민들의 이탈 사태도 발생하고 있다고요.”

폰에게 전해 받은 소식이지만 교황이 모를 리 없었다. 그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행동과는 다르게 그는 북부를 지원하기 힘들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어째서… 인가요. 한 사람이 빠진 것만으로 지원을 늘리긴 힘든가요? 하지만 단장께서 그렇게 된 여파가 상당히 크지 않습니까?”

“그걸 모르는 게 아닙니다. 성녀께서는 아직 모르시겠지만 지금 이곳 교회의 상황도 좋지 않습니다. 북부지원 건은 잠시 미루십시오.”

잠시 망설이던 카리타스가 소파를 손으로 누르며 허리를 곧게 세웠다. 폰이 자신에게 맡긴 일을 이번엔 해내고 싶었으니까.

“납득할 수 없습니다. 북부는 악마에게서 모두를 지킬 담장입니다. 그곳이 무너지면 누가 백성들을 지킬 수 있으리라 생각하시나요.”

“북부는 무너지지 않을 겁니다. 집행자께서 계시지 않습니까? 성녀께서는 그분의 위대함을 의심하고 계시는지요.”

시도폰에게 모든 것을 떠넘길 속셈이냐고 따지려던 카리타스는 ‘의심’이라는 단어에 입을 다물었다.

“…저는 그분의 강함과 의지를 무시하려던 게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이 해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신성한 힘으로 악마 떼를 반으로 갈라버릴 순 있어도 인간이기에 돌을 빵으로 바꿀 순 없습니다.”

“당신께선 그분의 한계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예?”

“한계란 것은 인간이 극도로 몰아붙여 졌을 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시련도 그분께서 자신의 한계점을 알아내고 극복하는 밑거름이 될 겁니다. 저는 집행자께서 그것들을 모두 잘 이겨내시고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당신께서도 제가 맡긴 일을 힘들다고 느끼면서 결국엔 적응해내셨잖습니까?”

갑자기 자신에게로 방향을 돌리는 이야기와 그 내용에 카리타스는 구역감을 느꼈다.

‘여태 한 일들이 전부 날 위한 거라고 이야기하는 건가, 지금?’

“훗날 이 교회를 이끌어가야 하실 분께서 제가 헤일로 단장과 같은 곳에 가게 되기 전까지 저의 모든 것을 배우셨으면 했습니다. 실제로 제가 보아하니 당신께선 아주 훌륭하게 습득하신 것 같더군요. 북부의 사정은 저만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이미 그것을 알고 계신 상태에서 저에게 지원안까지 제안해주시다니요. 먼 옛날의 본인을 보는 것 같아 감격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인자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교황을 견디지 못한 카리타스는 이만 실례하겠다며 방을 나섰다. 교황은 굳이 그를 붙잡지 않고 ‘이번 일도 잘 해내리라 믿습니다.’라며 카리타스의 속을 긁었다.

‘젠장, 젠장. 저 인간이랑 똑같은 짓거릴 하고 있었다고.’

잔뜩 성난 발걸음으로 카리타스는 제 방에 도착해서 손수 문을 열었다. 시종은 문손잡이로 향하려던 손을 떼고 조용히 물러났고, 이후 그의 방에선 종이가 빠르게 넘어가는 소리만 요란하게 울렸다.


장례식 당일, 카리타스는 시도폰의 임명식 때만큼이나 맑은 하늘을 보며 베일을 만지작거렸다. 헤일로 단장의 사망 소식이 하루 만에 신전에 퍼지는 바람에, 전령이 도착한 다음 날부터 신전엔 우울한 기운이 감돌았다. 장례식 당일은 그 기운이 극에 달해, 새조차 울지 않는 적막한 신전은 흰옷을 뒤집어쓴 유령들의 무덤이 된 것처럼 보였다. 제 방에서 카리타스는 그 유령들의 행렬을 지켜보다가 유가족이 도착했다는 말에 고개를 돌렸다. 이미 한바탕 눈물을 쏟고 온 듯한 여성은 남편으로 보이는 이의 부축을 받으며 카리타스가 마련한 자리에 앉았다. 그는 자신을 헤일로 단장의 여동생이라 소개했고, 노쇠하신 부모님을 대신하여 참석했다고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카리타스는 헤일로 단장의 죽음에 깊은 유감을 표한 뒤 장례 절차를 설명하며 시신은 신전의 어디에 묻힐지 알려주었다.

“단장님의 시신은 가문에서 받아가고 싶습니다.”

단장의 여동생, 달리아는 핏기없는 입술로 토해내듯 말했다. 그는 원망과 슬픔을 억제하려고 손수건을 꽉 쥐었지만, 눈빛만은 어쩌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단장께선 이미 신전에 적을 두셨기 때문에 시신을 외부로 내보내는 건 불가능합니다. 다만 말씀하시면 언제든 추모를 할 수 있도록 말해두겠습니다.”

