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ido

3부 24화

다리 끝에 붙어있는 다 무너져가는 표지판에서 제망과 브리오소라는 글자를 발견한 그는 베론에게 제망과 브리오소의 언어가 달랐는지 물었다.

“달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용하는 문자는 비슷한데 발음은 조금 달랐습니다. 게다가 제망은 멸망한 지 꽤 되어서 할 줄 아는 사람도 몇 없을 겁니다.”

“아쉽군, 가는 길에 이것저것 발견한다고 해도 읽을 수 없으면 소용이 없잖나.”

베론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 낯선 땅에선 어린 기사들과 다른 바 없었다. 제망은 역사에만 기록된 과거의 망국, 시작의 땅이라는 상징적인 장소가 있지만 이미 악마들의 손에 빼앗긴 땅. 딱 그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직접 오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설레는 마음과 두려운 마음을 안고 있었지만, 그는 남들에게 티 낼 수 없었다. 침착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위험이 될 법한 게 있는지 확인할 뿐이었다.

브리오소의 공국과 다를 것 없이 황량한 풍경이 이어졌다. 건물의 잔해로 보아 두 나라의 건축 양식이 비슷했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그 외의 것은 전혀 알아내지 못했다. 언덕을 넘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시도폰이 창을 빼 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사들은 긴장하며 각자 무기를 손에 쥐었고, 잡역부들은 미리 말한 대로 기사들이 만든 진의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말들이 날뛰지 않도록 눈을 가렸고, 후방에 있던 두코와 크로마는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해 시도폰과 반대편을 바라보고 섰다.

곧이어 저 멀리서 기사단을 향해 몰려오는 악마들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고 시도폰은 솔라에게 진을 잘 지키라고 말하며 프라이에와 이디스를 데리고 돌진했다.

당황한 잡역부 하나가 괜찮은 거냐고 기사에게 물었다.

“작전대로 입니다. 악마들이 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으니까요.”

파열음과 함께 불꽃이 타올랐다. 아까 다리를 보수했던 힘이 악마들 사이에 길을 내고 그들을 반으로 갈라내었다. 시도폰이 한번 창을 휘두르면 악마들의 목 대여섯 개가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졌다.

운 좋게 그의 창을 피한 몇몇은 프라이에의 돌진에 차례로 터트려졌고 가까스로 그것까지 피한 악마들만이 본진으로 달려왔다. 솔라가 낙뢰를 쓰려는 듯 손을 들어 올리자 두코가 그를 말렸다.

“안돼. 그 정도 빛이랑 소리가 들리면 저들의 말이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죄송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곧바로 손을 거둔 솔라는 검을 들었다. 기사단은 솔라의 지시에 따라 달려오는 악마들을 썰어냈고, 후방을 경계하던 두코와 크로마도 전방으로 달려와 힘을 보탰다. 다행히 이탈자는 없었고 부상자들도 심각하지 않아서 사후 수습도 빨랐다.

무리로 돌아온 시도폰과 기사들도 무사했다. 잔뜩 긴장했던 잡역부들도 안심하며 말의 눈을 가렸던 안대를 풀었고, 일행은 다시 시작의 땅으로 향했다.

그런 식으로 삼 일을 걸어간 뒤 시도폰은 이쯤에 요새를 지어야 하지 않겠냐고 멈춰섰다. 주위를 둘러본 베론도 이에 동의했고,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이번엔 기사들이 잡역부의 지시를 받고 돌과 나무를 날랐다. 좀 이르지 않냐는 의견이 기사들 사이에서 나왔지만, 솔라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저희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격한 겁니다. 보통 상인들 같았으면 여기까지 오는 데 두 배는 걸렸을 테고, 어쩌면 악마들에게 잡혀서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크로마가 말을 보탰다.

“악마들을 처리한 김에 여기까지는 인간의 땅이라고 선언하는 거죠. 아, 돌 여기다가 놓으면 되나요? 아니라고요?”

같이 돌을 나르던 시도폰이 인부가 가리키는 곳에다가 돌을 가져다 놓고 팔을 쭉 뻗었다.

“아이고 팔이야.”

“집행자께선 쉬셔도 될 텐데요….”

주변의 걱정에도 시도폰은 고개를 저었다.

“한 사람이라도 도와야지, 빨리 끝나면 좋으니까. 그래야 더 멀리까지 갈 수 있지 않겠나.”

“아 그래서요….”

갑작스레 시도폰이 주변이 서늘해졌다. 그들은 시작의 땅까지 가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며 더 기운을 내는 시도폰을 보며 슬금슬금 멀어졌다.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고 시도폰은 열심히 작업에만 몰두했다.