제 잘못이 아닌데도 카리타스는 반사적으로 사과했고, 고개를 숙인 성녀에게 더 무어라 말하지 못한 부부는 회중석에 마련된 자리로 안내받았다. 달리아는 일행 중 마지막으로 방을 나가며 카리타스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고, 그 말을 들은 카리타스는 못 들은 것으로 하겠다며 달리아를 배웅했다.

‘만약…, 만약 오라버니께서 기사가 되리라고 결심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허무하게 돌아가시지는 않았겠지요? 저처럼 가정을 이루고 영지에서 평화롭게 삶을 꾸려나가셨겠지요?’

마지막으로 장례 미사 순서를 점검한 카리타스가 방을 나섰고, 그는 촛불과 흰옷의 추모객들이 가득한 본당으로 향했다.

한편 그 시각, 남부의 성문은 침울한 기사들을 맞이하느라 활짝 열려있었다. 맑은 하늘엔 한 조각의 구름도, 한 조각의 종이꽃도 부유하고 있지 않았다. 문을 닫은 가게 앞엔 엄숙한 표정의 주민들이 기사들의 말발굽 그림자만 쳐다보고 있었고, 투구를 벗지 않아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기사들은 절그럭거리는 갑옷에 짓눌리는 것처럼 말을 몰았다.

시도폰이 입성할 때 바닥에 꽃을 뿌렸던 아이들은 부모님의 손을 잡고 겁먹은 얼굴로 기사들의 행렬을 지켜보았다. 베론을 선두로 기사들이 앞장섰고 헤일로의 시신을 실은 마차가 지나갔다. 수습 기사와 수행단 아이들은 마차의 뒤에서 긴장한 표정으로 앞사람을 따라 걸었다. 그들은 조용한 거리를 어색하게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제1 신전의 열린 문으로 일행이 들어가자 문이 닫혔고 모여있던 주민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차례로 기사들이 도열 했고 그 뒷줄엔 아이들이 어색하게 줄지어 섰다. 추모를 가득 담은 노래와 기도가 천천히 회중석을 쓸고 지나갔다. 촛불이 흔들리고 망자의 혼을 위로하는 향이 이리저리 휘둘리며 본당을 가득 채웠다. 이미 울음을 다 내보낸 듯했던 달리아는 어느새 다시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있었고 카리타스가 직접 헤일로를 추억하는 글을 읊을 때, 수행단 쪽에서도 작은 훌쩍임이 들려왔다.

회중석부터 제단까지를 가득 메운 흰옷의 사람들은 여태껏 그들을 지켜준 단장의 헌신에 감사를 표하며 눈을 감았다. 장례 의식이 끝으로 향하며 헤일로의 관에 뚜껑이 드리워졌을 때, 카리타스는 영원한 잠에 빠진 헤일로를 멍하니 볼 수밖에 없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 너머로 누군가를 보냈을 때 남겨진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카리타스는 울음을 참고 있는 두코와 이미 고개를 숙이고 있는 코지, 굳은 얼굴로 자리를 지키는 베론을 보고 다시 헤일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눈가가 뜨거워지는 걸 느낀 카리타스가 잠깐 입술을 물었다. 순수한 감정만으로 추모해야 마땅한 이에게 계속 형식적인 말을 읊어야 한다는 데에 자괴감이 들었지만, 카리타스는 추모의 말을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해야 단장의 의지와 희생을 사람들이 기억할 테니까. 말을 끝내고 잠깐의 공백 동안, 카리타스의 시선이 달리아에게 향했다.

‘만약…, 만약 오라버니께서 기사가 되리라고 결심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허무하게 돌아가시지는 않았겠지요?’

그의 마지막 말을 떠올린 카리타스는 자기도 모르게 굳게 닫힌 관 너머로 누운 사람이 시도폰이었다면, 따위의 가정을 했다.

추모의 애틋함이 순식간에 죽음에 대한 공포로 바뀌어 카리타스를 덮쳤다. 아까의 슬픔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외로움과 자책감이 심장 근처를 뚫고 지나갔고, 카리타스는 왜 그런 끔찍한 망상을 하는 거냐고 자신에게 화를 내면서도 그 생각을 멈추진 못했다. 집행자의 장례식이니 비명횡사한 단장의 것보다 화려하고, 어쩌면 들뜬 분위기일지도 모르는 미래를 계속해서 상상했다. 누구보다 신의 뜻을 충실히 따른 자가, 모든 의무를 마치고 안식에 들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축복할 것이다. 영면을 찬양하는 사람들 사이에 갇혀, 카리타스만이 신을 원망하고 저주할 테지만, 관은 굳게 닫힌 채 땅으로 파고들 것이다. 다행히 그 뒤까지 상상이 이어지지 않았다.

‘모르겠다. 폰이 없는 세상은 정말로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아.’

정신없이 추모의 노래를 부르고 기도를 올리고, 또 그것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장례는 끝나있었다. 수행단의 아이들은 차마 떼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옮겨 거주관으로 돌아갔고, 유가족은 시신과 하루 동안만이라도 함께 있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해, 회중석에 남았다. 기사단 중에선 베론만이 남았는데, 그는 피데이스와 두코에게 기사단을 맡기고 굳은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갑옷을 벗고 넉넉한 흰옷을 입은 그는 깊은 잠에서 갓 깨어나 현실을 인지하지 못한 사람 같기도 했고, 진실이 괴로워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 같기도 했다. 카리타스는 신전 사람들과 초에 불을 붙이다가 베론 쪽으로 걸어갔는데, 위로조차 건네기 힘든 분위기에 그의 옆에 두꺼운 담요를 놓고 돌아섰다. 괴로운 밤, 촛불이 어두운 실내를 따스하게 비추고 산 자들을 위로해줄 것이다.

“…성녀님. 유족분들과 이야기 나누셨다고 들었습니다.”

“아페 저하.”

신전으로 돌아온 카리타스는 먼저 돌아와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는 아페를 마주쳤다. 분명 눈가가 붉은 것을 보아 울었음이 틀림없는데도, 아페는 이전처럼 절망하여 방에 틀어박히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되려 카리타스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기사단을 거처로 안내하고 그들의 편의를 봐주고 있었다. 아페는 카리타스에게 유가족은 어떤 상태인지 물어보았다.

“단장님의 여동생, 달리아 님께선 단장의 시신을 돌려받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단장님은 이미 신전에 들어오신 분이니 그건 불가능했죠.”

그에 아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머지 일은 자신이 처리할 테니 카리타스에게 쉬라고 말했다. 안색이 좋지 않다며 걱정까지 하는 아페에게 카리타스는 적잖이 놀랐다. 아페는 부끄러운지 카리타스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지난번, 미들 부인의 장례식은 제 일이었는데도 충격을 받았다는 이유로 당신께 떠넘겼었죠. 이젠 피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저도 신전의 일원이고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은 앞으로도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이번 일도 제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당신만큼 설득력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단장이 그렇게 허무하게 당하진 않았을 테니까요. 강해지고 싶습니다. 이번 일을 해내는 걸 첫 단계로 생각하고 있어요.”

“…좋은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장하셨군요.”

‘나 같은 사람보단 이 사람이 더 성녀라는 직업에 잘 맞지 않을까?’

칭찬을 받으리라고 예상하진 못했는지, 아페의 눈이 크게 뜨였다가 돌아왔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직 아무한테도 말하진 않았지만, 당신께라면 제 계획을 말씀드려도 될 것 같아요….”

이후 아페의 말을 들은 카리타스는 이만 방으로 돌아가 보겠다며 걸음을 옮겼다. 카리타스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인 게 이상했던 아페였지만, 왜 아무 반응이 없느냐고 묻는 것도 이상하지 않겠나 싶어서 그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일을 마무리하고 침대에 뻗듯이 누운 카리타스는 아페의 계획을 곱씹었다.

‘저는 북부로 갈 거예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한 한 이르게 지원할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아페는 따로 햇빛을 받는 것처럼 빛나 보였다. 카리타스는 ‘당신은 그곳에 갈 수 없지만요.’라는 말이 아페의 얼굴에 쓰여있었다고 생각하며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허공에 손을 쭉 뻗은 카리타스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방에서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 허우적거리다가 다시 손을 내려놓았다.

‘보고 싶다. 나도 거기 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카리타스는 잠깐 자신이 북부에 영영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춥고 광활한 데다가 식량을 항상 아껴야 하는 곳이었지만, 그곳에서 카리타스는 자유를 맛봤고 책으로는 느낄 수 없었던 사랑과 우정이라는 것을 마음껏 누렸다. 그리고 곁엔 항상 시도폰이 있었기에, 카리타스의 상상 속 장면엔 언제나 그가 등장했다.

‘이번엔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북부가 안정되기 전까진 또 못 내려오겠지. 내가 보러 갈 순 없을까? 아냐…, 아페라면 몰라도 나는 나갈 수 없겠지. 아일렌이랑 비슷한 꼴이 됐네.’