악마들이 침입할 것을 대비해 순찰하던 베론이 돌아왔고, 한구석에서 쉬고 있던 프라이에가 일어났다.

요새를 짓는 동안에도 기사들은 교대로 주변을 살폈지만, 다행히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껏해야 덜 소탕된 하급 악마 몇 마리를 발견했을 뿐이었다고 베론이 시도폰에게 보고했다.

“수고했네. 요새를 다 지을 때까지 별일이 없었으면 좋겠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농번기에 사람 데려간다고 욕을 많이 먹었는데 누구 하나라도 잃었다간 마을 사람들을 볼 낯이 없겠습니다.”

끔찍한 소리 하지 말라며 시도폰이 기겁하자 베론이 실언했다고 사과하곤 몸을 풀었다. 그는 잡역부들 사이에서 이것저것 지시를 내리고 있는 토목공을 찾아가 요새의 진척 정도를 물었다.

그의 질문에 토목공은 설계도를 펼쳐 보이며 한참은 남았다고 대답했고 베론은 알겠다며 자신이 맡은 구역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시도폰은 순찰을 맡은 기사들에게 부탁해 간간이 기사단 본부에 소식을 전했다. 책임자로서 자리를 비울 수 없었기에 직접 가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보낸 것보다 세 배는 두껍게 돌아오는 답장에 기쁘면서도 미안한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편지의 주된 발신인은 슈바헨과 교황, 피데이스, 카리타스였다. 다들 무리하지 말라고 걱정하는 말을 담았지만, 교황은 조금 달랐다.

그는 정말로 시도폰이 시작의 땅까지 영역을 넓히길 바라고 있는 듯했다. 혹시나 남부 교회가 반발하면 어떡하지 걱정했던 시도폰이었지만, 교황의 편지로 보면 그런 의견은 없는 것 같았다.

‘남부 재무 담당관은 어떻게 반응했을지 궁금하지만.’

분명 북부로 많은 예산이 배정되었을 것이다. 피데이스와 카리타스의 편지 내용으로 보면 재무 담당관의 표정이 좋은 날은 없어 보였다.

피데이스는 스페스(spes)파와 관련된 내용을 보고하였는데, 그들을 잡기 위해 본격적으로 돌아다니고 있어서 편지는 자주 못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시도폰은 혹시 쿠나블라에 가게 되면 어땠는지 감상을 꼭 들려달라고 답장했다.

카리타스의 편지에 막 답장을 하려던 때, 시도폰의 막사 밖에서 누군가 그를 불렀다.

“들어오게. 무슨 일인가?”

솔라가 등불을 들고 들어와 소등 시간임을 알렸다.

“벌써 그렇게 되었다고?”

어쩐지 피곤하더라니, 시도폰은 알려줘서 고맙다며 펜을 내려놓고 자리에 누웠다. 평소 같았으면 답장은 하고 잤을 테지만, 오늘은 나른 돌이 많아서 그런지 시도폰도 수마를 버티지 못했다.

다행히 아침에 일어나는 데는 무리가 없어서 그는 일어나자마자 답장을 쓰고 일과를 시작했다.

북부 수행단을 맞이해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기사들이 슬슬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동안 악마들이 많이 소탕되기도 했고, 곧 농한기라 마을에서 인부들을 차출해 기사들을 대신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시도폰은 돌아갈 수 없었다. 그가 있는 것만으로 자잘한 악마들은 덤비지 못했으니까.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훈련이 끝나는 대로 돌아올 테니 그동안 조심하시고요.”

두코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시도폰은 손을 흔들어 두코와 기사들을 배웅했고, 돌아와서는 인부 사이를 누비며 곳곳에 화톳불을 지폈다. 보통의 불이었다면 붉게 타올랐을 테지만, 시도폰이 붙인 불은 하늘색으로 솟아올랐다. 한 인부가 꿈을 꾸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몽환적인 풍경이었다.

여러 기사의 업무를 대신했기 때문에 시도폰은 단순 노동에서 손을 뗐고 그건 솔라도 마찬가지였다.

시도폰이 제 곁에서 걷고 있는 솔라를 흘끔 보며 말했다.

“자네가 두코와 함께 본부로 가서 일을 좀 했으면 했는데….”

“부관이 어떻게 상관을 두고 후방으로 빠지겠습니까?”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시도폰이 보기에 솔라가 서류 업무를 맡아준다면 본부에서 기사 둘 셋은 더 데려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뭐, 그러면 필요한 식량도 늘어났겠지. 안 가겠다는 사람 억지로 보내기도 좀 그렇고.’

시도폰은 뒷짐을 지고 다시 걸었다. 눈이 올 모양인지 하늘은 흐릿했고 동물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석 달 동안 길게 지은 담이 끝없이 이어졌고, 제법 모양새를 갖춘 요새의 모습에 인부들도 속도를 내서 일하고 있었다.

그들을 독려하던 중 시도폰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호셰, 무슨 일인가?”

그는 인부들의 리더를 맡은 토목공이었다. 호셰는 채석장에 둔 돌들이 다 떨어졌다며 새로 캐야 하니 솔라를 빌려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시도폰이 고개를 끄덕이자 솔라는 군말 없이 호셰를 따라 채석장으로 향했고 혼자 남은 시도폰은 가던 길을 계속 걸었다.

“눈이네.”

새하얀 가루 같은 것이 시도폰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겨울이 오고 나서 시도폰은 항상 신성력을 제 몸에 두르고 다녔기 때문에 두꺼운 외투가 필요 없었다.

그것을 모르는 작업자들이 시도폰에게 춥지 않냐고 걱정하러 왔다가,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온기를 느낀 뒤 작업하러 가기 싫다고 그에게 매달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물론 그들은 솔라의 손에 가차 없이 떨어져 나갔다.

조용하던 중에 우르릉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돌들이 굴러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이어졌다. 솔라가 채석장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제법 규칙적이어서 큰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거슬리지는 않았다.

잠시 후, 시도폰이 막사에 도착했을 때 솔라가 그를 뒤따라 도착했다.

“수고 많았네.”

“당연한 일입니다.”

시도폰은 그 앞에 생략된 말이 무엇인지 굳이 묻지 않았다. 시도폰의 명령이니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일지, 사람들을 돕는 게 당연하다는 것일지. 옛날이었다면 따져 물었겠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진 것 같다.

‘생각이 어떻든 도왔다는 게 중요하지. 흠, 나도 꽤 느슨해졌나?’

천을 치우고 들어간 막사의 책상엔 종이 뭉치가 담긴 듯한 봉투가 놓여있었다. 시도폰의 의복을 손질하던 루카가 그의 발소리를 듣고 뒤돌았다.

“오셨군요! 북부에서 결재가 필요한 서류가 도착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기 두었습니다.”

‘…웬만한 서류는 슈바헨님 선에서 처리해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얼마나 중요한 일이길래 여기까지 온 거람.’

고개를 끄덕인 시도폰이 바로 자리에 앉아 봉투를 열었고, 맨 앞장에 적힌 제목을 보고 그는 한숨을 쉬었다. 곁눈질로 제목을 훔쳐본 솔라는 무표정한 얼굴로 앞만 보았지만 주먹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두꺼운 종이 뭉치를 순식간에 읽어내린 시도폰은 그것을 솔라에게 읽어보라고 건네주었다. 평소 같았다면 솔라가 그에게 읽어도 되냐는 질문을 예의상으로라도 했겠지만, 이미 제목을 봐버렸으니 아무리 침착한 솔라여도 그런 질문을 할 정신은 없었다.

다 읽고 나서 시도폰에게 서류를 돌려준 솔라는 황당하다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피데이스가 이단이라니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공문이라고 보내다니 남부 교회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동감일세.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피데이스가 그런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네. 직접 남부로 내려갈 수도 없고 변호할 만한 사람을 보낼 수도 없는 상황인데….”

‘설마 이때를 노린 건가.’

시도폰이 턱을 괴었다. 피데이스가 다소 엉뚱한 면이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앙심이 남들에 비해 낮다거나 적다고 할 수 없었다.

[사제 피데이스의 이단 혐의 공소장]이라는 제목이 보기 싫었던 시도폰은 서류를 뒤집어버렸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런 공문이 온 걸 외면할 수도 없어서 그는 다시 서류를 마주하고 다른 빈 종이도 꺼내 들었다.

“반론을 작성하시는 겁니까? 돕겠습니다.”

“응, 고맙네. 일단 초안을 작성해볼 테니 다 되면 읽어주게. 보충해야 하거나 수정해야 할 부분을 알려주면 좋겠어.”

두 사람은 밤새 서류를 뜯어 먹을 듯이 읽으며 슈바헨이 따로 첨부한 자료를 참고해가며 반론문을 작성했다. 피데이스가 남부로 파견된 지는 넉 달이 되었는데 본격적인 이단 심문활동을 시작한 지는 석 달이 되었다.