바빠서 한동안 아일렌을 만나지 않았던 카리타스는 오랜만에 그를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완전히 같은 신세가 되어버렸으니, 이 지루한 생활을 어떻게 하면 버텨낼 수 있을지 조언을 얻고 싶었으니까. 물론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일렌이 살았던 시대는 지금과는 달랐기 때문에, 그의 말은 언제나처럼 공허한 이상으로 끝날 가능성이 컸다. 그대로 잠들려던 카리타스를 깨운 것은 꿈속의 한 장면이었다.

어두운 밤, 추운 날씨인지 두 사람의 입에선 입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지금보다 한층 성숙해 보이는 시도폰과 아페가 나란히 의자에 앉아있었고 아페는 시도폰 방향으로 무언가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카리타스는 표정이 보이지 않는 시도폰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아페가 시도폰의 손을 잡은 것을 보고 잠에서 깼다.

‘…이건 예언이 아니겠지? 젠장, 잠도 다 깼고 속도 뒤집힌 것 같아.’

결국, 카리타스는 다시 잠들지 못하고 침대에서 뒤척이다가 해가 뜨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부터는 줄거리 구상해뒀던 거… 분명 내가 쓴 줄거리인데 이대로 안 따라가는 거 어이없음.

카리타스가 제 눈을 의심하며~: 왜 의심했는가?

-헤일로가 죽었다는 게 안 믿겨서

-악마의 갑작스러운 출현

-장례식을 치를 건데 시도폰이 남부에 못 옴

-혼란스러운 마음도 잠시, 이제 북부를 어떻게 지원해줘야 하는지 고민하게 됨

-추모의 마음을 오래 가지고 있지도 못한다는 현실에 또 화가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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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읽고 나서 교황이 자기 방으로 와달라고 했었던 게 기억 났는데 나중에 교황이 부름.

많은 이를 떠나보냈지만, 헤일로가 죽은 건 자기도 상심이 크다고 말하는 교황.

거기서도 카리타스는 진의를 의심하지만 교황의 뒷모습에서 이상하게 이것만큼은 진실이라는 느낌을 받았음. 그동안 교황은 아예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이런 느낌을 받게 된 건지 모르겠음. 그냥 오토 대주교 꼽줄 때처럼 아예 나빠보였으면 마음이 편했을 거라 생각함. 괜히 마음이 불편해져서 장례식 절차나 그런 얘기들을 듣는 동안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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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 당일

-남부 입구로 들어오는 북부 일행의 묘사(베론을 필두로 얼굴이 보이지 않게 투구를 쓰고 들어옴)

(하지만 시도폰이 임명식을 받을 때와는 다르게 사람들의 환호를 받지 않고 빠르게 교회로 향함. 그때는 기사단이 꽃을 받기도 했음.)

-장례의식을 치르는데, 당연히 시도폰은 자리에 없음. 카리타스는 눈을 감고 있는 헤일로를 보면서 처음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낌.

-근데 그 죽음이 자신의 것이 아님: 시도폰이 죽으면 저렇게 되나?(본인은 후방에서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함)

-관에 눈을 감고 누워있는 시도폰이 상상됨(+자책감)

-진심으로 헤일로가 편안히 쉬길 바라지만 그가 기사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죽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머릴 떠나지 않음.

-(상심) 베론과 그 뒤에 있는 프라이에, 두코, 아페, 코지를 봄

-장례식이 끝남. 모두가 숙연한 와중에 관의 뚜껑이 닫히고 그의 안식을 바라는 노래로 마무리가 됨.

-사람들이 떠나는 와중에,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헤일로의 여동생과 잠깐 대화함.

-아페가 울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의연한 표정을 하고 있어서 놀람(속으로만)

-(아페는 기운이 없어보였지만 지난 미들 부인 때처럼 절망한 눈빛은 아니었음. 무언갈 결심한 사람의 것)

-아페는 자신이 제대로 말했더라면 사람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당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서 발전하고 싶어함.

-카리타스는 그걸 듣고 아페가 지산보다 이 자리(성녀)에 어울린다고 생각함.

(본인은 시도폰의 안위를 걱정하고만 있었는데 아페는 다른 사람들도 지키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니까)

-딱히 아페가 카리타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고 카리타스 또한 발걸음을 옮겼다.

-장례식 때문에 저녁 일정은 전혀 없었음. 정처없이 걷다가 또 시도폰을 만난 정원의 복도를 걷게 됨.

-아페가 변한 것처럼 시도폰도 변했을지 궁금함. 베론이 여기 온 걸 보면 북부의 상황이 베론이 없어도 괜찮다는 뜻이니까 시도폰이 잘하고 있으리라고 믿음.

-'이렇게 또 내가 모르는 네가 생겼어.'

-멍하니 해가 지는 걸 바라보다가 얼마 안 되어서 자리를 뜸. 카리타스의 그림자가 복도로 길게 늘어지고 아무도 없는 복도는 그대로 어둠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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