슈바헨의 편지에 따르면, 피데이스가 이단들을 잡아내는 실력 자체는 인정을 받았지만, 교회 내에서 그의 언행이 문제가 된 것 같았다. 북부에 있을 적의 피데이스는 교회를 비판하는 말을 종종 했는데, 그런 말을 남부에서도 가끔 해버린 게 그곳 사제들의 반발을 샀다고 되어있었다.

‘어쩐지 공소문에 사람 이름이 많이 나오더라니. 시비 건 사람을 하나하나 다 써둔 거였나.’

다음 날 아침, 작성한 반론문을 꼼꼼히 다시 읽어본 시도폰이 그것을 봉투에 넣고 루카에게 건넸다. 그러면서 최대한 빨리 전달해달라고 덧붙인 뒤, 시도폰은 솔라를 데리고 일과를 시작했다.

솔라의 도움으로 쪼개진 돌을 열심히 나르던 인부들은 좋은 아침이라며 인사했고, 아침을 맞아 순찰하던 기사도 그들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피데이스가 무사해야 할 텐데.”

시도폰이 솔라에게만 들릴 정도로 조용히 말했다.

“….”

솔라는 대답 없이 어두운 표정으로 시도폰의 뒤를 따랐고, 침묵 속에서 두 사람은 계속 걸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반론문에 대한 답장이 도착했다. 이번에도 꽤 두꺼운 봉투를 보며 시도폰이 겁을 먹었고, 솔라는 초조한지 빨리 열어보라는 눈빛을 보냈다. 제목을 보자마자 시도폰은 침음을 흘렸다.

‘빨리 끝날 일은 확실히 아니겠구나.’

새로운 서류 뭉치의 제목은 지난번과 같았다. 그 끝에 수정안이라는 단어가 붙어있을 뿐이었다. 한숨을 쉬며 솔라와 함께 그것을 넘겨본 시도폰은 읽으면 읽을수록 감기는 눈을 억지로 떴다. 다 읽고 난 후 솔라가 말했다.

“지난번에 저희가 반박한 내용은 대부분 제외되어 있군요. 이것까지는 사실 확인을 한 모양입니다.”

“응, 그런데 왜 서류 두께가 비슷한가 했더니.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어 있었던 거고.”

추가된 내용 중 하나를 보면, 조직 설립 초창기부터 피데이스와 이단 심문관 사이에 갈등이 있었던 모양이다. 복도에서 그들끼리 다투는 모습을 많이 목격했다는 제보가 적혀있었는데, 정작 왜 그들이 다투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시도폰이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원래 조직 사이에 갈등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지 않나? 우리 회의할 때만 해도 두코랑 프라이에가 얼마나 자주 싸우는데…. 솔직히 억지로 욱여넣은 부분들이 많다고 생각하네만.”

솔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이단 심문관과 다퉜다는 이유로 이단 취급을 하겠다는 멍청한 말을, 교회가 할 거라곤 생각을 못 했는데…, 당황스럽습니다.”

“이런 헛소리에 진지하게 반박을 해야 한다는 게 화가 나. 시간도 아까운데 이걸 들고 북부와 남부를 왕복해야 하는 저 사람도 불쌍하군.”

지난번에 피데이스의 공소장을 가지고 왔던 전령이 이번에도 시도폰의 막사에 왔다. 그는 다 죽어가는 얼굴로 루카에게 간신히 물을 받아서 마셨는데, 제발 그만 오게 해달라는 말이 얼굴에 쓰여있는 것 같았다.

미안한 마음은 둘째치고, 시도폰은 이번에도 반론문을 작성했다. 그러던 중 그는 전령에게 혹시 피데이스가 고문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물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 것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연락을 전달하기만 하는 입장이라….”

“이쪽을 봐주십시오. 성녀님께서 보낸 편지가 있습니다. 혹시 여기에 정보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조금은 떨떠름한 얼굴로 솔라가 편지 하나를 내밀었다. 오랜만에 보는 카리타스의 편지에 시도폰이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그것을 받아들었고, 피데이스가 그런 가학 행위를 당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가 안도하자 솔라도 표정을 풀었다.

“그런 일은 없었다고 하니 다행이군. 그래도 계속 재판에 불려가느라 많이 지쳤을 거야, 빨리 이걸 써서 보내야겠어.”

솔라는 시도폰이 시찰 때문에 나가 있는 동안 반론문을 고쳤고, 돌아온 시도폰의 확인을 받은 뒤 전령에게 봉투를 전달했다. 그는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막사를 나섰지만, 안타깝게도 며칠 후 다시 시도폰의 막사를 방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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